아랍 이야기/여러 생각들...

[다큐] 푸대접을 자초한 UAE 방문, 그날 UAE에선 무슨 일이 있었을까?

둘뱅 2014. 5. 24. 02:07

(여기서도 등장하는 만수르 맨시티 구단주의 위엄!!!! 그 대신 무함마드 왕세제가 있었으면 좀더 보기 좋았을텐데;;;;)


이번주 초 눈물의 담화문을 발표하고 훌쩍 다녀왔던 박 대통령의 UAE 방문은 너무나도 부자연스러운 행보의 연속이었습니다. 숭배하듯 모시는 국내 언론들마저 호들갑떨지 않았을 정도로 딱히 자랑할만한 성과도 없었고, 격이 맞는 상대는 만나보지도 못했으며, 정작 초대했다는 당사자는 270여km 떨어져있다는 현장에 대리인으로 자신의 동생을 보냈으니 말이죠. 


이에 의문을 던진 글과 기사들이 있지만, 정작 중요한 UAE측 상황이 설명되지 않은 것들이라 이 부자연스러움을 이해하기엔 모호하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날의 UAE 신문을 검색해보니 매체에 따라 회담 소식이나 행사 참가 소식을 전한 곳도, 안 전한 곳도 있었고, 있어도 관영통신 보도를 전달하는 수준이었거든요. 검색 링크를 붙이기 무안할 정도로 현지에서 박 대통령의 방문은 같은 날 방문한 사우드 알파이살 사우디 외무장관이나 이브라함 마흘랍 이집트 총리에 밀려 매체에서 다루는 노출빈도가 현격히 낮았습니다. 사우드 알 파이살 사우디 외무장관의 회담 소식은 당사국인 사우디, UAE 뿐만 아니라 인근 걸프 국가와 많은 국가에서 다뤘거든요. 그래서 UAE 관영통신 WAM에 올라온 5월 20일자 기사와 사진들을 통해 소설? 다큐?를 준비해 봤습니다. 매체가 택하든 말든 관영통신의 임무에 따라 부통령과 왕세제의 소식을 시간대별로 전해줄테까요. 스포를 미리 누설하자면, UAE측의 결례라고 보기는 어려웠다는 것입니다.



기: 과연 국빈 방문이었을까?
UAE
는 아부다비, 두바이, 알아인, 라스 알카이마, 샤르자, 푸자이라, 움무 알까인의 7개 토후국이 모인 연합국가로 미국처럼 국방, 외교 등의 중요한 이슈는 연합 차원에서, 나머지 사안들은 개별 토후국에서 자체적으로 관장합니다.

UAE
대통령 겸 아부다비 통치자인 셰이크 칼리파 빈 자이드 알 나흐얀은 몇달 전 뇌졸중으로 쓰러져 수술을 받은 바 있으며, 최근 뉴스를 보면 축하전문을 보냈다거나 행사를 주최했다 정도의 소식만 들려올 뿐, 외국에서 온 손님을 맞이했다거나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18일 저녁에 있었던 대통령컵 결승전에도 시상자로 셰이크 무함마드 빈 라쉬드 알 마크툼 UAE부통령 겸 두바이 통치자가 셰이크 칼리파를 대신해서 참석했었으니까요.


(무함마드 부통령이 칼리파 대통령 대행으로 대통령컵 트로피를 오마르 압둘라흐만에게 전달하고 있다.)


대통령컵 시상자를 무함마드 부통령이 대행한 것에서 볼 수 있듯, 무함마드 부통령이 칼리파 대통령의 대행 역할을 맡습니다. (그 기간이 길어지면서 왕세제인 셰이크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나흐얀이 실제 대행을 맡고 있죠.) 그런데.... 무함마드 부통령은 만나지 않았고, 국내의 복잡한 정세 속에서도 아부다비로 가도록 자신을 초청했다는 셰이크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아부다비 왕세제 겸 UAE연합군 부총사령관만을 만났습니다. 그것도 원래 초청했던 행사장이 아닌 곳에서 말이죠. 일단, 그날 무함마드 빈 라쉬드 알 마크툼 UAE 부통령 겸 두바이 통치자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행사가 있었던 20일, 그는 아침부터 다양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습니다. 시인들이 참석하는 행사에도 참가하고, 트레블을 달성한 알아흘리 선수단을 자빌궁 (Zabeel Palace)로 초청해서 격려하는 시간을 가졌으며, 제13회 아랍 미디어 포럼 개회식에 기조 연설자로 참석한 이브라힘 마흘랍 이집트 총리와도 만난 후에 아부다비로 넘어갔습니다.


(회담 중인 무함마드 부통령과 이브라힘 알마흘랍 이집트 총리)



(무함마드 총리와 UAE 리그 13/14시즌 챔피언 및 트레블을 달성한 알아흘리 선수단)


그렇다면 무함마드 왕세제의 일정은 어땠을까요?  

 

승: 무함마드 아부다비 왕세제는 왜 현장에 없었을까? 그 날의 공식일정.
국내 언론에서 얘기하는대로라면 무함마드 왕세제는 자신이 행사에 불러놓고도 손님을 현장에서 맞이하지 않고 다른 곳에서 잠깐 만난 결례를 범한 것처럼 보입니다. 무함마드 왕세제는 20일 오후 박 대통령을 비롯한 세 팀의 방문객을 맞이하고 칼리파 대통령 손자 결혼식에 참석하는 등 바쁜 오후를 보냈습니다. 보도 순서로 보면 박 대통령 일행, 사우드 알 파이살 사우디 외무장관 일행, 그리고 이브라힘 마흘랍 이집트 총리 일행 순으로 만난 것으로 보입니다그런데 다른 두 사절단의 대표들의 격은 박 대통령과 비할 바가 아닙니다. 뭔가 이상하죠? 한국 대통령 = 사우디 외무장관 = 이집트 총리

 

무함마드 왕세제가 박 대통령과 사우드 알 파이살 왕자를 만나는 사이에 두바이에서 무함마드 부통령과 회담을 마친 이브라힘 마흘랍 이집트 총리는 아부다비로 함께 넘어가 무함마드 왕세제와 회담을 가진 뒤 칼리파 대통령 손자 결혼식에 함께 참석하게 됩니다. 이 행사에는 바레인 국왕도 참석했지만, 바레인 국왕은 행사 끝나고 따로 무함마드 왕세제와 만났다는 얘기는 없네요. 


(바레인 국왕도 참석한 칼리파 대통령 손자 결혼식의 주요 하객들)


이브하림 마흘랍 총리는 20일 무함마드 부통령, 무함마드 왕세제와 차례로 회담을 갖고 대통령 손자 결혼식에 참석한 후 다음날 칼리파 대통령의 아버지인 자이드 전 대통령의 묘지를 참배한 후 이집트로 돌아갔습니다. 가정사까지 챙기는건 오버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이집트는 UAE의 도움을 필요로 하기에 낮은 자세로 다양한 일정을 소화하면서 예를 갖추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우디의 경우 UAE에서 다양한 일정을 소화하며 예를 표현한 이집트와 달리 UAE와의 관계에서 우위에 있기 때문에 외무장관 일행을 보내어 중요한 이슈만 마무리 한 것으로 보이구요. 



: 만나서 무슨 얘기를 나눈걸까?
WAM
의 보도내용을 보면 박 대통령 회담 기사는 다른 두 팀과 현저히 다릅니다. 사우디 외무장관과 무함마드 왕세제는 배석한 양국 관계자들과 "지역내 도전"에 공동으로 대응하기 위한 최고 공동 위원회 설립 합의 등 양국의 현안을 논의했고, 이집트 총리와 무함마드 왕세제는 배석한 양국 관계자들과 함께 양국간 현안을 논의했다면서 배석한 참석자들의 이름까지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박 대통령과 무함마드 왕세제의 회담 기사는 세월호 얘기와 공치사를 주고받았다는 것뿐 구체적인 이슈도 없고, 박 대통령 일행이라고만 언급했을 뿐 구체적으로 배석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소개되어 있지 않습니다. 칼리파 대통령이 오래 건강하시기를 기원한다...는 한마디만 남겼어도 좀더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 있었겠지만, 그건 아닐듯하고... 보통 국빈 방문으로 갔으면 사절단을 데리고 가서 이런저런 이슈들을 얘기나눌텐데 말이죠. 국내 언론도 눈에 띌만한 방문성과라고 떠들어댄게 없죠



<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아부다비 왕세제가 5월 20일에 만난 외빈들 >

한국측
UAE측
 박근혜 대통령과 일행
 셰이크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아부다비 왕세제 겸 UAE군 부총사령관

< 한국-UAE 회담 참석자 이름과 직책/ 출처: "Mohamed bin Zayed receives South Korean President’" >


사우디측
UAE측
 외무장관 사우드 알 파이살 왕자
 내무장관 무함마드 빈 나이프 알 사우드 왕자
 국무장관 및 내각 위원 무사이드 알 아이반
 셰이크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아부다비 왕세제 겸 UAE군 부총사령관 
 셰이크 사이프 빈 자이드 알 나흐얀 중장 
부총리 겸 내무장관
 셰이크 압둘라 빈 자이드 알 나흐얀 
외무장관
 안와르 빈 무함마드 가르가쉬 
외교문제 담당 국무장관 
 칼둔 칼리파 알 무바라크 
아부다비 집행당국 (EAA) 국장 
 알리 무함마드 함마드 알 샴시 국가 최고 안보위원회 사무차장
 무함마드 무바라크 알 마즈루이 아부다비 왕세자실 차장

< 사우디-UAE 회담 참석자 이름과 직책/ 출처: "Mohamed bin Zayed receives Saudi Foreign Minister" >


이집트측
UAE측
 이브라힘 마흘랍 총리
 아슈라프 알 아라비 계획부 장관
 파크리 압델 누르 상공투자부 장관
 두리아 압둘 학 정보부 장관
 아므르 압델 무님 소장 이집트 국무회의 사무총장
 아흐메드 알 무살라마니 이집트 대통령 자문역
 이합 하무다 주UAE 이집트 대사
 셰이크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아부다비 왕세제 겸 UAE군 부총사령관 
 셰이크 사이프 빈 자이드 알 나흐얀 중장 
부총리 겸 내무장관
 셰이크 술탄 빈 칼리파 알 나흐얀 UAE대통령 자문역
 술탄 빈 아흐메드 술탄 알 자비르 국무장관

 무함마드 무바라크 알 마즈루이 아부다비 왕세자실 차장

< 이집트-UAE 회담 참석자 이름과 직책/ 출처: "Mohammed bin Zayed receives Egyptian Premier" >



외국 고위 관료가 우리나라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고 마음대로 만날 수 있지 않은 것처럼 대통령을 포함한 고위 정부인사가 다른 나라를 방문할 때는 사전에 일정을 조율합니다. 실례로 올해 2~3월 사우디의 살만 왕세제는 휴양을 겸한 아시아 순방을 다녀오면서 파키스탄, 인도 뿐만 아니라 멀리 동북아시아에 있는 일본과 중국 등을 공식 방문했고 양국간 관계가 더욱 친밀해지는 성과를 올렸습니다. 지난 해 미국이 이란과 가까워지면서 미국 뿐 아니라 유럽과 아시아 국가들과 관계를 강화하기 시작한 사우디 외교정책의 다변화 경향을 보았을 때 우리 입장에서도 더욱 가까워질 수 있는 좋은 기회였죠. 일본과 중국까지 갔으면서 우리나라를 방문하지 않았던 이유는 우리나라 정부와 일정조율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더군요. 당초 짜여진 일정과 시스템이 있기에 외국 지도자가 우리나라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고 아무 때나 다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설명이었습니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5월에 사우디를 방문하는 것으로 사우디 정부와 일정을 조율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개인적으로도 지난주 쯤 사우디, UAE, 쿠웨이트 중동순방 일정이 있다는 소식을 알게된 것이 4월말이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사정을 이유로 취소했다고 들었는데, 곧 발표할 것처럼 뜸을 들여오던 담화문을 하나 발표한 후 그야말로 훌쩍 떠났다가 왔습니다. 게다가 요즘 일거리 많은 걸프국가들이고, 그만큼 얻어내기 위해 정부 고위인사나 재계 인사들을 몰고 갔을텐데, 바로 위에서 얘기했듯 격에 맞는 인사를 만난 것도 아니고, 초청한 사람은 현장에서 만나지도 못했으며, 만나기는 했지만 그다지 특별한 회담 이슈도 없어보이는 부자연스러운 모습만이 연출되었을 뿐입니다. 심지어는 외국 순방을 갈 때마다 빠지지 않는 교민 간담회마저 없었던데다가 추가로 들려오는 전언에 따르면 전용기를 운영하는 업체 측에서도 갑작스런 일정준비로 난리가 났었다는 얘기도 들리네요...


이쯤에서 소설을 써 보자면.... 이번 UAE 방문이 담화문 발표와 숨고르기를 위해 패키지로 엮인 급조된 일정이었을 것으로 보이는군요!

현장 행사와 관련된 자재들은 이미 4월말에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라 기공식 행사 일정이야 언제든지 조정가능하지만, 해당 국가 고위 인사들과 국내 사절단 인사들의 일정을 한번 깨버린 상태라면 다른 일정들이 맞물려 있어 한두달 뒤도 아니고 불과 며칠 뒤 일정을 다시 조정하기가 여의치 않을테니 말이죠. 살만 왕세제의 방한이 성사되지 못했던 것처럼요. 정부 고위관료든 사절단이든 실무를 논의할 일행이 없으니 정작 만나도 얘기나눌 거리가 없을 수 밖에요. 중동 순방이 예정되었으니 이미 교민 간담회에 참석할 교민들의 신원확인까지 다 끝난 상황이었을텐데도 그나마도 못했던 것 역시 얼마나 급조된 일정이었는지를 짐작해볼 수 있죠.

방문 목적이나 격을 따지기 보다는 홀대받는 인상이 있더라도 일단 가능하다는 시간에 가고 보자!가 푸른집의 요구사항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정황상 아부다비와 행사 일정을 조율한 뒤에 이동시간을 감안하여 담화문 발표일정을 잡았을 것으로 보이구요. 무함마드 왕세제야 자기가 초청한 바 있으니 급작스런 일정변경 요청을 받아주기는 했겠지만, 그 변경된 일정 자체가 상호 합의된 일정을 깨고 박대통령 일정에 맞춰준 것이고 큰 안건도 없으니, 굳이 270KM나 떨어진 현장까지 직접 갈 필요성을 못 느꼈던 것으로 보입니다. 사적으로는 외국인 방문객들과도 자연스레 어울릴 정도로 격의가 없는 걸로 알려져 있지만, 공적으로는 자신과 상대방의 격과 그에 따른 이익을 철저히 따져서 행동하는 것으로 보이거든요. 어차피 홀대받든 망신을 당하든 국내 언론들이야 아름답게 포장해줄테구요


이런 상황을 고려해볼 때 정치적 목적 때문에 외교 결레를 범한 것도 우리측이라고 보여집니다. UAE야 갔다고는 하지만, 국내 사정을 핑계로 예정된 약속을 깨놓고 스스로의 격을 낮춰가며 갑작스런 일정조정을 요청했을테니 이건 국가간 외교의 모습이라 보기도 힘들고, 무엇보다 더 큰 건수가 걸려있는 사우디나 쿠웨이트 입장에서 봐도 뭥미? 싶지 않을까요? 못 온다던 사람이 며칠 뒤에 갑자기 옆 나라에 모습만 빼~꼼 비치고 나타나더니 자신네 나라는 오지도 않았으니 말이죠... 심지어 사우디와는 올 상반기에만 최정상급 인사들이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두 번이나 날려버렸으니까요...



** 사진의 저작권은 UAE 관영통신 WAM에 있음을 다시 한번 밝힙니다. 출처: 5월 20일자 보도사진들 (WAM)

** 몇 달 동안 기획했을테고 들었다놨다하는 일정 변경 때문에 뒤집어졌을 관계 부처와 관련 업체 담당자들에게는 수고하셨다는 말을 드리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