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CC/사우디

[정치] 무타입 왕자의 장관 승격으로 본 유력 차기 승계후보들...

둘뱅 2013. 6. 6. 21:28

얼마전 포스팅 ([정치] 압둘라 국왕, 사우디국가방위군을 국가방위부로 격상시키고 아들을 장관에 임명!)을 통해 압둘라 국왕의 아들 무타입 왕자가 국가방위부 장관으로 승격되면서 유력 차기 계승 후보군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드린 바 있습니다. 사우디 관련 포스팅 중에서 사우디 왕실 후계구도와 사우디 실업문제를 주로 다루고 있는 것은 이 두 주제가 지금은 잘 나가고 있는 사우디가 안고 있는 미래의 불안요소이기 때문입니다. 아직까지는 석유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석유를 세계에서 가장 많이 수출하고 있는 나라 사우디의 현재와 미래는 우리 경제, 더 나아가 세계 경제에도 미치는 여파가 클테니까요.


사우디 승계문제의 경우 국부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의 아들 세대가 워낙 고령이라 정권의 지속성 면에서도 부정적인 요인을 가지고 있고, 그 아들들이 너무 오래 요직을 차지하게 되면서 상대적으로 손자 세대들의 준비기간이 짧은 탓에 지금까지는 누구 다음이면 누구? 라는 후계구도가 명확한 반면, 앞으로는 상황에 따라 후계구도가 불분명해지게 될 경우 자신들의 선조가 그랫던 것처럼 왕실의 분열로 사우디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국민이 외국인보다 두 배 이상 많은 가운데 그 중 절반 가까이가 청소년 층이 차지하고 있어 이로 인한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우디 정부는 오래전부터 자국민 고용정책인 사우디제이션을 써오고 있지만, 니따까 시스템으로 업그레이드 한 지금까지도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오지 않아 외국인들의 강제추방에 나서는 등 현상황의 시급성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엿볼 수 있을 정도니까요. 지난 2011년 3월 11일 인터넷 등을 통해 "분노의 날"이라는 이름 하에 사우디 왕가에 대한 대대적인 시위를 조직하려고 했다가, 정부의 강경한 사전진압과 이를 행동에 옮기려는 시민들의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아 무위로 그쳤지만, 상황을 개선시키지 않을 경우 사우디 국민들이 또 동참하지 않을 것이란 확신 역시 없으니까요.


그래서 이번 포스팅에서는 불명확한 후계구도 속에서도 어느 정도 인정받고 있는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의 아들 세대와 손자 세대에서 두드러지는 유력 후보군들을 소개해 볼까 합니다.



1. 살아있네! 살아있어! 압둘아지즈의 아들들...

유력했던 일부 왕자들이 왕세제 자리에서 사망했듯, 현재까지 살아남은 압둘아지즈의 아들 중 유력 후보군에 오를만한 이는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나이가 너무 많아서, 요직 경험이 없어서 혹은 정치에 관심이 없어서...등 다양한 이유로 하나둘씩 빠지다 보니 정말 몇 사람 안 남은 것이죠.


이들 중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인물은 최근 제2부총리가 된 무끄린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왕자입니다. 세간의 예상을 뛰어넘고 갑툭튀하며 유력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으니 말이죠.


1) 무끄린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왕자

  이름 (본명)  무끄린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출생일 / 출생지  1949년 9월 15일 / 리야드
  현재 직위  제2부총리 (2013.02.01~현재)
  압둘라 국왕 특별 자문역 (장관급) 및 특사 (2012.07.20~현재)- 동남 아시아 문제
  주요 경력  사우디 정보국 (무캇바라) 국장 (2005.10~2012.07.19) ([사회] 사우디의 국가정보원, 사우디 정보국 "무캇바라" 참조)
  
메디나주 주지사 (1999~2005)
 
하일주 주지사 (1980~1999)
  교육  General Staff course (미국)- 석사와 동등한 학위 (1974)
  영국 공군사관학교 (Royal Air Force College)- 항공학 공군 대위 (1968)   
  리야드 모델 학교 (Riyadh Model Institute)
  부모  부: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국왕 (1953년 사망)의 35번째 아들
  모: 바라카 알 야마니 (18, 혹은 19번째 부인) 의 1남 중 1남 
  가족관계  부인: 압타 빈트 하무드 알 라쉬드
  자녀: 6남 8녀. 이 중 4남인 투르키 빈 무끄린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사우디 최초의 라비그 윙 항공학교 CEO)가 가장 유명. 

사우디를 건국한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국왕의 35번째 아들이자 압둘라 국왕의 이복 동생.

그는 공군 조종사 출신으로 1964년부터 1980년까지 사우디 공군에서 근무하였으며, 1980년부터 2005년까지 25년간 하일주와 메디나주 주지사를 역임하였으며, 압둘라 국왕이 부임한 후 사우디 정보국 국장을 역임했으며, 국왕 특별 자문역을 거쳐 지난 2013년 2월 고 파하드 국왕, 압둘라 국왕, 고 술탄 왕세제, 고 나이프 왕세제 등이 거쳐간 제2부총리 (Seconde Deputy Prime Minister)에 임명되면서 유력 왕위 승계 후보군에 올랐다.


메디나주 주지사 시절 핫지 기간에 일어난 반정부, 반 사우드 왕가 시위에 직면한 파하드 국왕의 명령으로 여러 지역의 교육과 보건 서비스를 발전시키는게 기여했다. 전통주의자로 주지사 시절 전통적 가치를 고취시키는 공약을 지켜나갔다고 한다.

압둘라 국왕은 즉위 후 얼마 안되어 그를 사우디 정보국 국장으로 지명하였고, 알까에다에 의한 사이버 테러전과 맞섰으며, 이들의 위협에 대해 국민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정보국 사이트를 개설했고, 아라비아반도의 알까에다 조직 (Al-Qaeda in the Arabian Peninsula, 약칭 AQAP)과 맞서기 위해 조직을 재정비하여 사우디로부터 이슬람 무장세력을 몰아내는데 성공했다.

압둘라 국왕은 그를 자신의 특별 자문역에 임명한 후 2013년 2월 1일, 그를 2011년 10월 이후 공석이었던 제2부총리에 갑작스레 지명하면서 유력한 왕위 계승 후보군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실질적인 그의 업무는 압둘라 국왕과 살만 왕세제의 건강문제로 인한 병가 등으로 공석이 될 때마다 국정운영을 대행하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압둘라 국왕은 리야드에서 등수술을 받은 지난 해 11월 18일부터 28일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사망설, 코마설 등이 나왔고, 얼마전에도 사망설이 나오는 등 국왕의 건강상태는 좋지 못한 편이며, 작성일 (2013년 6월 5일) 현재 그는 사우디를 떠나 모로코로 휴가를 떠났다.) 
그가 공석이던 제2부총리에 지명될 것으로 예상했던 전문가들은 없었으나, 압둘라 국왕은 작년에 이미 공백상태를 경험하였기에 권한을 대행할 사람이 필요했으며, 비어있으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신뢰하는 그를 앉힌 것으로 보인다. 

그는 왕실 내 압둘라 국왕의 든든한 우군 중 한명이라는 평을 듣고 있으며, 압둘라 국왕은 그가 정보국 경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정보국 국장에 임명했다가 현재의 제2부총리까지 승진시키면서 그의 정치적 입지를 급강화시켰다. 이는 그가 압둘라 국왕의 신임을 받고 있는 다재다능한 교섭 대표자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왕실 내에서는 관대하다는 평을 듣고 있지만, 동부지역의 시아파 문제와 같은 특수한 문제에서는 가혹하게 대응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동부지역의 시아파 문제 등 일부 사안에 대해 강직하고 보수적인 인사로 유명했던 고 나이프 왕세제가 거부했었을 정도로 더 가혹한 대응을 요구했었을 정도로 권위주의적 인사라는 부정적 시각과 사우디 왕실 인사 중 자유주의자이며, 부패나 각종 부정 행위가 없는 청렴한 인사라는 긍정적 시각이 공존하고 있다.



2) 아흐메드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왕자

  이름 (본명)  아흐메드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출생일 / 출생지  1942년생 / 리야드
  현재 직위  없음
  주요 경력  내무장관 (2012.06.18~2012.11.05)
  내무차관 (1975~2012.06.18)
  메카주 부주지사 겸 차관 (1971~1975)  
  교육  레드랜드 대학교 (University of Redlands)- 명예 인문학 박사 (1999)
  레드랜드 대학교 (University of Redlands)- 정치학 학사 (1968) 
  USC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영어와 과학
  왕자학교 (Princes School), 안잘 학교 (Anjal Institute) (1961)
  부모  부: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국왕 (1953년 사망)의 31번째 아들
  모: 핫사 빈트 아흐메드 알 수다이리 (8번째 부인이며, 이혼했다 재결합하여 사후까지 함께 함. 1969년 사망)의 7남 4녀 중 7남
  가족관계  부인: 2명
  자녀: 7남 5녀. (그의 자녀들 중 아랍 안과학회 (Arab Ophthalmology) 사무총장인 장남 압둘아지즈 빈 아흐메드와 캠브리지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따고 사우디 육군에서 전략기획을 책임지고 있는 차남 나이프 빈 아흐메드 대령이 유명.)

사우디를 건국한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국왕의 31번째 아들이자 압둘라 국왕의 이복 동생으로 사우디 왕실에서 유명한 수다이리 세븐 (핫사 알 수다이리가 낳은 7형제. 그녀는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국왕의 수많은 부인들 중 가장 많은 7형제를 낳았다.)의 막내.

대학졸업 후 사업에 뛰어들어 국립석고회사 (
National Gypsum Company)의 사장을 잠시 지내다 1971년 메카주 차관으로 임명되면서 공직생활을 시작했고, 4년 뒤인 1975년부터 그의 공직경력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 내무차관을 역임했다.

내무차관으로서의 주임무는 왕국 내 다른 주들을 관장하고 조율하는 일이었으며, 과격 이슬람주의자들에 의한 그랜드모스크 점거사건 (1979.11.20~1979.12.04) 당시 국가방위군의 미흡한 대응으로 인해 창설된 내무장관 직속 특별치안부대를 운영했다. 또한 1980년대 초반에는 사우디 내에서 시아파가 많이 살고 있는 동부지역을 개혁하고 발전시키는 일을 맡았다. 이란 혁명의 영향이 사우디 중심부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지역 전체의 개발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주요 업무는 종교지도자들인 울라마들과 교류하며 협력하는 것이었다. 그랜드모스크 점거사건에서도 겪었듯, 종교적인 세력이 나라를 흔들수 있음을 경험했기 때문에 예방차원에서 우호적인 관계를 쌓아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업무들로 인해 내무차관 재직시절 그의 업무는 치안 문제보다는 관리, 운영 문제를 전담했다.

2005년 11월 파키스탄에 카쉬미르 대지진이 났을 때 3일간 방문하여 피해상황을 살펴보고 재건과정에 필요한 것이면 무엇이든지 지원을 아끼지 않겠노라고 약속했고, 모든 무슬림 국가들을 향해 파키스탄을 원조할 것을 호소한 바 있다. 

그도 역시 테러리즘을 비난하여 테러리즘은 이슬람과 양립할 수 없는 것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2006년에는 사우디와 이라크 국경에 펜스 설치를 요구한 바 있다.

2011년 한 기자회견에서 여성에게 운전을 허용하는 것은 법에 저촉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등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했으나, 내무장관에 오른 뒤에는 압둘라 국왕의 점진적인 개혁조치를 지지하는 입장으로 전환했다. 

그는 2012년 6월 내무장관이자 왕세제였던 나이프 빈 압둘라 왕자가 사망하자 내무장관직을 이어받으면서 가장 유력한 왕위 계승자에 이름을 올렸으나, 5개월 만인 2012년 11월 나이프 왕세제의 아들 무함마드에게 내무장관직을 몰려주고 사임했다. 자세한 내막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공식적인 사임이유는 스스로의 요청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나와프 알 오바이디가 지난 2002년 포린 폴리시에 기고한 글 ("In Al-Saud We Trust")에 따르면 많은 인사들이 부패로 얼룩져 비난을 받고 있는 사우디 왕실 인사들 중 특히, 3명의 왕자가 대중들에게 인기가 높았다고 언급하였는데, 아흐메드 왕자는 그 3명 중 한명이었다. 나머지 두 명은 기고 당시 압둘라 왕세제 (현 국왕)와 기고 당시 리야드 주지사 살만 왕자 (현 왕세제). 

그는 자신이 받은 보너스들을 치안부대원들에게 나눠줬다고 하며, 특별치안부대를 운영하면서 배정받을 수 있었던 엄청난 예산을 업무에만 사용하고 개인적인 부를 축적하는데 사용하지 않았을 정도로 청렴결백함으로 평판이 높았다. 그 역시 2000년대 초반부터 차기 유력 후보군들 중 하나였으나 한직에 물러나면서 지금은 유력 후보군에선 빠진 듯하지만 지켜볼 필요는 있다.




2. 새롭게 떠오르는 압둘아지즈의 손자들...

압둘라 국왕의 최근 인선 기조 중 하나는 바로 손자 세대를 요직에 앉히는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아들 세대들이 너무 오래 자릴 지키고 있어서 손자 세대들은 요직을 맡아본 경험이 없기에, 왕위 승계기준 중 하나인 요직에서의 실무 경력과 평가를 충족시키기도 힘들 뿐더러, 상황에 따라서는 왕실 내에서 공감대를 형성하기 쉽지 않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는 압도적인 경력을 갖춘 왕자들만이 후계자로 선정되어 왔기에 대놓고 반대하는 세력을 접하기 쉽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선정과정에 불만을 품고 나설 수 있는 사람들도 생길 수 있다는 것이죠. 그렇기에 비교적 어린 손자세대를 요직에 배치하여 경험을 쌓게 하려는 조치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물론,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국왕의 자식들이 너무 많아 어린 아들 세대와 손자 세대의 나이차가 얼마 안 난다는 것이 함정이긴 합니다. 오늘 소개해드리는 왕자들 중 아들인 무끄린 왕자와 손자인 칼리드 왕자와의 나이차는 겨우 2살 뿐!!!!


최근 떠오른 손자세대들 중에는 단연 고 나이프 왕세제의 아들들이 많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국왕이 되보지도 못하고 왕세제 시절에 사망했지만, 장남과 차남 모두 한 자리씩을 차지하면서 못다이룬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갈 기반을 닦아놓고 있는 중입니다.


과거와 달리 유력 후보에 오른 손자 세대들의 주요 경력이 국방부, 국가상비군 등 군 관련 경력이 많은 것도 어찌보면 아들 세대들에 밀려 일반 행정조직에서 경험을 쌓은 왕자들이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입니다. 뭐... 다른 직위를 맡기면서 관련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시간을 주긴 했지만요...


1) 무함마드 빈 나이프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왕자

  이름 (본명)  무함마드 빈 나이프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출생일 / 출생지  1959년생 (1957년생이라는 이야기도 있음) / 젯다
  현재 직위  내무장관 (2012.11.05~현재)
  사우디 최고경제위원회 회원 (2009.11~현재)
  주요 경력  내무차관 (2012.06.18~2012.11.05)
  
내무장관 보좌역 겸 민방위 대장 (1999.05~2012.06.18)
  교육  스코틀랜드 야드 대테러 부대 (Scotland Yard's anti-terrorism units) 훈련 (1992~1994)
  FBI 안보과정 (FBI Security Courses) 수료 (1985~1988)
  대학명 미확인 (미국)- 정치학 학사 (1981)   
  부모  부: 나이프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왕세제 (2012.06.16 사망)의 5남 5녀 중 차남
  모: 알자우하라 빈트 압둘아지즈 빈 무사이드 알 질루위 (두번째 부인)의 2남 2녀 중 차남
  가족관계  부인: 리마 빈트 술탄 압둘아지즈 알 수다이리 (고 술탄 왕세제의 딸)
  자녀: 2녀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국왕의 손자이자 고 나이프 왕세제의 5남 5녀 중 차남으로 동부지역 주지사 사우드 빈 나이프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의 친동생.

그는 사업가였으나 1999년 내무장관 보좌역을 맡으면서 공직생활을 시작했으며, 자신이 미국과 영국에서 교육받았던 경험을 살려 내무부의 대테러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이끄는데 기여했으며, 사우디의 폭동진압 프로그램을 입안하면서 효과적인 업무수행능력을 인정받았다.

2003년 6월 사우디가 가장 체포하고 싶은 알까에다 조직원들 중 2번째 서열에 있었던 압둘라흐만 알 감디가 그에게 항복했으며, 그간의 활동을 인정받아 2004년 장관급 내무차관으로 내무부 서열 2위에 이름을 올렸다.

2012년 6월 내무장관이었던 아버지 나이프 왕세제가 사망하고 삼촌 아흐메드 빈 압둘아지즈가 내무장관이 되면서 내무차관으로 승진했으나, 그마저 5개월만에 개인적인 사유로 사직하게 되면서 2012년 11월 5일부터 제10대 내무장관이 되었다.

교육과정에서부터 공직생활을 통해 사우디내 최고 대테러 전문가가 이에 대해 미국, 영국 등의 서방국가들과도 좋은 관계를 맺고있으며, 아버지의 영향으로 최고경제위원회에 속하게 되면서 대테러 활동 뿐 아니라 사우디 경제정책에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대테러 활동의 지휘자로 암살 위협도 많이 받아 총 4차례 암살미수 사건을 겪었으나 큰 부상없이 위기를 넘겼다. 2009년 8월 27일 당했던 3번째 암살미수 사건을 통해 2003년 이후 암살 시도를 받은 첫번째 왕실인사가 되었다. 그리고 2010년 8월 또 한번의, 네번째 암살미수 사건을 겪었다. (세번째 암살미수 사건에 대해서는 [정치] 새 내무장관에 무함마드 왕자 임명, 차세대 왕위 계승 선두주자로 나서! 참조) 

보수적 이슬람원리주의자이자 철권 통치를 신봉했던 아버지 나이프 왕세제의 영향과 대테러 활동을 책임지며 사우디 내 수천명의 반정부 무력조직원들을 구속시키는 등 거친 진압자였던 경력 때문에 인권 운동가 등 그의 서열이 오르는 것을 환영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이런 부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다른 손자세대 왕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부패했고, 개인적인 권력남용을 하지 않는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존재한다. 대부분이 다른 왕실 인사들과 달리 언론들과의 접촉을 마다하지 않는다.   



2) 칼리드 빈 반다르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왕자 (1951년 3월 16일생)

  이름 (본명)  칼리드 빈 반다르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출생일 / 출생지  1951년 3월 16일 
  현재 직위  리야드주 주지사 (2013.02.14~현재)
  주요 경력  사우디 육군 총사령관 (2011.05~2013.02.14)
  사우디 육군 부사령관 (1997~2011.05)
  사우디 육군 G3 기갑부대 (1980년대초~1997)
  교육  샌드허스트 육군사관학교 (Royal Military Academy Sandhurst)- 군사학
  부모  부: 반다르 빈 압둘아지즈 (1921년생, 혹은 23년생. 현재 생존)의 13남 10녀 중 3남
  모:
  가족관계  부인: Dr. 마샤일 빈트 무함마드 빈 사우드 빈 압둘라흐만 알 사우드
  자녀: 6녀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국왕의 손자이자 반다르 빈 압둘아지즈 왕자의 13남 10녀 중 3남. 반다르 빈 압둘아지즈 왕자는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국왕의 10번째 아들이자 압둘라 국왕의 이복형으로 현재 살아있는 압둘아지즈의 아들들 중 최연장자이다. (두번째가 무사이드 빈 압둘아지즈 왕자, 세번째가 압둘라 국왕)

사망한 삿탐 빈 압둘아지즈 왕자에 이어 리야드주지사에 임명되기 전까지의 경력은 제4기갑여단 제1대대에서 시작하여 중장으로 승진하여 총사령관에 오르기까지 사우디 육군에서 쌓아왔으며, 사막의 폭풍작전 중 쿠웨이트 해방전쟁 (1991년), 예멘계 무장세력인 후씨스와의 남부방어작전 (2009년) 등 다수의 전투에 참전했다.

그는 제13대 리야드 주지사로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손자 중 최초로 리야드 주지사를 맡게 되었다. 그의 리야드 주지사 취임과 함께 부지사에 취임한 사람은 압둘라 국왕의 7남 투르키 빈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로 현재 유력 후보군들에 오른 이복형제들 중 비교적 어린 1971년생이다.

군사적으로 풍부한 경험을 갖고 있으나, 군 밖에서의 첫 경력이기 때문에 능력을 검증하기엔 시간이 필요하다. 최근 압둘라 국왕이 명령한 4년 내 리야드 메트로 프로젝트 완성이 그의 능력을 검증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될지도....



3) 사우드 빈 나이프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왕자

  이름 (본명)  사우드 빈 나이프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출생일 / 출생지  1956년생
  현재 직위  동부지역주 주지사 (장관급) (2013.01.14~현재)
  주요 경력  왕세제실 실장 겸 왕세제 특별 자문역 (장관급) (2011.11.11~2013.01.13)
  내무부 공공업무 실장 겸 
내무장관 보좌역 (2011.07~2011.11)
  
주스페인 사우디 대사 (2003.09.10~2011.07)
  동부지역주 부지사 (1993.02~2003)
  청소년 복지청 부청장 (1986.01~1986.97)
  교육  포틀랜드 대학 (University of Portland)- 경제학, 경영학 학사  
  부모  부: 나이프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왕세제 (2012.06.16 사망)의 5남 5녀 중 장남
  모: 알자우하라 빈트 압둘아지즈 빈 무사이드 알 질루위 (두번째 부인)의 2남 2녀 중 장남
  가족관계  부인: 아비르 빈트 파이살 빈 투르키 알 사우드 외 1명
  자녀: 2남 3녀. 그 중 차남 무함마드 빈 사우드는 애마가와 멋진 말을 가진 마주로 유명.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국왕의 손자이자 고 나이프 왕세제의 5남 5녀 중 장남으로 내무장관 무함마드 빈 나이프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의 친형.

젊었을 때는 공직과 사업을 오가다가 중년 이후로 계속 공직에 남아있다. 

스페인 대사 시절 그는 마드리드 주식시장의 사장이었으며, 아랍 국민들과 서방국가 국민들의 관계를 향상시키기 위해 시도하고 있는 사우디의 씽크탱크 그룹 중 하나인 아랍생각재단 (Arab Thought Foundation) 이사회의 일원이었다.

왕세제실 실장 시절에는 자신에게 부여된 권한을 자신의 권위를 세우는데 쓰기 보다는 내무장관이던 아버지를 위해 사용했다고 전해지며, 그의 임기는 아버지가 사망한 후 6개월간 더 지속되었다.

2011년 11월 아버지가 왕세제에 오르면서 충성 위원회 회원 자격을 상실하게 됨에 따라 그의 자리를 이어받았다.

그리고 2013년 1월 1985년부터 28년간 동부지역주 주지사를 맡았던 무함마드 빈 파하드 빈 압둘아지즈 왕자의 뒤를 이어 동부지역주 주지사에 올랐다. 동부지역주는 사우디의 돈줄인 석유가 많이 나와 석유화학 공업이 발달해있는 지역이기도 하고, 왕가를 반대하는 시아파들이 많은 지역이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지역이다. 무함마드 왕자는 그가 부지사였던 시절에 모신 바 있다. 무함마드 왕자의 사퇴 이유는 까티프 등 동부지역 시아파들이 일으킨 폭동을 제대로 마무리짓지 못한 질책성 인사라고 한다. 

공직활동을 하면서도 사업에도 참여하고 있어 UAE 샤르자에 있는 가스회사 다나 가스 (Dana Gas)에 지분을 가지고 있으며, 무역 및 건설업 계약 등의 활동을 하고 있는 SNAS Trading&Contracting Est.의 대표이기도 하다.

그는 사우드 왕가의 사업활동과 관련하여 "한가지 단순한 사실만 이해하면 된다. 사우드 왕가는 대가족이기 때문에 왕실 식구들이 정부에서 나오는 모든 일을 가질 수 없고, 누군가는 그 일을 받아 살 수 있게 해줘야 한다. 그것만이 공정한 방법이다."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자신이 왕세제실 실장이었을 때도 아버지를 보좌하는 업무를 주로한 탓인지 워낙 이미지가 강렬한 동생처럼 뚜렷한 세간의 평가는 많지 않은듯하다.



4) 무타입 빈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왕자 

  이름 (본명)  무타입 빈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출생일 / 출생지  1952년생 / 리야드
  현재 직위  국가방위부 장관 (2013.05.27~현재)
  주요 경력  국가방위군 (SANG) 사령관 (장관급) (2010.11.17~2013.05.27)
  
국가방위군 부사령관 (2009.06~2010.11.17)
  국가방위군 차관보 (2000.12.21~2009.06)
  국가방위군 사무차장 겸 킹 칼리드 군사대학 총장 (1999~2000.12.21)
  국가방위군 사령부 군사 보좌관 겸 킹 칼리드 사관학교 및 국사방위군 사관학교 사령관 (1990~1999)
  킹 칼리드 군사도시 사령관 (1983~1990)
  사관학교 훈련 커리큘럼 검토 위원회 위원장 (1982~1983)
  교육  샌드허스트 육군사관학교 (Royal Military Academy Sandhurst)- 중위
  중학교 (젯다)
  타이프-바마나 학교 (Taif-Barmana School) (레바논)
  부모  부: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국왕 (현 국왕)의 3남 (이지만 서구권에서는 차남으로 표기)
  모: 무니라 알 오타이샨 (세번째 부인)의 1남 중 1남
  가족관계  부인: 자와히르 빈트 압둘라 빈 압둘라흐만 알 압둘라흐만
  자녀: 3남 3녀. 장남 압둘라는 승마 선수로 지난 2012년 런던 올림픽을 포함한 두차례 올림픽 대회에 출전한 바 있다.

현재 사우디를 통치하고 있는 압둘라 국왕의 3남. 압둘라 국왕은 아버지 압둘아지즈처럼 다양한 정략 결혼을 한 탓에 13명 이상?의 부인을 두었으며, 자식들의 수를 34명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아랍권 자료에 따르면 무타입 I-칼리드-무타입 II 순으로 태어났지만, 장남 무타입이 유아, 혹은 영아기에 죽은듯하고, 명확한 자료가 없는 탓인지 서양에서는 칼리드를 장남, 무타입 II를 차남으로 보고 있다.

먼저 국가방위군에서 자리를 잡아 국가방위군 서부지역 부사령관 (1979~1992)을 맡았던 형이 아버지의 자문역들과 정책의 견해차이로 국가방위군에서 밀려나면서 사회적인 활동에 주력한 반면 무타입은 사관학교 시절부터 착실히 단계를 거쳐 승진에 승진을 거듭했다.

2010년 압둘라 국왕 자신이 맡고 있던 국가방위군 사령관 자리를 그에게 물려준 것은 후계구도가 명확히 보이는 후보가 얼마남지 않은 상황에서 왕실 내 권력다툼에 의한 잠재적 불안요소를 낮추기 위한 방법 권력을 다음 세대로 이양해주기 시작할 때가 되었다는 압둘라 국왕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며, 또한 향후 요직을 맡기게 될 때를 위해 준비시키고 검증하는 과정으로 간주되었다. 그리고 2년 반 뒤인 2013년 5월 검증이 어느 정도 끝났다고 보았는지, 국가방위군을 격상시키면서 신설된 국가방위부 장관으로 지명되었다.

그는 국가방위군 사령관을 맡게되면서 각료회의에 참가하게 되었고, 군사 서비스 위원회 (Military Service Council)의 멤버이며, 자나드리아 문화축제 위원회 부 위원장을 맡고 있다. 또한, 승마클럽 기술위원회 회장과 킹 아둘아지즈 공공도서관 이사회 회원이기도 하다.

사업적으로는 2000년대 초반부터 미국 포드 자동차의 사우디 현지 에이전트 대표를 맡고 있다.

그는 폭동 진압, 정보 수집, 전술적 현장 작전수행 등에 있어서 국가방위군의 능력을 현대화시킨 것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미국과 견고한 관계를 맺고 있는 박식하고 유능한 지휘관으로 고 후세인 요르단 국왕, 고 토르구트 오잘 터키 총리 등 당대 지역 내 유력 정치적 군사적 지도자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은 것으로도 알려지고 있다. 당시 국가방위군 사령관이었던 아버지 압둘라 국왕의 영향으로 국가방위군에서 근무하게 되었을 때부터 그의 영향력은 강해진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압둘라 국왕이 사령관 재임시절에는 그에게만 직보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는 유능한 사우디 왕실 인사로 아라비아 반도 중부지역에 있는 수많은 씨족들이 그를 광범위하게 지지하며 따르고 있다는 것이 강점이다. 강력한 씨족들과의 연대와 함께 개인적으로는 보수적인 성향이지만 압둘라 국왕의 정책을 충실히 따르는 등 정치적으로 튀지 않는 성향이고, 야망이 있으면서도 존경할만한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어 나이프 왕세제 사후 그를 유력한 후보군에 오를 수 있도록 만들었고, 국가방위군의 격상과 함께 더욱 힘을 얻게 되었다.

사우디 학생들이 2012년 3월 킹 칼리드 대학에서 열악한 환경을 비난하며 집회를 조직했을 때, 그는 이러한 집회를 국가 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여 학생들과 만나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국가의 안보와 안정보다 더 시급한 문제는 아니라고 말한 바 있다는 점에서 볼 수 있듯 오랜 군경력과 최근 아랍 인근국가들을 강타했던 아랍의 봄 여파로 국가의 안보와 안정을 최우선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