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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아다 알라 완누스 (Sadallah Wannus, 1941-1997)
시리아의 하산 알 바흐르 에서 태어난 완누스는 고등학교 졸업 후 카이로로 건너가 저널리즘을 공부한다. 그가 카이로에 머무는 동안 시리아-이집트 연방이 분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는 이러한 아랍 세계의 정치 변화에 영향을 받아 후에 그의 작품을 통해 아랍의 정치문제를 다루게 된다.
완누스는 언론인이었으며 극작가인 동시에 다양한 작품활동을 한 문학가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특히 희곡을 통해 문화의 중추적인 역할을 강조하며 그것을 옹호하였는데, 그 이유는 오늘날에는 문화가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억압에 대항하기 위한 중요한 방법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희곡이 비평적이고 창조적인 임무들을 실행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갖고 있다고 보고 60년대에 사회성이 강한 작품들을 발표했다. 그의 주제는 어느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 않은 전체 아랍의 문제들을 다루었다.
1967년 6월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의 아랍의 패배는 아랍정치연극이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패배는 아랍 예술가와 지식인들에게 정부 주도하에 움직이는 언론과 그것이 대중문화를 침투하고 있다는 데 대한 새로운 인식의 단계를 가져왔다. 연극에서의 이러한 새로운 운동은 서구의 브레히트와 같은 정치적 극작가들에게서 영향을 받았다.
완누스는 그의 첫 정치 연극 '6월 5일을 위한 夜會 '(1968)를 발표함으로써 이러한 새로운 사조의 연극에 공헌하였다. 이 연극이 다마스커스와 베이루트에서 대대적으로 성공함으로써 시와 소설의 독자들의 관심을 연극으로 돌릴 수 있었다. 그것은 아랍 작가들과 예술가들에도 유사한 영향을 미쳤다.
60년대 후반, 그는 파리로 건너가 그곳에서 연극을 공부하고 여러 사조와 흐름과 유럽의 연극 계파들을 접한다. 그는 유럽 연극의 실존주의와 무정부주의에 영향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초기 작품들은 실존주의 문학이 표방했던 “자신”에 관한 이슈보다는 개인의 “사회적 여건”에 초점을 두었다. 완누스는 오히려 이 시기의 작품들에서 그 이상을 달성하였다. 그는 아랍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잘못된 정치적 경제적 환경 속에서 정부의 압력과 사회적 억압에 대항 할 수 있는 저항과 개인의 현실적인 변화에 중점을 두었다.
1969년 극작가 그룹에 동조하면서, 완누스는 아랍 연극 예술제를 다마스커스에서 개최할 것을 주창하였고, 이 행사를 통해 그는 기존의 "정치적인 연극political theater"을 대신하는 "정치 연극 theater of politicization"을 주창하였다. 완누스는 연극이 사회적 정치적 변화 속에서 더욱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연극 그 자체만으로도 개혁과 변화의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정치적인 성공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대중문화의 정치화가 성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연극은 정치 그리고 군사적 전쟁이 실패했던 그 당시에 그가 투쟁하기 위해 선택했던 전쟁이었다.
완누스는 이를 위해, 브레히트의 작품들로 대표되는 그 당시 유럽지역에 전반적으로 퍼져있던 "실험 연극 experimental theater"을 택하였다. 그러나 완누스가 택한 실험의 성격은 소수 엘리트적이고 형식적이었던 유럽의 것 그대로가 아니라,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을 충족시키는 연극을 찾으려 노력하는 것이었다. 그는 사회-정치적 상황 하에서 영향력을 지닌 현실적인 연극을 창출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시도의 일환으로 그는 <코끼리, 永遠의 왕이여 >(1969), <노예 자비르가 고안한 모험>(1970), <왕은 왕이다>(1977), <한잘라의 무의식에서 의식으로의 여행 >(1978) 등의 대화식의 연극을 썼다. 이 연극들을 통해 완누스는 직접적인 상호작용을 시도하려는 일환으로 즉흥연기, 라이브 음악과 노래, 스토리 텔링 그리고 관중들과의 직접 대화 등을 시도했다. 이러한 가장 인상적인 방법을 통해, 그는 청중들에게 연극 관람 후 자유롭게 주제를 토의하고 구두로 평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관객들의 참여는 그 연극에 대한 평가와 비평 그리고 소규모의 사회적 현상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완누스는 1996년 유네스코와 세계 극작가협회에 의해 3월 27일 세계 연극의 날 올해의 연설자로 선정되었다. 완누스는 1963년 세계 연극의 날 행사 이래 아랍 극작로서는 최초로 선정된 것이다. 이는 세계 연극계가 시리아 극작가의 업적을 인정하고 전반적인 아랍 연극계의 업적을 인정했다는 증거이다.
1년 후인 1997년 암투병중이었던 완누스는 56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작성자: 구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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