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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The Kingdom, 왕국에서 피의 악순환을 이야기하다...

둘뱅 2007. 10. 19. 14:23

우연히 알게 된 이 영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건 영화의 배경이 바로 사우디 아라비아 왕국이라는 점에서 였습니다. 미 정부와 돈독한 우호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우디 왕실과 주적이 된 테러리스트 빈 라덴의 고향이기도 한 나라. 평소에 영화 상에선 다루지 않는 곳이었기에 어떤 식으로 영화를 만들었을지에 대한 호기심이 생길 수 밖에 없더군요. 다다음주 정식 개봉을 앞두고 회원 시사회를 통해 미리 만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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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포스터보다는 이 포스터가 영화 분위기에 맞는 것 같다...)

 

영화명: 킹덤 (The Kingdom / 2007)

제작: 마이클 만

감독: 피터 버그

출연: 제이미 폭스(로널드 플러리 역), 제니퍼 가너 (자넷 메이어스 역), 크리스 쿠퍼 (그랜트 사이키스 역), 제이슨 베이트먼 (아담 리빗 역), 아샤라프 바롬 (알 가지 경위 역) 외

공식사이트 : http://www.thekingdom.co.kr 

 

 

1. 배경 지식 

사우디 왕국의 탄생과 석유와 테러로 얽혀진 미국과의 애증관계를 짤막하게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양국의 독특한 관계, 특히 미국을 충실하게 따르는 왕실과 미국을 증오하는 빈 라덴과도 같은 원리주의자들이 공존하는 사우디의 미묘한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에 대한 복잡한 시선은 권력 쟁취와 석유, 그리고 자신들의 이익에 맞게 종교를 악용하는 사우디 왕실에서 부터 시작합니다.

 

일개 베두윈 부족에 불과했던 사우드 가문이 왕국을 세우고 권력을 장악하는데 든든한 배경이 된 것은 바로 원리주의에 입각한 와하비즘 (자세한 내용은 클릭!)입니다. 종교적 원리주의자와 권력 장악에 눈이 어두운 세속주의자가 만나 만들어진 나라가 바로 사우디인 것이죠. 무엇보다 사우드 가문에서 와하비즘을 배경으로 양대 성지의 수호자임을 자처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자신들에게 종교적으로, 혈통적으로 아무런 정통성도 없기 때문입니다. 적통이라 주장할 수 있는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의 직계인 하쉬미야 가문은 요르단에 있었으니까요.

 

철저한 원리주의를 앞세워 정권을 잡은 사우드 왕가에게 석유는 막대한 부와 헤게모니 장악이라는 선물과 함께 미국과의 애증관계를 시작하는 계기를 제공해 줍니다. 석유가 필요했던 미국과 정권의 안정을 위해 미국의 힘이 필요했던 사우디 왕실의 이해관계가 교묘히 맞아떨어져 지금까지도 밀월관계를 맺게 되었으니까요..

 

이슬람을 앞세워 통치기반을 닦았지만, 정작 결정적인 순간에는 미국을 지지하다 못해 심지어는 성지에도 미군의 주둔을 허가한 사우디 왕국의 결정은 성지 수호자라는 그들 자신의 정체성을 뒤흔든 것과 동시에 빈 라덴과도 같은 원리주의자들로 이루어진 반정부 세력의 확대를 야기하게 됩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슬림 형제들을 배신하고, 자신들이 정권유지를 위해 사용해 오고 있는 이슬람조차도 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공표한 셈이기도 하니까요. (물론 이것은 사우디가 이슬람의 발상지이자 양대 성지가 있기에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사우디 군경과 반정부 세력의 대립은 계속되어 오고 있습니다.

 

 

2. 간단한 줄거리

이러한 배경 속에 영화는 평화로운 미국인 거주 지역에 사는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원리주의 반정부 세력의 2차례에 걸친 자살폭탄 테러에 절친한 친구를 잃은 FBI 요원 로널드 플러리의 시선으로 전개 됩니다. 입국을 거절하며 이 사건에 대한 외부인의 개입을 원치 않는 사우디 왕실과 절친한 관계를 유지하려는 미 외무부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복수심에 불타는 그는 3명의 동료들과 함께 사우디 리야드를 향해 떠납니다. 사우디 정부의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향해 나아가던 그의 일행들은 서로를 신뢰하게 된 사우디 경시청의 알 가지 경위와 함께 정체불명의 자살폭탄조직을 응징하러 나서게 됩니다. 

 

 

3. 영화 속의 사우디

이 영화가 개인적으로 더욱 의미있게 다가왔던 것은 평소의 관심탓도 있지만, 공교롭게도 시사회를 본 날이 바로 사우디 출장을 가는 전날이었기 때문입니다. 목적지가 리야드는 아니지만요...

 

영화를 통해 평소 접하기 힘든 사우디의 분위기를 보여줍니다... (촬영은 사우디가 아닌 이웃나라 아랍에미레이트에서 했다고 하는군요. 반정부 세력과 다투고 있는 사우디 왕실이고 그들에 대한 응징을 보여주는 영화라고는 해도 정작 촬영허가를 내주었을리는 만무할 테니까요...)

 

정상적인 루트로는 불가능한 일이라도 윗 사람만 포섭하면 안되는 것도 되는 나라 사우디...

무슨 일, 어떤 장소에서라도 정해진 시간엔 어김없이 메카를 향해 예배를 드리는 독실한 사우디 무슬림들...

시속 150km에도 눈깜빡 않하고 난폭 운전을 하는 그네들의 운전 습관...

윗 사람의 명령이 없으면 움직이려 들지 않는 전형적인 아랍 공무원들...

신뢰를 쌓기는 힘들지만, 일단 쌓으면 목숨을 걸고 뜻을 함께하는 아랍인들의 의리...

지하드임을 주장하며 무차별적인 테러를 자행하는 원리주의자들...

등등등...

 

개인적으로 익숙한 모습들과 함께 영화는 선악에 대한 가치판단이나 과도한 연출 없이 리얼하게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4.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

 

영화의 끝에 플러리 요원과 테러조직의 주범이 내뱉은 똑같은 말 한마디!

 

테러에 대한 가치판단 보다는 결국 피가 피를 부르게 만드는 피의 악순환을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복수를 위해 양국간의 외교 시스템을 무시하고 양아치 같은 수법으로 사우디 입국을 시도한다던가, 테러에 대한 조사를 통한 원인이나 해결책 규명이 아닌 테러조직을 학살하는 등... 영화 자체가 절친한 동료를 잃은 한 FBI 요원의 무차별적인 복수극이니까요... 그리고 복수를 다짐하는 소년의 결연한 모습까지...  

 

피의 악순환이 무서운 건 테러와 이에 대한 폭력이 되풀이되면서 테러를 하는 본연의 의도 외에도 개인적인 복수심이 대의명분을 앞세워 스며들고, 더욱 확산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명분 좋은 일이라도 내 가족이, 친구가 살해되는 모습을 접하면서 상황을 판단하는 이성보다는 상대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는 개인의 감성이 개입되면서 이유도 모르는 채 희생당하고 복수하는 등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밖에 없으니까요... 

 

지금도 팔레스타인과 이라크 등 아랍 지역에선 종교적, 정치적 갈등, 개인적인 복수 등을 통해 서로의 피가 피를 부르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고 있습니다... 끝날 수 없는 이야기처럼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