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들어 유달리 혹독하게 가치관의 변화를 겪고 있는 사회가 있습니다... 바로 아랍으로 대표되는 이슬람 사회입니다... 이슬람이 창시된 7세기 이후로 쭈욱 유지되어 왔던 이슬람에 입각한 보수적인 전통적 가치관이 인터넷과 위성방송으로 대표되는 서구 문화의 무차별적인 유입과 함께 과도기를 겪고 있는 것이지요... 예전처럼 정부가 막는다고 막히는 상황은 아니고, 그만큼 세계가 가까워지고 있으니 말이죠... 간만에 올리는 둘라의 아랍 이야기, 이번 이야기는 바로 이러한 과도기적인 상황에 놓인 이슬람 종주국 사우디의 고민에 대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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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종주국임을 자칭하며 가장 보수적이고 엄격한 와하비즘을 추종하는 사우디 왕국에도 21세기 들어 인터넷과 위성방송을 통해 들어오는 서구문물의 유입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의심가는 사이트들은 다 차단시켜 놓고, 위성방송 수신기를 금수품목에 포함시키는 등 사우디 정부는 나름의 최선을 다했지만, 이를 정부의 힘으로 막는 건 역부족이었습니다... 특히 사우디 정부가 이를 원치 않았던 이유에는 물론 자국민들이 서양의 저질문화에 노출되는 것을 원치 않은 탓도 있을테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협할 수 있는 잠재력인 세력들의 결집을 차단하려는 것도 있었을 것입니다. 온라인에서는 이들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없으니까요...
어떻게든 컨트롤 하려던 정부의 의지와 상관없이 인터넷과 위성방송은 더욱 민중 속으로 파고 들었고, 엄격한 교리에 억눌려있던 사우디 국민들에게 이것들은 하나의 해방구로 여겨지기까지 했습니다... 그만큼 세계가 실시간으로 가까워지기도 했죠...
억눌려 있던 사회에 급속히 확산된 해방구의 영향은 실로 엄청나서 온실 속의 화초로만 여겼던 여성들이 세상에 눈을 뜨게 되었다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는 반면에, 부정적인 효과는 더욱 엄청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동안 억눌려있던 감정이 한꺼번에 폭발해버렸으니까요... 공공 장소에서의 강간사건이 발생하는 등 성범죄가 늘어나고, 예전에는 인정도 않했던 성발렌타인 데이가 청소년들 사이엔 사랑을 표현하는 의미있는 날로 부각된다던가 하는 것들이 그것이죠...
- 작년 발렌타인 데이 때 실렸던 만평 (Copyright ⓒ http://www.arabnews.com/)
이러한 변화를 탐탁치 않게 여기는 보수층들에게 날벼락 같은 소식이 최근 사우디 정부 내에서 흘러 나왔습니다. 사우디 행정부에서 슈라 위원회 의장단과 인적 자원 위원회에 "주말 변경"을 정식 안건으로 제출했고 평의회에서 이에 대한 논의를 시작한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아랍권의 주말은 목-금요일입니다. 기독교에서 일요일에 큰 예배가 열리는 것처럼 이슬람에선 금요일에 큰 예배가 있습니다. "주말 변경"이란 바로 현재 목-금인 주말을 금-토로 바꾸자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주말 변경은 다른 일부 국가에서 이미 시행되고 있는 제도이기도 합니다. 최근 UAE에서도 이 제도를 도입해 작년 9월부터 시행하고 있습니다만, 이를 원치 않는 곳들도 많아 정착시키는데 시간이 걸리고 있기도 합니다. 목금 주말과 금토 주말이 혼재해 있으니까요...
금-토 주말제를 도입한 몇몇 이웃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도입을 주장하는 측의 논리는 간단합니다. 바로 경제적인 이유거든요. "전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하는 목-금에 쉬고, 우리는 그들이 쉬는 토-일에 근무를 하니 실제로 원할한 근무가 가능한 날은 월~수의 3일 뿐이라 이로 인한 손해가 크다!"는 거죠... 서구처럼 토-일로하진 않더라도 금-토를 주말로 정하면 손실을 하루라도 줄일 수 있다는 일종의 절충안이기도 합니다...
이 제안은 당장 위원회 내에서도 보수적인 위원들에 의해 격렬한 반대에 휩싸였습니다. 종교적인 이유와 주말 차이로 인한 사업 피해가 입증된 바 없음으로 요약할 수 있는 대표적인 반대론자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경제적인 이유로 주말을 바꾸는 것은 “근거없는 짓”이며, 주말 변경을 위한 제안은 꾸란과 순나를 헌법의 근간으로 삼고 있는 나라에서는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 (슈라 위원회 부의장 마흐무드 타이바):
2) "사우디 왕국이 종교적이고 사회적인 이유로 주말을 목, 금으로 규정한 것이므로 논의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돼!" (슈라 위원회 위원 살림 알 마르리)
3) "다른 주말로 인해 4일을 손해보고 있다는 것은 과학적인 연구에 근거를 둔 주장이 아냐!" (압둘 라흐만 알 무샤기 박사)
비록 소수지만 찬성하는 세력에겐 이에 대한 근거있는 반박논리가 있습니다.. 종교적으로는 이슬람엔 목-금에 쉬란 말이 언급되지 않았다는 것이고, 경제적으로는 이미 다른 걸프국가들이 같은 이유로 인해 이를 시행하고 있다는 사실이죠...
종교적으로 목-금 휴일이 규정되었다는 반대론자들의 주장에 대한 문의에 슈라 위원회 위원이자 법무부의 고문인 쉐이크 압둘 무흐신 알 오바이칸은 "무슬림들에게 금요 예배를 준비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금요일 조차도 근무일이 될 수 있으며, 이슬람에 한 주의 특정한 날을 휴일로 규정한 것은 아니다. 아울러 만약 주말을 금-토로 바꾸는 것이 국가의 가장 큰 이익이라면 이는 잘못된 것이 아니다"라는 해석을 내리기까지 했습니다.
이렇게 양측의 의견이 팽팽한 가운데, 이러한 논의가 확산되는 것에 반감을 가지는 보수층들의 우려에는 이슬람 종주국의 위상이 흔들린다는 걱정이 숨어 있습니다. 지난 1차 걸프전 때 비무슬림의 출입을 엄격하게 금지시키고 있는 성지에 미군 주둔을 허용하면서 종주국의 자부심이 흔들린 바 있는데, 휴일 제도까지 서구식으로 따라가면 어떻게 될까...라는 거죠... 이러한 보수층들의 생각은 리야드 상공회의소 소장이자 알 제라이시 그룹의 총수인 사업가 압둘 라흐만 알 제라이시의 말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전 이 제안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우리 사우디가 이슬람의 발상지이자 종주국이며, 이로 인해 15억 무슬림들이 우리의 모습을 모범으로 삼기에 이 제안이 현명한 결정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번 기회에 주말이 금-토로 바뀌게 된다면, 미래 세대엔 토-일로 바꾸자는 주장도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다른 국가들도 우리를 따라하게 되겠죠.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우리는 유대교와 기독교를 답습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아직까진 반대론자들의 입김이 거센 이 제안은 슈라 위원회에서의 많은 토론을 거친 후에 표결에 붙여질 예정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어떻게 결정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번 제안은 급격한 변화 속에서 이슬람의 종주국임을 자처하는 사우디의 고민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 하겠습니다. 두바이의 혁신적인 발전에 자극 받아 이를 벤치마킹하고 있는 사우디지만, 종교적인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종주국이라는 입장 때문에 다른 국가로의 여파를 고려한다면 두바이처럼 혁신적인 조치를 취하기 쉽지 않은 것도 현실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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