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월드컵의 조별예선 탈락 이후 부정적인 여론에도 불구하고 축구협회가 재신임한 홍명보 감독 체제 하에서 다가올 2015년 1월 호주 아시안컵을 준비해야만 합니다.
아시안컵은 아시아의 맹주라고 자처하는 우리나라 국대가 지난 1956년과 1960년 1, 2회 대회에서 2연속 우승을 차지한 이후 단 한번도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던 대회입니다. 심지어 이번 호주 대회에서는 지난 대회 3회를 차지하고도 피파랭킹에 밀려 우즈베키스탄에게 시드를 내주고 개최국 호주, 오만, 쿠웨이트와 함께 A조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월드컵에서 "으리" 논란 속에 큰 망신을 당한 홍감독을 재신임했기 때문에 평소처럼 마냥 소홀히하기 힘든 이번 아시안컵은 시기상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준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국내 언론에서 지적하듯 좀더 오래 소집할 수 있는 K리거들은 시즌이 막 끝나 체력과 경기력이 바닥을 칠 때인데다 시즌을 소화하느라 컨디션이 올랐을, 그리고 홍명보 감독이 선호하고 그나마 호흡을 맞출 유럽파 선수들은 (지난 시즌과 달리 팀에서 제자리를 잡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설령 자리를 잡더라도) 원활한 국대소집을 통해 현실적으로 손발을 맞출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으니까요. 게다가 이번 월드컵을 통해 봤듯 플랜B 따위는 염두에 두지 않은 선수 선발로 대체자원의 폭이 크지 않은 것도 문제입니다.
하지만, 이런 우리와는 반대로 최근 막대한 투자에도 불구하고 아챔이나 아시안컵에서 흡족한 성적을 못 거두고 있는 중동국가, 특히 걸프국가들은 아시아에서 열리는 국제대회 우승에 많은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이번 시즌 동아시아-서아시아 팀들의 맞대결을 결승전에서만 가능하도록 만든 아챔 시스템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기존처럼 8강부터 양대 아시아가 맞붙게 되면 리그 일정 등을 감안할 때 서아시아팀들로서는 팀이 제대로 정비되기도 전에 한참 케미가 절정에 오른 동아시아팀들과 맞붙는 것이 여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니까요.
마찬가지로 1996년 대회에서 사우디아라비아가 우승을 차지한 것을 마지막으로 4강팀을 배출하면서도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던 걸프국가들이 이번 아시안컵을 제대로 준비하기로 마음먹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바로 11월 사우디 리야드에서 열릴 제22회 걸프컵입니다.
걸프컵은 사우디, 바레인, UAE, 쿠웨이트, 카타르, 오만 등 GCC 6개국 외에 이라크와 예멘 등 총 8개국이 진출하는 걸프지역 국제대회입니다. 사우디는 당초 올1월 젯다에서 열기로 예정되어 있던 걸프컵 일정에 맞춰 당시 공사 중이었던 젯다의 킹 압둘라 스타디움의 공기를 앞당겨 지난 12월에 개장 준비를 했지만 일정이 지연되었고, 대회는 결국 11월 13일부터 26일까지 리야드에서 열기로 최종 확정된 바 있습니다.
공식적으로는 리그 일정 등을 감안하여 변경한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이는 사실상 두 달 뒤에 열릴 아시안컵을 앞두고 각 국대팀들의 조직력을 극대화할 실전훈련무대를 갖기 위한 것으로 볼 수 밖에 없습니다. 당초 바스라가 개최지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안전상의 이유로 두 대회 연속 바레인과 사우디로 개최되는데 반발하여 불참을 선언했던 이라크가 출전하기로 확정한 것도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볼 수 밖에요.
우리가 A매치 데이를 활용하여 몇 차례 평가전을 가질 수 밖에 없고 그나마도 원활한 선수 소집이 쉽지 않은 반면, 이들은 대부분의 주전 선수들이 국내 리그에서 뛰고 있는데다 제대로 준비할 계획들을 갖고 있기에 아시안컵에 앞서 A매치 데이와 걸프컵 휴식기를 활용하여 조직력 강화를 위한 충분한 소집일정을 잡을 수 있는 유리한 상황입니다. 리그를 병행하면서 경기력을 끌어올릴 시기이기에 체력과 경기력 면에서도 유리한 점은 덤이구요.
걸프컵에 참가하는 8개국 중 예멘을 제외한 7개국이 아시안컵에 출전합니다. 특히 우리는 지난 21번의 걸프컵에서 10회를 우승한 최다 우승국 쿠웨이트와 한 번 우승한 오만과 한 조에 속해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에게 있어서는 15개 팀들 중 절반에 해당하는 7개팀의 전력을 단기간에 파악할 수 있는 호기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아시안컵에 대비하기 위해 치루는 평가전이 아닌 공식 대회이고, 이들 역시 아시안컵 준비를 위해서라도 정상 전력으로 참가할 수 밖에 없는데다 두 대회의 개최간격은 불과 두 달 밖에 차이나지 않기 때문에 걸프컵에서 보여지는 그들의 전력과 아시안컵에서 나타날 전력에 그다지 큰 차이는 없을 테니까요.
얼마전 언론 인터뷰에서 곽태휘는 알제리에 대한 전력 분석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 결과가 1승 제물이라던 알제리에게 월드컵 역사상 아프리카팀 최다 득점 승리, 그리고 32년만의 첫 승리라는 기록을 안겨주며 4대2로 패하면서 조별예선 탈락의 결정적인 빌미를 제공했었죠.
다음 시즌 걸프리그에서 활약할 선수들을 통해서도 정보를 입수하겠지만, 이들의 전력분석을 위해서라도 기술위원회는 사우디에 직접 가서 걸프컵을 꼭 직관하시길 바랍니다. 걸프지역 팀들이라 제대로 전력분석이 되지 않았네... 이런 소리 나오지 않도록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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