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와의 첫 경기에서는 패했지만 2차전에서 만난 우리나라에게 4실점이라는 굴욕을 안겨주며 4대2로 승리를 거두고 16강 진출의 희망을 살린 알제리는 아레나 다 바이샤다에서 펼쳐진 조별예선 최종전에서 러시아를 상대로 선제골을 허용하고도 이슬람 슬라이마니의 동점골로 러시아와 1대1 무승부를 거두고 3승을 거둔 벨기에에 이어 조2위로 16강 진출에 성공했습니다.
알제리는 지난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 이어 다른 팀을 이끌고 두 대회 연속으로 만난 카펠로 감독에게 또다시 무승부를 안겨주면서 16강 찬스를 잡은 러시아를 결국 탈락시키는데 성공했습니다. 카펠로 감독은 지난 대회에선 잉글랜드를 이끌고 알제리와 경기를 펼쳐 0대0 무승부를 기록한데 이어, 이번 대회에서는 러시아를 이끌고 경기를 펼쳐 1대1 무승부를 기록했거든요. 지난 대회에서는 알제리가 마지막 경기에서 미국에게 지는 바람에 잉글랜드가 조2위로 16강 진출에 성공했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그 알제리와 비기면서 러시아가 탈락한 것이 차이긴 하지만요.
사상 첫 16강 진출에 성공한 알제리의 상대는 얄궃게도 독일입니다. 객관적인 전력면에서는 독일과 알제리는 큰 차이가 있지만, 알제리에게는 독일을 그 누구보다도 반드시 꺾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이는 독일전을 앞둔 하릴호치치 감독의 각오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32년전의 일을 아직도 못 잊고 있다. 우리 모두는 32년전 월드컵에서의 알제리와 독일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과연 32년전 알제리와 독일 사이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히혼의 수치"- 현행 조별예선제 규정을 확정시킨 월드컵 역사상 최악의 승부담합
32년전에 열린 1982년 스페인 월드컵에서 사상 첫 본선에 진출하며 월드컵 무대에 데뷔했던 알제리는 서독 (당시에는 통일 전), 오스트리아, 칠레와 함께 B조에 속해 있었습니다.
알제리는 역사적인 월드컵 데뷔전이었던 조별예선 첫 경기에서 라크다르 벨루미의 결승골로 카를 하인츠 루메니게가 한 골을 만회하는데 그친 서독을 1대2로 꺾는 이변을 연출하며 기분좋은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어진 2차전에서 서독은 루메니게의 해트트릭을 앞세워 4대1로 대파했고, 알제리는 오스트리아에게 0대 1로 졌습니다.
(양팀의 첫 맞대결 서독 대 알제리전 하이라이트)
오스트리아 2승, 서독과 알제리가 각각 1승 1패를 기록한 상황에서 벌어진 조별예선 최종전.
1982년 6월 24일 하루 먼저 경기를 치룬 알제리가 전반 35분 동안 3골을 먼저 넣으며 유리한 경기를 펼친 끝에 두 골을 만회하는데 그친 칠레를 3대2로 꺾으며 16강 진출에 유리한 고지에 오르며 첫 월드컵 출전에 16강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룩하는 듯 했지만, 그 다음날 열린 서독과 오스트리아의 경기로 인해 알제리의 희망은 좌절되고야 말았습니다.
서독-오스트리아 경기가 시작되 전 순위는 오스트리아 2승 (승점 4, 골득실 +3), 알제리 2승 1패 (승점 4, 골득실 0), 서독 1승 1패 (승점 2, 골득실 +2)
(당시 승점제는 승리=2점, 무승부&패배=0점)
알제리의 결과를 알고 있는 상황에서 먼저 16강 진출을 사실상 확정지은 오스트리아가 서독과 함께 16강에 진출하기 위해 전반 10분 서독의 호르스트 흐루베슈에게 선제골을 허용한 후 나머지 80분간을 두 팀 모두 골을 넣을 의사가 없는 소극적인 경기를 펼쳐 스페인 관중들로부터 "(이따위로 경기할 바엔) 꺼져! 꺼져!"라는 야유를 받고, 분노한 알제리팬들은 선수들에게 수표를 뿌려대는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1대0으로 고의적으로 패했고, 서독, 오스트리아, 알제리가 나란히 2승 1패를 거둔 상황에서 골득실에 밀린 알제리는 결국 16강 진출에 실패했었습니다.
"희혼의 수치"라 불리는 이 경기는 서독와 오스트리아, 양팀의 서포터즈들마저 자국 선수들의 스포츠맨쉽을 저버린 경기에 애통해마지 않았고, 심지어 선수들의 플레이에 격분한 한 서독팀 서포터는 혐오감 속에 서독 깃발을 불태우기도 했었을 정도로 월드컵 역사에 최악의 오점으로 남은 역대금 승부조작 경기였습니다.
(양팀간 담합에 의한 승부조작 경기라는 오명을 낳은 서독-오스트리아전 경기 하이라이트)
서로 16강에 올라가기 위해 사실상 담합 승부를 펼친 서독 오스트리아전의 희생양이 된 알제리는 FIFA에 이를 제소했지만, FIFA는 이 두팀에 대한 제재를 내리는 대신, 결국 대회에 따라 같은 날에 치루거나 다른 날에 치루기도 했었던 조별예선 최종전을 1986년 멕시코 월드컵부터 같은 날 같은 시각에 치루는 것으로 확정하는 조별예선제 수정안을 도입하는 것으로 마무리했습니다.
다른 날 다른 시간 |
같은 날 같은 시간 | |||
조별예선 최종전 | 1962, 1966, 1970, 1982 | 1954, 1958, 1974, 1978, 1986, 1990, 1994, 1998, 2002, 2006, 2010, 2014 |
** 1)1938년 프랑스 월드컵까지는 출전국수가 많지 않아 조별예선제가 없었음.
2) 제2차 세계대전 후 조별예선제가 처음 도입된 1950년 브라질 월드컵에는 불참한 팀이 있어서 파행 운영되었으며, 1954년 스위스 월드컵부터 조별예선제도가 정착.
3) 1954년 스위스 월드컵의 경우 같은 날에 열렸지만, 경기 시간은 10분 차이를 두고 열렸음.
32년만에 풀린 독일의 저주
첫 월드컵 출전에서 2승 1패라는 좋은 성적을 거두고도 서독과 오스트리아의 담합에 밀려 16강 진출에 실패한 알제리는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을 상대로 첫 승리를 거두고 16강에 진출할 때까지 32년간 월드컵과는 불운의 연속이었습니다.
1982년 월드컵에 이어 출전한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조별예선에서 자멜 지단이 북아일랜드를 상대로 한 골을 넣고 비긴 것 외에는 브라질과 스페인에게 각각 1대0, 3대0으로 패하며 1무 2패로 탈락했고, 계속 월드컵 본선진출에 실패하다가 24년만에 진출한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단 한 골도 넣지 못한채 미국과 슬로베니아에게 각각 1대0으로 지면서 1무 2패로 탈락했었으니까요. 24년만에 첫 승점 1점을 안겨준 팀은 바로 카펠로 감독이 이끄는 잉글랜드였구요.
그러던 알제리가 오랜만에 두 대회 연속 출전한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벨기에전에서 페굴리가 28년만에 첫 득점을 기록했고 우리나라를 상대로 32년만에 첫 승리이자 아프리카팀 최다골 승리기록을 챙겼으며, 4년전 첫 승점을 안겨준 카펠로 감독을 제물로 삼아 사상 첫 16강 진출에 성공하는 쾌거를 이룩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힘들게 16강 진출을 이룩한 알제리팬들은 그야말로 광란의 도가니에 빠져들 수 밖에요...
알제리의 16강 진출은 알제리 뿐만 아니라 다른 이웃 아랍국가들에게도 기뻐할만한 일입니다. 알제리는 오랜만에 16강에 진출한 아랍국가니까요. 우리가 2002년 월드컵에서 승승장구했을 때 한국이 아시아 축구의 자존심을 살렸다며 아랍축구팬들이 함께 기뻐했던 것처럼요.
(알제리의 이웃국가인 튀니지의 소도시 가프사 시민들도 형제국 알제리의 16강 진출에 환호하고 있다.)
1982년 월드컵에서 딱 한 번 맞붙어 알제리가 1전 1무로 상대전적에서 앞선 가운데 알제리와 독일이 맞붙는 16강전 경기는 양팀 모두에게 있어 리벤지 매치입니다. 독일에게 있어서는 32년전 첫 맞대결에서의 패배를 설욕할 이유가, 알제리에게 있어서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승부 담합에 희생양이 되면서 첫 월드컵 진출 대회에서 억울하게 탈락한 아픔을 설욕하고 싶을 테니까요.
과연 알제리는 이 기세를 몰아 32년전 악몽을 안겨준 독일에게 설욕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독일이 첫 맞대결에서의 패배를 설욕하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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