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CC/사우디

[은행] 싸인은 파란색 펜으로 쓰세요~!

둘뱅 2008. 10. 19. 02:50

 

(SAMBASaudi AMerican BAnk의 약자로 저 푸른색을 보면 생각나는 그 은행, Citibank 계열의 은행입니다. 1950~60년대부터 젯다 (1955년)와 리야드 (1966년)에서 Citibank로 영업을 해오다 1970년대 중반 사우디 정부가 모든 외국계 은행의 최대 지분을 사우디인에게 내놓으라는 정책을 발표하면서 1980년도부터 SAMBA란 이름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사우디에 있는 모든 외국계 은행은 다 이런 식의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Saudi Hollandi Bank, Saudi Faransi bank, Saudi British Bank처럼 말이죠 )

 

6년만에 사우디에 돌아온지 벌써 3주가 지났습니다. 어떤 컴퓨터든 LAN선만 꽂으면 자동으로 IP를 인식하는 우리나라와는 다른 인터넷 접속환경 때문에 일시적으로 인터넷 접속에 어려움을 겪고 근처의 인터넷 카페를 이용하고 있지만, 카페의 직원들과 친해진 덕분에 조금 편해진 것도 사실입니다. (6년 전엔 한 시간에 10리얄 ( 3,300)을 내고도 모뎀접속이었던 걸 생각해보면, 그 때의 절반인 5리얄로 싸지면서 속도가 좀더 많이 빨라진 것이 큰 차이입니다.) 노트북을 들고 가서 쓰고 있기에 카페에 있는 다른 컴퓨터처럼 이용시간 체크 시스템을 사용할 수 없어서 이용시간을 자기네 맘대로 주거든요. 1시간요금 내고 1시간 30~40분을 이용하기도 하고, 좀더 빠른 스피드로 이용할 수 있는 IP주소를 알려준다던가...

 

돌아온 사우디 이야기의 첫 이야기는 은행에서 수표 때문에 겪었던 에피소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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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히 돈을 찾고자 담당자와 함께 수표를 들고 은행을 찾았습니다. 일반적으로 금액이 지정된 은행수표를 쓰는 우리와 달리 사우디에서는 백지수표를 주로 이용합니다. 은행에서 발행한 수표에 수취인 이름, 찾는 금액, 서명을 적어서 그 돈만큼 찾는 것이지요.

 

파란색 볼펜으로 싸인이 되어 있는 수표를 들고 은행을 가 담당 매니저를 찾았으나 때마침 자리를 비우고 없었습니다. 그래서 Customer Service에 앉아있는 직원에게 수표로 돈을 찾고 싶다고 얘기하니 매니저실 옆에 있는 다른 직원을 소개하네요.

 

통장에 넣을 것이 아니라 현찰로 찾을 것이었기에 가능하면 아랍어로 수표를 써야 했습니다. 아무래도 이까마 (체류 허가증)에 이름은 아랍어로 쓰여있으니까요. 써달라고 했더니 그 직원은 귀찮았는지 아랍어든 영어든 상관없다고 하네요. 그러더니 자신의 파란색 볼펜으로 이름을 아랍어로 써주고. 금액은 영어로 적어도 상관없다고 해서 담당자는 자신의 검은색 볼펜을 사용하여 영어로 찾는 금액을 적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정말 순조로왔습니다만... 결국 문제가 터지고 말았습니다. 은행 창구에서 이 수표는 부실 수표니 돈을 줄 수 없다고 나온 겁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하나의 수표에 두 가지 색깔을 이용하여 두 가지 언어로 썼다는 것입니다.

파란색 볼펜으로 서명이 되어 있으니 금액도 파란색으로 적던가,

영어와 아랍어를 섞어 썼는데, 영어면 영어로, 아랍어면 아랍어로 써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럴 경우 가장 적당한 해결방법은 수표에 서명된 싸인과 같은 싸인이 다른 언어, 다른 컬러로 쓰여진 부분에 수정이 가해졌음을 증명하는 추가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만 이 방법은 안타깝게도 쓸 수 없었습니다. 서명하신 분은 한국에 있었으니까요.

 

은행 직원에게 부탁해서 확인하고 쓴 건데 왜 문제가 되었던 걸까요? 알고보니 그 사람은 은행직원이 아닌 지방 관청 (발라디야)에서 파견나온 직원이었습니다. 워낙 문맹률이 높아 아랍어를 쓰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을 위해 수표에 불러주는대로 적어주는 일을 할 뿐, 정작 은행 업무 프로세스에 대해서는 몰랐던 것이지요.

 

결국 당장 돈이 급했던 담당자는 직원들을 붙잡고 사정사정해가며 어쨌거나 돈을 찾기 위해 애썼습니다. 은행직원이든 아니든, 은행에서 일하는 사람 때문에 생긴 일이니 따지고 들어갈 여지가 있었던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점의 서열 2위쯤 되는 부지점장 정도 되는 매니저가 나타날 때까지는 해결될 수 없었습니다. 우리 사정은 급했지만, 은행입장에선 당연히 문제가 되는 부분이니 (만약에 문제가 생길 경우) 아무도 잘못을 뒤집어쓰고 싶진 않았던 것이겠지요. 옆에서 은행 경비 녀석은  이 수표로는 돈을 찾을 수 없다고 깐죽거리는 와중에 10분이면 온다던 부지점장은 예배 시간을 앞두고 한참 지난 30분 뒤에 나타났습니다. 전화상으론 안된다고 하던 그도 사정을 다시 한번 설명해서는 신원정보를 보충해서 인출해줄 것을 허가해 주었습니다. 원칙적으론 안 되는 것도 높은 사람만 설득시키면 해결되는 게 아랍 사회의 한 모습이기도 하거든요. 10분도 안 걸릴 일을 서명 때문에 1시간 반을 허비한 끝에 겨우 돈을 찾아 예배시간 중이라 뒷문을 통해 무사히 나왔습니다. (은행의 뒷문은 예배시간 전 들어온 고객들이 일을 마치고 나갈 때 사용합니다. 그 틈을 이용해서 들어오는 건 원칙적으론 안되죠.)

 

검은색 싸인도 상관없는 우리와 달리, 사우디에서 싸인이 필요한 경우에는 파란색 펜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워낙 제3국인들이 많은 덕에 검은색으로 쓰면 이를 복사해서 악용하는 넘들이 있어, 이러한 사고를 피하기 위함입니다. , 파란색 싸인이라고 도용의 위험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복사해서 쓰긴 힘드니까요.

 

사우디에서 싸인할 일이 생길 땐 파란색 펜으로 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