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CC/사우디

[운전] 중장비 면허취득 시험은 트레일러로만?

둘뱅 2008. 10. 21. 02:15

 

(이 장비의 운전사는 트레일러를 몰 줄 알까요?)

 

사우디의 신호위반 삼진아웃 제도에 이은 이번 이야기는 얼마 전에 겪었던 면허취득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예전 사우디에 있었을 때는 면허증 상의 이름 표기 때문에 한바탕 법석을 떨었었는데, ("[경험담] 이름에 얽힌 에피소드" 편을 참조하세요...) 이번엔 어떤 난리였을까요? (힌트는 저 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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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회사에서 인도인 덤프트럭 운전수를 데려왔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회사의 사우디 코디네이터 (반드시 사우디인들을 고용해야 하는 사우디법 때문에 데리고 있는 녀석들. 간혹 똑똑해서 일 잘하는 친구들도 볼 수 있지만 대부분은 그다지 쓸모없습니다. 그래도 사우디인들이 없으면 아쉬울 때가 많기 때문에 어쩔 수 없지만요)를 함께 보내 사우디 면허시험을 치게 했는데, 면허취득도 실패했고 돌아온 사우디 코디네이터는 무슨 운전수가 후진도 못하냐고 난리입니다.

 

여전히 수동 변속기가 대세인 사우디의 운전면허 시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해진 지역 안에 차를 후진시켜 정차하는 것입니다. 사실 예전에 있을 때 저도 시험을 쳤다가 후진을 못해서 떨어져 버렸거든요. 워낙 한국인을 좋게 봐주는 교통경찰 때문에 2년 가까이를 사실상 무면허로 다녔음에도 문제가 된 적은 거의 없었지만요..

 

사우디 코디네이터는 그 기사가 운전을 못한다고 난리고, 막상 덤프트럭을 모는 보습을 본 사람들은 잘하는데 왜 그러지? 이러는 상황. 뭐가 문제였을까요? 알고보니 문제는 덤프트럭 기사가 실기시험을 본 차종이 다름아닌 트레일러였다는 데 있었습니다!!! 엄연히 덤프트럭과 트레일러의 길이가 다른데 바로 실기시험을 쳐서 붙을래야 붙을 수가 없는 거였죠. 익숙한 덤프트럭보다는 터무니없이 긴 트레일러를 한 번에 제대로 후진시킬 수가 있었을까요? 인도인 기사도 황당했었을 겁니다. 한 번도 몰아보지 않았던 트레일러로 못하는 건 당연한데, 운전을 모른다고 옆에서 난리치고 있었으니... 일단은 정식으로 학원에 등록하여 (560리얄) 교육을 받고 시험치는 걸로 결정하고, 진짜로 그런지 확인해 보기 위해 어느 날 아침 작정하고 사무실을 나섰습니다.

 

아브하-카미스 일대에는 2개의 운전면허 시험장이 있습니다. 아브하 근방과 외진 곳에 있는 관광지 하발라야 근처에 있는 운전면허 시험장의 두 곳이 그것이죠. 차이가 있다면, 아브하 근방 운전면허 시험장은 국가에서 운영하기 때문에 약간의 실수도 용납못할 정도로 상당히 까다롭게 평가하기로 유명하고, 외진 곳에 있는 운전면허 시험장은 민간에서 운영하기 때문에 국영 운전면허 시험장보다는 다소 관대하게 평가한다고 합니다. 약간의 실수쯤은 눈감아 준다는 군요.

 

일단 사무실에서 약 25km 떨어진 하발라야 인근의 운전면허 시험장을 찾았습니다. 덤프트럭 기사에게 면허가 필요한데 덤프트럭으로 시험을 볼 수 있냐고 물어봤더니 안된답니다. 이유를 물었더니... 면허 시험장엔 실기시험을 볼 덤프트럭이 없다는 군요...털썩;;; 보통 면허는 승용차, 경화물차는 하이룩스 (픽업), 중장비 면허는 트레일러로만 실기시험을 본다네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아브하 면허 시험장에는 다양한 중장비가 있으니 그쪽에 알아보라고 알려주더군요. 그래서 아브하 면허 시험장으로 같습니다...

 

면허시험장에 도착했을 때 시험을 위해 대기 중인 트레일러가 눈에 띈 순간 과연 이곳에서는 가능할까???하는 불안감이 밀려오더군요. 창구 직원에게 똑같이 물었더니, 불안감은 그대로 적중해서 이곳에서도 마찬가지로, 승용차, 픽업, 트레일러 밖에 없다고 하네요...털썩;;; 그럼 덤프트럭과 트레일러가 다른데 어떻게 해야되는지 물었더니, 그 직원은 교통경찰 사무실 (아랍어로는 마크타불 마루-)을 찾아가보라고 합니다.

 

그래서 찾은 곳이 카미스 교통경찰 사무실...이라고 하기엔 뭐한 작은 이 곳 민원실의 안내 데스크 직원에게 물었습니다. 우린 그런 것 시험보지 않으니까 운전면허 시험장 가서 시험보고 오라고 하네요...ㅠㅠ 그래서 이번엔 아브하 교통경찰 사무실을 찾아갔습니다. (참고로 아브하와 카미스 간 거리는 약 30km입니다. 벌써 100km를 넘게 왔다갔다 하는 중인 것입니다!!!)

 

기사도 위치를 잘 몰라 한참을 헤멘 끝에 도착한 아브하 교통경찰 사무실. 단층짜리의 작은 건물이었던 카미스 교통경찰 사무실에 비하면 제대로 된 건물로 같아 보이는 4층짜리 건물이었습니다. 제대로 찾아왔는지 사람들에게 물어보며 두리번 거리고 있는데, 신문을 들고 통화 중이던 한 교통경찰 아저씨(라 쓰고 할아버지라 생각하는...)가 절 보더니 통화 끝날 때까지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하더군요. 통화가 끝나고 무슨 일이냐 물어보는 그에게 지금까지의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사정 이야기를 들은 무함마드 아흐마드 사우드라는 이름의 그 아저씨는 도와줄 방법이 있을 것 같다고 하면서 근처를 지나가던 한 젊은 교통경찰에게 상황을 이야기하더니 저 사람을 따라가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무작정 따라갔습니다.

 

그 젊은 경찰을 따라 한 층을 올라간 사무실, 그는 무함마드 사우드가 보냈다면서 절 소개시켜 주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영어가 통하질 않아 아랍어로 몇 번째 재방송인지도 모를 상황설명을 또 하고 나서야 그들은 나를 한 층 더 위에 위치한 다른 방으로 저를 보냈습니다.

 

그들을 또 올라간 방에서 이제는 사람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사무실에 있던 경찰녀석들은 어찌되었던 아랍어로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 제가 신기했는지 별별 것들을 다 물어보고 난립니다. 어떻게 왔냐, 무함마드 사우드란 사람을 알고 있었냐, 한국엔 무슬림이 얼마나 있냐, 아랍어는 어떻게 배웠냐 등등등..

 

그들과 떠들면서 알게 된 사실은 저와 처음 만났던 무함마드 사우드란 경찰은 이 경찰 사무실의 중간 간부였고, 제가 있었던 그 방, 그 경찰이 나를 보냈던 이 방은 이 경찰 사무실의 서열 2번째로 높은 고위 간부였던 것입니다. 그럼 저를 그 고위 간부 방에 왜 보냈던 걸까요?

 

운전면허 시험장엔 있지도 않다는 덤프트럭으로 실기시험을 볼 수 있는 방법. 그것은 바로 그 고위 간부가 운전면허 시험장에 보내는 협조공문을 얻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직접 덤프트럭을 가지고 가 면허시험장에 그 간부가 써준 협조공문을 들이밀고 시험을 보라는 것이죠.

 

하지만, 곧 올 거라던 사이드라는 이름의 고위 간부를 만날 수는 없었습니다. 금방이면 올 것이라던 그가 사무실에 바로 나타나지 않으면서 전 사무실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거든요. 정작 우리에게도 덤프트럭이 없어서 그 방법을 쓸 수 없다는 이유도 있었지만요. 아무튼 소개를 시켜준 무함마드 사우드에게 감사전화를 한 통하고 일을 마무리했습니다.

 

어떤 일을 하면서 어려운 상황에 닥쳤을 때, 관련 있는 일을 담당하는 높은 사람을 알면 안되는일도 해결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사우디입니다. 여전히 인맥과 청탁이 먹히는 사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