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CC/사우디

[명절] 양들의 수난시대?! 양시장에 다녀오다...

둘뱅 2008. 12. 7. 21:40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는지 슬픈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올해의 핫지 기간을 맞이하여 사우디 TV에서는 메카 성지순례의 모습을 주로 방영해주고 있습니다... 올해는 170만명 이상의 외국인 무슬림을 비롯한 약 250만명 이상의 무슬림들이 성지 메카를 찾았다고 하는군요... 한국의 견공들이 복날에 수난을 겪는 것처럼 이슬람 국가의 양들은 1년에 한번 수난을 겪는 날이 있으니 바로 그 날이 이슬람권의 최대 명절인 이드 알 아드하 (희생제) 때입니다.

 

성지순례를 마친 헤지라력 매년 12월 10일부터 3~4일간 계속되는 이 명절 기간 동안 양을 제물삼아 알라에게 바치고 주변 친지, 가난한 사람들과 나눠 먹으면서 살아있음을 감사한다고 합니다. 아울러 양치는 베두윈들에게는 1년 양키우기의 결실을 맺을 수 있는 1년에 단 한번 있는 성수기이기도 하구요.

 

이 이드 연휴가 다가오면서 무슬림 직원들 사이에 이드 특식인 양을 언제 제공할 것인지에 대한 문의가 많아 가격도 알아볼 겸 양시장엘 다녀왔습니다. 과연 얘네들이 얘기하는 가격대가 맞는지 확인도 할 겸, 한번도 가보지 않았던 양시장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다른 데가 다 쉬는 날이라 여유도 있었구요...^^)

 

계속 문을 연다길래 점심 먹고 느지막하게 카미스 인근에 위치한 양시장을 찾았습니다. 사람들이 움직이기를 꺼려하는 오후에 방문한 탓인지 시장에는 양을 사려는 사람들 보다는 파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습니다. 원래 자리잡고 양을 팔던 상인들로부터 시작해서, 이 특수에 재미 좀 보려고 기르던 양을 싣고 시장에 나온 베두윈들까지 다양한 상인들이 시장 곳곳에 자리잡고 손님들을 모으고 있었습니다. 정찰제가 제대로 확립되지 않은 아랍의 시장이니만큼 흥정을 통해 가격대를 파악해보라고 같이 간 기사에게 요청했습니다.

 

오후 2시경 몇군데 들렀던 가게의 거래시작 가격은 큰 것 한 마리에 700리얄 (우리돈 약 273,000원/ 1리얄=약 390원)부터 시작하더군요.

 

아랍상인들과의 흥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마진을 붙였는지, 상인들의 가격대 마지노선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갈수록 가격을 낮추면서, 조금 안되겠다 싶으면 구입물량을 한두개 늘려가면서 더 낮춰가는 것이 흥정의 묘미죠. (제가 흥정을 잘하지는 못해도 구경은 잼있습니다..) 서로의 사정을 통사정해가며 서로가 만족할 수 있는 가격대를 찾아가는 것이지요. 계속 가격인하를 요청하고 흥정하다 보면 어느 순간 상인들의 안색이 바뀌는 순간이 오게 마련입니다. 그 순간의 가격대가 바로 상인들이 생각하고 있는 최소한의 가격대입니다. 이들에게도 최소한의 마진이라도 건져야 할 테니까요. 한참 열심히 흥정하다가도 안색을 바꾸며 돌아가라고 얘기하거든요.

 

데리고 간 기사는 "난 가난한 인도인인데 (빈지갑을 열어보이며) 휴가복귀한지 얼마 안되서 돈도 얼마 없고...이런 명절에 같이 일하는 친구들과 나눠먹으려고 하는데 어떻게 좀 싸게 안되겠니??? 부유한 사우디 사람들한테 대신 비싸게 팔면 되잖아... @#$@%#$@#$$@$%" 이런 식의 하소연과 함께 가격흥정에 들어갑니다... "1마리에 얼마... (흥정하다...) 2마리에 얼마... (또 흥정하다...) 3마리에 얼마...에 않되겠니???" 이러면서 말이죠... 이런 식의 가격흥정과 더불어 몇 군데 판매점을 다닌 끝에 얻어낸 가격은 3마리에 1,350리얄 (마리당 450리얄)까지 였습니다. 1마리에 700리얄에서 시작했던 가격을 생각해 보면 많이 후려치는데 성공했죠...

 

이렇게 가격대를 파악한 후 회사로 돌아와 직원에게 양 두마리 값으로 1,100리얄을 주었습니다. 방금 살펴봤던 가격대로 봐서 두마리 정도면 마리당 550리얄 정도에 괜찮은 넘들을 구해올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러나 결국 제 생각은 빗나가고 말았습니다... 불과 두 시간 사이에 양값이 뛰어버렸거든요!!!

 

제가 갔던 시간에는 어느 상점이나 마리당 700리얄에서부터 흥정이 시작되었는데, 한낮을 벗어나고 시장에 사람들이 몰려드는 시간이 되면서 상인들도 가격을 높이기 시작했다더군요... 시작 가격 자체가 750리얄부터 시작했다니 말이죠... 결국 양 사오라고 보냈던 인디언, 방글라 직원들은 예산을 초과한 가격인 각각 600리얄에 사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마 희생제 전날인 오늘은 더욱 비싼 가격에 양들을 팔고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구해 온 양들은 다가오는 8일 오후의 제물이 될 시간이 오는걸 아는지 모르는지 숙소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만....

글을 포스팅하고 나서 보니 이미... 부위별로 깔끔하게 발라져 있었습니다... 한번 잡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기회를 놓쳤네요...

 

(인도 직원이 골라온 양. 자기의 운명을 예감한 듯 처음 도착했을 때의 활기는 없어지고 지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방글라 직원이 구해온 양, 햇볕이 싫은지 그늘에서 쉬고 있다.)

 

 

그리고 희생제 당일 아침, 예전에 살았던 지잔으로 갔던 여행길 도처도처에서 양들을 잡는 모습, 혹은 잡기 위해 양을 사가지고 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아쉽게도 그 모습을 사진에 담을 수 없었지만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구석구석 발라진 양들은 그렇게 누군가의 뱃속으로 들어갔을 겁니다. 다행히 올해를 무사히 넘긴 양들은 한가로이 풀 뽑아먹고 있었구요...

 

그리고 호랑이가 가죽을 남기듯이 양들도 죽어서 가죽을 남깁니다.

 

(죽은 양들의 가죽을 한데 모아서 어디론가 가지고 가는 차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