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 이야기/여러 생각들...

[추태] 신뢰할 수 없는 한국인? 중동문화원 폐원소식을 접하며...

둘뱅 2008. 10. 29. 02:39

(사우디에 사막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딱딱한 얘기라 분위기 전환용으로 넣어본...^^)

 

이 곳 사우디에서 인터넷 뉴스를 통해 인천의 중동문화원 폐원소식을 접했습니다. 이를 연말까지만 운영하고 글로벌 센터로 개편한다더군요. 내년까지 관련 전시일정이 정해지고 준비된 상황에서 인천시의 납득하기 힘든 구차한 변명은 이러한 조치가 일부 개신교인들의 압력에 못이겨 취해진 것이라는 추측을 더욱 뒷받침해주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변명대로 글로벌 센터를 제대로 짓고 싶으면 미국 문화원, 일본 문화원 등등 국내에 있는 기존의 모든 해외 문화원을 인천으로 다 옮겨올 수 있어야 그나마 납득이 되죠. 물론 자신들이 시작한 일도 1년 만에 외압으로 끝내버리는 인천시에게 그런 수준의 유치능력이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도 않지만요. 이미 얼마든지 없앨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긴 인천시에게 뭘 기대할 수 있을까요?

 

대통령이란 사람이 직접 나설 자리와 뒤에서 밑그림을 그려야 할 자리를 구별 못하고 성과 과시용으로 사진 몇 장 찍고는 외교 잘한다고 홍보하기에 급급하고, 새롭게 문을 여는 젯다 총영사관의 개관을 딱 하루 앞두고 기껏 열심히 준비하고 터를 닦아왔던 공관장을 납득할 만한 이유도 없이 단지 정권이 바뀌었으니 사람도 바뀌어야 한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교체해 버리는 황당한 만행을 벌이는 게 이번 정권이긴 합니다만, 중동의 오일머니를 시에 유치하겠다며 동분서주하면서 나름 역할을 했던 집권당의 현 도지사와 인천시장이 바뀐 것도 아니기에 정치적인 이유라고 보기도 힘들고 더더욱 황당할 뿐이죠. 더군다나 의욕적인 청사진과 함께 시작했던 것이 10년 전도 아닌 불과 1년 전의 일임을 생각해 보면 성과 과시에만 급급한 전시행정으로 추진한 것이었는지 의아할 따름입니다. 그러기엔 얻는 것보다 잃을 것이 더 많은데도 말이죠. 일부의 추측처럼 개신교의 외압에 의한 것이라면 종교에 빠져 다른 것은 보지도 못하는 천박한 종교인들의 이기심이 어디까지 국가를 망신살 뻗치게 만들 수 있는지, 자신들이 친 사고를 그나마 욕먹어가며 뒷수습해주는 국가에 대해 어떤 잘못을 하고 있는지 여전히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시켜주는 셈입니다.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고 신의를 깬다는 점에서는 무기만 안 들었을 뿐, 그네들이 욕하는 이슬람 원리주의집단과 별반 다를 바 없는 행동인데 말이죠...

 

아랍인 만큼이나 의심 많이 하는 사람도 없다고 하지만, 막상 겪어보면 그에 못지 않게 의심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입니다. 막상 함께 일을 하다보면 종종 그런 경험을 하게 되거든요. 서로를 의심하는 만큼 양측이 신뢰를 쌓는 과정이 순탄하진 않습니다. 특히 사업상 신뢰를 쌓는 것은 더더욱 어렵지요. 물론 정보가 많이 공개되지 않는 사회다 보니 상대가 신뢰할 만한지 아닌지를 파악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만, 실속도 없으면서 대놓고 설레발치는 넘들이 아닌 (사우디에선 특히 아미르(왕자) 라인을 뚫을 수 있다고 설치는 넘들이 제법 많습니다. 정확하게 얼마나 많은 왕자가 있는지, 그 중에 정말 든든한 빽이 될 수 있는 왕자가 어떤 왕자인지 잘 알 수 없는 상황을 이용하는 것이죠), 제법 비중있는 인사들과의 신뢰를 구축하기가 그다지 쉽지는 않습니다. 그런 이들일수록 신뢰를 구축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권력이나 돈을 보고 우리만이 아닌 그렇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줄을 닿아 보려고 애를 쓸텐데, 그 중에 정말 일을 같이 할 수 있는 신뢰할만한 사람을 찾는 것 자체가 단기간에 결정될 사안은 아니니까요.

 

많은 한국 사람들이 사업적으로 접근했을 때 이들의 신뢰를 얻고 꾸준한 관계를 유지해나가기 힘든 이유 중 하나는 자신들이 필요한 그 순간에만 단기간에 뭔가를 얻어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확실하게 서로를 믿지 못하는 상황에서 신뢰구축에 앞서 가시적인 성과를 얻어내려고만 하니까요. 현실적으로 이를 알면서도 사정상 어쩔 수 없이 그래야만 하는 경우가 많고, 이들로부터 뭔가 내세울 수 있는 결과물을 얻어내는데 주어진 시간보다 오래 걸리는 것이 문제이긴 합니다만, 여유를 두고 상대하는 사람을 벼랑 끝에서 절박하게 상대하는 사람이 이겨내는 것 자체가 쉽지 않죠. 여러가지 대안을 준비해 둔 사람에 비해 상대적으로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까요. 마땅한 대안이 없는 상황이라면 그만큼 단기간에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기는 쉽지 않고, 실패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정말 제대로 된 상대를 만나서 그 고비를 잘 넘기면 쌓이는 신뢰 속에 그 이상의 보상을 받아낼 수 있는 곳이 이 곳이기도 합니다. 라인 잘 잡아 인맥을 구축할 수만 있으면 안 되는 일도 되게 만들 수 있는 큰 힘을 발휘하는 사회가 바로 이 사회니까요. 그러니 힘있는 라인을 알아나가는 과정 자체도 그만큼 시간이 오래 걸릴 수 밖에 없죠. 문제는 그 과정이 우리에게 필요한 시점보다 오래 걸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탈이죠. 어느 사회에서나 마찬가지겠지만 신뢰를 쌓기는 어려워도 쌓은 신뢰를 잃는 건 순식간이니 더 어려울 수 밖에요.

 

따라서 아랍지역에서 우리의 외교력(이라고 하기는 뭐합니다만)이 큰 힘을 발휘하기 힘든 이유 중 하나가 꾸준한 관계를 맺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아랍 사회의 고위층, 혹은 거상에게 다가갈수록 오랜 시간을 두고 끈끈한 관계를 맺은 사람들을 선호하는 성향이 강한데 눈 앞에 놓여진 것만 쫓는 우리의 풍토상 오랫동안 한 곳에 머물면서 신뢰를 구측하며 확실한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지도 못한데다, 평소에는 관심도 없다가 일이 생기거나 이익이 눈에 보일 것 같을 때 갑자기 친한 척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오랫동안 기초부터 다지고 뜸을 들여서 결실을 봐야 함에도 불구하고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모래성처럼 기본적인 것은 무시하면서 당장의 가시적인 성과만을 쫒는 조급함이 문제가 되는 것이죠.확실하게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한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없는 상황이니 누군가가 납치되었거나, 자원 외교 등 급박한 문제에 놓여졌을 때 이에 대처하는 수준이 이웃나라들에 밀릴 수 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죠. 평소에는 소홀히 대하다가 왜 갑자기 친한 척하는지 눈에 빤히 보이는데 자신들이 도와줄 이유가 없으니까요. 같은 상황이라면 갑자기 친한 척하는 사람보다는 오랫동안 믿고 지내온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인지상정이죠. 그렇게 때문에 정말로 힘있는 라인을 잡았다면 자신이 좋을 때든 나쁠 때든 꾸준하게 신뢰를 쌓아두는 것이 결정적인 순간에 크게 도움이 될 수 있고, 단기간에 재미를 볼 생각보다는 지구력을 가지고 오랫동안 상대하는 국가, 개인, 사업가들이 더 큰 것을 얻어내며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아랍 사회입니다. (분위기 좋다니까 단기적으로 치고 빠지겠다고 달려들 경우엔 더 큰 이익을 놓치거나, 아니면 낭패보는 경우가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만...)

  

  

 (미국에서 있었던 9.11 테러사건의 여파는 한국의 이슬람 사원에도 일정기간 영향을 주었다. 일부 개신교인들의 보복테러 위협 때문에 무장경찰의 경비 하에 사원을 출입하는 모든 사람들은 신분증을 제시하고 방문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야 사원 안을 방문할 수 있었다. 평소에는 주차공간이 협소한 동네주민들이 주차장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방된 사원의 출입에 제한이 있었던 특별한 시기이기도 했다.)

 

이런 점들을 생각해 본다면 설립된 지 1년 밖에 안된 중동문화원의 폐원소식은 씁쓸하기만 합니다. 아시아 최초의 중동문화원이라는 상징적인 의미와 함께 아랍 국가의 고위층 인사가 참석하면서 화려하고 의욕적으로 시작했던 사실을 떠올려보면 더더욱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평소 아랍에 많이 의존하면서도 의외로 무관심한 것이 현실이라 개인적으로는 문화원이 설립되었다는 자체가 정말 의외이긴 했습니다만, 오랫동안 이들과 꾸준하게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적절할 때 실익을 추구하면서 공존하고 있는 이웃 나라에도 세워진 적이 없었기에 지금 당장은 작은 문화원일지라도 변화를 꾀할 수 있었기에 더욱 상징적이고 의미가 있는 소중한 출발이었는데 말이죠.

 

인천시가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대지 않는 한, 결과적으론 일부 개신교인들의 천박한 배타주의때문에 아랍인들을 서로 믿고 나갈 수 있는 신뢰의 대상이 아닌, 필요할 때만 단기간에 이용해 먹을 대상 정도로 밖에 여기지 않는 우리의 태도가 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관심있게 지켜보았을 아랍세계 고위층, 특히 개원식에 참석했던 아랍권 각국의 고위 인사들에게 재확인시켜 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한국인들은 파트너로서 오랫동안 신뢰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각인시켜준 셈이죠. 이들에게 단기적으로 눈 앞에 놓인 이익을 취할 수는 있겠지만, 중장기적으로 봤을 때 더 큰 것을 얻기는 힘들 수 밖에 없죠. 100% 종교적인 성격의 문화원도 아닌데, 뭐가 그렇게 싫었을까요? 설령 종교적인 성격의 문화원이라고 쳐도 문화원 하나 때문에 전국민의 1%도 안되는 소수 종교가 자신들을 위협하는 대형 종교가 될 리는 만무할텐데 말이죠. 그러한 오만함과 편협함이 일반인들의 반개신교 성향을 키워줄 뿐이니 전도활동에도 오히려 역효과일텐데요.

 

석유 수입이나 연이어 발표되는 메가 프로젝트를 통한 건설시장의 확대 등 우리의 경제와 직접적인 큰 영향을 끼치는 데다, 자신들이 남의 문화와 종교를 무시한 채 설교한답시고 나대다가 납치를 당했을 때 어쨌거나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모르는 라인을 만들 수도 있는 기회를 스스로 차버리는 한심한 꼴이라니요! 시간이 걸려도 제대로 키워나갔으면 우리에게 알게 모르게 많은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작은 기회를 일부 개신교인들의 배타심 때문에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안 만드는 것보다 못한 결과로 끝나게 되어 안타까울 뿐입니다. 소탐대실이란 옛말이 이럴 때 쓸 수 있는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번 파문은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편협한 마음 때문에 미국화가 아닌 전정한 세계화의 길에 동참하기 힘든 우리의 한계이자, 자신들의 행동이 누구보다도 이타적이어야 할 종교인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누워서 침뱉는 행위임을 알지도 못하는 이기적인 한국 개신교의 오만방자함을 새삼 재확인시켜 준 한심한 사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