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세 번의 아랍 결혼식에 초대를 받아 참석했었습니다. 처음 참가한 결혼식은 1998년도 요르단 연수시절 친구의 초대를 받아 갔었고, 두번째와 세번째는 사우디에서 회사 직원의 결혼식에 초대를 받아 갔었던 거죠.
요르단에서의 결혼식과 사우디 남부 보수적인 색채가 강한 지역에서의 결혼식은 많이 달랐습니다. 물론 두 지역 모두 밤에 결혼식이 시작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만...
요르단의 결혼식은 남녀가 한 자리에 모여 성혼한 커플들을 축하해주는 자리입니다. 밴드 반주에 맞춰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 여성들이 자신의 정열을 발산하듯 춤을 추고 함께 어울립니다... 너무나 춤에 몰입한 나머지 자신이 남자 다리 사이에 서서 추고 있는 건지도 모를 정도로 열심히 추는 하객들도 있더군요.
사우디 남부의 보수적인 아시르 지역에서 체험한 결혼식은 요르단에서의 결혼식과는 또 달랐습니다.
하객 그룹들이 일단 모여 축의금을 모으고, 결혼식장에 입장하기 전 신랑, 혹은 신부 가족에게 인사할 축하문구와 노래를 서로 맞춘다음 결혼식장으로 향합니다. 사우디에서 처음 가봤던 결혼식장은 너무나도 외진 곳에 있어서 가로등도 없는 길을 십 몇킬로 들어갔었습니다. 일행이 직장 동료였으니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정말 어딘가 납치되어 가는 기분이 들 정도랄까요. 예식홀 앞에서는 오기 전에 익혀둔 노래를 부르면서 자신들이 하객으로 왔음을 신랑, 혹은 신부 가족에게 알립니다.. 일렬도 도열하여 팔짱을 끼고는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하면서 말이죠. 우리로 치면 "우리집에 왜 왔니? 왜 왔니? 왜 왔니?" 이런 놀이를 하듯이 말이죠...
식장에 들어가서는 가족들에게 축하의 덕담을 건네고 벽에 붙여 설치된 의자에 길게 앉아 하객들끼리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고 친분을 확인하면서 얘기를 나눕니다. 차와 함께 말이죠... 차를 마시고, 향료의 냄새를 마시면서 서로를 공유합니다. 다른 쪽에선 여성들만의 파티가 열리고 있음을 알려주는 음악소리가 들리면서 말이죠... 그리고는 식사가 준비되면 우르르 식당으로 몰려가 식사를 하고 조금 먹은 뒤엔 일어나서 식장을 떠나더군요... 식당에는 만디와 약간의 샐러드가 여러 쟁반 가득히 놓여집니다. 이런 날 나오는 만디는 당연히 양 만디입니다. 경사스런 자리를 축하하기 위해 자신들의 재산과도 같은 양을 내놓는 것이죠. 자리를 일찍 뜨는 이유는 뒤에 올 다른 하객, 혹은 여성들을 위해 남겨놓기 위함입니다. 어차피 한 쟁반에 놓여진 만디를 몇 사람이 다 먹지도 못할 양이기도 하지만요.
춤추고 논다는 얘기를 들었었지만, 그간 참석했던 두 번의 결혼식에선 그런 모습을 볼래야 볼 수 없었습니다. 직원들의 얘기로는 몇 년전까지는 그렇게 즐겼는데, 종교 지도자가 경망스럽게 놀지 말라며 금지령을 내렸다고 하더군요....ㅠㅠ
그러던 차에 지난 주말 (목요일) 거래처로부터 결혼식 초청을 받았습니다. 담당자가 받은 초대장이었지만, 가줘야 한다며 동행을 요청했기에 겸사겸사 가보기로 했습니다... 나름 돈 많고 명망있는 가문의 결혼식이니 가 볼 가치는 있을 것이라면서 말이죠... 사진 촬영도 가능하니 가지고 가보라고 얘기를 들었었지만, 지난 두 차례의 경험이 있어서 DSLR을 들고 갈 생각을 잠깐 하다 말았습니다... 대신 디카를 들고 갔지만요.
(젯다 상경길에서 봤던 이 정체 불명의 웅장한 건물이 결혼식장이었다.... 우리처럼 여러 결혼식이 동시에 열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만 열린다. 보는 방향으로 왼쪽은 남성들의, 오른쪽은 여성들의 공간이다)
저녁 9시쯤 오라는 초대를 받았지만, 느즈막하게 9시 반에 출발했습니다... 일찍 가봐야 이샤 예배시간 (현재는 대략 20:45~21:15)에 걸리고 바지런히 가봐야 시작하진 않을 걸 알기 때문에 말이죠... 정작 우리에게 초청장을 전해 준 사람을 10시가 되니 잘 찾아오고 있는지 확인 전화를 해줍니다.. 초행길이라 조금 헤매긴 했지만, 도착한 결혼식장은 운전하면서 보았던 웅장한 건물이더군요. 이 건물이 눈에 띄는 건 그 근방에 이만한 건물이 없는 압도적인 위용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갈때보니 레드카펫도 깔려 있더군요...
내부의 웅장함도 웅장함이었지만 식장에 들어선 순간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제가 참가했던 지난 두 번의 결혼식과는 완전히 분위기가 달랐거든요. 식장 내에 테이블이 설치되어 있는, 낯익은 풍경이었던 겁니다!!!
저희를 초청해준 사람은 잡아놓은 자리로 우리를 이끕니다. 나름 VIP 대접인지 이번에도 앞자리입니다...
(대부분의 하객은 사우디인)
사람들은 자리를 잡고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목이 메이지 않도록 주최측에서는 떨어질만하면 마실거리들을 제공해 줍니다.. 아랍식 커피, 샤이, 콜라, 물, 생과일 쥬스 등 그야말로 마실거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저희가 앉았던 자리에는 주로 외국인들의 자리였습니다. 저희 외에 미국인, 인도인, 독일인이 결혼을 축하해주기 위해 참석했었습니다. 아무래도 그 전날 월드컵 4강전의 여파 탓인지 독일인에게는 독일:스페인전에 대한 얘기가 주요 화제로 떠오르네요. 이러면서 서로 명함을 주고 받으며 인맥을 넓혀나갑니다... 11시가 넘어가도록 이야기는 계속 됩니다. 저녁을 먹고 왔으니 그다지 배가 고프진 않았지만요... (결혼식 같은 자리에 저녁 초대를 받는다면, 6~7시쯤 조금이라도 먹어두세요!!!)
(테이블 동석자들. 왼쪽 끝에는 인도인 엔지니어, 오른쪽 끝에는 미국인 컨설턴트와 함께 했다...)
사진기라곤 폰카말고는 보기 힙들었던 지난 두 차례의 결혼식과 달리 이번 결혼식은 장소만큼이나 좋은 촬영 여건을 갖고 있더군요. DSLR을 들고 온 사진사들로부터 비디오 촬영기사, 그리고 360도로 회전하며 식장 구석구석의 모습을 담을 무빙 카메라까지...
(샹들리에의 화려함도~~~)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니 식사 준비가 되었다며 나오라고 합니다... 이번에도 만디나 좀 먹고 말겠지...라고 생각했더니... 부페입니다! 물론 만디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구요... 하지만, 그간 보아왔던 결혼식과는 달리 그냥 제공되는 음식의 일부일 뿐...
(음식을 먹으러, 얘기를 나누러 자리를 박차고 부페에 온 하객들...)
(건물 중앙의 대형 돔에는 이 건물에서 가장 큰 샹들리에가 매달려있다.)
음식을 먹고 있으니 여성들의 홀이 아닌 다른 곳에서 음악소리가 들려옵니다... 초청 연주자들이 어느새 무대 중앙에 자리를 잡습니다. 그들의 악기는 단촐합니다. 키보드와 이름모를 타악기. 그리고 분위기를 이끄는 사람 한 명이 선창을 하며 진정한 파티의 시작을 알립니다. 이미 시간은 자정을 넘었습니다... DSLR을 들고오지 못한 아쉬움을 디카로 해결합니다. 동영상 촬영을 통해서 말이죠. 배터리를 완충하지 못해 결정적인 순간을 못담은 아쉬움이 있습니다만...
타악기의 리듬에 맞춰 춤추고 놀다 잠시 쉬고, 그러다 또 다시 쉬는 식입니다.
연주와 휴식기가 반복되면서 춤을 추러 나오는 하객들의 수도 많아지고, 점점 액션도 커져 갑니다.
특별한 춤솜씨를 필요로 하진 않습니다. 그냥 무릎을 폈다 굽혔다 하며 리듬에 몸을 맡기며 덩실덩실 흔드는 것입니다... 아무나 할 수 있기 때문에 애들이나 어르신들이나 가리지 않고 모여듭니다.
횟수가 되풀이되면 되풀이될수록 음악은 점점 커지고 함께 춤추는 하객들의 수도 많아집니다. 이를 고무하듯 음악의 볼륨도 점점 커져만 갑니다... 서로 몸을 부대끼며 춤을 추면서 이 자리에 모여 함께 공유한다는 동질감을 갖게 만듭니다. 술 안 먹고 이러는 이들이 우리네 정서로는 전혀 이해 불가이긴 합니다만...
춤추고 쉬고를 반복하며 밤은 깊어가고 사람들은 하나둘씩 일어나지만 남은 사람들은 더더욱 귀터지는 음악 소리에 몸을 맡기고 기쁨을 함께 나눕니다. 신부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보지도 못했어요!) 그저 함께 감정을 표출해나가는 것이 중요할 뿐...
그래서 덤으로 준비한 특별 영상.... 특별 키메오가 있습니다...^^
이런 결혼식에 익숙치 않은 우리로서는 새벽 2시반이 되니 더 이상 있기 힘들어집니다. 3시면 끝난다고 하는데 그냥 30분을 못 버티고 숙소로 향합니다. 샤워를 하고 잠들다 눈을 떠보니 오후 12시입니다... 이번 주말은 이렇게 또 흘러갑니다...
다음에 이런 기회가 생기면 제대로 준비해서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다시한번 해보게 됩니다. 이런 흔치않은 좋은 기회를 잘 살리지 못한듯 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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