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 이야기/아랍의 이모저모

[음식] 사우디인 친구집에서 대접받은 가정식 이프타르

둘뱅 2011. 8. 12. 17:58

 

최근 회사를 따라 젯다로 옮겨 온 사우디인 직장 동료가 주말 저녁에 한번 초대하겠다고 몇 번이나 말을 하다가 어제 저녁 이프타르나 함께 먹자며 정말로 자신의 집에 초대를 했습니다. 1년전 썼던 이 카테고리에 있는 지난 글에서 설명드렸던 것처럼 이프타르는 해가 져서 하루의 라마단 단식을 마친 후 먹는 음식입니다. 해가 지고 먹지만 라마단 기간의 생활 패턴을 감안하면 사실상 아침이나 다름없는 식사로 대추야자 열매와 함께 위에 부담되지 않을 식사가 주류를 이루고, 많은 음식점에서는 라마단 기간에만 파는 이프타르 패키지를 따로 내놓기도 하며, 길에서 이러 음식을 나눠주는 곳들도 곳곳에서 볼 수 있기도 합니다.

 

근무를 마치고 6시쯤 사무실을 나가 그 동료의 집 앞에 일단 제 차를 세우고 근처 해양 리조트지가 있는 오브후르 지역을 잠시 드라이빙하면서 가까이 있으면서도 바쁘다는 핑계로 못봤던 요트들을 구경하며 이야기를 나누다 바람을 쐬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번에 살게 된 집주인이 공주라고 하자 같이 초대를 받은 한국인 동료가 겸사겸사 좋은 인맥을 맺으면 되겠다고 말하자, 그 동료는 힘있는 왕자들을 알게되면 좋긴 해도 자신을 한 수 아래로 깔볼 거라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더군요. 사실 사우디인들도 가만히 보면 자신들끼리는 나름의 급이 있어서 결혼식에 초대를 받아도 직접 가는 경우도 있지만, 그럴 필요까진 없다 생각할 경우 동생이나 친척을 대신 보낸다든가 등의 룰이 암묵적으로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곤 합니다. 이 친구를 보더라도 외국인일 지언정 자신보다 높은 사람의 명령에는 따르지만, 자신보다 낮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높은 사람처럼 명령을 하게될 경우엔 반발하는 모습을 가끔 봐왔거든요.

 

잠깐의 드라이빙을 마치고 방문한 그의 집은 전형적인 아랍식 주택구조를 가진 집이었습니다. 3층까지 8개의 방 (부엌과 화장실 빼고...)이 있는 집인데, 현관문에 바로 붙어있는 거실과 화장실 하나를 빼면 집 안쪽은 문으로 완전히 차단되어 있었거든요. 외부 손님을 맞이하는 유일한 공간이기도 하죠. 거실에는 오늘의 저녁식사가 사진과 같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식사시작 전에, 혹은 식당이나 호텔 등의 프론트에서 준비해주기도 하는 쌉싸름한 희뿌연 티 주전자가 있고, 펼쳐진 비닐 위에 저녁식사가 놓여져 있었습니다.

 

오늘의 이프타르를 같이 먹을 사람은 저와 한국인 동료, 사우디인 동료와 그의 어린 아들 딸, 그리고 그의 사촌, 그리고 예멘인 집 관리인 등 7명이었습니다. 그의 딸은 아직 아바야를 입을 때가 되지 않았기에 같이 합석하게 되었습니다. 좀더 커서 아바야를 입게 될 나이가 되면 그땐 이런 자리가 생겨도 함께하지 못할테지만요. (여자애들도 첫 생리가 시작되기 전까진 그냥 우리네처럼 평범한 옷을 입을 뿐 아바야나 히잡을 착용하진 않습니다. 아직 애들이라 생각하거든요. 그렇기에 여성들의 아바야와 히잡 착용은 완전한 여인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죠...) 동석하게 된 사촌은 담맘에서 일하다 잠깐 놀러왔다고 합니다. 왕실 친위대에서 10년 근무하고 있다고 하네요.

 

상 주변의 쇼파에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냅니다. 아무래도 우리에게 공통 관심사는 그의 장남인 압둘 아지즈였죠. 카미스 살 때보다 지금 사는 젯다가 훨씬 좋다고 하는 그는 3년전 처음 봤을 때보다 많이 듬직해졌고, 낯가림도 많이 사라져서 더욱 의젓해 보였습니다.. 가끔 평범한 옷만 입고 있는 모습을 보다가 저녁 초대자리라고 머리까지 사우디식 성장을 하고 나와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려도 장남은 장남이니까요. 그리고 처음 보는 8개월된 그의 막내아들 무함마드. 안아주고 얼러줘도 무표정한 표정으로 빤히 쳐다보던 그는 거실바닥에 발이 닿자마자 울기 시작하네요. 아직은 안기는게 좋을 때긴 하겠지요.

 

시간을 따져가며 그렇게 얘기를 나누다 상 주변에 둘러앉아 티비 채널을 사우디 방송 꾸란채널에 고정시킵니다. 사우디 방송의 꾸란채널은 꾸란 독송을 배경음악 삼아 24시간 메카의 하람사원을 비쳐주며 핫지나 우므라를 위해 카바를 향해 모여든 성지순례객들과 사원주변의 모습을 보여주는 채널입니다. (무려 HD채널도 있습니다!!!) 상 주변에 둘러앉자마자 배고팠던 저와 한국인 동료는 음식에 손을 대고 조금 먹기 시작했는데, 가만보니 먹고있는 사람들은 우리 둘 뿐이었습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먹지 않고 티비를 지켜보고 있다가 마그립 예배가 시작되자마자 먹기 시작하더군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배도 고팠고 상 주위에 앉았기에 먹기 시작한 거였지만, 이들은 마그립 예배 시작과 동시에 먹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던 겁니다!!! 마그립 예배를 알리는 아잔이 울리자마자 우리들도, 우므라를 하기 위해 메카에 모여든 무슬림들도 다같이 이프타르를 먹기 시작합니다. TV에서도 사원측에서 준비한 이프타르를 먹는 그들의 모습을 비춰줍니다.

 

 

 

 

이프타르를 먹기 시작하면서 이 친구는 자신의 부인을 자랑합니다. 직접 만들 수 없는 대추야자 등을 제외하면 모든 음식을 손수 만든거라면서 말이죠. 이 근처에서 부인이 해 준 식사하는 건 자신 밖에 없을 거라며 부인을 자랑하는 이유는 일반적인 사우디 부인들은 밖에서 사먹는 걸 좋아하지 집에서 거의 음식을 직접해먹지 않는다는군요. 이런 문화 탓에 어느 정도 규모 이상의 식당에는 테이크 아웃이 일상화되어 있고, 사우디에서 입소문만 잘타면 먹거리 사업이 잘 될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죠. 집에서 잘 안 해먹으니... (하지만, 이 친구의 부인은 사우디 사람이 아닌 이웃나라 카타르 사람이긴 합니다만...)

 

양도 잡아주면 발라서 요리까지 직접 한다는 그 부인의 요리솜씨는 정말 훌륭했습니다. 원체 이쪽 음식이 기름기가 많아 느끼한 경우가 많은데, 느끼하지도 않고 정갈하게 만들었더군요. 이쪽 음식을 좋아라 하는 저야 상관없지만, 이쪽 음식을 가리는 한국인 동료도 느끼하지 않아서 좋다며 맛있게 먹을 정도였으니까요. 근 5년 가까운 사우디 생활속에서 가정식은 처음 먹어본 거였는데 의외의 담백함에 빠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음식을 조절하고 있어서 더 먹고 싶은걸 참을 수 밖에 없던게 아쉬울 뿐!!!

 

처음 놀러온 김에 좀더 얘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한국으로 휴가를 떠나는 그 동네를 배웅해주기 위해 공항으로 가야해서 자리를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그와 작별인사를 나누며 감사인사를 나눕니다.

 

"맛있는 음식 대접해 준 움무 압둘 아지즈에게 감사하다고 전해줘."라고...

(아랍인들도 우리네처럼 상대방을 본인 이름 대신 철수 아빠, 철수 엄마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의미의 별칭이 있습니다. 자식의 이름 앞에 아부(아빠)와 움무(엄마)를 붙이는 것이 그것이죠. 그래서 움무 압둘 아지즈라고 부르면 압둘 아지즈 엄마라는 의미입니다. 다만, 아들과 딸을 가리지 않는 우리와는 달리 아부 철수, 움무 철수는 흔히 써도 아부 영희, 움무 영희처럼 딸 이름 앞에는 거의 안쓴다는 정도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