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 이야기/아랍의 이모저모

[문화] 닥치면 인샤알라도 필요없는 그들의 일처리 스타일: 이번 시즌 한국선수 이적으로 본 사례

둘뱅 2012. 2. 5. 23:45

 

(김병석과 바그너가 리야드에 도착한 날. 이 사진과 소식을 블로그에 포스팅한 후 김병석 선수의 가족과 에이전트에게 연락을 받게 되는데..)

 

 

지역특성상 어쩔 수 없다지만, 만만디를 뛰어넘는 아랍인들의 인샤알라 일처리는 성질급한 우리네들에겐 참 보기 답답한 관습입니다. 특히 인샤알라, 알라의 뜻대로...라는 말처럼 책임소재를 알라에게 묻는 듯한 불확실성은 아랍 비즈니스의 악명을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IBM (우리가 아닌 그 IBM이 아닌, 인샤알라 / 부크라 / 말리쉬의 약자) 중 대표적인 것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마냥 아랍인들이 인샤알라를 부르짓는 것은 아닙니다. 그럴 경우 대부분은 자신에게 직접적인 이익이 걸려있지 않을 때나 하는 소리죠. 자신들의 이익에 민감한 얘네들 풍습상 필요하다면 인샤알라를 외치는 것이 아니라 앞장 서서 후다닥 일처리하는 모습도 보기 드물게 볼 수 있습니다. 평소의 모습으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빨리 말이죠. 이번 시즌 중간에 사우디 리그로 이적한 두 선수, 이정호, 김병석 선수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1. 이정호 (부산 아이파크->제명->알 잇티파끄): 우리가 필요하면 상대가 문제가 있더라도 가능한 모든 수를 동원해서 데리고 올 수도 있다!

지난 해 K리그를 강타한 승부조작에 연루되어 K리그에서 영구제명당한 선수들 중 하나입니다만, 10개월 단기 계약으로 지난 가을 알 잇티파끄로 이적한 바 있습니다. 구단측과 유럽 에이전트에게 상황을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쿼터로 수비수를 쓰고 싶어하던 알 잇티파끄 구단측의 의지에 의해 상위기관인 FIFA에 제소하여 동의서를 발급받고 이적했었죠. 이적 후 두 시합에 출전하고, 승부조작과 관련된 일련의 일들로 인해 계속 활약하지 못하고 있습니다만...

 

 

2. 김병석 (사간토스->알 나스르): 우리가 필요하면 예외적인 사유로 정상적인 절차를 건너뛰거나 순서를 조정해서 데리고 올 수도 있다!

현재 알 나스르로 이적하여 3경기를 뛰고 1어시스트를 올리며 적응 중인 김병석의 경우 정상적인 절차를 밟으면 경기 투입은 커녕 현재까지도 리야드에 도착하기 힘든 상황이지만, 이미 경기에서 활약하고 있는 가장 특이한 이적사례입니다. 아랍애들의 후다닥 일처리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죠.

 

제 블로그에 많은 리플을 달아주시는 분을 통해 김병석 선수의 이적소식을 접한 후 아랍어 웹사이트를 통해 사진과 함께 리야드 도착소식을 국내 최초로 전해드린 바 있습니다. ([ZSPL] 김병석&바그너 다 실바 알 나스르 입단 위해 리야드에 도착 편 참조) 축구팬들 사이에서 루머로 돌고있던 것을 확인시켜 준 첫 소식이기도 합니다.

 

소식을 전해드리면서 조금 의아했던 게 김병석과 바그너의 공식적인 도착일정을 구단측에서 발표하지 않아 환영인파나 보도진들 없이 조용히 도착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외국인 감독이나 선수들이 올 경우 보통은 팬들 마중나오고, 기자들이 취재나오는 것이 평상시 모습이라 의외였죠. 게다가 더욱 놀라웠던 사실은 선수 가족과 에이전트가 저에게 고맙다는 연락을 해 온 것입니다!!! 김병석 선수가 리야드에 잘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려줘서 고맙다면서 말이죠. 왜 이런 황당한 일이 생겼을까요?

 

사우디는 기본적으로 여행하든 일을 하러 들어오든 비자 없이는 입국이 안되는 나라입니다. 흔히 말하는 공항 비자 취득도 안되는 나라입니다. 심지어 사우디행 보딩패스를 끊을 때 비자를 확인할 정도기도 하죠. 외국인 선수가 부족해서 시즌 전반기 고생한 알 나스르로서는 새로운 영입한 외국인 선수의 빠른 합류를 그 누구보다도 바랬나 봅니다. 정상적인 비자발급을 기다릴 수 없었던 알 나스르는 김병석 선수를 비자없이 데려왔다고 합니다!!!

 

선수에게 구단이 제공한 것은 바레인행 티켓과 비자 대신 아랍어로 적힌 서류뿐. 비자가 없어 리야드행 보딩패스를 못받을 경우를 대비해서 바레인까지 가서 육로 이동을 택한 듯하고, 아랍어 서류는 보지는 못했지만 알 나스르 구단주 요청에 의한 무비자 입국 허가서 같은 것으로 추측해 봅니다. (알 나스르도 사우디에서 인기있는 팀 중 하나인데다 구단주도 왕자죠...) 난생 처음가는 나라에 완전한 서류를 갖추지 못한 채 선수부터 떠나보냈으니 가족이나 에이전트 모두 잘 도착했는지 궁금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일 수 밖에 없던거죠.

 

김병석 선수의 사우디 입국과정에 보여준 구단측의 파격적인 절차 생략은 김병석의 깜짝 데뷔전에서도 보여집니다. 사우디 리그 규정상 매라운드 경기시작 48시간 전에 예비명단을 제출하게 되어 있다고 하는데, 김병석 선수가 메디컬 테스트 후 정식으로 알 나스르와 계약을 체결하고 사우디 프로축구연맹에 정식으로 선수등록이 된 것은 불과 경기 하루 전의 일이거든요. 알 나스르로서는 실전에 투입할 미드필더가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이었는지 김병석 선수만 일단 예비명단에 이름을 올려놓고 일련의 계약절차를 마무리한 후 바로 다음날 교체멤버로 출전시켜 버린 것입니다. 같이 입단한 바그너는 두 경기 쉬고 세번째 경기만에 첫 투입시켰는데 말이죠. 

 

이런 사례들을 보면 아랍애들의 일처리가 마낭 느려터졌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면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잠재력은 있는거죠. 물론 이들을 빨리 움직이게 할 수 있는 동기부여가 쉽지 않은 것이 문제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