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CC/사우디

[사회] 왜 사우디는 여성들의 운전을 금지하고 있을까? 그 이유와 이에 대한 비판, 그리고...

둘뱅 2013. 5. 22. 14:10

(니깝 쓰고 운전은 정말 불편할 듯.........)


여러분들도 다 알고 계시는 것처럼 사우디는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여성 운전을 금지하고 있는 나라이고, 이 금지조치를 풀어달라며 목소리를 높이는 여성 운동가들의 소식을 가끔 외신을 통해 접하셨을겁니다. 제 블로그에서도 이러한 목소리에 대한 포스팅을 종종 해왔지만, "왜 사우디는 여성들의 운전을 금지하고 있을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서는 따로 정리해 본 적이 없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다른 분께서 주신 이 질문에 대해 답글을 남기기 위해 정리하다 보니 댓글로만 남겨두기는 아까워서 별도로 포스팅을 합니다.



여성들의 운전금지에 대한 법적 근거? 이슬람적 배경? 

사우디 법률상 여성들의 운전을 금지한다고 서면 상에 구체적으로 명시한 규정은 없지만, 여성들에게 운전면허가 발급되지 않기 때문에 운전자들은 반드시 운전면허를 취득해야 한다는 도로교통법상의 규정을 위반한다는 이유로 여성들의 운전을 불법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해서 사우디 내 모든 남성 운전자들이 운전면허를 취득하고 운전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특히 지방으로 내려갈수록 운전면허 취득이 불가능한 18세 이하의 어린 사우디 운전자들 (심지어는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생까지!!!)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이런 어린 운전자들이 등장하는 이유도 여성들의 운전금지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런 산중턱에도 집짓고 사는 사람들이 있으니....  구급차를 부르기엔 위치를 설명할 수도 없으니 비상시를 대비해서 아이들에게도 운전을 가르치는거죠...)


도심과 달리 차가 없으면 학교, 병원, 상점 등 기반시설에 접근하기 힘든 곳만 골라 사는 사람들이 워낙 많다보니, 운전을 할 줄 아는 어른들이 집을 비우고 바로 돌아오기 먼 곳에 나가있고, 아이들과 여성들만 집에 있을 때 응급환자가 생긴다던지 등의 비상사태가 생기면 대처할 방법이 여의치 않습니다. 이런 비상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일부에서는 여성들에게 운전을 시키는 경우도 있지만, 여성들의 운전을 탐탁치 않게 여기는 많은 사우디 남성들은 자신의 아들들에게 어려서부터 운전을 야매로 가르칩니다. 기본적인 소양교육 없이 운전하는 법만 가르치는 후유증은 바로 방어운전이 불가능한 악명높은 사우디인들의 운전습관으로 드러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말이 있듯이, 사우디에서는 먼저 들이미는 사람이 이기는 편이기에 3, 4차선에서 유턴하기, 교차로에서 빠져나간 후 길을 잘못 들었다며 그대로 후진해서 나오기 등등 주위를 고려하지 않은 그야말로 크레이지한 운전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어린 객기와 질주본능이 결합한 통제 불가능한 운전에 익숙해지는거죠... 뭐... 그렇다고 해서 정식으로 운전학원에서 교육을 받고 면허를 따도 다를게 없긴 합니다만;;;;


사도 무함마드 생존 시에도 여성들이 자신의 말과 낙타를 타고 다녔다고 전해지고, 여성들의 운전을 금지하는 나라가 사우디 밖에 없다는 점으로만 본다면 무슬림들이 공통적으로 따를 수 밖에 없는 종교적인 이유라기 보다는 여성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 하에 이슬람에서의 여성의 역할과 활동에 대한 지나친 확대 해석 및 적용이 그 원인으로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이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사우디 성직자들이나 종교당국은 아래의 몇가지 이유를 들어 여성의 운전을 하람 (금지된 것)이라 규정하고 있습니다.



여성들의 운전을 금지시키는 이유
여성들이 운전하게 되면...
1. 부득이하게 니깝 (눈만 가리는 여성 의상)이나 히잡 (두건처럼 머리카락만 가리는 것)을 들춰내고 맨얼굴을 드러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2. 1번과도 연관되어 상대적으로 남성들보다 긴급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 떨어져서 남성 운전자 보다 여성 운전자의 사고 발생률이 높다.

3. 남성 보호자들이 필요가 없으니 여성들이 쉽게, 그리고 자주 외출할 수 있다. (같이 다니는게 아니니 당연히 아무리 핸드폰이 있어도 뭐하고 다니는지 알 수가 없다.)
4. 교통사고나 차량정비 등의 예측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이슬람법 상 자신을 보호할 자격이 없는 외간 남자와 자연스레 교류할 수도 있다. (함께 다니는 것이 아니니 막을 수도 없는데다 엄밀하게 말하면 그것도 불법이다!)
5. 교통체증이 더욱 심해지고, 젊은 남성들이 운전할 기회가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여성들 때문이 아니라 취업을 못해 경제력이 없어서 운전을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 함정.)
6. 셩별에 따른 차이를 두고 있는 사우디 사회의 전통적인 가치관을 붕괴시키는 첫번째 단계, 아니 기폭제가 될 것이다. (자리잡지 못하는 남성들이 많은 가운데 그나마 기회가 줄어드는 것을 원치 않는거죠)

위에 언급한 몇가지 이유들로 인해 심지어는 대중교통 이용도 쉽지 않습니다. 여성 혼자, 또는 여성들끼리 택시를 이용할 경우 원칙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편의를 감안하여 강요하지 않고 있어서 급히 이동이 필요한 여성들이 택시를 잡거나 사설 운전수를 고용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이것은 위에서 언급한 3번을 부득이하게 위반하게 됩니다. 한편 버스나 열차와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여성전용 출입문, 승강장, 여성전용 좌석이 확보되어야 하는데, 업체들 입장에선 번거롭게 그런걸 갖추느니 차라리 아예 못타게 하는게 더 편하니까요.


(택시를 잡는 사우디 여성들. 엄밀하게 따지면 외간남자와의 접촉이므로 불법이다.)



여성들의 운전금지 이유에 대한 비판, 그리고 여성들에 대한 운전허용을 촉구하는 이유

물론 이에 대한 반발과 비판도 만만치 않아 아래와 같은 이유로 여성들의 운전금지 해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1. 법적인 근거도 없지만 무엇보다 근본적으로 여성들의 운전금지가 사우디 국가체제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꾸란과 하디쓰에 명시된 것은 아니다. (물론 사도 무함마드 시절에 자동차란게 존재하지도 않았을 때니 이에 대한 언급이 있을리도 만무하거니와 위에서도 언급했듯 여성들이 말이나 낙타타고 잘도 다녔다는데!!! 현실은 여성들의 자전거 이용 금지조치, 여학생들의 체육교육 금지조치도 최근에서야 풀렸죠)
2. 부득이하게 외간 남자가 모는 택시를 타야하는 상황이 생기는 등 성 차별 관습을 오히려 위반하는 상황이 생길 수 밖에 없고, 아울러 택시를 이용할 경우 여성 수입의 평균 30%가 택시비로 지출되어 가족들에게 경제적인 부담을 가중시켜 결과적으로는 출퇴근, 또는 등하교를 요구하는 여성들의 정상적인 교육과 고용을 방해한다. (택시 등 이용시 경제적 부담, 가족 남성 구성원 누군가의 시간을 맞춰줘야 하는 부담..은 고스란히 여성과 그 가족에게 전가되니까요...)
3. 택시나 사설 운전사들을 이용할 경우 이들이 종종 성희롱, 강간 등 성범죄를 일으키는 주범이 된다. (이런 사건사고가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죠...)
4. 업체들의 비협조로 인해 안전한 대중교통 수단이 없다. (위에서 설명드렸던 이유로...)
5. 단속의 미치지 않는 사막이나 산악지대 등 시골에서는 부득이하게 운전하는 여성들이 있다. (앞서 설명드렸듯 환경자체가 그렇게라도 않하면 힘든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고, 단속의 손길이 미칠래야 미칠 수가 없습니다.)

6. 남성 운전자보다 여성 운전자의 사고 발생률이 더 높아 위험하다는 주장에 근거가 없다.  (정확한 통계자료는 없지만 많은 사우디 여성들이 면허를 취득하고 있는 이웃국가 바레인 경찰당국과 국민들은 사우디 여성 운전자보다 남성 운전자를 더 위험하게 본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습니다. 적어도 남성 운전자처럼 분노의 질주를 하진 않을테니까요. [사회] 사우디 여성계의 오랜 숙원, 운전하고 싶다! 참조) 
7. 여성들의 운전을 금지시켜 놓으니 불필요하게 외국인 "가정 운전사 (House Driver)"를 들여올 수 밖에 없다. 안그래도 외국인을 줄이려고 하는 마당에 여성들의 운전이 허용되면 다른 직종보다 훨씬 수월하게 70만명으로 추정되는 가정 운전사를 당장 내보내고, 그런 직종 자체를 없애면서 외국인 의존도를 낮추는데 일부 기여할 수 있다. (알왈리드 빈 탈랄 왕자가 여성 운전을 지지하는 대표적인 이유)
8. 현실은 택시 이용이나 개인 운전사를 고용하는 비용보다 직접 운전하는 비용이 보다 경제적이어서 여성들의 운전이 문제가 되지 않는 해외에서의 체류 중 운전면허를 취득하는 사우디 여성들이 매년 수천명 이상 늘어나고 있다... (그러니 얼마나 답답하겠어요. 외국에서 신나게 이동의 자유를 즐기다 귀국하면 자동으로 이동의 자유가 박탈되니... 최근에는 운전하고 싶은 사우디 여성들이 상대적으로 안전한 두바이로 많이 간다고 하네요... 바레인, 이집트 정세가 혼란해지면서 두바이는 많은 사우디인들의 갈증을 안전하게 해소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해방구로 좀더 각광받고 있습니다. 영화팬들에겐 3D, 4D, IMAX 등 대형 스크린과 멋진 음향 및 기타 시설을 갖춘 영화관에서의 영화관람에 대한 갈증을, 이성에 굶주린 남성들에겐 자연스레 이성을 접할 수 있는 욕구 를, 운전하고 싶은 여성들에겐 억눌린 질주본능을 발산하며 운전을 맘껏 즐길 수 있는 해방구 말이죠...)


이를 바라보는 압둘라 사우디 국왕의 견해는?
여성계의 오랜 숙원 중 하나였지만, 현 상황에서 이를 위한 움직임이 더욱 활발해지고 있는 것은 여성들에게 사회진출의 기회를 넓혀주고 있는 압둘라 국왕도 개인적으로는 사우디 사회가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을 때 여성들이 운전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며 이를 지지하는 입장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2008년 8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바가 있다고 합니다.

"나는 여성들의 권리를 강하게 믿는다. 나의 모친도, 나의 누이 및 여동생도, 나의 딸도, 나의 부인도 한 명의 여성이다. 나는 여성들에게 운전을 허용할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사실 지금도 사우디 내 사막이나 시골지역을 둘러보면 여성들이 운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사우디 사회 내 오랫동안 자리잡은 가치관과 인식의 변화가 함께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인내가 요구된다. 언젠가 그것이 가능할 때가 올 것이며, 인내는 미덕이라 믿는다."


이러한 자신의 발언을 뒷받침하듯 그는 그동안 여성들을 억눌렀던 사우디 사회의 각종 터부와 제약을 하나둘씩 단계적으로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특히 그 개방 속도는 2011년 이후 더욱 가속화되어 예전 같으면 수년 간에 걸쳐 이뤄질까말까한 일들이 1~2년 내에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고, 논의할 가치도 없는 것으로 폄하되던 것들마저 해제시키며 여성들에게 사회의 문호를 보다 활짝 열어주고 있으니까요. 극보수적이거나 개방 속도와 폭에 만족하지 못하는 일부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압둘라 국왕이 대중들의 많은 지지를 받아온 이유이기도 하며, 이런 분위기를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누구보다 압둘라 국왕의 뒤를 이을 승계자가 누가 될 것인가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왕실 내 모든 인사들이 압둘라 국왕의 점진적 개혁정책이라는 국정운영철학에 동의하는 건 아니고, 언제든지 극보수적인 왕자가 왕위에 오를 수도 있는 거니까요. (작년 6월 왕세제 즉위 8개월만에 사망한 고 나이프 왕세제가 압둘라 국왕의 여성정책에 반대하는 대표적인 보수주의자였습니다.)


과연 사우디 여성들에 대한 운전허용은 언제 가능하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