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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대학보] 잊기 힘든 경험으로 가득했던 98년도의 이집트 여행

둘뱅 2005. 12. 23. 00:08

    이 글은 마지막 학년을 다니고 있던 지난 99년 외대학보에 실렸던 글을 다시 옮겨 보았습니다. 그땐 스캔된 사진이 없어서 문서로만 보냈습니다만, 다시 옮기면서 참고할 만한 사진을 넣었다는게 큰 차이겠네요... 이렇게 다녔던 때가 벌써 8년 전의 일입니다....


학보에 실렸던 원본은... 

356847.pdf



   이집트는 우리에겐 관광지로 유명하다. 특히 기독교도라면 성지순례를 위해 찾게 되는 시나이산을 포함해서 아무리 이집트내 여행을 많이 하지 않는다고 해도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는 찾아보니까 말이다. 난 이러한 이집트를 요르단에서의 연수생활을 마감 짓는 여행으로 계획했었다. 이집트 여행은 조금은 힘들었고 황당한 일도 겪었지만, 그만큼 값진 경험과 추억을 남겨 준 여행이었다. 그 중에서도 잊혀지지 않는 몇가지 경험들을 여기에서 정리해보고자 한다.


- 얼어죽을 뻔한 시나이산에서의 하룻밤

(시나이산 정상에서 맞이한 아침햇살... 찬송가와 함께하여 왠지모를 경건함을 느꼈었다...)


   이집트를 입국할 때, 나는 아까바에서 떠나는 누웨이바행 쾌속정을 통해 들어갔었다. 이 쾌속정 안에서 이집트 입국비자를 취득할 수 있는데, 입국비자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이집트 입국비자이고, 또 하나는 시나이 반도 출입 허가증이다. 이는 시나이 반도가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정을 통해 이집트 영토로 들어가면서 생기게 된 것인데, 아직도 시나이 반도 내에 있는 해양도시인 샤르물 쉐이크 등을 방문하려는 이스라엘 방문객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이다. 이 출입 허가증은 시나이 반도 내에서 2주간의 체류를 허가하는 것으로 무료이고, 입국비자는 1달짜리로 15$의 수속비를 내야만 한다. 나는 비자수속 과정에서 이를 깜빡해 버리고 말았다. 비자가 아닌 출입 허가증을 끊고만 것이다.

    다른 외국인 관광객들 보다 쉽게 수속을 마치고 이집트 땅에 내린 내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바로 택시 기사들이었다. 이들과 요금을 흥정하고 시나이산으로 향했다. 총알처럼 달리는 택시의 차창 밖으로 보이는 시나이 반도의 사막은 아름다웠다. 형형색색으로 제각기인 모래색깔들, 특히 이 모래가 햇볕에 반사되면서 보여주는 아름다움은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아름다움을 뒤로하고 성카트린느 수도원 앞에서 하차했다.

(이 때 시간이 오후 4시... 바로 올라가 버렸다...ㅠㅠ)

 

   수도원 앞에서 수도원에 여장을 풀까말까를 고민하던 나는 잊지 못할 경험을 하게 되었다. 오후 4시에 한 20kg 정도 되는 배낭을 메고 바로 시나이산으로 직행한 것이다! 평탄한 낙타길을 따라 꼬불꼬불한 길을 올라가고 있었다. 아침에 얻었던 사과도 까먹으면서 여유있게 올라가던 길은 해가 지면서 난관으로 변해버렸다. 해가 지는 순간 세상은 완전히 새롭게 변한 것 같았다. 달도 없는 밤에 펼쳐진 화려한 별천지. 별의 바다 속에 나 혼자 덩그러니 놓여진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이런 황홀한 꿈같은 현실은 가지고 갔던 싸구려 손전등이 망가지면서 고행이 되었다. 달도 없는 칠흑같은 어두운 밤, 나는 돌아가지도 못하고 손으로 돌계단을 더듬으면서 정상을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산 정상 위 교회에서 하사하는 수도사들도 “신이 너에게 길을 밝혀줄꺼야”라는 말 한마디만 내던진 채 하산하고, 나는 허공 속에서 개헤엄치듯이 돌계단을 더듬으면서 정상까지 올라가 버렸다.


(산 정상 부근의 휴게소.... 인간적으로 너무 추웠다... 해발 2,200m대 고지에 있으니...)


   하지만, 정상에 도착한 것이 끝은 아니었다. 산에서 잘 계획은 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침낭을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비록 휴게소에서 모포를 두장 빌리고 옷을 두껍게 껴입었지만, 해발 2,300여미터에서 부는 매서운 산바람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뼈 속까지 에이는 지독한 추위 탓에 잠을 이루지도 못하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울 수밖에. 별의 바다로 빠지는 듯한 유성들을 세면서 지샜던 밤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해가 뜰 무렵 야간산행으로 올라온 사람들이 하나둘씩 정상에 모여들기 시작하고, 이들이 찬송가를 부르면서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는 장면은 종교가 없는 나조차도 경건함을 느끼게 하는 그 무엇이 있었다. 예전에는 한국인 성지순례객들이 많은 탓에 산정상 부근 휴게소에서 사발면을 팔았다고 하던데, IMF 탓에 사발면은 커녕 다른 한국인 관광객조차도 없었다. 새까맣던 산을 샛노랗게 물들이며 떠오르는 해는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대학생활을 통해 여러 번 엠티를 가 봤지만, 일출 30분전에 잠들어 버리고야 마는 내 습관 탓에 한 번도 볼 기회가 없었던 일출이기도 했다. 사람들을 쫓아 하산할 때는 수도사들이 왕래한다는 거친 길을 택했다. 험난한 돌계단은 밤새 굶주린 나를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겨우 산을 내려와서 간단히 요기를 하고 카이로에 들어가려고 했으나 경찰들에게 제지를 당했다. 지금 가지고 있는 허가증으로는 본토 진입이 불가능하니 입국했던 곳으로 되돌아가서 입국비자를 취득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잠도 못 자고 힘들었던 탓에 나는 할 말을 잃고 누웨이바로 돌아가는 차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두시간을 겨우 기다려 세르비스를 타고 돌아갔는데, 돌아가는 길은 웬일인지 더욱 길게만 느껴졌다. 누웨이바항에 도착해서 카이로행 버스시간을 확인한 후 다시 수속을 밟고 세관 검사원과 언성 높여가며 싸워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나서야 겨우 카이로행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도시 카이로

(뛰어타고 내리기가 가능해야 이용하기 편한 로컬버스 안에서... 차장이 뭔가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다...)


  
한참을 달려 도착한 카이로. 한적하기만 했던 요르단대학 주변이 생각날 정도로 상당히 어수선하고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는 듯한 힘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카이로 번화가 인근 여관에 여장을 풀었다. 그 여관에 투숙 중이던 한국인 선교사와 얘기도 나누고, 이집트산 로컬맥주인 스텔라를 마시면서 카이로에서의 첫 밤을 맞이했다.

   카이로는 여러 문명의 유적들이 공존하는 곳이다. 지금까지도 고대문명의 유물들과 기독교적인 유물들, 그리고 이슬람의 유산들이 남아 있다. 카이로에서 처음 찾은 곳은 국립박물관. 카이로를 찾는 모든 외국인들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아직까지도 남아 있는 각종 석상들, 옛날 이집트의 영광을 보여주는 멋진 유물들과 말로만 듣던 투탕카멘의 묘에서 가져온 부장물들을 통해 화려하기만 했던 옛 이집트 왕조들의 번영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은 박물관 내에서 별도의 입장료를 추가징수하는 미이라실이었다. 잘 보관되거나 약간은 부식되어 휑한 몰골로 남아 있는 왕들의 시신들은 ‘영생이란 과연 무엇일까, 그들은 정말로 행복했을까’라는 생각을 가지게 하기에 충분했다.

 

(콥트 박물관의 입구)


   그 다음은 기독교, 특히 콥트교의 흔적이 남겨져 있다는 올드 카이로로 향했다. 아랍지역에서 유일하게 이집트에만 있는 지하철을 이용했는데, 버스비의 2배인 지하철 요금 탓에 시설이나 이용객들이 한결 깔끔해 보였다. 콥트교의 유물들이 전시된 콥트 박물관과 올드 카이로는 여기가 이슬람 국가가 맞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슬람의 영향이 전혀 남아 있지 않은 곳이었다. 그리고 유적지 앞에는 상대적으로 불결하고 빈곤한 이집트인들의 현실이 유적지와 마주하고 있었다. 이건 이집트의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 현실이다.

 

(피라미드도 알고 보면 초등학생들의 소풍장소!!!)


   그리고 다음 날은 드디어 가자의 피라미드 방문. 버스를 타고 내리니 낙타를 타야만 입장할 수 있다고 호객하는 이집트인들이 서성거린다. 이들을 “말리쉬!(괜찮아요, 신경쓰지 마세요라는 뜻)”라는 한 마디로 쫓아내고 들어갔다. 책에서만 보던 스핑크스와 피라미드가 내 눈앞에 보인다. 가장 큰 피라미드는 내부 수리 중이어서 들어갈 수는 없었지만, 밖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신기하기만 하다. 옛날에 이런걸 어떻게 만들었을까? 사람들보다 더 큰 돌을 옮기고 쌓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을텐데.

(씨타델에서 본 이슬라믹 카이로의 풍경... )


    이제 생각해 보면 3$ 정도밖에 안되는 돈이었지만, 그때는 약올랐다. 하물며, 그곳에서 다시 목적지까지 걸어가는데 1시간이나 더 걸어갔어야 했으니 말이다. 속은게 분하고 허탈해서 더 많은 곳을 둘러볼 여유가 없었다. 카이로 시내에서 영어를 구사하면서 다가오는 사람들은 어느정도 경계를 할 필요가 있다.


- 여유로움이 넘치는 시와 오아시스

  
다음 목적지는 시와 오아시스. 카이로에서 대략 10시간 정도 걸리는 곳으로 리비아 국경에서 가까우며 예로부터 알렉산더 대왕이 활약하는 등 군사상의 요점지였다. 카이로에서 지중해 해변가를 달리면서 해양도시인 마르사마뚜르하까지 가고, 그 곳에서 시와 오아시스행 버스를 탔다. 에어컨도 없이 너무나 낡아서 사막의 모래먼지들이 콧속까지 들어오는 버스를 타고 왕복 2차선의 사막길을 다섯시간 가량 달렸다. 그 동안 황토색의 사막과 더위에 지칠 무렵 목적지에 도착했다. 지는 해를 뒤에 둔 채 나타난 오아시스의 첫인상은 무척 감명 깊었다. 휴식처를 찾았다는 기분이랄까?

(유적지 안에서 수공예품을 만들고 계신 동네 주민)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한국인인지 일본인인지 물어 보는 호객꾼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인이라고 말하자 “안녕하세요. 환영합니다”라고 또박또박 한국말로 말하는 호객꾼. 카이로에서의 불쾌한 기억 때문에 “한국인이 묵고 있어요”라는 말도 뒤로하고 묵으려고 했던 호텔로 갔으나 만원이어서 그 호객꾼이 호객하던 호텔로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어라? 그 호객꾼이 데스크에 앉아 있네?’라고 생각하면서 숙박신청하자 그는 나를 건물 옥상으로 데리고 갔다. 자신의 이름을 살라마라고 밝힌 그는 베르베르인으로 아랍어와 베르베르어, 영어를 구사하는 호텔의 지배인이기도 하면서 종업원이기도 했다. 전망좋은 옥상에서 보이는 오아시스의 전경을 둘러보면서 가이드를 해주던 그는 “이 곳에서는 서두르지 마시고 여유있게 즐기세요.”라는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남겼다. 맞은 편 방에는 진짜로 한국인들이 묶고 있었다. 키부츠에서 일하다 휴가로 이 곳을 방문한 한국인 학생들. 이집트 서쪽 끝에서 만날 줄은 진짜 몰랐는데. 반가운 마음에 이런저런 얘기들을 들으면서 첫날밤을 보냈다.

 

(사막 한 복판에 이런 호수가 있다...)

 

   시와 오아시스는 자전거만으로도 충분히 하이킹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아침부터 자전거를 빌려서 오아시스 주변을 돌기 시작했다. 다리를 건너다 갑자기 자전거 안장이 벗겨지는 통에 개울에 빠지기도 하면서 신탁의 신전, 아문신전, 클레오파트라 온천 등을 두루 보고는 두크루르 산 밑에 있는 조그만 학교 앞을 지나치게 되었다. 애들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내 앞에 보이는 초등학생들을 그냥 지나칠리는 없었다. 경비실 앞에 자전거를 세워 두고 운동장에서 수업하던 애들을 열심히 쳐다보았다. 첨엔 외국인인 나를 보고 다가오던 애들도 카메라만 들이대면 도망가고 다시 다가오다가 카메라 들이대면 다시 도망가길 몇 차례 반복했더니 수업 분위기가 망가지는 것을 두려워한 선생님이 애들을 회초리로 한 대씩 때리시고는 나를 교장실로 데려갔다.
 

(시와 오아시스 지역에서도 외곽에 위치한 두크루르 분교... 손톱깍기 사연이 담긴 곳이다..)


  
교장 선생님과 선생님들이 내주신 뜨거운 샤이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국적을 물어보시길래 “한국사람인데요.”라고 대답했더니 교장 선생님이 책상서랍을 열고 무언가를 꺼내서 나한테 주시며 “이거 너희 나라 물건이냐?”라고 물어보셨다. 무엇이었을까? 그건 바로 Made in Korea도 선명한 손톱깎기였다. 이집트에서도 오지에 가까운 이 곳, 그리고 이 곳 중에서도 외곽에 위치한 이런 조그마한 학교 교장실에서 한국제 손톱깎기를 보리라고는 꿈에도 상상을 못했다. 카이로 시내 한복판에서 마티즈를 보고 국교도 없는 시리아 다마스커스의 버스 정류장에서 쌍용 버스를 봤었지만, 이건 그런 기분과는 다른 것이었다. “참 잘 쓰고 있다. 좋던데?”라고 말씀하시는 교장선생님의 말을 들으면서 왜 그렇게 기분이 좋았던지. 그 기쁨과 감동은 여전히 내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시와 오아시스 내 기념품 가게... 카이로에 비해선 덜 물든 곳이기도 하다...)

 

   이곳, 시와 오아시스만의 매력은 독특하다. 외국인용 물가가 적용되는 다른 지역과 달리 내․외국인이 같은 물가로 물건을 살 수 있으며, 사람들의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특별히 볼만한 큰 유적은 없지만, 분위기는 성질급한 사람들도 그 급한 성질을 잊게 할 정도로 사람들에게 편안함과 안락함을 준다. 그 덕분에 나는 이곳에서 2박하려던 계획을 하루 더 늘려 3박을 했었다. 

   우리에게 이집트는 피라미드와 스핑크스의 나라로 알려져있다. 하지만 여행을 하면서 느꼈던 것은 이집트가 상당히 복합적인 국가라는 사실이다. 화려한 고대문명과 빈곤한 현재의 생활이 공존하고, 사기꾼 같은 사람들과 장사치가 있는가 하면 너무나도 선량한 사람들이 있고, 아랍인뿐만 아니라 서부의 베르베르인, 남부의 누비아인 등 다양한 인종에 의해 생겨나는 문화차, 나일강을 기준으로 한 비옥한 지역과 양쪽으로 펼쳐지는 사막지역 등... 이러한 점들이 바로 이집트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이러한 매력은 외국인 관광객들을 이집트로 끌어들이는 힘이며, 이집트인 서민들에겐 상대적인 빈곤감을 느끼게 하는 한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래도 기회가 된다면? 난 다시 한 번 이집트를 찾을 것이다. 이번에는 보지 못했던 곳도 포함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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