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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르걸] 다정한 모슬렘, 친절한 칼리드씨 (2006년도 6월호)

둘뱅 2006. 5. 27. 11:14

 

 

 

확대하면...

 

 

 

** 엘르걸 6월호 295페이지에 실린 하단 박스 기사 "다정한 모슬렘, 친절한 칼리드씨"의 편집되지 않은 원본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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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칼리드에 대한 작은 기억...

 

 

무슬림들이 갖고 있는 가치관 중에는 부자인 사람은 형편이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 하는데, 어려운 사람에는 가난한 자, 노약자, 여행객이 있다. 부자이면서 형편이 어려운 사람에 속하는 특이한 경우가 하나 있는데, 바로 외국인 여행객들이다. 그런 탓에 외국인 여행객들에게 바가지를 조금이라도 더 씌우려고 하기도 하고, 당당하게 구걸하는 모습이 오히려 아랍을 여행하는 외국인 여행객들에겐 부정적인 이미지로 남는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 사회나 그렇듯이 모든 아랍인들이 그렇지는 않다. 그러한 기억을 하나 떠올려본다...

 

1998년의 6월 중순 경, 난 시리아의 다마스커스를 여행하고 있었다. 시리아는 우리와 정식 국교를 맺지 않은 나라 중 하나로 북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당시 다마스커스에서 태권도 사범을 하던 선배 집에 짐을 풀고 시내구경을 나섰는데, 어수선하던 통에 그 동네 이름과 선배 연락처를 깜빡 잊어버린 게 문제의 발단이었다. 시내구경을 마치고 길을 잃어버렸으니 말이다.

 

버스로, 도보로 경황없이 한 시간 반정도 헤매고 있던 나에게, 어떤 시리아 사람이 말을 걸어왔다. 도움이라도 구할까 싶어 사정을 설명했더니 자기를 따라오란다. 문제 생기면 해결방법도 없었는데, 그냥 그를 따라갔다. 그는 어떤 아파트의 3층으로 나를 안내했다. 어딘가 싶어 처음에는 긴장했는데, 알고 보니 그의 집이었다. 칼리드라 이름을 밝힌 그는 경황이 없던 나에게 샤이 (아랍식 차)를 대접하고 자기가 이혼남이라는 등의 사소한 얘기를 나누면서 나를 안심시키는 것이었다!

 

그렇게 잠깐의 휴식과 안정을 취한 후 갈 곳도 모르던 처음 보는 나를 위해 다시 길안내에 나섰다. 한참을 또 걷다가 버스 정류장 부근에서 친구 집이라며 이발소에 잠깐 들어가더니 친구에게 돈을 꾸고는 그 돈으로 다마스커스 시내 중심가로 가는 내 몫의 버스비까지 내주었다.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내가 단편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그 동네에 대한 설명을 듣던 칼리드는 갈아타는 버스비까지 내줘가며 선배 집까지 나를 무사히 데려다 주었다. (알고 보니 선배 집이 시내 중심가에서 아주 가까웠는데, 난 헤매다가 다마스커스 밖으로까지 나갔다 온 것이었다!) 시내구경 나갔다가 소식 없던 나를 걱정하고 있던 선배는 그간의 사정을 듣고는 어떤 식으로든 사례를 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그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며 물 한 잔만 먹고 그의 집을 향해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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