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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ENG] 인샬라! 인샬라! (홍지화, 신성ENG사 사보 05년 10월호)

둘뱅 2006. 5. 29. 12:33

   이 글은 소설가 홍지화씨가 지난 2005년 10월 신성ENG사 사보에 기고한 것으로, 상당 부분의 내용을 제 페이퍼 (지금의 블로그)나 홈피를 통해서 참조하였기에 퍼왔습니다.

 

  이 글의 저작권은 홍지화씨에게 있음을 미리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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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샬라! 인샬라!

    -- 올리브의 생명력으로 똘똘 뭉친 그들

 

 

   몇 년 전, 필자는 말레이시아에 다녀온 적이 있다. 물론 며칠 머물지 않았지만 새로운 문화를 접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오른손으로 밥을 집어먹는 사람들과 히잡으로 얼굴을 감싼 여성들, 공중화장실에 그 흔한 두루마리 화장지조차 없다는 것. 모든 게 어색하고 불편했다. 말레이시아에 머무는 동안 내가 화장실에서 보았던 건 수도꼭지와 호수뿐이었다.

 


 ◆ISLAM, 모든 것은 유일신 알라의 뜻대로

 

   미국 9.11 태러 이후, '이슬람'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태러'다. 광활한 사막과 별로 깔끔하지 못한 콧수염, 히잡에서 한 단계 진화한 듯 보이는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의 부르카, 일부다처제, 그리고 끊임없는 내전과 분쟁. 그래서 서구 사회에서는 그들을 종종 '화약고'란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언론에서 그들의 소식을 접할 때마다 대체 그들의 문화는 어떤 것이며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종종 궁금할 때가 있다. 무슬림, 그들은 정말 한 손에는 칼을, 다른 한 손에는 꾸란을 든 것일까.

 

   세계 3대종교 중 하나이고 현재 10억 이상의 신자와 유럽 제 2의 종교로 자리 매김한 이슬람교는 7세기 초 아라비아의 무함마드가 일으킨 종교이다. 이슬람교의 뿌리는 구약성서의 인물 아브라함에서부터 시작된다. 아브라함의 본처 사라에게는 자식이 없어서 몸종 하갈에게 이스마엘을 낳았다. 후에 사라에게도 자식이 생겼는데 그가 이삭이다. 그래서 이스마엘의 혈통을 무함마드가, 이삭의 혈통을 예수 그리스도가 이었다고 여긴다. 이런 이유로 이슬람교에서는 예수를 신이 아닌, 무함마드와 같은 예언자로 해석한다.

 

   이슬람이란 '절대 귀의', 즉 '신에 복종한다'는 뜻의 아랍어로, 유일신 '알라'를 신앙의 대상으로 믿고 따르며 '꾸란'을 경전으로 한다. 기독교에서는 신과 인간의 관계를 아버지와 아들의 순종관계로 보는데 반해, 이슬람교에서는 주인과 종의 무조건적인 복종을 의미한다. 이슬람교의 근본 정신은‘알라 외에 신은 없고 무함마드는 그 사도이다.'란 꾸란의 구절 속에 명시되어 있다. 무함마드는 신이 아닌 인간이며 오직 하나밖에 없는 신 알라의 가르침을 가장 완전히 전한, 가장 위대한 마지막 예언자로 본다. 이슬람은 종교와 생활이 분리된 게 아니라 서로 일치되는 신앙체계다. 즉 무슬림의 일상생활 자체가 신앙생활인 것이다.

 

   본래 이슬람이 추구했던 이상은 '움마'의 공동체 안에서 만인이 평등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었다고 한다. 빈부격차와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유일신 알라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는 사상에 입각해 모든 사람이 행복하고 평등한 파라다이스를 꿈꾸었던 것이다. 무슬림이 신앙인으로서 꼭 지켜야 하는 다섯 가지 신앙기둥이 있는데, 신은 유일신 알라 밖에 없으며 무함마드는 신의 사도라는 것을 고백하는 '신앙 고백(샤하다)'과 하루 5번 메카를 향해 드리는 '예배(쌀라)', 수입의 2.5%를 가난한 사람에게 베푸는 '희사(자카트)', 라마단기간 동안 가난하고 굶주린 자들의 고통을 경험하고자 하는 의식 '단식(싸움)', 끝으로 건강한 무슬림이라면 일생에 적어도 한 번은 지켜야 할 의무인 '성지순례(핫지)'가 그것이다. 이러한 가치관 때문인지 그들은 자신의 노력으로 번 돈과 식량을 가난하고 고통받는 자들에게 베푸는 것을 옛부터 큰 미덕으로 삼았다. 그들이 얼마나 자카트를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는 한 일화 속에 잘 나타나 있다.

  

   전통 보수 이슬람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의 많고 많은 왕자들 중 유독 선한 왕자가 있었는데 하루는 그에게 한 거지 소년이 찾아왔다. 하필 왕자의 수중에 현금이 한 푼도 없어 고만하다가 결국 그는 소년에게 새로 산 지 얼마 안되는 자신의 승용차 열쇠를 손에 쥐어주면서 "이것이 내일 아침 너의 식사를 해결해줄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슬람 국가를 여행해보면 구걸하는 자들의 태도가 뻔뻔하리만큼 당당하다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경제개념 때문에 경제 활동을 거부하는 자발적 실업률이 전혀 줄어들지 않는다고 한다.

 

   종교가 곧 생활인 무슬림에게 죽음의 의미 또한 깊다. 그들에게 죽음은 영혼과 육체의 일체감이 소멸함을 의미한다. 죽음은 영혼이 육체를 떠나 아름다운 새 삶이 보장되는 내세로 향하는 시작이라 믿는다. 그들은 육체를 영혼의 안식처로 생각하기 때문에 화장을 하지 않고 대대손손 묻어온 가족묘에 매장한다. 특이한 것은 와하비즘 의식에 따라 관을 제외한 채 시신만 매장한다는 것이다. 휴가비만 600억을 쓴다는 세계 최고의 갑부였던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이 죽었을 때 관도, 봉분도 없이 초라한 묘지에 안장된 것도 이런 의식 때문이다.

 


◆ 이슬람은 여성들의 천국인가, 지옥인가

 

   서구사회에서 이슬람을 미개사회라고 비난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일부다처제' 때문이다. 일부다처제는 분명 여성들의 삶을 억압하는 사회장치임에 틀림없다. 여성이 머물 안방을 가장 깊숙한 곳에 만들고 집안 사람이 아니면 남성과 겸상도 금지되어 있고 외출 시에는 부르카나 히잡으로 얼굴을 가려야만 하는, 그래서 사회활동은 아예 생각도 못하는 이슬람 여성들.


   일부다처제가 허용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황막한 사막에서의 유목생활과 포고활동 과정에서의 잦은 전쟁으로 남성들의 죽음이 빈번하던 시절, 홀로 남겨진 여성들이 굶어죽거나 노예로 팔러 가는 것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방법이 바로 일부다처제였다. 또 전쟁이나 생계에 필요한 일정 수의 부족원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다산이 중시되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의 축첩제도와는 달리, 육체적, 정신적, 경제적으로 동등하게 대할 능력이 있는 남성이 본처를 최대 4명까지 거느릴 수 있도록 허용된 것이다. 혈족 중심의 사회인 탓에 사촌끼리의 결혼도 허용되다보니 장애인이 많은 부작용도 앓고 있다.

 

   이슬람의 남성들은 결혼 시 신부에게 지참금을 지불해야 한다. 이는 남편이 죽거나 이혼했을 경우를 대비하기 위한 수단인데. 그 액수가 여성이 가진 조건에 따라 달라져 요즘에는 지참금을 준비 못해 노총각들이 늘어가는 추세다. 연예결혼은 거의 없고, 양가 부모의 합의 하에 결혼이 이루어진다. 상견례 때 신부가 커피를 끓여오는 풍습이 있는데, 이 때 신부는 신랑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커피에 소금이나 후추를 넣어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다. 유목민족 특유의 남성중심사회인 까닭에 남아선호사상이 강하다. 또, 자연환경이 척박하다보니 음식문화가 제대로 발달하지 못해 간소한 메뉴로 양이 많은 음식을 바닥에 펑퍼짐하게 앉아 몇 시간씩 수다떨며 먹는 게 그들의 음식문화다.


 

◆ 중동의 화약고, 시아파와 수니파


   시아파와 수니파는 이슬람교를 양분하는 분파로, 현재 수니파가 10억 이슬람교도의 대다수를 차지한다. 교조 무함마드에게는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친척끼리의 세력다툼 속에서 둘로 양분되었다. 미국과 갈등을 빚고 있는 이란과 이라크는 소수의 시아파가 절대다수를 차지한다. 수니파는 본래의 꾸란 해석에 충실한 반면, 시아파는 교단 지도자 이맘을 무함마드와 같은 완전한 존재로 여겨 그들의 꾸란 해석을 신봉한다. 시아파가 위험한 종교집단이 된 대에는 무슬림이 지켜야 할 다섯 신앙기둥 외에 지하드(성전)를 추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슬람 영토, 신념, 기구를 보호하기 위해 성전에 나설 수 있다고 한 지하드의 개념 때문에 시아파가 과격하다는 인상을 풍긴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다. 문화의 상대주의에 입각하여 합리적이고도 융통성 있게 이슬람 문화를 하나의 문화로 바라보고 열린 마음으로 이해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출처: 신성ENG사 사보 05년 10월호

<글: 홍지화/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