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0년부터 2002년까지 사우디 생활을 하면서 해보고 싶었으나 못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아랍인들의 전통의상인 "쑵"을 입어보는 것이었습니다. (발음은 "툽"과 "쑵"의 중간발음입니다.) 그 당시에 지냈던 곳이 거주지역에서 좀 많이 벗어난 길 한복판이었던데다, 워낙 외근을 나갈라치면 왕복 60~140km 길을 다녀야했기에, 귀차니즘이 발동해서 맘에만 두고 있다가 선물로 사준다는 사람이 있었음에도 결국 그냥 돌아왔었던 기억이 납니다.
(방 옷장에 걸고 찍어 본 나의 첫번째 "쑵". 방에 왠 라디에이터가 있냐고 생각하시겠지만, 제가 있는 이 곳 카미스는 해발 2천 2백미터 대의 고산지대에 위치한 도시기에 밤에는 틀어놓지 않으면 추워서 잠을 깨는 일이 생기곤 합니다. 그렇다고 마냥 쎄게 틀어놓을 수도 없는 것이 다른 곳보다 산소가 부족하기 때문에 춥다고 창문과 방문을 잠구고 쎄게 틀어놓으면 산소가 부족해서 잠을 자도 개운하지가 않기도 합니다.)
그러다 지난 10월에 이곳 카미스에 도착해서 저녁 때 주변을 산책하다 보니 제법 많은 "쑵" 만드는 옷집이 눈에 띄었습니다. 며칠을 돌면서 구경을 하다 결국 사람들이 자주 드나들던 가게에서 처음으로 맞춰 입어보았습니다. 물론 기성복도 있지만, 저에겐 맞춤복이 나을 것 같아서 말이죠.
==============================================================================================
1. 옷을 맞추자
첫째, 옷감 고르기
어떤 옷감을 고르느냐가 "쑵"의 가격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가게에 따라 비교적 서민적인 100사우디 리얄 (한화 약 3만 5천원)의 "쑵"에서 수백, 혹은 명품 수준인 수천 리얄에까지 이르는 다양한 종류의 옷감이 있습니다. 똑같은 흰색 옷감이라도 가격에 따라 상당한 차이가 납니다.
"쑵" 그러면 보통 흰색옷을 떠 올립니다만, 잠옷 같이 생긴 "쑵", 다양한 색깔의 "쑵" 등 여러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색깔있는 "쑵"은 주로 겨울에 많이 입습니다. 제가 옷을 맞췄던 지난달만 해도 대부분의 매장에서 흰색 천들이 걸려있었지만, 겨울을 향해 다가가고 있는 지금은 주상품들이 바로 색깔이 있는 동절기용 옷감들입니다. 사우디 평균 이하의 기온을 유지하고 있는 이 곳에서는 어쩔 수 없겠지요. 고급 가게가 없는 인근 동네의 옷가게에서 가격을 물어보니 100 사우디 리얄~150 사우디 리얄 수준 (약 3만 5천원~5만 3천원)에 가격형성이 되어 있더군요. (차타고 다니면서 고가의 제품을 파는 가게도 보았습니다만) 처음 맞춰보는 것이니만큼 무리하지 않고 100리얄짜리 저가형으로 맞춰보았습니다. (동네에서 가장 싼 가게라고 자랑하길래 그만...ㅋ)
가게에 걸려있는 옷감들 중에 맘에 드는 것을 고르고 나면 치수 재기에 들어갑니다. (옷감에 대해 아는 바가 없어서 맘에 든다기 보다 그냥 찍었습니다 사실...^^)
둘째, 치수재기
치수재기는 전신 길이 외에는 주로 상체 위주로만 재더군요. 우선 어깨에서 발목 정강이까지의 길이를 잽니다. 그 길이가 바로 "쑵"의 길이가 됩니다. 그리고는 목둘레, 가슴둘레, 어깨 폭, 팔 두께와 길이를 재더군요. 가슴 둘레를 재고나면 허리 둘레를 재지 않아도 어느정도 자연스레 계산되는 것 같았습니다. 기존에 "쑵"을 입고 있었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았던 이번 맞춤의 경우는 상의의 가슴둘레를 재고는 조금 타이트하게 입을 것인지, 널널하게 입을 것인지를 물어보더군요. 일단 편하게 입을 생각이었기에 조금 널널하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담에 또 맞출 기회가 있다면 조금 타이트하게 맞출 생각입니다...^^) 결과적으로는 단추로 잠궜을 때 목을 타이트하게 만들어놨더군요.
셋째, 각종 선택사양들
아무 생각없이 옷 맞추러 들어갔다가 당황했던 부분이 바로 구매자의 취향에 맞도록 옷의 구석구석을 선택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단순하게 생각했는데 골라야 할 부분이 제법 많더군요.
1) 목의 기장
목에 칼라를 달 것인지 말 것인지, 단추는 어떤 형태로 몇 개를 달 것인지가 주 결정 대상입니다. 옵션이 한 두가지가 아니라 제법 많았던 탓에 아무 생각없이 재단하는 사람에게 인기있는 걸로 선택해 달라고 했더니 아래와 같이 선택을 해 주더군요.
(칼라가 없고 목부위가 딱딱 한 단추 두 개 달린 디자인)
(단추처럼 생겼지만, 실제로는 똑딱이로 고정시키는 디자인)
(속에는 옷을 맞춘 가게 이름과 핸드폰 연락처가 달려있다.)
2) 왼쪽 가슴 주머니의 무늬 결정하기
가슴 주머니도 디자인을 선택하게 하더군요. 완전 사각형으로 할 것인지 모서리를 휘게 할 것인지, 주머니에 어떤 디자인의 무늬를 넣을 것인지... 역시 이것도 선택할 종류가 많아서 결국 재단사에게 맡겼더니 아래와 같은 디자인을 선택하더군요.
3) 단추가 달린 가운데 부분의 끝마무리
이 것 역시 취향대로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끝을 사각형으로 마무리할지, 삼각형으로 마무리 할지 중간 연결부위는 어떻게 할 것인지.... 역시 이것도 선택의 종류가 다양해서 그냥 재단사에게 맡겼더니 아래와 같은 디자인을 추천해주었습니다.
4) 팔 소매 마무리
이번에 옷을 맞췄던 곳은 저가로 맞추는 곳이었기에 선택사항 없이 민무늬로 마무리했지만, 좀더 비싼 곳에는 여기도 선택해야 할 부분입니다. 와이셔츠처럼 단추를 어떻게 다느냐가 선택사항이 되겠죠.
옷값 100리얄 중 50리얄을 선수금으로 내고 이런 과정을 거쳐서 주문한 옷을 4일 후에 찾아 입어보았습니다. 사진빨을 받지 않아 블로그나 다른 곳에 얼굴 공개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제 옷을 주제로 글을 쓰려니 어쩔 수 없이 제가 모델이 될 수 밖에 없네요. 더군다나 이유는 모르겠지만 요즈음들어 제 선배이신 한국외대 서정민 교수님의 블로그가 아니냐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종종 있어서 그게 아님을 확인시키기 위해 제 사진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서정민 교수님의 블로그로 오해하시고 방명록이나 답글 달아주지 마세요....쿨럭)
(방에서 찍어 본 셀카)
2. 착용 소감
"쑵"은 맞춰 입지만 속옷은 아무거나 입어도 됩니다. 아무래도 흰색 옷에는 흰색 속옷을 입을 수 밖에는 없겠지요. 속이 비치지 않는 동절기용의 색깔있는 옷으로 입으면 그냥 입어도 티가 잘 안나니 편하게 입으면 될 것 같습니다. 100리얄짜리 "쑵"을 맞춰놓고는 시장에 가서 10리얄짜리 흰색 박스팬티를 구해입었습니다. 그걸로 끝!
다소 답답해 보일수 있지만 햇살이 따가운 무더운 동네의 특성상 자외선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고 수분 증발을 억제하는 목적으로 좋습니다. 물론 원피스 형태이니 아랫도리가 시원하기도 하지만요....^^
"쑵"의 장점 중 하나는 바로 주머니에 있습니다. 겉으로 보는 길이에서 알 수 있듯이 어지간한 크기의 쿠란 한권을 넣고 다녀도 될 정도로 상당한 공간의 수납공간이 제공되거든요. 주머니, 열쇠, 작은 책 등 이것저것 넣어도 충분한 수납공간은 들고다닐 짐을 줄이는데도 큰 도움이 됩니다.
(흰 옷이라 역시 때는 잘 탑니다..;;;; 제법 긴 주머니 입구. 양쪽에 있습니다.)
(주머니 내부 사진. 무척 많이 들어갈 것 같지 않습니까???^^)
원피스 형태인 "쑵"의 하반신 스커트 부분은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제공합니다. 아랍애들은 가부좌를 틀지 않으니 상관없습니다만, 우리식으로 가부좌를 틀면 발을 다 가려줄 수 있는 점은 의외로 괜찮더군요. 폭을 넓게 맞춰서 그런 탓도 있는 것 같지만요.
(사진으로는 다 보여지지 않았지만, 양반다리로 앉을 때는 발을 완전히 가려줄 정도로 넓습니다.)
양반다리로 앉을 때는 넓은 공간을 제공하지만, 서 있을 때는 옷의 밑부분은 중간부분 보다 좁기에 다리의 활동반경이 좁아지는 단점이 있습니다. 발차기를 하려고 해도 그 옛날 심형래씨가 연기했던 펭귄처럼 다리는 살짝 올라갈 수 밖에 없고, 달리기에는 적합하지 않더군요. (물론 열내고 뛸 놈들도 거의 없으니 우리가 보기엔 단점이지만, 이들에겐 문제가 될 사항은 아니죠 뭐...) 물론 화장실에 갈 때도 서서 일보기는 힘들 수 밖에 없구요.
("쑵"을 입고 선 자세에서 다리를 최대한 벌려봤자..... 옷에 걸려서 이정도 뿐!ㅋㅋ)
요즘 젊은 사우디인들 중엔 "쑵"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회사에서 근무하는 가장 어린 사우디 직원은 싫다고 종종 서양식옷을 읿고 출근할 정도니까요. (그 직원을 보면서 "사우디인이기를 거부하는 사우디인~!"이라고 놀려댑니다만...^^) 강렬한 햇볕이나 무더운 온도에서 몸을 보호하기엔 적당하지만, 정작 다양한 포즈로 활동하는데 불편한 건 사실이니까요. 우리가 한복을 안입고 활동하기 편한 서양식 옷을 입는 것처럼 말이죠...
이렇게 한 번 맞춰보니 다른 사람들의 "쑵"을 유심히 보게 되더군요. 근무일 중에는 입지 않지만 특별한 일이 없는 휴일에는 즐겨 입습니다. 큰 움직임을 취하지 않는 한 편안하니까요. 정작 제가 "쑵"을 입고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신기하게 보기는 합니다만...^^
'아랍 이야기 > 아랍의 이모저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음식] 라마단 기간의 금식이 끝났음을 알려주는 식사 이프타르 (0) | 2010.08.27 |
---|---|
[음식] 아랍식 피자 "마나끼슈" (0) | 2010.06.04 |
[연예] 아랍 세계의 이효리, 섹시 아이콘 하이파 웨흐베 (0) | 2008.04.29 |
[문화] 이슬람권의 양력, 이란력과 이란의 휴일 (0) | 2008.03.20 |
[문화] 아랍인들의 주택구조 (0) | 2008.0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