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CC/사우디

[운전] 사우디 운전면허 취득기

둘뱅 2009. 6. 28. 00:02

제가 처음으로 운전면허를 딴 것은 어학연수를 했던 요르단 수도인 암만에서였습니다. 한국보다 적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딸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었죠. 시동을 꺼뜨리지 않은 채 백미러와 사이드 미러를 주행 중 잘 보면서 안전하게 주행하는 것이 중요 채점 포인트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언덕길이 많은 다른 동네 시험장에선 오르막길에서 시동 안 꺼뜨리기가 중요한 포인트라더군요.)

 

첫 시험 볼 때는 경찰이 조수석과 뒷자석에 동승한 것에 너무 긴장해서 시동을 몇 번 꺼뜨려 불합격 되었지만, 재시험 때는 한결 여유가 생겨서 동승한 경찰들과 시험 중 농담 따먹기도 하면서 땄었네요.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서 한국 운전면허로 바꾸고 얼마 전엔 무사고 7년 자격으로 1종 보통으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만...

 

처음부터 운전면허 이야기를 시작한 이유는 이번 주제가 바로 사우디 운전면허 취득기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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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취득을 시도했던 것은 첫번째 사우디 생활을 시작했던 약 8년 전의 일이었습니다.

전기없는 마을에 전기를 넣어주러 들어간 유일한 한국인들이었기 때문에 별도의 운전면허가 없어도 한국인이라는 얼굴 자체가 면허였었습니다만, 간혹 그것 조차 통하지 않을 때도 있던 것이 문제였죠. 국제운전면허증이 있기야 했지만, 어디까지나 단기체류할 때나 요긴하게 쓸까 이까마 발급받으며 오래 체류하는 사람들에겐 큰 도움이 안되는 것이 원칙이죠. (국제 면허증이든 사우디 면허증이든 면허증을 못읽는 경찰들도 있었습니다만...)

 

그래서 사우디 면허 취득의 필요성을 느끼고 숙소에서 40여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유일한 운전면허시험장을 찾았습니다. 젯다 같은 대도에서는 한국면허를 사우디 면허로 바로 바꿀 수 있다는 얘길 들었지만, 그 동네 시험장에선 무조건 시험을 봐야 한다는군요. 그래서 그 곳에서 시험을 봤다가 바로 떨어졌었습니다. 제가 제일 자신없어하는 후진 주차가 합격 여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였거든요. 가뜩이나 취약한 데다 시험용 차량이 소형 승용차도 아니고, 앞뒤로 긴 3000CC짜리 대형 캐딜락 세단이었으니까요...ㅠㅠ 그렇게 불합격 한 뒤에는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얼굴을 면허 삼아 첫번째 사우디 생활을 마칠 때까지는 무면허로 다녔었답니다. 물론 크게 문제된 일은 없었죠.

 

작년 10월 두번째 사우디 생활을 시작하면서 이번엔 면허를 취득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마침 시간 여유가 생겨서 재도전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몇 달 전 비교적 가까운 곳에 새 운전면허 시험장이 들어서서 이동시간 낭비를 줄일 수 있었던 것이 큰 도움이 되었죠. 

 

 

 

(카미스 운전학원 겸 운전면허 시험장)

 

8년전이나 지금이나 이 동네는 바뀐 것이 없어서 면허를 바로 바꿔주지는 않고 시험을 봐야한다는군요. 그런데 아뿔싸! 한국운전면허 원본을 지난 휴가에서 돌아오는 길에 집에 두고 와버렸던 겁니다. 위조의 우려가 있어 원본과 사본을 함께 제출해야 번역본을 인정받을 수 있는데 말이죠.

 

한국에서 면허를 받기도 그래서 결국 5일 수업을 받고 시험을 보기로 했습니다. 교통경찰청에 가서 신청서류 떼어오고, 메디컬 테스트 (테스트비 50리얄)를 받은 후 사진 6장과 함께 435리얄을 납부하면서 신청을 했네요. 메디컬 테스트라는 거 말만 거창하지 실제는 혈액검사와 시력 검사가 다더군요. 피 뽑아서 혈액 확인하고, 시력 검사는 안경 몇 년 썼냐는 질문 하나로 끝...

 

오전에 서류접수를 마치고 바로 오후 4시부터 수업에 들어갔습니다. 아침반과 오후반이 있는데, 근무상황을 고려해 볼 때 오후에 자리를 비우는 것이 영향을 덜 주었거든요.

 

 

(왼쪽에 보이는 것이 강의실, 오른쪽에 있는 것이 테스트/수업 신청 겸 합격증 발부실)

 

 

수업은 정말 간단하더군요. 30분 정도 강의실에서 기다리다가 30분 동안 교통신호와 차량 부품에 대한 메카닉 이론 수업을 듣고, 교습장에서 차를 딱 한 번 몰아보는 것이 수업의 전부. 역시나 후진 주차가 가장 중요한 탓에 운전 교습도 후진 주차를 어떻게 잘 할 것이냐가 전부더군요. 문제는 이론 수업은 역시 아랍어로 진행되기에 이해되었다가 안되었다가의 반복이고, 그나마 달라진 것이 있다면 예전에 대형차를 주차시켰던 공간에 소형차인 야리스(Yaris)를 주차시키면 된다는 것! 그야말로 한결 쉬워진거죠. (나름대로의 추측은 여러가지 이유로, 특히 경제적인 이유로, 대형차를 모는 사람들이 줄어서 그런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사우디애들의 경제력 어릴수록 많이 낮아졌으니까요.) 그동안 차를 몰고다닌 경험도 있고 해서 생각보다 쉽게 주차할 수 있더군요. 강사의 "잘했어!" 한 마디로 하루 수업 끝!

 

그렇게 단순한 수업을 3일 듣고 슬슬 수업이 지겨워지고 있던 중, 4일째 수업을 들어갔더니 강사가 내일 시험을 보랩니다. 아침 7시반까지 나오라는 군요.

 

 

(이 교습장에서 실습을 하고 시험을 보다. 오른쪽 트레일러 뒤의 작은 건물있는 곳이 바로 후진주차 테스트장) 

 

 

시험날 아침, 다른 일도 있고해서 무려 한시간이나 빠른 6시반부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겹게 기다리고 있는 동안 메디컬 테스트하던 의사로부터 이론시험 기출문제를 듣고, 시간 죽이던 강사로부터 후진주차의 팁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듣고 하는 사이에 오라던 7시반은 훌쩍 지나갔습니다. 8시가 지나도 시험장에 사람들을 안 들여보내더군요. 이유는 평가해야할 경찰이 아직 안와서랍니다...ㅠㅠ

 

그러다 10분이 더 지난 8시 10분 많은 사람들을 기다리게 하던 경찰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것도 단 한명!

요르단에서의 시험 때 조수석과 뒷좌석에 두 사람의 경찰이 탓던 걸 생각하니 참으로 허탈해집니다. 뒤늦게 나타난 경찰이 후진주차 테스트장 바로 앞에 설치된 파라솔에 자리를 잡고나서 시험이 시작됩니다.

 

 

(전에도 포스팅했지만, 대형 운전면허는 무조건 트레일러 운전!)

 

 

경찰이 한 명 뿐이니 다른거 다 안 봅니다. 오직 후진 주차만 봅니다! 요르단에서는 후진만 빼고 다 테스트했는데, 여기서는 후진 주차만 보니 묘하긴 하더군요. 교습차량과 같은 차로 시험을 보니 이미 익숙해진 후진 주차, 주행시험 가뿐하게 통과합니다. 도로주행시험? 그런거 없습니다. 주행시험을 통과하면 바로 이론 시험.

 

이 동네의 다른 면허장에선 컴퓨터로 시험을 봐서 사람 고생시킨다는데, 여기는 필기도, 컴퓨터도 아닌 구술시험이더군요. 차량부품 이름과 신호를 외워서 말하면 끝. 사실상 요식행위의 성격이 짙어서 주행만 붙으면 크게 문제가 안된다네요. 모르면 모르는대로 알면 아는대로 답하다 보니 시험이 허무하게 끝납니다. (워낙 아랍어를 모르는 외국인들이 많이 시험을 보니 아랍어만 할 줄 아는 경찰이 제대로 평가하기가 힘들겠죠...^^)

 

시험이 끝나고 다시 간 접수실. 시험 본 사람들이 학원 등록시 제출한 개인파일을 기다립니다. 제출한 파일에 면허 합격 도장이 꽝꽝! 찍히면 그것로 끝인거죠. 기다리기 지루해서 접수실을 어슬렁거리고 있자니, 합격 도장 찍던 매니저가 오라고 손짓을 합니다. 뭥미? 그러면서 가봤더니 제 파일에 합격도장을 꽉! 찍어주면서 좀있다 줄테니 기다리라고 말하는 군요.

 

남들은 기다리는 동안 면허발급비와 수수료 (총 410리얄/약 14만원)를 내고 있었는데, 미처 돈 낼 생각을 못했던 지라 그냥 기다릴 뿐이었습니다. (작년까지는 면허 발급비가 75리얄이었는데, 올해부터 400리얄로 확 올랐습니다. 유효기간이 5년에서 10년으로 늘어났죠.) 한참을 기다린 끝에 합격도장이 찍힌 제 파일을 받았습니다. 그걸 확인하고 돈을 내러 갔더니 이미 운전면허 교습장의 은행은 업무 종료;;;;;

 

기다리면서 돈낸 사람들은 바로 그날 면허증을 수령하고, 전 주말이 지난 오늘에서야 면허를 손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 받은 운전면허증. 비닐커버에 담아서 주는 것, 그리고 운전면허 번호와 이까마 번호가 같다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

 

 

사실 다른 걸프지역 국가의 주민들도 우려하는 것처럼 사우디인들의 운전은 난폭하기로 악명이 높습니다. 직접 수업을 받아가며 면허를 따보니 그럴만하겠다 싶은 생각도 드는군요. 주행은 후진 주차만, 요식으로 보는 이론 시험은 신호와 차량 부품명이 전부니 말이죠.

 

하지만, 나름 그럴만한 이유도 있습니다. 다른 주행시험을 특별히 보지 않는 건 이미 면허를 따기 전에 익숙한 사우디인들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싶거든요. 정확히 기억이 안나지만 운전면허 취득자격이 만 17~18세 정도인 사우디에서 (사우디는 만 15세 부터 법적 성인입니다. 요즘은 국제화 시대에 발맞춰 성인의 기준을 18~19세 정도로 상향조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어서 논란이 많죠.) 실제로 운전을 그 이전부터 접해 본, 10대 초반부터 운전대를 잡게되는 애들이 많거든요.

 

왜냐하면, 대중교통이 발달할 수가 없는 동네라서 그렇습니다. 워낙 땅덩어리도 넓지만, 인적이 닫기 힘든 이상한 곳에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일부 시내 중심가를 제외한다면, 택시를 이용하기도, 버스나 지하철을 쓸 수가 없으니까요.

 

 

(이 산 속에 집이 보이시나요? ^^ 장소설명도 쉽지 않을 저곳까지 대중교통편으로 어떻게 갈 수 있을까요?)

 

 

핸드폰도 전화도 없는 저런 동네에서 아버지가 부재 중일 때 집에 무슨 일이 생기거나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린 아들이라도 있다면 그 아버지를 대신해서 나와야 할 겁니다. 일을 직접해결하던, 아니면 연락할 수 잇는 데까지 가던, 하다못해 등교를 하려고 해도 말이죠. 그런 상황이다 보니 아주 어린애일 때부터 운전석에 같이 앉아 운전이라는 것을 낯설지 않게 만드는 아버지들을 이런 촌동네일수록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다 어느정도 나이가 차면 운전을 시키는 거죠. 주위를 둘러보는 생각을 갖기 힘든 10대초반부터 운전대를 잡은 애들이 얼마나 난폭할지는 말할 필요도 없겠죠.

 

아무튼 오랜 시간이 지나 사우디 운전면허를 손에 넣었네요. 그 면허를 갱신하면서 쓰게될 지 어떨지는 아직 모르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