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아무 생각없이 채널을 돌리다 사우디 스포츠 채널을 보니 선축을 준비하는 낯익은 알 힐랄의 저지가 보였습니다. 그리고 인터 밀란의 저지두요.
알 나스르에게 시즌 중 무패질주를 저지당했던 것이 불과 이틀 전인 12월 31일이었고, 다음 리그 경기는 며칠 뒤에 있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게다가 인터 밀란과의 시합 생중계라니? 뭔가 싶어 인터넷을 뒤졌더니 의문이 해결되었습니다. 오늘 (리야드 현지 시간 1월 2일) 인터 밀란과의 친선 시합이 있었더군요.
오늘 친선 시합의 목적은 2008년에 알 힐랄에서 은퇴한 미드필더 나와프 알 티미야트의 은퇴 기념 경기였습니다. 알 힐랄은 재작년인 2008년 1월 21일 팀의 레전드로 은퇴 후에도 팀에 남아 축구 운영 담당 이사(Director of Football: 주로 팀에서 선수 스카웃을 담당하는 자리)로 활동하고 있는 사미 알 자베르의 은퇴를 기념하기 위해 맨유를 불러 친선시합을 가졌었죠. 그리고 근 2년만에 또다른 레전드이자 은퇴 선수인 나와프 알 티미야트의 은퇴를 기념하는 은퇴 기념 경기의 상대로 인터 밀란을 불렀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작년의 맨유는 바쁜 일정 속에 다녀갔었던 반면, 인터 밀란은 크리스마스-연말로 이어지는 리그 휴식기에 컨디션 점검 차원에서 가볍게 올 수 있었다는 것 뿐이죠. 이번 친선경기를 위해 1군 선수단을 전부 데리고 온 무링요 감독이 이끄는 인터 밀란 선수단은 경기 전날인 1월 1일 저녁 리야드 킹 칼리드 국제공항에 도착하여 이번 경기 조직 위원회장인 나와브 빈 무함마드 왕자의 영접을 받았습니다.
오늘 친선 경기의 주인공인 나와프 알 티미야트는 1976년 생으로 1993년부터 알 힐랄에서 몸을 담기 시작하여 1998년 1군에 데뷔, 2008년 은퇴할 때까지 알 힐랄에서만 뛰었습니다. 현역으로 활동하던 중 1998년부터 2006년까지 사우디 국가대표팀 선수로 58경기를 뛰어 13골을 기록하였고, 사우디가 본선 진출에 성공했던 1998년, 2002년, 2006년 월드컵에 참가하였습니다. 2000년에 "올해의 아시아 선수", "올해의 아랍 선수", "올해의 사우디 선수"로 선정되는 등 전성기가 계속 될 것 같았으나, 이듬해인 2001년부터 2004년까지 찾아온 잦은 부상의 악령으로 인해 더 이상의 재능을 만개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화면 중앙에 서 있는 등번호 11번을 단 선수가 오늘의 주인공 나와프 알 티미야트)
지난 12월 21일 경기 이후 휴식 중이던 인터밀란과 달리 09/10 시즌 무패행진이 15게임 만에 멈추게 되었던 알 나스르와의 혈전을 불과 이틀 전에 치룬 알 힐랄은 교체 선수에 제한이 없는 친선 경기인 점을 이용하여 주전부터 후보까지 팀의 1군 스쿼드에 올라와 있는 거의 모든 선수들을 고루 교체하며 인터 밀란과의 경기를 치뤘습니다. 회복이 덜 된 선수들의 체력과 세계적인 명문 구단에서 뛰는 선수 들과의 피치 위에서 맞붙는 경험 축적을 고려한 것이겠지요. 후반부터 경기를 본 데다 경기 하이라이트 리플레이가 거의 없었던 관계로 저는 볼 수 없었지만, 이영표는 전반전에 31분을 소화한 후 교체되었다고 합니다.
오늘 경기의 주인공인 나와프 알 티미야트는 알 힐랄 현역 시절 마지막으로 뛰었던 2008년 이후 근 2년 만에 자신의 모습을 보러 온 수많은 팬들 앞에서 약 50여분간 경기를 소화한 후 기립박수를 받으며 교체되면서 자신의 마지막 모습을 남겼습니다. 교체된 이후에도 카메라는 가끔씩 후배들의 경기를 지켜보며 앉아 있는 그의 모습을 보여주며 은퇴 기념 경기 다운 중계를 했습니다.
친선경기답게 화끈하진 않았지만 나름 팽팽했던 경기는 후반 40분경 터진 디에고 밀리토의 결승골이 터지며 균형이 깨지고 말았습니다. 알 힐랄 수비진의 순간적인 집중력 저하를 놓치지 않은 밀리토의 집중력이 만들어낸 골입니다.
(후반 40분 경에 터진 디에고 밀리토의 결승골)
경기는 남은 5분간 밀리토의 골을 끝까지 지킨 인터 밀란의 0대 1 승리로 끝을 맺었습니다. 경기 막판에 맨시티의 신임 감독 만치니가 영입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던 발로텔리가 넘어지며 응급차가 경기장 안으로 들어오던데 큰 부상이 아니었으면 좋겠네요.
2일만에 경기를 치룬 알 힐랄은 4일을 쉰 후 1월 7일 오후 7시 50분 홈구장인 킹 파하드 국제 경기장에서 파리아스 감독을 영입한 알 아흘리와 16주차 경기를 가질 예정입니다. 지역 라이벌이자 이번 시즌 무재배 전담인 알 나스르에게 이번 시즌 15경기 만에 충격적인 첫 패를 당했던 알 힐랄은 다소 주춤해진 분위기를 되살릴 수 있을지, 그리고 올해 1월부터 1년 6개월 간의 계약을 맺었다는 알 아흘리 구단의 공식 발표가 있었으나 정작 어제 있었던 알 샤밥과의 시합에선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파리아스 감독의 모습이 드러낼지 기대가 되는 시합이기도 합니다.
(경기 종료 후 풍경. 나와프 알 티미야트 뒤에 얼굴이 클로즈업되며 나오는 사람이 사미 알 자베르 알 힐랄 축구 운영 담당 이사)
은퇴한 팀의 레전드급 선수들의 은퇴 기념 경기를 시즌 중인 유럽 초일류급 구단들을 초빙해서 거창하게 치루는 모습은 연고지인 리야드 뿐만 아니라 사우디 전역에 고른 팬을 확보하고 있는 사우디 리그 내 최고 인기팀이자 명문 구단인 알 힐랄이니까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네요. 마지막으로 별다른 리플레이가 없었던 이번 경기방송 종료 후 사우디 스포츠에서 보여준 나와프 알 티미야트의 현역시절 동영상입니다.
여담으로 중요 경기의 경우 경기가 끝나면 라커룸까지 쫒아가 감독이나 선수들의 인터뷰를 따내는 리포터들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인터 밀란의 라커룸 앞까지 쫓아가 인터뷰를 따내기 위해 노력했지만 (원래 리그 경기라면 라커룸 안까지 들어가 인터뷰를 하는 넘들인데 거기까지는 못하더군요...^^), 그나마 무슬림으로 알려진 문타리 정도만 리포터의 질문에 성의껏 인터뷰에 응해주고 다른 선수들은 다 피하기에 바빴습니다. 중계 방송 막판에 한 명을 더 붙잡아내는 데 그치더군요. "사우디 와보니 어떠냐?", "알 힐랄 선수들 어떠냐?", "알 힐랄의 수준을 비교해 본다면?" 정도의 질문을 던지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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