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닷컴 아랍을 통해 이천수가 방출 리스트에 올랐다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기량부족으로 방출 대상에 올랐다는 것인데, 알 나스르 경기를 종종 지켜봐온 저로서는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확 눈에 띄는 성과물이 적긴 하지만 출전하면 나름 꾸준한 활약을 해왔거든요.
(이천수 방출? 잔류?)
한동안 구단을 어렵게 만들었던 재정적인 위기에서 벗어나면서 화려했던 1990년대의 영광을 되찾겠다며 대대적인 투자로 사실상 선수단 전체를 물갈이했지만, 리그에서 그 결실을 보지 못하고 무재배를 하고 있는 것이 현재의 알 나스르입니다. 신종 플루 및 클럽 대항전 참가 등으로 지연된 경기들이 있어서 리그에선 14주차 현재 최소 경기인 11경기를 치루면서 2패를 당해 12개 리그 팀들 중 3번째로 적은 패배를 기록했지만 (리그 최소 패배는 무패의 알 힐랄), 가장 많은 무재배 덕분에 3승 6무 2패 (11경기 18득점/15실점)로 리그 7위를 달리고 있거든요. (참고로 리그 1위 알 힐랄은 14경기에서 40골을 퍼부었습니다. 실점은 겨우 11점. 그 수비의 중심에 2 어시스트도 올리며 맹활약하고 있는 이영표가 있습니다)
이천수는 시즌 중 769분을 뛰며 2골 1어시스트에 그치고 있습니다만, 그 2골로 팀내 득점순위 3위입니다...!!!
미드필더인 Víctor Alberto Figueroa가 5골로 팀내 1위 (리그 1위는 10골의 Mohammed Al-Shalhoub/알 힐랄), 중앙 공격수 Mohammed Al Sahlawi가 4골로 팀내 2위, 그리고 이천수와 팀의 주장이자 수비수인 Hussein Abdulghani Sulaimani가 2골로 3위를 잇고 있지요.
* 팀내 득점 1위 Víctor Alberto Figueroa는 2002년 프로 데뷔 이래 아르헨티나에서만 뛰다가 이번 시즌을 앞두고 알 나스르로 이적하면서 첫 해외생활을 시작했습니다.
* 팀내 득점 2위 Mohammed Al Sahlawi는 1부 리그 만년 하위팀인 Al-Qadisiya 유스에서 축구를 시작하여 1군으로 승격한 선수로 청소년 대표로도 활약한 바 있으며, 1군에서 2시즌을 활약하다 (Al-Fateh로의 임대기간 포함) 이번 시즌을 앞두고 알 나스르로 이적하였습니다.
* 팀대 득점 3위 Hussein Abdulghani Sulaimani는 알 힐랄의 레전드이자, 은퇴경기를 위해 시즌 중인 맨유를 사우디로 불러와 화제가 되었던 Sami Abdullah Al-Jaber (울버햄프턴에서 5개월 임대), Fahd Al-Gheseyan에 이어 유럽에 진출했던 세번째 사우디 선수이기도 합니다. 최근 파리아스가 이적한 알 아흘리에서 1997년부터 2008년까지 활약하다 2008/2009 시즌에 스위스의 Neuchâtel Xamax로 이적했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알 나스르로 이적했습니다. 그간 골기록은 없었으나 이번 시즌들어 골맛을 보기 시작하며 골넣는 수비수가 되었는데, 개막전에서 거둔 첫 골이 이천수의 어시스트였습니다. 개막전에서 자책골을 넣어 팀의 패배를 불러올 뻔하다 골을 넣어 무승부로 마무리되면서 천국과 지옥을 오갔었죠.
이번 시즌에 드러난 알 나스르의 문제는 공수 밸런스가 안 맞는다는데 있습니다. 수비는 나름 잘해주고 있는데, 공격이 이를 못받쳐주고 있거든요. (공격이 왠만큼 해줘도 수비가 말아먹는 이청용의 볼튼과는 반대죠.) 애시당초 공격력이 빈약했다면 기대도 않했겠지만, 대대적인 팀개편 후 시즌 시작전 평가전을 통해 지금의 알 힐랄이 보여주고 있는 극강 공격력을 선보였기에 (심지어는 10대 0 경기도!!!) 기대는 어느 시즌보다 클 수 밖에 없었던 터라 그만큼 실망이 클 수 밖에 없을겁니다.
이천수가 워낙 머리색깔부터 특이한 터라 카메라에 자주 잡히기도 하고 공격 포인트는 많지 않더라도 공수를 오가고 좌우를 바꿔가며 뛰면서 경기 중 팀에 많은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전반에만 무기력한 플레이 속에 3골을 헌납하며 3:0으로 끌려다니다 후반 이천수 투입 후 경기 주도권을 되찾는데 성공하여 극적인 3:3 무승부를 이끌어 냈던 11월 21일 알 아흘리전이 대표적인 예죠. 그런데 어느 경기에서부터인가 팀의 공격 루트가 단순해지면서 이천수와 반대쪽 루트를 주로 활용하는 모습이 종종 보이더군요.
알 힐랄의 팀내 득점순위 4위인 Yasser Al-Qahtani (6골)가 알 나스르 팀내 1위인 Víctor Alberto Figueroa보다 더 많은 골을 기록할 정도로 알 나스르의 주전 공격수들 전체가 제 몫을 못하고 부진에 빠져있는 상황인데 방출설이 나오는 것으로 봐서는 무재배 전문이 되어가고 있는 팀 분위기 쇄신의 첫 대상으로 이천수를 꼽은 것 같습니다. 이천수와 마찬가지로 사우디 리그에서 첫 데뷔 시즌을 보내고 있는 Víctor Alberto Figueroa는 나름 제몫을 해준다 보는 것 같고, 시즌보다는 다른 컵대회에서 공격력을 과시하고 있는 Mohammed Al Sahlawi (1987년생)는 앞으로의 장래성을 보고 90억여원을 들여서 데려온 만큼 바로 내칠수도 없는 상황이니까요. (참고로 박지성이 아인트호벤에서 맨유 이적 당시 이적료가 73억으로 알고 있으니, 사우디 리그 내 이적료가 상상 외라는 사실을 알 수 있죠. 명문팀도 아니고 리그 하위권 팀의 2년차 공격수 이적료가 90억여원이라니!)
공교롭게도 이런 뉴스가 하필 리그 13주차 나즈란과의 경기에서 부상으로 전반 25분만에 교체되어 나왔고 (이천수 교체로 들어간 리얀 바벨이 극적인 결승골을 넣어 간만에 승리했었죠.), 그 다음 경기인 알 샤밥 전에서 (경기를 못봐서 부상의 경중 및 출전여부는 모르겠지만) 선수 2명이 퇴장당하고 양팀 합쳐 10장 가까운 카드가 남발되는 거친 경기 끝에 3:2로 패한 후에 나온 소식이라 더욱 그렇습니다. 그 경기에서 상대적으로 Víctor Alberto Figueroa는 2골을 기록하며 팀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MOM에 선정되었죠. (올 시즌 알 나스르의 2패는 전부 알 샤밥과의 경기에서 나왔습니다.) 게다가 무패로 승승가도를 달리고 있는 알 힐랄과의 리야드 더비를 앞두고 방출설이 나오는 것을 보니 사뭇 의아한 것도 사실입니다.
가뜩이나 엄격한 이슬람 종주국인 사우디에서 별 뒷말이 없고, 다른 한국선수들을 찾는다는 기사까지 나온 걸로 봐서는 늘 문제가 되었던 사생활 문제는 일단 아닐 것 같아 보이고 (사고치고 싶어도 꺼리가 없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고쳤다간 정말 난리날 나라가 사우디죠. 게다가 교민들과의 교류도 거의 없다는 얘기로 봐서는 문제가 될 부분을 미리 차단하겠다는 의지도 엿보이는데 말입니다...), 수치상으로 빼어난 활약이라고는 할 수 없어도 나름 중간 이상의 활약은 꾸준히 해왔던데다 나즈란전에서의 부상도 카메라로 보이는게 전부가 아니니 실상은 모르겠지만 경기장면만 봤을 때는 그다지 심한 장면이 없었거든요. (볼경합중 수비수와 겹치면서 함께 넘어져 발끈~!하려다 성질 죽이는 모습을 봤었는데, 그 이후 허리를 부여잡고 다니다 교체되더군요.) 골닷컴의 관련 후속 기사에는 부상 후 부진...이란 추측도 나옵니다만, 이천수 부상 후에 치뤄진 경기는 패한 알 샤밥과의 한 경기 밖에 없어서 그것도 말이 안되거든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였던 부상이 장기부상이라면 얘기는 달라지겠습니다만...
앞서 말한대로 12월 31일 오후 9시 15분 (한국시간) 사우디 리그 15주차 첫 경기이자 2009년의 마지막 경기로 알 힐랄과의 리야드 더비가 열리는데 (다른 15주차 경기들은 1월 1일에), 2:2 무승부로 끝났던 지난 경기에서처럼 이영표와 이천수가 경합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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