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무바라크 전격 사임. 내심 달갑지 않은 사우디의 속내와 불안요소

(무바라크가 권력을 이양하겠다고 한지 하루도 채 안되어 그의 사임 및 군부로의 정권 이양 성명을 발표한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

 

 

잠깐 저녁먹고 온 사이에 새로운 역사의 한 페이지가 이집트 국민에 의해 쓰여졌습니다. 18일간 이어진 이집트 국민들의 대규모 시위 끝에 절대 자리를 물러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무바라크가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을 통해 전격 사임 및 군부로의 정권 이양을 발표했으니 말이죠. 어제 밤만 해도 9월까지 임기를 채우겠다던 강경한 입장을 하루만에 번복해 버린 셈입니다. 임기를 채우겠다는 성명은 당당히 발표하면서 정작 자신의 사임 발표는 샤르물 쉐이크로 빠져나간 뒤 부통령을 내세운 것을 보면 자신의 사임을 스스로 발표하기는 아쉬웠나 봅니다. 그나마 보다 강경하게 나서서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할까요.

 

과거로 사라지게 되었지만 어제 발표했던 담화문은 미국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었습니다. 시위 발생 초창기만 해도 무바라크의 안전한 퇴임을 위한 제안을 하면서 하야시키기 위해 노력했던 것으로 알려진 것과는 정반대로 노선을 전환했는데, 이는 무바라크 정권을 지지해 달라는 사우디, UAE, 요르단, 이스라엘 등 이집트 인접국가 정부의 강력한 권고에 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만큼 이 지역 정세에서 이집트가 차지하는 비중을 알 수 있는 상징적인 요청인 셈이죠. 물론 각 국의 사정은 다 다르겠습니다만...

 

이스라엘로서는 무바라크 사임 이후 들어서게 될 정권이 어떤 행동을 취할지 예상할 수는 없지만, 무바라크처럼 우호적이진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가장 컸을 것입니다. 당장 무바라크 사임 이후 발표한 성명을 통해 이집트의 외교정책에 변화가 없기를 바란다고 했을 정도니 말이죠. 이집트는 요르단과 더불어서 이스라엘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얼마 안되는 나라였으니까요.

 

사우디, UAE, 요르단 등은 무바라크 정권이 무너지는 과정에서 보여준 시민의 힘을 두려워했을 것입니다. 실제로 요르단은 얼마전 치솟는 물가에 반발하는 국민들의 시위가 일어나자마자 내각을 개편하기도 했었으니까요. 현 상황에서 시민혁명의 확산을 두려워하는 곳은 요르단, 시리아, 예멘, 바레인 등의 국가들입니다. 얼마 전 3대 기념일을 기념한답시고 국민들에게 상여금과 음식값 무료 등의 파격적인 선심을 베푼 것도 결국 국민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것이거든요. 많은 전문가들은 이러한 시민혁명의 확산으로 인해 불안해질 수 있는 곳으로 바로 사우디를 꼽고 있습니다. 제 1의 석유 부국이자 이슬람의 종주국, 그리고 미국의 우방인 사우디 정권이 무너지게 된다면 무바라크 정권이 무너지는 것과는 또다른 의미의 파장을 몰고 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지역 전문가들은 왜 사우디를 불안한 곳으로 보고 있을까요?

 

 

1. 자국의 이익을 위해 스스로 앞세운 정통성을 버렸던 사우디 정부에 대한 반발

영화 "킹덤"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보여진바 있듯이 사우디 내에도 반정부 성향의 세력들이 있지만, 공식적으로는 크게 드러나지 않고 있습니다. 적절한 탄압과 은폐가 이런 것들이 겉으로 드러나거나 확산되지 않는 이유기도 합니다. 이러한 세력이 생겨난 데는 사우디 정부 스스로가 자처한 탓이 큽니다.

 

근본적으로는 사우디를 통치하고 있는 사우드 왕가가 이슬람 종주국을 통치할 만한 정통성이 없다는 데서 시작됩니다. 물론 이러한 세속적이고 정치적인 세습을 원하지 않았기에 사후 혼란을 초래했던 사도 무함마드의 정치적 성향을 감안하면 논의할 바는 아니지만, 사우드 가는 무함마드의 핏줄도 아니고, 그만큼 훌륭한 종교 지도자가 있었던 것도 아닌, 때마침 권력을 장악했기에 사우디를 통치하게 되었을 뿐 종교적으로는 아무런 정통성이 없거든요. (무함마드의 핏줄은 요르단 왕실로 이어지고 있다고 하죠...)

 

정통성이 없는 정권이 내세울 수 있는 건 바로 보수적이고 강압적인 정책일 것입니다. 이슬람 종파 중에 가장 보수적인 와하비즘을 앞세워서 철권통치를 하고, 국왕을 부를 때 "양대 성지의 수호자"라는 별칭을 내세우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에서죠. 하지만 스스로도 와하비즘에 맞는 철저한 금욕적인 생활을 하지 않는다는 건 누구나가 다 아는 사실이지만, 정작 안티 세력을 양성하게 된 건 성지를 수호한다며 비무슬림들의 양대 성지 (메카&메디나) 출입을 지금껏 막고 있는 사우디 정부가 딱 한번 자신들의 원칙을 깬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제1차 걸프전쟁 때죠.

 

많은 아랍 지식인들에겐 "우리가 남이가~! 우리는 무슬림 형제!"라는 무슬림들의 연대의식이 붕괴된 기점으로 인식되고 있는 제1차 걸프전쟁에서 보여준 사우디 정부의 태도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다국적군에 앞장섰을 뿐 아니라 미군들에게 기지를 제공한다며 성지출입을 허용했었으니까요. (이는 오사마 빈 라덴이 테러리스트로의 길을 걷게 된 계기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사우디 정부의 태도는 중동-아랍 정책에서 친이스라엘 정책을 펼쳐 생긴 많은 반미주의자들에게 이들과 동격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사우디 국민들이 전적으로 정부를 신뢰하지는 않는다는 것이죠.

 

 

2. 불안한 정권 및 후계 구도

현재까지는 사우디 역사상 가장 개혁적인 국왕으로 기록될 압둘라 국왕은 지금 신병치료차 사우디를 떠나있는 상황입니다. 그가 재임하고 있는 동안 기존의 사우디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조치들이 취해지고 있습니다. 가장 극적인 것이 바로 사우디 최초의 남녀공학 학교인 KAUST의 설립입니다. 과학전문 대학원 개설과 남녀공학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교리에 어긋난다며 그 어느 때보다도 보수적인 성직자들의 반발이 거셌고 실제로 이를 실행에 옮기기 위해 고위 성직자들을 잘라낸 바도 있습니다. 국왕이 젊고 건강하다면 개혁정책이 꾸준하게 이어질 수 있겠지만, 불행하게도 국왕은 늙은데다 건강이 이를 받혀주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개혁정책들이 계속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불분명합니다. 유력한 왕위 계승자 중에는 원리주의자가 있다고도 하니까요.

 

 

(무바라크보다 4년을 더 살았지만, 국왕으로서의 재임기간은 5년반을 갓넘긴 고령의 개혁주의자 압둘라 사우디 국왕)

 

 

3. 정보의 홍수와 서양과의 접촉 속에 과도기를 겪고 있는 가치관

예전까지는 정부가 모든 정보를 컨트롤 할 수 있었기에 정부가 의도하는 바대로 정국을 이끌어갈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것도 맘대로 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인터넷과 위성방송에 무차별적으로 노출되어 있는 상황이니까요. 종교적 가치관을 흔들 수 있는 서양의 저질 문화 (포르노 등...) 2천년대 초기만 해도 위성방송 수신기가 금수품목이었을 정도로 국민들이 서양으로 부터 전해지는 정보에 노출되기를 원치 않았던 정부였지만, 결국 무위로 끝나고 말았죠. 인터넷도 일부 사이트 접속을 차단하는 것 밖에는 별다른 대책을 찾지도 못했구요. (최근 무바라크가 인터넷 전격 차단!이란 비기를 선보였지만요...^^)

 

모든 것을 억압하기만 했던 교리에 익숙했던 그들에게 서양의 정보가 유입되는 것은 그야말로 문화충격이었을 것이고, 상대적으로 종교적 가치관이 단단하게 자리잡히지 않은 청소년들에게 미치는 파급효과는 더 클 수 밖에 없습니다. 예전과는 달리 문맹률이 낮아지면서 접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이 달라졌다는 것도 중요한 점이죠. 또한 유학이나 여행을 통해 해외를 경험하고 온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도 정부로서는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단적인 예로 여성들의 운전을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몇년전만 해도 여성들의 운전허용을 논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며 거절했었지만, 조만간 있을 슈라 위원회에 안건 중 하나로 상정되었다고 합니다. 과거에는 전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지만, 해외에서 운전하고 다니는 사우디 여성들이 늘어나면서 피할 수 없는 변화이기도 하니까요.

 

이러한 가치관의 변화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라는 의식을 갖게 만들기에 충분할 수 있습니다.

 

 

4. 나라는 여전히 부유하지만, 미래는 불안하기만 한 청소년층.

사우디가 석유 부국이고 엄청난 부자들만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을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되고 있는 경제구조이죠. 그나마도 아버지 세대가 정부의 혜택을 받고 좀더 여유있게 살았을 뿐, 요즘 대부분의 젋은 세대들에겐 희망이 보이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공식적인 통계에 따르면 20~24세 사우디인들의 실업률은 43%에 달한다고 합니다. 공식적인 통계는 항상 줄여서 발표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실제로는 50%도 상회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더더욱 암울한 건 15세 이상 인구가 사우디 전체 인구의 40%를 차지한다는 사실이죠. 한마디로 요즘 애들에겐 여유있는 경제력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청년층의 경제력이 없다는 것은 가정구조의 붕괴를 의미합니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젯다나 리야드를 위시한 대도시를 중심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만, 아직까지 대부분의 여성들은 고등학교 졸업시점을 즈음하여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으면서 가정을 만들어나가는 구조였습니다. 하지만, 청년층의 경제력이 약해지면서 이 첫 단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늦어지는데 문제가 생깁니다. 

 

이슬람하면 일부다처제를 떠올리지만, 이것도 경제적으로든, 성적으로든 능력이 될 때나 가능한 이야기거든요. 지금의 사우디 청년층들은 일부다처는 고사하고 일부일처도 하기 힘들어서 남성들의 결혼적령기가 높아져가고 있습니다. 신부집에 주어야 할 지참금을 준비해야 하니까요. 설령 결혼에 성공했다한들 여러 자녀들을 거느리는 것보다는 한둘만 낳고 살겠다는 젊은이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아버지때처럼 많은 자녀를 낳고 키우기에는 경제적인 상황이 뒷받침되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사우디 정부도 오래전부터 이러한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여왔지만 기대만큼의 성과를 올리지 못했습니다. "사우디제이션"이라 해서 사우디인 의무고용 정책을 강권하고 일자리 양성을 위한 교육에 많은 돈을 퍼붓고 있지만, 청년 실업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는 못하고 있으니 말이죠.

 

10년여전만해도 슈퍼마켓, 주유소, 귀금속점에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들을 내보내고 사우디인으로 대체하겠다고 나섰지만, 결국 실패로 끝난 바가 있습니다. 사우디인들이 이런 일들을 천하다며 거부했으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매니저급으로 내세우기엔 실력이 떨어집니다. 민간업체들에게 사우디제이션을 강요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고용을 통한 경제력 향상에 기여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정말 능력있는 사우디인이 아닌 이상 머릿수를 채우기 위해 명의만 빌려주고 푼돈을 주는 것으로 대체하는 회사들이 많으니까요. 외국인 근로자들보다도 못버는 사우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셈이죠.

 

얼마전 슈우라 자문 위원회의 동의를 얻어낸 외국인 근로자의 부동산 소유권 인정 정책도 달리 말하면 사우디인들만으로는 경기를 부양하는데 한계가 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우디인만으로 경기를 부양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력을 가지고 있다면, 필요없는 정책이겠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니 말이죠.

 

먹고 살기 힘들어지는 시민들의 분노가 혁명으로 이어진 튀니지와 이집트의 전례를 감안하면, 사우디 정권의 가장 큰 불안요소는 바로 이 청소년층입니다. 경제력도, 미래도 보이지 않는 대부분의 젊은이들 말이죠. 지난 해 예멘의 반정부 세력이 사우디 국경을 넘어와 지잔지역에서 펼쳤던 몇달간의 무장대립이 종식되었을 때 사우디 정부가 추진했던 것이 바로 지잔 개발계획에 박차를 가했던 것입니다. 그동안 개발에 소홀했던 변방 지잔지역에 경제 신도시를 만드는 것도 결국은 그 지역 사람들을 먹고살게 만들어주면서 정부에 대한 반감을 줄이고, 국경을 넘어오는 예멘 반정부 세력에 동화되어 반정부 세력으로 발전하는 것을 차단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깔려있거든요.

 

이러한 불안한 요인들로 인해 시민 혁명과는 거리가 없을 것 같은 사우디를 이집트 만큼 불안정한 곳이라고 보는 전문가들이 있는 것입니다. 아직까지는 그대로 식료품 가격이 참을만한 사정이지만, 이곳 물가도 오르고 있으니 사우디 인구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는 청년층들에게 언젠간 심각한 생존의 문제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사우디란 곳이 시민사회라는 것이 제대로 형셩된 곳도 아니고, 공권력이 워낙 강해 잘 억누르고, 또는 드러나고 있지만 언젠가 터질수도 있는 시한폭탄을 안고있다고 해야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