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 이야기/여러 생각들...

[칼럼] 국민을 무시하는 국가가 국격을 논해? 사이판 총격사건을 접하며.

둘뱅 2010. 4. 15. 17:48

며칠 전 자정에 KBS 아침광장을 보다가 (한국과의 시차상 아침광장을 자정에 본다. YTN이나 아리랑을 제외하면 위성으로 송출하는 뉴스 프로그램이 없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기도 하다.) 2012년 제 2차 핵안보정상회의를 한국에서 유치하게 되었다며 국격이 높아졌다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앵커의 멘트를 들었다. 

 

이번 정부만큼 국격이란 단어를 남발하는 정부도 처음보는 듯 하다. 사우디 국왕에게 붙이는 "양대 성지의 수호자"라는 별칭만큼이나 씁쓸한 표현으로 느껴만 진다. 사우디 정부가 "양대 성지의 수호자"임을 특별히 강조하는 이유는 자신들이 종교적으로나 그 무엇으로나 국민들에게, 그리고 모든 무슬림들에게 정통성을 내세울 수 없는 지방 호족 출신들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 정통성이 없으니 "양대 성지의 수호자"라는 의미를 강조하는 것이고, 이를 통해 이슬람 중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한발리즘을 내세워 국가통치의 기본으로 삼은 것이니까. 다른 사람들이 사우디 정부에 너네가 무슨 자격으로 사우디를 통치하는 거야? 라고 묻는다면 사우디 정부도 이런 것 빼놓으면 할 말이 없을거거든...

 

요즘 특히 많이 언론을 통해 나오고 있는 국격이니, 국가의 위상을 강조하는 것도 결국 내치에서는 자신들도 없고, 연일 악재만 쏟아져 나오기에 겉으로 보이는 이벤트들로 자신들을 합리화하고자 앞세우는 표현으로 여겨져 씁쓸하게 느껴진다. 뭔가 캥기는 게 있다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이지.

 

국격이 높아졌다며 앵무새처럼 환호작약하는 언론들의 찬사 속에 난 휴가 중이던 한국에서 잠깐 보았던 사이판 총격사건에 대한 한 프로의 방송이 오버랩되면서 씁슬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2009년 11월 20일 사이판에서 첫 부부동반 해외여행 45분만에 괴한에게 총격을 받아 하반신 마비가 된 박재형씨 사건을 소개하는 추적60분이었다. 이 소식이 더 남의 일 같지 않게 느껴졌던 건 그분들은 첫 여행에서 겪은 일이지만, 해외에서의 생활이 길어지고 있는 나에게도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방송화면 캡처)

 

위 사건과 관련하여 자세한 상황은 박재형씨의 아내가 운영하는 블로그 푸른희망의 사랑의 힘으로 (http://blog.daum.net/math-p) 와 그와 함께 피해를 입었던 피해자 모임 카페인 사이판 총격사건 피해자 모임 (http://cafe.daum.net/saipanning2)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개인적으론 해외에서 정말 위급한 상황이 생겼을 때 현지 대사관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지 않는다. 다만 몸 망가지고 국가를 원망해야만하는 그런 일이 안 생기길 바랄 뿐이지... 이런 생각을 갖게된 첫 해외생활을 하게 되었던 1998년 요르단에서의 일 때문이었다. 

 

요르단에서 어학연수를 시작한지 한 달 정도 되었을 때 요르단 양 옆에 있는 두 나라, 이스라엘과 이라크의 관계가 험악해져서 무력충돌이 발생할 뻔한 적이 있었다. 요르단은 두 나라 사이에 끼어있기 때문에 실제로 충돌이 발생할 경우 불똥을 피할래야 피할 수가 없는 곳이다. 양측을 향해 서로 공격하는 전투기와 미사일들이 다니는 것을 지켜볼 수 있으니... 상황이 일촉측발의 위기로 치닫고 있을 때 우리 대사관이 준비한 것은, 특히 내가 체감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학생 대표를 불렀다는 얘기를 들었을 뿐이다. 반면, 특유의 호들갑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일본 대사관은 상사 주재원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약자일 수 밖에 없던 유학생들을 불러 비상 연락망을 점검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대비책을 알려주었다고 했다. 다행히 두 나라 간 무력충돌이 발생하지 않아 우려하던 사태를 맞이하진 않았지만, 대사관에 대한 불신을 쌓기에는 충분한 경험이기도 했다. 정말 그런 일이 생겼다면 우왕좌왕하다 어떻게 되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니까...

 

기본적으로 해외에 나와있는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 대사관에 의무라고는 하지만, 문제가 생겼을 때 대사관에서 모든 책임을 져야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개개인이 충분히 피할 수 있음에도 본인들이 초법적인 행위를 해서 화를 좌초했거나, 기본적으로 준비를 소홀히 해서 문제를 야기하는 경우도 분명있기 때문이다. 전자의 경우라면 봉사활동을 가장한 선교활동을 위해 방문금지국가를 방문해서 인질로 잡혔던 사건을 예로 들 수 있겠고, 후자의 경우라면 지난 독일 월드컵 때 원정 응원단이 벌였던 대규모 노숙사건이 그 예가 되겠다. 이러한 일들은 주최측에서 조금만 더 신경을 썼으면 얼마든지 예방할 수 있는 사건들이기 때문이다. 좋던 싫던 국가가 만든 법을 어기고 야기한 문제에 대해서는 국가를 탓하기에 앞서 일을 저지른 자신들이 그 문제에 대한 전적인 책임을 져야하는 것이고, 대규모로 방문을 한다면 교통, 숙박편은 주최측에서 사전에 준비를 하고 나가는 것이 순서일테니 말이다.

 

하지만... 무력 충돌, 전쟁, 총격사건 등 국민 개개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생기는 불가항력의 사태에 대해서까지도 무대책으로 나선다면 그건 전적으로 대사관이 책임져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더 큰 피해로 확산되지 않도록 직접적인 긴급대책을 강구한다던지, 여의치 않으면 간접적인 방법으로 상대국으로부터 이에 상응하는 어떤 조처를 받는다던지 등의 일 말이다. 해외에서 자신들의 국가가 챙겨주지 않는 국민을 그 누가 챙겨주겠는가?

 

박재형씨 사건의 경우 정부, 특히 외통부가 한 일은 언플 밖에는 없는 듯하다. 박재형씨 사건으로부터 불과 일주일 전 부산 사격장에서 일어난 일본인 관광객 참사사건이 생겼을 때 정부가 보여준 태도와는 정반대의 태도다. 소위 말하는 사고에 대처하는 정부의 좋은 예, 나쁜 예의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지.

 

전혀 총격사건이 생길 것이라곤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당한 총격사건에 대해 우리 대사관이나 정부는 빠른 응급대처를 한 것도, 그렇다고 이에 대응하는 보상을 사이판 정부로부터 받아낸 것도 아니었다. 기막히게도 이러한 사연은 사고 발생 후 넉달이나 지나서야 보도 프로그램으로 방송되었을 정도면 말 다했지 머... 하지만 사용자가 부주의할 경우 총기사고가 언제든지 발생할 소지가 있는 사격장에서 생긴 참사에는 며칠 만에 신속하게 총리가 무릎을 꿇었고, 대통령은 일본 총리에게 사과를 했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관계나 영향력을 감안하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얘기한다면 우리나라 관광객이 사이판 경제에 기여하는 기여도를 고려한다면 그쪽 정부로부터 충분히 응분의 보상과 신속한 조치를 받아낼 수도 있다고도 볼 수 있는데 현지 대사관, 혹은 우리 정부가 한 일은 언플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고 한다. 뭐... 인터넷에나 호소하라고???

 

한국 정부가 자국민을 무시하는 것은 비단 해외에서만 있는 것은 아니다. 떳떳하지 못한 공권력 투입으로 야기된 용산 참사나 최근의 천안함 침몰사건에서도 볼 수 있듯 희생된 국민, 혹은 전경, 장병들은 정부나 군의 은폐 의혹 속에 잊혀져버릴 그야말로 개죽음을 맞았으니 말이다. 당신들을 위해 세금을 내고 병역의 의무를 다하던 이들이 그 일본인 관광객보다 못한 대접을 받을 이유가 뭐가 있는가? 필요한 건 "대한의 아들들아..." 같은 신파적인 멘트가 아니라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을 정확한 진상 공개와 책임자 처벌 및 이에 상응하는 보상이 필요한 것 같은데, 그런 것들이 나올 길은 요원하기만 할 뿐이니....

 

대규모 스포츠 대회나 외교 회담 등을 유치하여 국가의 위상도 좋고 국격이 향상되는 것도 분명 좋은 일이긴 한데, 일단 국가의 근본인 국민부터 국민답게 대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라고 쓰지만, 기대하진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국민은 당연히 현 정부가 특히 좋아라 하는 사회 기득권층을 제외한 대부분의 평범한 일반 국민들을 말한다.

 

내실이 없는 외형적인 발전에만 몰두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처럼 자국민을 보호할 의무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서 권리만 강조하고 겉으로만 보이는 국격을 논하는 것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모래성과 같은 허세에 불과할 뿐인데...

 

국민을 물로 보고 외국인만도 못하게 대하는 나라가 국격을 논할 자격이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