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 이야기/여러 생각들...

[칼럼] 군부대에 영어교습소를 설치하면 중동 특수에 도움이 될까;;;;;;

둘뱅 2012. 2. 19. 19:21

 

 

이명박 대통령의 사우디 방문 한달 전쯤 이 소식을 접했을 때 솔직히 기대가 되었습니다. 과연 어떤 "깔때기 외교"를 보여줄 것인가 말이죠. 나중에 뻥튀기로 드러날지라도 업적 자화자찬과 사진찍히기에 달인이신 그 분의 성정을 감안했을 때 세계 최대 산유국이자 걸프지역의 맹주인 사우디를 방문해서는 어떤 것을 보여줄지 기대가 되었거든요. 그런데 예상 외로 큰 깔때기를 세우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신문기사들을 보니 대충 생각나는 건 S-오일이 아람코로부터 20년간 안정적인 원유공급을 받기로 한 것, 주택 50만호 건설계획중 1만가구 시범사업에 참여, 그리고 의료분야 협력강화.

 

S-오일건은 불안정한 이란 상황을 감안하면 나름 강조할만한 일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그건 자원외교라 부를 수 있는 성질의 건도 아닙니다. S-오일과 사우디 아람코의 특별한 관계를 감안한다면 말이죠. 양사의 신뢰관계니 우호관계가 안정적인 원유공급 계약의 배경이 되었으며 장기적인 투자관계를 유지해왔다고 언론에서는 앵무새처럼 따라 읊기에 급급했을 뿐, 가장 중요한 사실을 빼먹었었죠. 아람코가 S-오일의 단순한 장기 투자자가 아니라 대주주이고, S-오일의 대표이사도 아람코측에서 파견한 사우디 인사란 사실을 말이죠. 그러니 자원외교라고 생색내기도 뭐하니 그냥 통과.

 

주택 50만호 건설계획 중 1만가구 시범사업에 참여하기 위한 MOU를 다음 달에 작성키로 했다는 후속 보도가 나오고 있지만, 여러가지 정황을 감안하면 좀더 지켜두고봐야 할 난제들이 있기에 업적으로 당장 내세울 수 있는 건이 아니니 그냥 통과. 만약 1만가구가 아니라 절반 이상, 내지는 전체 사업에 참여한다는 합의가 있었다면 열심히 홍보하기에 바빴겠죠. 단가가 낮다는 건 뻔한데 현실적으로 주택사업에 참여했을 때 어느정도 남길 수 있을까...는 별개의 문제로 하고 말이죠. 의료분야 협력강화도 당장 어필할 만한 것이 없으니 이것도 크게 홍보하진 않는 것 같구요.

 

아무튼 마땅히 홍보성 치적이 없어 보이는 걸프지역 3개국 순방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잠잠한가 싶더니 김관진 국방장관에게 했다는 제안이 정작 기대하지 않은 타이밍에서 시간차로 뒷통수를 후려치더군요.

 

<李대통령 "군부대에 영어교습소 설치 검토">

이 대통령은 김 장관에게 "우리 젊은이들이 중동에 많이 진출해야 하는데, 이를 위한 환경을 만들어주면 좋겠다"면서 "중동은 아랍말을 몰라도 되고 영어만 하면 되니 중동에 진출하려는 장병들만 따로 모아서 영어를 좀 가르치면 어떻겠느냐"고 권유한 것으로 전해졌다.....는군요..

 

"내가 과거에 .......을 해봐서 아는데...."라 말하면서도 정말 아는 거 별로 없어 보이는 그 분의 립서비스를 한두번 본 것도 아니라 적응될 만도 한데, 저런 마인드를 보고 있으면 기가 찰 수 밖에 없더군요.

 

첫째, 중동은 아랍말을 몰라도 되고 영어만 하면 된다...

어떤 직종으로 나가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엔지니어 같은 나름 전문 직종이라면, 대부분의 실무진들은 비아랍권 사람들이 많으니 영어만 해도 될 수도 있겠지만, 대관 업무나 다양한 사람들을 접하게 되는 관리, 사무, 영업직이라면 영어만으로는 생각보다 금방 한계가 오기 마련입니다. 영어가 아주 안 통하는 사람들과도 상대하게 되고, 관공서 등에 제출하는 서류 등은 아랍어 제출하는 것이 기본이니 말이죠. 영어만 아는 것보다 아랍어를 같이 할 줄 알면 업무처리 등에 있어서 큰 도움이 되거든요. 아랍어 된 서류를 보고도 눈뜬 장님이 될 일도 없구요. 어차피 한국말로도 소통이 안되시는 분이니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실지 모르지만 말이죠. 

 

둘째, 그래서 영어만 잘하면 될까?

건설현장만 놓고 봐도 아무 기술없이 영어만 잘해서는 나와봐야 별 도움이 안됩니다. 인도/파키스탄/네팔 같은 외국인 근로자들 중 어느 정도 영어가 되면 영어 안 통하는 노동자들을 컨트롤하기에 좋지만, 그딴거나 하려고 한국 사람이 나올 시기는 이미 지났죠... 군대에서 2~3개월 단기로 영어 익혀서 그럴 인력을 양성할 생각이면, 차라리 군대를 보내지말고 군복무 대신 영어를 할 줄 아는 전문 기술인력을 양성하는 것이 보다 효율적이라는 생각입니다. 양성과정을 마치면 바로 중동으로 진출하려는 업체에 취직시키고, 그렇게 마치고도 안나갈 경우 군대를 보내버리면 꼭 진출하고 싶은 인력들만 지원하겟죠.

 

셋째, 과거 대통령이 중동에서 일할 때는 열사에서 밤낮없이 일해야 했지만 요즘엔 근무 환경이 한국보다 더 좋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근무환경은 현장이나 사무소의 위치에 따라 지금도 천차만별입니다. 특히 사우디의 경우 지역에 따라 문화차이가 있어 도시라도 어떤 도시에 있느냐에 따라 즐길 수 있는 먹거리, 쇼핑 환경 자체가 다르거든요. (문화, 엔터테인먼트 시설은 없으니 논외로 하고...) 하다못해 도시라도 KFC나 TGI 등을 가기 위해 수백 키로를 가야하는 도시도 있으니까요. 근무 환경이 더 좋어지고, 온라인이 활성화되면서 한국에 있는 지인들과의 교류는 쉬워졌다고 하지만, 그래도 근무 외 환경은 딱히 좋다고 보기도 힘듭니다. 가족과 같이 나오면 좋은 곳이긴 하지만 혼자 나와서 근무하는 것은 쉽지가 않죠. 특히 총각에겐 더더욱.... 결혼을 생각해야 하는 입장에선 암울한......(블로거 둘라는 30대 후반의 독신 남성입니다.... 사우디에서 근무한다고 소개팅도 안 들어와욧!!!!)

 

넷째, "중동 국가들은 요즘 `오일 머니'가 쌓여서 어디든 쓰려고 하니 우리 젊은이들이 진출하면 아주 좋을 것"

오일 머니는 눈 먼돈이 아닙니다. 예전과 달리 이 곳 사회도 나름 시스템화되어 가고 있어서 다른 국가들에 비하면 기회가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단순히 몇 년 전과 비교해도 업무처리가 빡빡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입니다. 예전에는 적당히 말로 때우고 넘어갈 수 있었던 것도 요즈음엔 시스템이 걸려서 쉽게 안되는 일들도 생기거든요. 게다가 단순한 건설 프로젝트는 공개 입찰로 들어가면 저가 경쟁입니다. 1만가구 시범사업도 단가가 낮아 부분 조정을 요청하겠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오일 머니가 넘쳐난다고 미친듯이 비싼 단가를 적용하는 것도 아닙니다. 정상적인 한국업체라면 가격 경쟁력면에서 인건비 등을 감안했을 때 저가 경쟁을 감당해내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발주처와 얘기가 다 된 상황이 아니라면요. 아무런 기술 없이 영어만 좀 줄 안다고 나와봐야 망신 당하기 딱 좋은 곳이죠...

 

밑도 끝도 없이 영어만 단기 교육시켜서 중동 지역에 내보내겠다는 발상은 한심하다 못해 위험한 발상입니다. 아무 것도 모르고 영어만 할 줄 아는 한국사람 데려올 인건비면 영어는 기본인 고급 외국인 인력을 데려오는 것이 보다 효율적일 것입니다. 지금의 우리 수준이라면 영어-아랍어가 다 되는 관리 인력이나, 영어가 되는 전문 기술인력이 필요한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