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사우디 신용카드를 만들어 볼 생각이 있었습니다.
크게 쓸 일이 있다기 보다는 최소한 현재 보고 있는 위성방송 월시청비를 납부하기 위해서였죠. 한 번에 1년치를 현금으로 납부하자니 부담이 돼서 신용카드로 결제를 하고 있는데, 국내 신용카드도 하다보니 이래저래 환율이라던가 외환 수수료 등이 발생하는데다 변동환율이다 보니 매월 빠져나가는 금액이 다르니까요.
사우디의 신용카드는 우리처럼 별도의 신용카드사가 있지는 않고, 각 은행에서 내놓는 은행 신용카드가 전부입니다.
막상 신용카드를 만들려고 보니 쉽지 않았습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급여가 통장으로 이체되지 않고 현금으로 받기 때문입니다.
비교적 좋기로 유명한 SABB나 SAMBA 신용카드는 회사에서 급여이체를 2~3회 한 후에 신청자격이 주어지거든요.
제 첫 사우디 통장은 SABB꺼였는데, 카드신청여부를 문의해보니 바로 윗 사항 때문에 해당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직장인인 이상 개인 입금시 매달 정기적으로 입금시켜도 회사에서 근무한다는 증거로 볼 수는 없기에 신청자격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회사 시스템이 바뀌기 전까지는 일단 보류...
그러다 업무상 알게된 ANB의 담당 직원으로부터 2만 리얄 (약 600만원)만 통장에 입금시켜주면 발급받을 수 있게 해주겠다는 얘기를 듣고 빌려서 입금을 시켜두고 신청을 해봤었는데, 결과를 알려달라고 재촉한 끝에 3주 정도 지나서 들은 답변이 이런저런 이유로 거절...! 이라더군요. 그럴꺼면 답이나 진작 주지...
그래서 일단 회사 시스템이 바뀌기 전까지는 보류하고 있어야 되나보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전혀 예상치 않게 발급을 받게 되었습니다.
지지난주 수요일 9일 오후 입금할 일이 있어 업무상으로 즐겨찾는 리야드 뱅크 지점에 들렀는데, 몇 번 봐서 얼굴을 알게 된 창구직원이 입금처리하면서 제게 뜬금없이 묻더군요.
"너 신용카드 필요해? 만들어 줄 수 있는데..."
지난 두 차례의 경험으로 봐도, 더군다나 개인적으로는 리야드 뱅크에 통장도 없는 지라 상당히 의아해하며 반문했습니다.
"음... 고마운데... 난 하다못해 너네 은행 통장도 없는데??? 가능하긴 한거야???"
"뭐... 회사에서 상공 회의소에서 인증을 받은 재직 증명서 (근무기간, 직위, 급여가 표기된)와 네 이까마 사본만 가지고 오면 돼..."
"정말??? 너네 은행실적이 없이도???" / "응... 일단 가지고 와봐...!"
그렇게 말을 듣고도 계속 갸우뚱했는데, 돌아와서 리야드 뱅크 홈페이지를 보니 다른 은행과 달리 자기네 은행에 급여를 이체하지 않아도, 통장이 없어도 신청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이 있더군요. 대신 자기네 은행으로 급여이체하지 않을 경우 신청자격이 주어지는 최소 급여가 3,000리얄이 아닌 4,000리얄은 되야 한다고는 하지만요...
아무튼 긴가민가 싶어서 토요일 (12일) 아침 재직증명서와 이까마 사본을 준비해서 오후에 담당직원을 찾았습니다. 크레딧 카드 개설 실적 압박이라도 받는지 얼굴에 웃음을 가득 머금으며, 신청서를 작성하라고 줍니다. 그래서 신청서를 작성하고 준비해 온 서류와 함께 일단 제출을 했습니다.
하지만, 빠른 회신이 올 것이라곤 별로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의 은행들에 비하면 다 느려터지지만 안 그래도 리야드 뱅크는 느린 업무처리로 나름 악명이 높거든요... ANB에서의 아픈 기억도 있고해서 몇 주 뒤에나 결과를 알려주겠거니 생각하고 머리속에서 잠시 잊고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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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청일로부터 이틀 뒤에 뜬금없이 제 핸드폰으로 날라온 한 통의 SMS가 제 예상을 여지없이 깨버리고 말았습니다!
정말 의외로 빠른 결과안내였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터라 더욱 놀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것도 바로 SMS로 직접 오다니 말이죠.
신청은 2일만에 결정이 났는데 안내 문자대로 지점에서 카드를 입수하는데 얼마나 걸릴까 궁금했습니다. 여기서 또 많은 시간을 허비할 수도 있는 거니까요.
그리고서 3일 뒤에 또다른 SMS가 옵니다. 발신자는 리야드 뱅크가 아닌 Fedex!
지점에서 수령가능일을 알려줄 거라더니, Fedex가 직접 배달할 거라며 주소확인차 전화할 거라는군요.
사우디 우편주소는 우리와 달리 P.O.Box와 Postal Code로만 되어 있어서 실질적으로 배달해야 할 위치를 신청서에 적힌 주소만으로는 확인불가능하기에 배달처 확인 겸 전화를 준 것이었습니다. 대강의 위치를 설명해주고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굳이 은행에 갈 필요는 없겠구나 생각하면서 말이죠.
그리고 몇 시간 뒤에 송장번호와 함께 발송 안내문자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발송번호가 두 개입니다. PIN CODE, 그리고 카드.
그 다음날 은행에서도 신청한 카드와 핀 코드가 발급되었다는 문자가 옵니다. 발송 안내를 곧 받게될 것이라는 내용과 달리 발송 안내문자는 바로 전날 받았지만 말이죠...
그래서 어제 (20일), 신청일로부터 8일만에 카드가 도착했습니다. 9일이라고 해봐야 주말 2일 빼고, 국왕 칙령으로 정상근무가 불가능했던 토요일을 제외하면 업무일로는 5업무일만입니다. 예고와 같이 두 개가 따로 왔습니다. 받기는 한 번에 받았지만요.
(카드가 들어있는 봉투와...)
(핀 코드가 들어있는 봉투)
핀 코드는 카드 비밀번호를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카드를 활성화시키면서 번호를 지정해줄 수 있는 것과 다르게 여긴 아예 그 비밀번호를 설정해 놓고 별도로 보내주는 것이 차이인 것 같습니다. ATM카드는 맘대로 선택할 수 있었는데, 신용카드는 아무나 긁어버릴 걸 대비해서인지 바로 고정번호를 주는군요. 카드와 함께 동봉해서 잃어버릴 최악의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따로 배송을 해주는것 같았습니다. 전 한꺼번에 받았지만, 어떤 이들은 카드만 먼저 받고 핀 코드를 나중에 받아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하는 건은 처리를 못했다는 얘기도 하네요. (이 핀 코드는 활성화 후 ATM기를 통해서 쉽게 변경할 수 있더군요...).
신청할 때만 해도 한도를 얼마나 줄지 몰랐는데, 카드가 들어있는 봉투를 열어보니 카드 종류에 대한 설명은 없는데 한도액만 적혀져 있었습니다. 첫 발급임에도 한도액이 1만5천리얄 (450만원)로 주어졌네요. 은행거래 실적이 없는데도 재직 증명서 상의 급여를 가지고 정해준 듯 합니다.
리야드 뱅크의 경우 일반(실버) / 골드 / 플래티넘으로 나뉘어져있는데 골드카드더군요.
(우리가 보던 카드와 다른 마크가 하나 보이죠?)
(뒷자리에 3자리 숫자가 있어 정상적인 신용카드임을 보여주는...)
왼쪽 위에 보이는 특이한 마크는 이 카드가 이슬라믹 신용카드임을 보여주는 표시입니다. 아랍어로 "Certified"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보이는 이 마크가 Murabaha의 샤리아 원칙을 기반으로 한다는 의미입니다. 아직 이슬람 경제는 익숙하지 않아서 일반 카드와 차이가 뭔지를 잘 모르고 있습니다만, 확실하게 와 닿는건 연회비가 더 비싸다는 거네요. 대금결제가 유연함을 내세우고 있는데, 아직 실감 못해봐서 모르겠군요.
카드를 발급받은 후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어 몇가지 개인정보 재확인해주는 것으로 카드를 일단 활성화시켜놨습니다.
그래도 카드신청하게 간 직원에게 가서 잘 받았다고 인사하러 갔더니 자기 번호까지 주면서 혹시 생각있는 사람들 있으면 얘기해달라고, 도와주면 답례한다고 그러고 있더군요... 아무래도 은행에서 프로모션 거는 것만큼 직원들에게도 실적압박을 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드네요. 아무래도...
머.. 만들려고 작정할 땐 실패하다가 아무생각 없을 때 얼결에 하나 만들게 되었네요. 이슬라믹 카드?? 일단 적응해봐야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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