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CC/사우디

[사회] 조용했던 사우디 "분노의 날", 군인들에게 불려들어갔던 사연

둘뱅 2011. 4. 5. 22:39

지난 3월초 오랜만에 칼럼 작성을 의뢰받게 되어 원고 초안을 만들고 보니 사진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글만 쓰면 신경쓸 일도 아니지만 이에 필요한 사진을 같이 준비해야 했거든요. 지난 번 S오일 기획 연재시에도 경험했던 일이지만 어디선가 인쇄물에 쓸 사진을 구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어떻해서든 혼자 해결해야 될 일이기도 했습니다.

 

 

(성지순례객 전용 핫지 터미널을 배경으로 이륙하는 비행기)

 

 

출사하기 위해 원고 마감 시한을 맞추면서 근무가 없는 날을 택하다 보니 때마침 제게 허락된 날은 3월 11일. 요근래 인접국가에서 일어난 시민혁명의 영향을 받아 온라인을 통해 자신들의 의사를 표출하자며 "분노의 날"로 규정된 바로 그 날이었습니다. 지난 2월말부터 사람들이 모여서 다른 나라처럼 실력행사를 하겠다는 소문들이 많았기 때문에 영사관에서 조차 안전수칙을 교민들에게 회람시킬 정도로 긴장되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하필 그 날을 택하게 된건 그나마 사람들 신경을 안 쓰고 다닐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도 있었습니다. 아침에 다녀올 생각이었거든요. 원래 사우디에서의 금요일 아침은 도로 위를 달리는 차량들을 빼면 적막할 정도로 조용한 시간입니다. 목요일 밤늦게까지 놀다가 1주일의 가장 큰 예배인 금요일 정오 예배시간 전까지 자고 있을 시간이거든요.

 

 

(하늘도 구름이 한가득~)

 

 

그 날의 하늘은 분위기를 의식한 듯 아침부터 구름이 짙게 낀 궃은 날씨였습니다. 일단 첫 목적지를 시내 중심가에 있으며 옛 젯다의 모습이 남아있다는 역사적인 유적지로 잡았습니다만, 그 근처에 도착했을 때 계획을 바꿔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내무부와 옛 젯다 사이에 있는 젯다에서 가장 큰 회전 교차로에 이미 경찰버스가 4대가 깔려있고 수십명의 경찰이 주위를 두리번 거리고 있었거든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휴식도 포함하고 근무에 나선 것입니다.

 

내무부 앞 회전 교차로는 물론이거니와 주변의 주요 도로에는 임시 불신검문소가 개설되어 지나가는 차량들을 조사하고, 시내 중심가 일대에 대형 주차장 등 사람들이 몰릴 것만 같은 곳에는 경찰을 고정 배치하여 만일에 생길지도 모르는 집회를 원천봉쇄하기 위해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옛 유적지를 들어가겠다고 차에서 내리면 뭔가 안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아 그냥 주변을 다니면서 사진을 찍기로 했습니다.

 

 

(젯다 시내 곳곳엔 다양한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왜 이런게 있지??? 싶은...)

 

 

(사우디 양반 스타일 낚시???)

 

 

남부지역 주택가와 홍해 해안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다가 돌아가는 길에 문제가 생기고 말았습니다. 신호 대기 중에 특이하게 생긴 건물이 있어서 사진을 한 장 찍었는데, 옆차선에 대기 중이던 사우디인이 크락숀을 울리며 난리를 치는 겁니다. 신호대기가 짧았으면 그냥 무시하고 갔을텐데 그때따라 길게만 느껴져서 미안하다고 했는데도 계속 혼자 뭐라 떠드는 겁니다.  그러더니 신호대기가 풀리자마자 길을 건너 경계초소 앞에 차를 세우고는 따라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응? 경계초소?? 그리고 총을 든 군인??? 그렇습니다! 사진촬영이 금지된 곳을 모르고 찍었다가 그대로 걸린 것이었습니다. 따라오라던 그 사람은 경계를 서던 군인에게 상황을 설명해주고는 휙 가버리더군요. 이런 상황에서 도주하려고 폼잡았다간 아주 큰 난리가 날 것임이 분명했기에 그들이 시키는대로 순순히 따라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한 장의 사진을 빼고는 문제될만한 사진이 없다는 자신감도 있었으니까요.

 

경게초소에 있던 군인이 따라오라는 대로 길을 따라 차를 몰고 가다 차를 세우고 경비본부로 따라 들어갔습니다. 그 안에는 군복입은 군인들 2명과 평상복을 입은 사우디인 1명이 평화로운 정오의 휴식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나를 데리고 았던 경비는 그들에게 사진찍던 넘을 하나 데리고 왔다며 저를 인도했습니다.

 

그 사무실에 앉아있던 간부가 자초지종을 묻기 시작합니다. 영어가 익숙해 보이지 않아 영어와 아랍어를 섞어가며 얘기해나갑니다.

 

"너 뭐하는 넘이길래 사진을 찍고 다니는 거야???

 

"사우디를 잘 모르는 한국사람들에게 사우디를 소개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젯다 사진이 필요해서 찍다가 건물이 멋져보이길래 사진금지 구역인걸 모르고 실수로 찍었어요. 사진금지 구역인걸 알았으면 그러지 않았을텐데 정말 실수를...."

 

그들이 보는 앞에서 카메라에 담긴 그 건물 사진을 바로 삭제해버렸습니다. 이렇게라도 협조를 해야 무난히 넘어갈 것 같았으니 말이죠...

 

"자...보세요.. 아까 찍은 이 건물 사진 메모리에서 지웠습니다. (사진 재생화면에서 좌우 키를 누르면서) 제가 찍은 사진은 이렇게 하면 볼 수 있으니까 한번 쭉 보고 문제가 될만한 사진이 있으면 얘기해주세요. 바로 지워버릴테니까요...."

 

사우디 생활 4년반 동안 이런 상황은 처음인데다, 날이 날이었던 만큼 속으로는 바짝 쫄았지만, 일단은 자신있게 대처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쭈욱 사진을 보던 그 간부가 한 사진에서 스크롤을 멈추더니 묻습니다.

 

"이런 사진은 왜 찍은거야???" 그 사진은 바로 홍해 해변가에 위치한 한 모스크의 화장실 사진이었습니다. 

 

(바로 그 문제의 사진!)

 

 

"아.. 말씀드렸듯이 한국에 사우디를 소개하는 사진을 찍다보니 한국에는 이런 화장실이 없어서 찍은 겁니다. 한국 사람들은 사우디 문화에 대해서 잘 모르거든요."

 

그 얘기에 피식 웃고는 다시 사진을 훑어봅니다만 특별히 묻는 사진은 더이상 없었습니다. 만약 그 날 아침 경찰들의 모습을 찍었다던가 했으면 정말 큰 일이었을텐데, 그런 사진은 없고 전부 해변가, 해변가에서 낚시하는 사람들, 사원, 건물사진 같은 것 밖에 찍은게 없었거든요. 카메라 속에 담긴 사진을 보고는 큰 지적이 없었기에 큰 일은 없을 것 같아 일단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일단 한국사람이라는 것도 나쁘게 보지 않는 요인 중 하나인데다, 개인적으로 외모가 얘네들 기준으론 하얀 피부에 수염도 없어서 애들 같아 보이기도 하고 (심지어 10대 후반으로 보는 사람도!!!) 적극적으로 협조한 것이 큰 도움이 된 셈이었지요. 아마도 파키스탄이나 방글라데쉬 사람이었으면 무난하게 넘어갈 확률이 거의 없었을테구요.

 

일단 카메라와 제 이까마를 쥐고서는 문 밖에 나가서 기다리라고 얘기합니다. 별 수 있나요? 따라야죠...

 

사무실 밖에서 안을 지켜보자니 사복을 입은 사우디 사람들이 몇 사람들어오고는 이 소동에 대한 보고를 하고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얘기하는 듯한 눈치였습니다. 그렇게 사무실 안을 20분 정도 들여다보며 밖에 있었더니 다시 들어오라고 지시합니다. 그래서 다시 사무실로 들어갔습니다.

 

사무실로 들어갔더니 군인 한 명이 제게 밖에 서있느라 덥겠다며 자기네들이 먹으려고 갖다놓은 생수 박스 안에서 작은 생수병을 하나 건네줍니다. 하필 점심시간이었던데다 혹시나 일이 꼬이지 않을까 긴장하며 서있던지라 배도 고프고 더웠는데 그야말로 달게 느껴지더군요. 

 

그렇게 조금 앉아있었더니 그날 당직 근무의 최고 책임자인듯한 사람이 들어오면서 왜 그 건물 사진을 찍었는지 물어봅니다. 처음 상대햇던 간부보다는 보다 영어를 능숙하게 하기에 이번에는 영어로 앞에 했던 얘기를 또 반복하면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기다리고 있는 동안 내부적으로 약식 보고서 하나 쓰는 것으로 마무리하기로 결정을 내렸는지 사진과 이까마를 돌려주고는 긴장하지 말라며 계속 얘기하더군요.

 

"(여기는 사진촬영 금지지역이긴 하지만) 평소에는 그렇게 엄격하진 않은데, 특히 오늘같은 날은 매우 중요한 날이라 이런 상황에 상당히 민감해하니 이해해주기 바래. 필요하면 구글 이런데서 찾아쓰면 되잖아? 별 일은 없을테니 걱정하지 말고 날은 날이니만큼 오늘 사진촬영은 자제해 주시길..."

 

경계초소에서 사무실로 저를 데리고 온 군인을 따라 다시 건물 밖으로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내내 별말없던 군인이 그때서야 말을 건네 시작합니다.

 

"야.. 니 카메라 좋아보이던데... 그거 얼마해???"

(제가 쓰는 카메라는 소니의 A900입니다. 세로그립에 24-70ZA가 달려있는 상태였죠.)

 

"이거...? 다합치면 한 20,000리얄 넘을껄?"

 

"정말 20,000리얄이 넘는다고??? 여기서 산거야?"

(아마 모르긴 해도 그 군인 월급을 반년치 이상 모아야 살 수 있을까 말까한 가격이니 놀랄만도 합니다.)

 

"아니... 여기선 없어서 한국에서 사온거야."

 

"그렇구나... 어쩐지 좋아보이더라..."

 

이런 얘길 나누면서 다시 제 차앞으로 돌아왔습니다.

 

제 입장에서야 천만다행이었기에 감사의 인사를 했습니다.

 

"슈크란!" 그러자 나온 그 군인의 대답...

 

"다음에 또 보자... 인샤알라!"   응??? 널 또 보자구???

 

그렇게 사우디 군인들과 한 시간을 보내며 물 한병 얻어마시고 오브후르 크릭을 거쳐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4년반 가까운 사우디 생활 중 가장 뜨끔했던 순간은 그렇게 지나가 버렸습니다.

 

 

(오브후르 크릭에 있던 요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