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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SPL] 디미트리 감독 경질로 본 알 잇티하드와 한국 클럽들과의 악연

둘뱅 2011. 12. 11. 07:32

 

2000년대 초중반 ACL에서 만난 알 잇티하드는 그야말로 한국 클럽들에겐 무서운 팀이었습니다. 특히 2004년 ACL에서 정점을 보여줬었죠. 준결승에서 전북 현대를 꺽고 결승에서 성남 일화를 알 잇티하드는 젯다 홈경기로 치루는 1차전에서 1대 3으로 패하고도 성남 원정경기에서 5대 0 대승을 거두며 우승을 차지했고, 그 다음해인 2005년에는 준결승에서 만난 부산 아이파크를 1, 2차전 합산 7대 0의 학살극을 벌이며 2연속 우승에 성공했으니 말이죠. 2년 연속 ACL 우승은 현재까진 알 잇티하드 만의 업적이기도 합니다. 리그의 가장 강력한 알 힐랄은 결승에 올라본 적도 없는데 말이죠. 오죽하면 한국팬들에게 알 본좌니 알 깡패 등의 별명이 붙었을까 싶을 정도로요... 

 

2004~5년 ACL에서 한국팀들에게 악몽을 안겨 준 알 잇티하드는 최근 ACL 4강전 이상에서 만난 한국팀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으면서 몇 시즌째 고전을 면치못하고 있습니다. 그 시작은 포항과 만난 2009년 ACL 결승전이었습니다.

 

칼데론 감독의 지도 하에 08/09 시즌을 우승한 알 잇티하드는 4년만의 ACL 정상탈환을 위한 만전의 준비를 갖춥니다. 우승을 위해 기후가 전혀 다른 일본에서 충분한 적응기간을 갖는다며 리그 일정을 뒤흔들어 버립니다. 무려 6~8라운드에 치뤄야 할 3경기를 ACL 결승 뒤로 미뤄버린 것이죠. 10월 4일 5라운드 알 하즘과의 경기에서 승리를 거둔 후 11월 7일 포항과의 결승전까지 한달 이상 실전을 소화하지 않았던 겁니다. 결국 충분한 현지적응을 빌미로 한 실전 감각의 결여는 독이 되었는지 그들에겐 듣보잡이었을 포항에게 우승을 내주고야 말았죠. 하지만 이는 알 잇티하드에겐 비극의 시작이었습니다.

 

쾌조의 리그 시작으로 ACL 결승전까지만 선두 대열에서 알 힐랄과 겨루며 2연속 우승을 노렸던 알 잇티하드는 포항에게 패한 충격에서 벗어나기 전에 리그에서 더 큰 충격을 당하게 됩니다. 12라운드에서 만난 라이벌 알 힐랄에게 5대 0 패배라는 충격적인 참패를 당하고 만 것이죠. 양팀간의 대결에서 5점차 패배는 그 시합이 현재까지 유일무이한 시합일 정도입니다. 의기양양하게 준비하던 ACL 결승에서 패배한 것으로 모자라 알 힐랄에게 기록적인 참패를 당하면서 디펜딩 챔피언 알 힐랄을 제치고 전 시즌 우승을 이룬 칼데론 감독은 결국 경질되고야 맙니다.

 

알 힐랄에게 참패를 당하며 알 잇티하드에서 쫓겨난 칼데론 감독이 자신을 내치게 만든 알 힐랄의 감독으로 돌아오면서 칼데론 감독과 양팀의 악연이 이어지게 되는데, 알 힐랄에서 리그 사상 최초의 무패우승을 달성한 그를 한 시즌만에 잘리게 만든 팀이 바로 다름아닌 알 잇티하드였기 때문입니다. 알 잇티하드는 올해 사우디 챔피언스컵 준결승전과 ACL 16강전에서 알 힐랄을 연파하며 무패우승의 기세를 이어 쿼드러플 (리그, 크라운 프린스컵, 사우디 챔피언스컵, ACL 우승)을 꿈꿨던 알 힐랄의 꿈을 좌절시키게 만들었거든요. 이 오묘한 악연은 결국 무패우승을 달성하고도 칼데론 감독 경질이라는 결말을 맞게 되었죠.

 

포항과의 결승에서 패하고 칼데론 감독을 경질한 후 단 1년 반동안 3명의 감독을 갈아치웠던 알 잇티하드는 이번 시즌을 맞이하여 디미트리 다비도비치 감독을 다시 부릅니다. 알 잇티하드에만 다섯번째 부임한 그는 지난 4번의 부임기간 동안 알 잇티하드의 리그 우승을 가져왔기에 알 잇티하드에게는 우승 청부사이기도 했습니다. 08/09시즌 이후 두 시즌 연속 알 힐랄이 우승하는 것을 구경해야만 했기에 그만큼 우승에 대한 집념이 강해졌고, ACL에서의 3번째 우승에 대한 염원을 이뤄줄 적임자라 판단한 것이었죠.

 

FC서울을 8강에서 꺾고 4강에 오를 때까지만 해도 분위기는 좋았는데, 4강에서 만난 전북에게 덜미를 잡히며 결국 3번째 우승도전의 꿈도 날아가고 말았으니까요. 그들의 염원이 어느정도였냐면 FC서울과의 젯다 홈경기에서는 원정팀 FC서울을 응원할 한국 교민들을 위해 20000석의 좌석 중 100석을 할당해 주어 직관할 수 있었는데, 전북과의 4강 1차전에서는 원정팬을 위한 좌석을 확보해주지 않아 TV로 경기를 봐야했을 정도였으니까요. 명목상으로는 서울과 달리 전주에 자신들을 응원하러 갈 팬들이 거의 없을테니 우리도 굳이 원정팬을 배려해줄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지만, 리그든 ACL이든 우승에 굶주린 알 잇티하드 팬들의 열광적이고 일방적인 응원 속에 기선을 잡으려는 얄팍한 의도가 돋보이는 꼼수였죠.  

 

이러한 꼼수에도 불구하고 1차전에서는 되려 역전패 당하고 2차전에서도 잇달아 패해 4강에서 고배를 마신 알 잇티하드의 충격은 지난 2009년과 마찬가지로 리그에서의 부진으로 이어지고 말았는데, 그 부진의 여파는 오히려 2009년보다 더 커지고야 말았습니다. 전북과의 경기에서 패한 이후 2연승을 달리며 충격에서 벗어나는 듯 했지만, 리그 중위권 팀인 알 파티흐FC에게 예상치 못한 패배를 당하고, 하위권 팀인 나즈란과 비기면서 3시즌만의 리그 우승 도전의 꿈도 완전히 물거품이 되고 말았으니까요. 결국 알 잇티하드에겐 우승 청부사였던 디미트리 다비도비치 감독을 나즈란과의 경기 후 결국 경질시키고야 말았습니다. 전격 경질의 후유증이었는지 대행 감독 체제로 치룬 첫 경기인 젯다 지역 더비 알 아흘리와의 경기도 1대 3 패배를 당하면서 알 잇티하드에게는 이번 시즌이 몇 시즌 내 최악의 시즌이 될 기미가 보이고 있습니다. ACL 단골 출전팀인 알 잇티하드지만 11/12 시즌 결과를 바탕으로 결정될 2013년 ACL에는 참가여부 자체가 불안한 지경에 이르렀으니 말이죠. 리그 12라운드를 마친 현재 순위표를 보시죠.

 

(평소에 볼 수 없던 알 잇티하드의 리그 순위. 12월 11일 현재)

 

 

사우디도 2012 ACL에서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4장에서 3.5장 (리그 1~2위 및 사우디 챔피언스컵 우승팀 직행, 리그 3위팀은 플레이오프)으로 줄은 상황에서 ACL 관계로 다른 팀보다 경기를 덜 치뤘다지만, 한경기를 더 치룬 4위인 알 아흘리와의 승점차가 무려 9점차로 벌어진 상태인데다 무패가도를 달리고 있는 알 샤밥을 비롯하여 리그 2~4위 팀도 1패밖에 당하지 않은 기세를 감안하면 리그에서 3위 안에 들어가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니까요. 그렇다고 최소한 작년처럼 사우디 챔피언스컵 결승에 오른다는 보장도 없구요. 오히려 이런 상태로 시즌을 마감하게 된다면 05/06시즌 이후 6시즌 만에 2위 이하의 성적으로 시즌 마감에다 최악의 경우 2000년대 들어 최저 순위로 시즌을 마무리할 수 있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한때 슬로베니아 국대 감독을 역임하다 2012 유로 예선에서 탈락한 책임을 지고 사임한 마트자즈 켁 감독을 유력후보로 놓고 있다는 기사가 나온 이후 아직 후임 감독이 결정되지 않은 가운데 알 잇티하드는 이번 시즌을 어떻게 마무리하게 될까요? 내년 ACL에서도 한국팀과의 악연을 계속 이어가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