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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사우디 축구의 추락- 동기부여가 안되는 것이 문제

둘뱅 2012. 3. 2. 06:32

(조별 예선 최종전을 앞두고 나이키 매장에서는 사우디 국대 유니폼을 전시해 놓았다. 보통은 아스날이나 맨유, 혹은 바르샤의 저지가 진열되는 위치인데, 최종 예선에 진출하기를 바라며 진열해놓았던 것 같았지만....)

 

 

얼마전 2012 런던 올림픽 예선에서 한국에게 지면서 올림픽 대표팀이 탈락한 이후, 어제는 2014 브라질 월드컵 조별예선에서 호주에게 4대 2로 역전패를 당하면서 최종 예선에도 진출하지 못하는 사우디 국대의 흑역사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우디 국대는 지난 2010 남아공 월드컵에 이어 두번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하였습니다.

 

그나마 지난 번에는 플레이 오프에 겨우 올라갔다가 인저리 타임에 극적으로 떨어지더니 ([WC] 바레인 극장, 리야드에서 사우디를 예선탈락시키다!를 참조), 이번에는 아예 조별 예선도 통과하지 못하는 수모를 겪게 되었습니다. 1990년대와 2000년 초반만 해도 동아시아의 한국과 더불어 중동의 맹주를 자랑하던 사우디였지만, 2007년 아시안컵 이후 지금은 적어도 국대에서는 예전의 영광을 잊고 암흑기에서 도통 헤어나오질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적어도 중동 지역에서는 최고 수준의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과 돈질로 세계적인 명장을 데려와도 말이죠. 더군다나 지난 바레인과의 플레이 오프 때와 마찬가지로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몇 분을 참지 못하고 스스로 무너지는 악몽을 재연하고야 말았습니다. 1대 2로 앞서있던 상황에서 후반 중반 단 3분만에 세 골을 연달아 내주며 자멸하는 모습을 보여주고야 말더군요.

 

(사우디의 조별 예선 최종전 하이라이트)

 

충격적인 2연속 월드컵 본선진출 실패 후 사우디 축협회장이 바로 경질되고 말았지만, 사우디 국대의 문제점은 누구나가 알면서도 쉽게 고쳐지지 못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리그에서 열심히 뛰는 선수들을 독려하고 못하는 선수들에겐 페널티를 가하는 등 선수들이 더 열심히 뛸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겠다며 일련의 정책들을 발표했지만, 결국 다짐으로 끝나고야 말았습니다. 물론 이러한 정책들이란 것도 현대 사우디 축구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는 것이 치명적이었지만요.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바로 사우디 리그에서 선수 개개인들에게 자신들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동기부여가 이뤄지지 못한다는 것이죠.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다시피 사우디 선수들은 자국의 리그에서만 활약을 합니다. 지금껏 잠깐이나마 해외에 진출했던 선수들이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죠. 이런 것들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사우디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스포츠인 축구에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기 위해- 정확히는 축구를 보면서 골치아픈거 잊으라는 거죠...- 스타선수들을 잡아두려는 의지가 어느 정도 반영된 것이기도 합니다. 사우디 리그 중계권을 남의 나라 방송국에 내주었던 사우디 정부가 아랍 인근 국가에서 일어나는 아랍의 봄 사태 이후 스포츠 채널을 2개에서 12개 (HD 6개/SD 6개)로 파격적으로 늘리면서 독점 중계권을 가지고 와서 무료로 방송하고, 스파이더캠 등 시설에 투자를 하는 것도 결국은 그런 정책의 일환인 것이죠. 방송 설비에 투자를 않할 수가 없는 것이 유럽 축구 시청에 눈높이가 맞춰진 시청자들도 무시 못하거든요. 워낙 유럽 축구를 쉽게 볼 수 있는 곳이니까요.

 

선수들을 타국 리그로 빼앗기지 않는 방법은 한가지 밖에 없습니다. 바로 돈질이죠. 사우디 리그 내에서 유명 선수들의 이적료는 상상외로 비싼데다 연봉도 쎕니다. 실례를 들어보죠. 작년 하반기 알 나스르가 이동국을 유혹하기 위해 던진 오퍼가 15억원선으로 알려진 바 있습니다. 사우디 국대의 조별 예선 탈락에 분해하는 친구로부터 들은  알 샤밥 소속으로 사우디 국대 주전 수문장인 왈리드 압둘라 알리의 연봉이 딱 그정도라고 합니다. 마지막 경기서 3분 동안 3실점을 허용하면서 호주에게 4골이나 허용한 그였지만, 이번 시즌 리그에서는 20경기에서 14실점으로 팀의 리그 최소 실점을 이끄는 수문장입니다. 나름 잘나가는 골키퍼의 연봉이 그 정도라면 스타급 공격수는 얼마나 많은 연봉을 받을지 대충 연상이 될 겁니다. 그것도 세금없는 실수령액이죠.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현재 UAE의 알 아인으로 임대이적한 간판 공격수 야세르 알 까흐따니는 수백억 이상의 재산을 가졌다고 할 정도라는군요.

 

(좀더 클로즈업해서...)

 

그렇다보니 사우디 선수들은 리그 내 대형 클럽의 주전이 되면 더 이상 갈 곳이 없으니 실력이 더 이상 늘기가 어렵습니다. 주전에서 밀리지 않을 정도만 유지하면 되니 말이죠. K리그 선수들이 더 좋은 기회와 돈을 벌기 위해 해외진출을 시도하고 그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실력을 향상시키려는 것과는 다르고, 인근 아랍 국가 선수들이 걸프 리그 쪽에 아시아 쿼터로 이적하거나 (사우디 보다 규모는 작겠으나) 나름대로의 부와 명예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도 다르죠. 예외적으로 월드컵 유치를 통해 의욕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카타르와도 또 다른 상황이구요. 한국이 아시아에서 나름 꾸준히 수준을 유지하는 것과 중동에서 한단계 아래로 여겼던 국가들이 최종예선 진출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지만, 사우디 축구는 흑역사를 만들어나가는 단초가 된 것입니다.

 

리그 내에서만 안주하다 보니 리그 수준도 다른 리그와 달리 점차 하향화 되어갑니다. ACL만 봐도 개편된 이후 초기에는 사우디 리그 소속 클럽팀의 강세가 두드러졌지만, 지금은 예전같은 위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고, 동기부여가 안되는 선수들의 모습을 이번 시즌만 해도 가끔 볼 수 있었습니다. 훈련에 불참하고 구단 관계자에게 "다른 리그나 구단으로 이적시켜줘"라는 문자 메시지만 날리고 며칠 잠수탔다가 복귀헀던 알 힐랄의 아흐마드 알 프라이디가 대표적인 예라 할 것입니다. 알 힐랄의 주장이자 센터백인 오사마 알 하우사위는 유럽이나 타 리그로 이적해보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었구요.

 

그나마 열심히 뛰는 리그에서도 매너리즘에 빠진 선수들이 국대에서 최선을 다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더 열심히 해야 할 동기를 스스로 부여하지 못하고 돈은 충분히 번 그들을 자극할만한 절실한 목표의식이 없으니까요. 이 문제는 세계적인 명장을 데리고 와도 풀기 어려운 구조상의 근본 문제입니다. 과연 사우디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구조상의 한계에서 벗어나 흑역사의 시대를 종식하고 과거의 맹주로 돌아오는 길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