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쪽 박수치고 있는 분이 카타르 왕세자 타밈 빈 하마드 알 싸니)
레퀴야의 첫 우승으로 끝난 카타르 왕세자컵 결승전을 보면서 문득 너무나도 다른 느낌의, 그러나 두 나라의 현실을 잘 보여주는 사우디 왕세제컵에서 보여졌던 모습들이 불현듯 오버랩되었습니다. 그런 생각이 갑자기 들었던 이유는 아무래도 요즘 카타르가 GCC의 종주국을 자처하는 사우디의 아성에 도전하며 보여주는 광폭의 움직임과 맞물렸기 때문입니다. 영토 크기로 보나 국민수로 보나 사우디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미니 국가인 카타르지만 자원과 좀더 진일보한 성향을 지닌 지도층들의 패기가 어울려 UAE와는 또 다르게 자신을 포지셔닝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죠. ([둘라의 아랍이야기] 아랍권 새 맹주에 도전하는 카타르 참조)
1. 인구와 GDP로 보는 사우디와 카타르의 간접 비교
일단 두 나라를 간단히 비교해 봅니다.
사우디 | 카타르 | |||
국토면적 | 2,149,690km2 | (13위) | 11,571km2 | (164위) |
총 인 구 | 약 2,870만명 | (43위) | 약 190만명 | (148위) |
** 인구는 2012년 중반 추정치. 출처: 2012 World Population Data Sheet (PRB)
이렇게만 놓고보면 둘다 부유한 산유국이라고는 하지 면적에서 약 186배, 인구수로는 15배 차이가 나는 두 나라가 어떻게 경쟁을 할 수 있을까 싶지만, GDP를 놓고 비교해 보면 또 다릅니다.
사우디 | 카타르 | |||
총 GDP | 약 7,273억달러 | (19위) | 약 183억달러 | (52위) |
1인당 GDP | 25,085달러 | (29위) | 99,731달러 | (2위) |
** GDP (Nominal)은 2012년 추정치. 출처: 2012 World Economic Outlook Database (IMF)
전체적인 GDP 규모로 보면 사우디가 39배나 크지만, 1인당 GDP로 놓고 보면 오히려 카타르가 4배 높은 기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사우디의 경제규모가 압도적으로 크지만 국민들의 소득수준은 오히려 카타르가 훨씬 높다는 것을요.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글이 다른 블로그를 통해 소개된 적 있습니다. (태어나자마자 연봉 1억, 선택받은 국민! 카타르 참조) 아무리 사우디 경제규모가 커도 카타르와 같은 수준의 복지제공이 불가능한 이유가 있습니다. 총인구에서 외국인을 뺀 자국민의 인구수만 따지면 그 차이가 현격하기 때문입니다. 양국의 총인구를 자국민과 외국인으로 나눠 살펴보겠습니다.
사우디 | 카타르 | |||
총인구 | 약 2,870만명 | (100%) | 약 190만명 | (100%) |
자국민 | 약 1,980만명 | (69%) | 약 38만명 | (20%) |
외국인 | 약 890만명 | (31%) | 약 152만명 | (80%) |
사우디인의 자국민수는 카타르 자국민수의 무려 52배에 달합니다. 외국인을 다 내보낸다고 쳐도 38만명을 책임져야 하는 카타르와 거의 2000만명을 책임져야 하는 나라의 부담감은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참고로 약 1,980만명의 사우디 국민들의 인구수는 GCC의 다른 5개국 (카타르, UAE, 바레인, 오만, 쿠웨이트)의 자국민과 외국인을 포함한 총인구를 다 합친 것보다도 많은 숫자입니다.) 사우디제이션, 카타리제이션 등 자국민 고용정책을 추진하기는 마찬가지지만 사우디가 더 시급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사우디는 현재의 인구구조상 카타르와 같은 수준의 복지수준을 제공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먹고 살려면 취업을 시킬 수 밖에 없고, 약 12% 이상으로 추정되는 사우디인들의 실업률과 맞물려 사우디의 미래에 대한 대표적인 불안요소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아랍의 봄 이후 국민들의 생활수준 향상을 위한 복지정책, 자국민 고용정책 강화 등 무리수를 써서라도 내실을 다지려고 애쓰는 사우디와 달리, 카타르는 큰 부담없이 적극적인 외교정책으로 국제사회에서 카타르를 각인시키는 데 애쓰는 서로 다른 행보를 보여주고 있는데서 알 수 있듯이요.
2. 서열 1,2위들의 나이로 보는 두 왕실의 간접비교
1) 사우디 압둘라 국왕과 카타르 하마드 국왕
그다지 높지 않은 자국민들의 생활수준과 더불어 사우디의 미래에 대한 대표적인 불안요소는 바로 왕실의 노쇠화입니다. 서열 1, 2위인 국왕과 왕위 계승자를 놓고 봐도 상대적으로 젊은 카타르 왕정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도 훨씬 안정적입니다.
요즘 여권 신장을 추진하는 점진적인 개혁정책으로 종종 언론에 떠오르는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사우디 국왕은 1924년 8월 1일생으로 88세의 고령입니다만, 2005년 8월 1일 국왕으로 취임하여 재임기간은 아직 10년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전임 파하드 국왕의 건강악화로 실질적으로 사우디를 통치해온 건 1995년 부터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작년에도 수술을 받고 2주 가까이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사망설까지 도는 등 썩 좋지는 건강상태로 인해 언제 어떻게 되도 이상할 것이 없는 분입니다. 그나마 오래 재임하면 더 좋겠지만 말이죠.
현재 카타르를 이끌고 있는 카타르 국왕 하마드 빈 칼리파 알 싸니는 1952년 1월 1일생으로 압둘라 국왕보다 훨씬 젊습니다. 1980년대 초반부터 카타르의 경제기반과 사회 정책들을 기획, 정비하는 국가 최고 기획위원회 (Supreme Planning Council)를 이끌면서 왕실에서 영향력을 키워 온 그는 주위에 젊고 서구에서 교육을 받은 조언가들을 통해 연장자들이 미처 알 수 없었던 미래를 향한 국가 발전에 대한 다양한 비전을 갖추고 난 뒤 1995년 제네바로 순방을 떠났던 아버지 칼리파 빈 하마드 알 싸니 국왕을 몰아내고 지금의 국왕에 자리에 올랐습니다. 파격적인 뉴스로 전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뉴스 네트워크 알자지라 설립에 큰 기여를 한 것으로 유명할 정도로 진보적인 성향의 정책을 추진해 오고 있습니다.
2) 사우디 왕세제들과 카타르 타밈 왕세자
양국의 미래에 대한 다른 시각이 드는 이유, 사우디가 불안한 이유는 바로 그 후임자들 때문입니다.
사우디는 일단은 내 아들들에게 왕위를 물려주라는 고 압둘아지즈 국왕의 유지에 따라 부자상속이 아닌 형제상속, 즉 왕세제를 택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사우디 건국과정에서 지방 부족들을 아군으로 만들기 위해 태조 왕건처럼 정략 결혼을 해서 아들들이 너무 많다는데 문제가 있죠. 그는 15세에 첫 결혼을 한 이래 22명의 부인과 결혼하여 정확한 수가 파악이 되지 않는 자녀를 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아들들만 해도 대략 37명에서 45명 정도라고 하는군요. 그렇다보니 그의 사후 60년이 되는 오늘까지 왕위에 오른 아들은 5명에 불과하고 왕세제도 되어보지 못한 아들들도 많은 채 나이만 먹고 있습니다. 당연히 후보자군들이 노인정이 될 수 밖에요.
사우디 왕위 계승자들의 실제 건강상태가 어떤지 대중들에게 공개되는 흔치않은 기회 중 하나가 바로 왕세제컵 결승전입니다. 왕세제컵이라는 걸맞게 대회 주최자이기 때문에 결승전에 모습을 드러내서 경기를 관전하고 우승팀과 준우승팀에게 시상을 하러 오기 때문에 왕세제의 건강상태를 생중계로 엿볼 수 있는 것입니다.
지난 몇년간 왕세제컵을 보면 왕세제들이 노쇠화된 탓에 경기장에는 하프 타임 즈음에 도착해서 군악대의 환영 연주를 듣고 후반전을 관전한 후 시상식을 해오곤 했습니다만, 시상하는 모습은 사뭇 달랐습니다.
작년 왕세제컵 결승전에서 시상식을 했던 고 나이프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왕세자의 모습을 보겠습니다.
(2012년 사우디 왕세제컵 시상식 장면)
1934년생인 그는 76세이던 2011년 10월 27일 왕세제로 지명된 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지난 해 왕세제컵 결승전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의 건강문제로 인한 결승전 참석여부로 세간의 논란이 되자 이를 불식시키려는 듯 대행을 보내는 대신 직접 모습을 드러냈지만, 오히려 그의 좋지 않은 건강상태를 만천하에 공개한 셈이 되고 말았습니다. 자신과 선수들 사이에 탁자를 두어 접근 자체를 막아버렸으니 말이죠. ([정치] 크라운프린스컵 결승전을 통해 본 우려되는 나이프 왕세제의 건강 참조!) 시상자가 줄줄이 등장하는 모습은 여느 해와 다를 바 없었지만, 테이블을 놓아 왕세제와 시상자들을 떨어뜨려 놓은 모습은 보기엔 좋지 않았습니다. 국민들에게 자신의 건강 악화를 보여주고 말았던 나이프 왕세제는 4개월 뒤인 지난 해 6월 왕세제 부임 후 8개월만에 유명을 달리하고야 말았습니다.
그리고 올해 왕세제컵 결승전에는 고 나이프 왕세제의 뒤를 이은, 그의 친동생이자 한 살 어린 살만 빈 압둘아지즈 왕세제가 결승전을 관람했습니다. 그 역시 77세의 고령이지만, 아주 좋아보이지는 않더라도 그나마 정정한지 작년에 형이 보여준 아슬아슬한 모습 대신 한결 여유롭게 시상식에서 선수들을 맞이했습니다.
(2013년 사우디 왕세제컵 시상식 장면)
내년에도 정정한 모습으로 살만 왕세제가 결승전을 지켜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늙은 이복형제들이 가득한 사우디 왕실은 차차기 이후가 불안할 수 밖에 없습니다. 왕권 승계위원회라는 것이 존재하지만 워낙 형제들이 많은 탓에 정확한 후계라인을 긋기 어렵고, 현 압둘라 국왕과 최근 교체된 왕세제들이 워낙 요직에서 오랫동안 일해왔기 때문에 가면 갈수록 왕권 승계 자격의 중요 요소 중 하나인 요직에서의 풍부한 경력을 갖춘 후보군들이 없어진다는 치명적인 문제를 피할 수 없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이 의미는 대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후보군이 줄어들어 왕자들간 권력투쟁을 위한 합종연횡이 발생할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는 이야기죠.
이미 하마드 국왕이 쿠데타로 왕위를 가져가긴 했지만, 그래도 형제상속제를 택하고 있는 사우디에 비해 부자상속을 택하고 있는 카타르의 왕실은 젊은 나이대를 고려해 보면 훨씬 안정적으로 보입니다.
현재 카타르의 왕세자는 지난 2003년 8월 5일 친형 자심 빈 하마드 알 싸니가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면서 물려준 왕세자 자리에 오른 동생 타밈 하마드 빈 칼리파 알 싸니로 1980년 6월 3일생인 그의 나이는 32세에 불과하여 70대 왕세제 후보군들이 득실한 사우디의 차기 왕위 계승자들에 비해선 한참 어립니다. 쿠데타로 친척으로부터 왕위를 탈취한 할아버지 칼리파 빈 하마드 알 싸니와 그를 축출하고 왕위를 차지한 아버지 하마드 빈 칼리파 알 싸니에 비해서는 현재까지는 안정적인 후계구도가 그려진 것도 장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OC 위원이자, 도하 아시안게임 조직위원장 등 다양한 분야의 경력을 갖고 있죠.
이제 30대 초반이라는 젊은 나이는 그의 아버지 하마드 국왕과 더불어 별다른 사고가 없는 한 향후 몇십년간은 비교적 안정적인 국정을 운영할 수 있는 토대가 되고, 정국불안의 요인이 적은 가운데 사우디 왕실에 비해서는 형제수가 훨씬 적기 때문에 사우디에 비해서 후계라인도 비교적 명확하다는 점에서 한층 안정적인 모습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2013년 카타르 왕세자컵 시상식 장면)
저 위에서 보여드렸던 사우디 왕세제컵 시상식 장면과 카타르 왕세자컵의 영상에서 뭔가 차이를 발견하셨나요? 하프 타임에 겨우 모습을 드러내는 사우디 왕세제들과 달리 타밈 왕세자는 경기 시작전부터 경기장을 찾아 전체 경기를 관전하고, 시상식에 있어서도 왠지 빨리 끝내려고 정신없이 수상자들을 들여보내는 사우디와 달리 선수 개개인을 한명씩 불러내어 시상하는 여유와 건강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시상하는 장면에서도 개인적인 관심과 수상자들의 요구에 따라 메달만 건네주거나, 이야기를 좀더 나누는 등 훨씬 자연스럽게 대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노쇠화된 왕실과 수적으로 많은 국민들의 높은 실업률이라는 사우디가 가지고 있는 불안요소가 없는, 그러한 상대적인 여유 속에 사우디가 차지하고 있는 GCC 종주국의 위상에 도전하는 카타르를 관심있게 지켜봐야 할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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