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 이야기/아랍의 이모저모

[Kpop] 이슬람권에서 가열찬 논란에 휩싸인 2NE1의 신곡 멘붕[MTBD], 왜?

둘뱅 2014. 3. 10. 16:50



4년만에 정규 2집 앨범으로 돌아온 YG의 걸그룹 2NE1의 신보 CRUSH에 담긴 씨엘의 솔로곡 멘붕[MTBD]이 이슬람권 K-pop팬들을 중심으로 거센 논란에 휘말렸습니다. 씨엘의 인스타그람 계정까지 팬과 안티들, 특히 이슬람을 믿는 해외팬들간의 설전과 욕설이 뜨겁게 오가고 있으며. 심지어는 외교부 홈페이지와 SNS를 통해서까지 무슬림들의 온갖 항의 메세지가 전달될 정도라는군요!!! 그 이유는 바로 노래 중간에 몇 초 안되는 짧은 시간에 꾸란 구절 낭송이 배경음악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꾸란 낭송을 음향효과처럼 사용한 것에 격분한 무슬림팬들 및 2NE1 안티들의 악플과 이에 대해 흠집내기 위한 비난이라는 팬들의 맞플로 관련 홍역을 치루고 있는 것이죠.


자신은 무슬림이지만 꾸란 낭송음이 사용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팬이 있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그 부분을 문제삼아 비난하는 이들이 있는 등 같은 무슬림들끼리도 꾸란 낭송음을 사용한 것에 대해 논란이 있는 이유는 믹싱된 사운드 사이에 인도음악 같은 느낌의 음향과 더불어 꾸란을 낭송하는 듯한 한 소년의 목소리가 아주 짧게 삽입되었고 음악을 보는 관점이 이슬람 종파에 따라 다르기 때문입니다. 


(문제되는 부분을 비교하는 영상. 영어 설명의 singer라는 표현은 표현은 잘못된 표현.)



차용한 것으로 여겨지는 부분은 하나님의 부활과 불신자들에 대한 심판을 다루고 있는 쿠란 제78장 나바아 (소식) 32절 "천국과 포도들이 있고 (حَدَائِقَ وَأَعْنَبًا)"부터 시작되는 3개의 절구로 하나님이 부활하신 후 자신의 부활을 믿었던 신자들에게 내려지는 구체적인 보상을 설명하는 절구입니다. (반면 불신자들에 대한 응징에 대해서는 18절부터 30절까지 구구절절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에 따로 인용합니다.) 절구의 의미 자체로는 아주 좋은 절구이지요. 


(차용된 부분의 원본?으로 추정되는 무함마드 따하라는 소년의 쿠란 제78장 나바아 전체 낭송 영상. 3분 26초부터가 문제의 32절) 


참고로 총 40절로 이뤄진 쿠란 제78장 나바아 (소식)에서 설명하는 하나님의 심판 부분은 아래와 같습니다.


18절: 나팔이 울리는 그날 너희는 떼를 지어 앞으로 나오게 되며

19절: 하늘은 문이 열리는 것처럼 열리고

20절: 산들은 신기루처럼 사라지며

21절: 지옥은 기다리고 있으니

22절: 사악한 자들을 위한 목적지라

23절: 그들은 그곳에서 영주하니라

24절: 그들은 그곳에서 시원함도 맛보지 못할 것이며 마실 음료수도 없으며

25절: 오직 끓어 오르는 액체와 검고 어두운 혹독한 액체 뿐으로

26절: 이것이 그들을 위한 적절한 보상이라

27절: 그들은 그들의 행위에 대한 어떤 계산도 두려워 하지 아니하고

28절: 하나님의 말씀을 거짓이라 부정하였으매

29절: 하나님은 모든 것을 기록보관 하시니라

30절: 그러므로 너희 해위의 결과들을 맛보라 응벌 외에는 너희에게 더하여주지 아니 하리라

31절: 그러나 의로운 자들은 승리한 것이 있나니

32절: 천국과 포도들이 있고

33절: 이가 같은 청순한 배우자가 있으며

34절: 넘치는 잔이 있도다

35절: 그들은 그곳에서 어떤 무익한 대화나 거짓된 말도 듣지 아니하며

36절: 주님의 계산에 따라 보상을 받노라

     - [성 꾸란 의미의 한국어 번역], 파하드 국왕 꾸란 출판청 중



이를 보는 무슬림들간 상반된 시각

이를 꾸란 낭송본에서 차용했다며 격분하는 무슬림들은 바로 자신들이 신성시하는 경전인 꾸란을 금지된 대중음악에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이슬람 세계에서 음악은 많은 논란 끝에 대부분의 이슬람 학파들로부터 '하람(금지된 것)'으로 규정되어 왔습니다. 논란이 많았던 이유는 꾸란과 하디스 등에서는 음악을 허용하거나 금지한다는 것에 대해 딱부러지게 명시된 부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보는 관점에 따라 달리 해석될 여지를 준 것이죠.


음악을 "하람"으로 규정한 대부분의 이슬람 학파에서는 일반적인 음악을 대체하여 꾸란 낭송, 아잔 (예배시간이 되었음을 알리는 외침), 특별한 축제에 사용하는 찬가 등이 발달했습니다. 특히, 꾸란을 곡조에 맞추어 낭송하는 전통은 7세기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그 전통은 유대교나 기독교의 음악적인 전통보다는 이슬람 출현 이전에 시를 낭송하는 데서 유래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꾸란 낭송의 목적은 문장의 의미를 고양시키고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그것을 전달시키려는 데 있었기에 낭송자들에게 성스러운 경전을 어떻게 읽어야 신자들이 잘 이해하고 감동할 수 있는지, 또 잘못 낭송하여 생기는 오해 때문에 이단으로 빠지는 것을 어떻게 피할 수 있는지가 정해져 있었습니다. 


꾸란 낭송이 예술음악과는 무관하고 이론상으로는 음악의 한 부분으로 취급되지 않지만 실제로는 이슬람 세계에서 예술음악을 대체하는 여러 요소들이 거기에 포함되어 있었고, 아이러니하게도 하나의 노래처럼 들리기 때문에 같은 구절이라도 낭송자에 따라 다양한 바리에이션과 느낌을 안겨줍니다. 이로 인해 아랍 국가나 인터넷을 통해 판매되는 쿠란CD에는 낭송자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명기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만큼 유명한 낭송자라는 사실을 의미하기도 하지요. 유튜브에서 quran recitation으로 검색해도 수많은 낭송 영상이 소개될 정도니까요...


꾸란 낭송본의 일부를 차용했을 경우 YG가 과연 그 낭송자- 윗 영상에서 따온게 맞다면 무함마드 따하에게- 와의 저작권법 문제를 협의했을까 여부는 차처하더라도 말이죠. 꾸란 자체야 저작권을 논하기는 힘들겠지만, 낭송본을 차용했을 경우 낭송자에게 저작권이 있을 테니까요.


반면, 상대적으로 음악에 관용적인 수피주의자들이나 리버럴한 소수의 무슬림들에게 있어서는 노래 자체가 이슬람 자체를 모욕하는 내용은 아니기에 이런 정도의 차용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에 격분하는 무슬림들과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아랍에서 대중가요가 발달한 이집트와 레바논의 경우 이슬람 외에도 다양한 종파가 섞여 있어 음악에서 만큼은 타 국가들에 비해 앞서 나갈 수 있었던 것이죠.


아랍어를 모국어로 쓰고 있는 아랍인들조차도 이 절구만 짤라서 들으면 쿠란에서 나온 것인지 금방 떠올리지 못할 정도로 너무 짧기 때문에 덜 민감하게 반응하는 면도 있습니다. 제 이집트인 교수님도 이 부분만 들려줬을 때 처음에는 "천국과 포도가 뭐 어때서?" 이런 반응을 보이시다 쿠란에서 나온 절구임을 몇 분 뒤에나 떠올리시더니, 나중에는 그래도 큰 문제는 아니겠지만 프로듀서가 나쁜 의도를 갖고 있는거 아닐까..라는 반응을 보이실 정도였거든요. 제 교수님도 종교적 극단주의를 혐오하는 리버럴한 종교관을 갖고 계신 분입니다만.... 


여기서도 알 수 있는 사실은 그만큼 다양한 지역과 인종이 뒤섞여있어 하나의 주제를 놓고도 각기 입장에 따라 다른 반응을 보일 정도로 무슬림들도 획일적인 기준으로 정의할 수 없을만큼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슬람에 대한 타문화권의 종교모독 행위에 민감하게 반응해왔던 이슬람 세계 

이슬람 세계는 그동안 자신들의 종교를 부정하는 듯한 외부의 상업적인 움직임에 대해서는 민감한 반응을 보여왔습니다. 대표적으로는 덴마크 언론들의 무함마드 비난 만평 사건과 나이키의 신발 회수 사건을 들 수 있겠습니다. 무함마드는 자신을 신성시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얼굴을 그리는 것조차 금지하여 이슬람 세계에선 무함마드의 얼굴을 그리지도 않는데, 무함마드의 얼굴을 그리면서 테러리스트로 묘사한 만평이 언론의 자유를 빙자하여 유럽지역으로 확산되면서 이에 분개한 아랍 무슬림들의 강력한 불매운동으로 덴마크의 낙농업계가 큰 타격을 입었던 바가 있습니다. 덴마크 낙농업계에 있어서 아랍지역은 자신들의 주요 시장 중 하나였거든요.


(당시 덴마크 신문의 문제 만평 중 한 컷, 덴마크산 제품 불매운동, 무력 시위 중 (시계방향 순...))


불꽃 모양의 로고를 신상 운동화에 새겼던 나이키는 이 로고가 알라를 뜻하는 아랍어 단어와 유사하다는 이슬람권의 항의에 따라 문제의 모델 3만8천켤레를 회수했었습니다. 신발을 던지는 걸 가장 큰 모독으로 간주하는 이슬람권에서 알라를 뜻하는 듯한 로고를 신발 뒤에 새겨놓은 것은 자신들을 욕되게 하려는 의도라고 이해할 수 밖에 없으니까요.


(문제의 나이키 신발 (좌), 캘러그래피로 쓴 알라 (우))



이번 논란의 아쉬운 점, 그리고 교훈

자신들의 신곡에 이슬람권 팬들을 위한 깜짝 선물을 준비하겠다는 약속에 기대를 걸었던 팬들이 많았다는 소식이 아랍권 언론에 전해지면서 기대를 갖고 있었기에 쿠란의 한 구절이 이런 식으로 사용된 것에 대해 더더욱 큰 반발과 논란에 휩싸이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불쾌하게 여기고 있는 무슬림들 중에는 씨엘에 대한 옹호의견 속에서도 이를 미처 발견하지 못한 프로듀서의 자질이 문제고 기획사인 YG가 이에 대한 공식적인 의견을 밝혀야한다고 주장할 정도죠. YG의 공식 의견에 따라 계속 팬으로 남을지, 아니면 확실한 안티로 돌아설지 결정하겠다면서 말이죠. 과연 YG가 공식 의견을 내고 대응을 할지는 알 수 없지만요.


의도야 어찌되었든 논란이 확산되면서 무엇보다 안타까운 사실은 그동한 한류에 친숙했던 이집트, 이란 등을 넘어 걸프 지역, 심지어 대중 문화가 척박한 사우디 젊은이들에게까지 퍼지고 있는 K-pop을 위시한 한류 열풍을 아니꼽게 보아왔던 일부 보수적인 성직자들에게 자신들의 정치적인 목적으로 K-pop을 반종교적인 음악으로 규정하고 공격, 또는 차단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나면 다행이지만, 이 논란이 더욱 확산되어 "K-pop은 이슬람을 모독하는 사탄의 음악이니 듣는 것 자체를 금지시켜야 한다."라는 따위의 골때리는 파트와까지 나오는 상황으로 악화되면 한류 확산에도 악영향을 끼칠테니 말이죠. (여성들이 운전하면 골반을 밀어올려 생식기를 자극시켜 임신을 못한다는 황당한 주장을 펼치는 학자들도 있으니 이런 파트와를 내놓는 이슬람 성직자가 없다고 장담하기도 힘든 상황이죠...)


강남 스타일로 전세계적인 열풍을 이끈 싸이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기 전 히트곡이었던 챔피언의 일부 가사 "니가" 가 본뜻과는 상관없이 발음상 흑인을 모욕하는 표현이라는 논란에 휩싸였던 바 있던 YG에서 어떤 의도에서든 그것보다 더 골치아플 수 있는 논란의 여지를 제거하지 못하고 곡을 내놓았다는 사실이 아쉽습니다. 아이돌 음악으로 Kpop을 접하게 된 아랍인들 중에는 한국 대중가요에 대한 관심으로 아이돌 음악을 넘어 7080 노래까지 찾아서 가사가 좋다고 듣는 친구들도 있을 정도인걸요. 굳이 YG뿐만 아니더라도 K-pop이 전세계에 알려지기 전까지는 그런 부분이 있던없던 큰 문제가 아니었겠지만, 지금은 전세계에 실시간으로 공개되어 전파되고 있는 이상 특정 지역이나 종교, 인종을 모욕한다는 오해를 살만한 부분은 피하는 세심함이 필요한 때입니다.



P.S.: YG는 결국 이번 논란에 대한 별도의 입장을 밝히지 않은 채 문제의 부분을 편집한 음원을 내놓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