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 이야기/아랍의 이모저모

[방송] ABC패밀리, 미국 내 아랍 무슬림들의 거센 비난을 받았던 드라마 "앨리스 인 아라비아" 편성취소 발표!

둘뱅 2014. 3. 24. 17:40


미국의 케이블 방송인 ABC 패밀리는 오늘, 지난 주 수요일 파일럿 편성을 예고했던 세 편의 신작 청소년 드라마 중 기획 당시부터 많은 논란을 야기했던 "앨리스 인 아라비아 (Alice in Arabia)"의 편성을 취소한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지난주 이 소식을 처음 SNS로 접했을 때, "이건 또 뭐여....."란 생각이 바로 들었었는데 말이죠. 한마디로 당사자들에겐 "우리 함 싸워볼래요?"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을만한 내용이었거든요.


갑자기 나타난 친척에 의해 사실상 사우디로 납치된 사우디계 미국인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 이 드라마는 알려진 시놉시스만으로도 이슬라모포비아 (이슬람 혐오증)을 조장하고 심각한 국제적인 이슈를 야기할 수 있는 청소년 멜로드라마를 만든다는 비난 속에도 방송사는 편성 확정을 강행했지만, SNS를 통해 이 소식을 접한 사우디인들은 물론 수많은 아랍계, 무슬림 미국인들로부터 CAIR (Council on American-Islamic Relations) 등 다수의 미국내 친아랍 단체들로부터 쏟아진 엄청난 반발에 결국 방송사는 편성을 취소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얼마 전 있었던 2NE1의 신곡 "멘붕" 논란은 샘플링 된 쿠란 낭송 구절 자체는 좋은 내용이었던데다 무슬림들 사이에서도 관점에 따라 CL이나 YG측에서 미처 잘 모르고 실수로 삽입했었다고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반면, "앨리스 인 아라비아"는 기획의도야 어떻게 포장하든 너무나 다분히 의도적으로 보일 수 밖에 없어서 이해해 줄 여지가 없다는 차이랄까요.


(이 기획의 작가였던 Brooke Eikmeier)


이 드라마의 작가인 Brooke Eikmeier는 아랍어 번역과 아랍어 암호해독을 위해 근무했던 미군 번역관 출신이며 중동 지역내 NSA의 작전수행을 지원하기 위해 훈련을 받았던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한 비난에 대해 자신의 드라마가 "고귀한 의도"로 집필하고 있고, "미국 TV드라마에서 아랍인들과 무슬림들의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있다"고 대응했고, 편성을 강행한 방송국은 "그녀는 놀라운 작가이며, 미묘한 차이와 성격을 드러내는 드라마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지지해왔지만, 결국 방송국을 강타한 엄청난 반발에 손을 들고야 말았습니다. 이 드라마가 어떤 시놉시스를 가지고 있기에 논란이 되었을까요?



드라마의 시놉시스, 그리고 모티브가 된 실화

"사우디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여주인공 앨리스 맥파랜드는 또래 남성을 좋아하고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는 16세의 평범한 미국인 소녀다. 교통사고로 어머니가 죽고 아버지가 혼수상태에 빠졌을 때 죽은 줄로만 알고 있었던 (부자간 연락을 끊었을 정도로 보수적인 할아버지와 서구화되면서 자유로웠던 아버지 사이의 갈등이 있었음을 암시...) 사우디인 할아버지와 고모 라다가 갑자기 나타난다. 아부 함자라 불리며 자신을 사우디 왕족인 바크르 슈크리 알 사우드 왕자라 소개한 할아버지는 아버지가 혼수상태에서 깨어날 때까지 같이 지내자며 의지할 곳없는 앨리스를 설득하여 자신의 개인 비행기로 사우디로 데리고 간다. 여행 도중 고모 라다는 사우디 입국서류를 준비한다며 가져간 앨리스의 여권을 몰래 아부 함자에게 넘기고, 그는 자신의 서류가방 속에 그녀의 여권을 밀봉해 둔다. 리야드에 도착한 앨리스는 아부 함자 소유의 왕실 컴파운드에서 전통적인 무슬리마이면서도 서구 문화에 친숙한 사우디 여성 가족들의 따뜻한 환영을 받지만, 아부 함자가 그녀의 여권을 돌려줄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자신을 영원히 사우디에 가두려는 보수적인 할아버지 아부 함자와 자신을 그로부터 탈출시켜주려는 소수의 친구들 사이에 있음을 알게 된 앨리스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드라마의 모티브로 알려진 실화의 주인공 나지아 쿠아지와 그녀의 남편 싱할)


작가가 군복무 시절부터 집필해 왔다는 이 드라마는 나지아 쿠아지라는 여성의 실화를 모티브로 삼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2007년 11월 당시 24세의 캐나다-인도 이중 국적 소유자인 그녀는 아버지가 살고 있는 사우디에 갔다가 그녀의 약혼자를 맘에 들어하지 않던 보수적인 무슬림 아버지가 사우디 법 (마흐람)에 따라 그녀의 여권을 숨겨버리면서 캐나다로 돌아갈 수 없게 됩니다. (남성 보호자를 의미하는 마흐람은 여성들의 운전금지와 함께 여성들의 권리를 근본적으로 제약하고 있는 대표적인 악습으로 여성들은 남성 보호자의 동의없이 여권 발급 및 여행 등을 할 수 없습니다. 2010년 이후로 사우디 내 여성들의 권리가 그전에 비하면 급속도로 신장되는 중이지만, 이 두가지가 철폐되지 않는 한 완전한 여성들의 자유는 요원한 일이고, 사우디 여성계에서는 이를 철폐해달라는 탄원서를 정부에 제출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 사우디에서 3년 동안 캐나다로 돌아가기 위해 투쟁을 벌인 그녀는 약혼자가 캐나다 정부와 NGO 등을 접촉하면서 국제적으로 이슈화되고 나서야 사우디를 나와 두바이로 나오는데 성공하여 자신을 도와준 약혼자와 결혼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전해지는 각본 초고에 따르면 사우디 문화에 대해 친숙한 작가의 시각이 반영되어 있고 이슬람적 가치관과 서구적 가치관 사이의 갈등을 다루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오류들도 발견되고, 민감한 주제를 다루기엔 너무 어린 주 시청자층이 될 십대들에게 사우디인, 넓게는 무슬림들을 꼴통 극단주의자로 인식할 수 있는 인종차별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도 사실이기에 방송국 안팎으로 거친 비난과 압박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친이스라엘적인 미국 정부, 반아랍-이슬람적 미국 미디어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는 특히, 아랍 무슬림들도 제법 많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단순하게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며 받아들이기는 더더욱 힘들었을 것입니다. 일본 방송국에서 우리나라를 비하하는 내용의 드라마를 방영한다면 우리가 갖게될 반감 그 이상으로 말이죠.


과연 세상에 이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가 알려졌을 때 엄청난 반응이 나오리라는 걸 예상 못하고 기획했을까요??? 


 

참조: 

"ABC pulls out drama that upset Saudis" (Arab News) / "Canadian woman held in Saudi Arabia finally free to marry" (Toronto Star) / 

"We Got A Copy Of The Script For “Alice In Arabia” And It’s Exactly What Critics Feared" (BuzzFeed)

"'Alice in Arabia' Was Really as Shocking as All the Critics Said — Just Take a Look at the Script" (PolicyMic)

"ABC Orders New Drama ‘Alice in Arabia’: 5 Fast Facts You Need to Know" (Heav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