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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우디 사회의 변화를 가져온 용감한 소녀의 이야기, 와즈다 (Wadjda)

둘뱅 2014. 5. 31. 23:54

영화명: 와즈다 (Wadjda, 2012)

제작: 게르하르트 마이스너, 로만 폴

감독: 하이파 알 만수르

스토리/극본: 하이파 알 만수르

출연: 와아드 무함마드 (와즈다 역), 림 압둘라 (엄마 역), 압둘라흐만 알 주하니 (압둘라 역), 술탄 알 앗사프 (아빠 역), 아하드 카밀 (훗사 선생님역) 외

언어: 아랍어


6월 19일 국내 정식 개봉을 앞둔 와즈다가 신촌 메가박스에서 열리고 있는 서울여성국제영화제에 초청되어 상영되고 있기에 드디어 보고 왔습니다. (6월 2일 2시에도 상영예정이니 관심있으신 분들은 가보세요~!)



1. 줄거리

리야드 외곽에 사는 왈가닥 10살 소녀 와즈다는 우연히 동네 단골 가게로 배달되는 녹색 자전거를 가지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됩니다. 그녀는 그 녹색 자전거로 이웃집 친구 압둘라와 자전거 경주를 하고 싶어 사달라고 엄마를 졸라보지만, 어머니는 공공장소에서 여성들이 자전거를 타는 것은 금기시된 것이라며 그녀의 요청을 거절합니다. 와즈다는 다양한 테이프와 악세사리를 판매하고 몰래 연애편지를 전달해주며 받는 수고비로 돈을 모아보지만 자전거 값 800리얄 (약 24만원)을 마련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가운데, 5주 후 열릴 쿠란 퀴즈 및 암송대회에서 1등을 하면 자전거를 사고도 남는 상금 1,000리얄 (약 30만원)을 준다는 사실을 알고 우승을 노리게 되는데...


와즈다는 2012년 8월 31일 베니스 영화제를 통해 첫 선을 보인 이후 다수의 국제영화제에 경쟁부문에 출품되거나 초청작으로 선정되는 등 세계 영화계가 이 영화에 대한 깊은 관심을 보여왔습니다. 작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폐막작으로 선정되어 국내에서도 상영된 바 있고, 아쉽게 최종 후보에는 선정되지 못했지만 올해 아카데미상 외국어 영화부문 후보에 오르기 위해 사우디 역사상 처음으로 출품된 바 있습니다. 세계 영화계는 자전거를 타고 싶은 한 소녀의 노력기에 왜 관심을 보여줬을까요? 



2. 사우디의 영화사업과 와즈다의 의의

사우디는 현재 극장이 없는 유일한 나라입니다. 과거에는 극장이 있었지만, 1979년 보수적인 종교세력들이 자행한 2주간의 그랜드 모스크 점령사건 (11월 20일~12월 4일)을 겪은 이후 이들을 달래기 위해 보수화되는 과정에서 성업 중이던 극장은 문을 닫았습니다. 최근 들어 간간히 영화제가 조촐하게 열린다는 소식이 들리긴 해도 여전히 극장은 다시 문을 열지 못하고 있지만, 영화를 보고 싶어하는 사우디인들은 위성방송이나 DVD, 또는 블루레이 등의 2차 매체로 아쉬움을 달래고 있으며, 집에서 즐기는 걸로도 만족하는 못하는 영화팬들은 매년 수십만명씩 극장에서 영화를 보기 위해 인근 나라로 여행을 떠나기까지 할 정도입니다. 심지어 이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까지 나온 바 있으니 그 관심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겠죠. ([문화] 영화관람을 위한 탈출: 사우디의 영화관 금지가 이웃국가의 관광사업에 미치는 영향 참조)


이러다보니 억만장자 알왈리드 빈 탈랄 왕자도 로타나 필름 (와즈다의 사우디측 제작사이기도 함)이라는 엔터테인먼트사를 운영하고 있기는 하지만, 사우디의 영화산업계는 여전히 작고, 시작단계입니다. 그나마 알려진 것은 2004년 이후로 제작된 열편 남짓한 다큐멘터리 영화와 와즈다를 포함한 두 편의 극영화가 전부입니다. 나름 많은 제작비가 투입된 사우디 최초의 극영화는 역시 로타나 필름이 제작해서 2006년에 나온 "케이팔 할 (Keif al-Hal?)"이지만, 팔레스타인 감독이 연출을 맡아 UAE에서 촬영했기에 사우디 자본이 투입되었을 뿐 사우디 영화라고 하기엔 부족한 면이 있었습니다. 힌드 무함마드라는 사상 첫 사우디 여배우가 출연한 작품이라는 의미를 뺀다면요. 


하지만, 하이파 알 만수르 감독의 와즈다는 비록 독일 제작사 라조 필름 (우리에게도 알려진 "파라다이스 나우" "바샤르와 왈츠를"의 제작사)의 제작지원을 받았지만, 사우디 감독에 의한, 사우디 배우가 주요 배역으로 촬영하는, 무엇보다 리야드에서 전체 촬영을 마친 첫 영화라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습니다. 영화촬영의 많은 제약 때문에 헐리웃 영화 조차 사우디에서 부분 촬영한 작품들은 몇 편 있지만, 전체 촬영을 마친 영화는 없었거든요. 심지어 사우디에서 일어난 자살 폭탄테러를 다룬 영화 <킹덤> 조차 실제 촬영은 사우디에서 하질 않았으니까요. ([영화] The Kingdom, 왕국에서 피의 악순환을 이야기하다... 참조) 인프라와 노하우가 없었던 만큼 오랜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는 건 당연한 이야기이겠지요. 무엇보다 이 프로젝트를 이끈 감독이 사우디 여성이라는 점에서 더욱 큰 주목을 받았을테구요. 이 영화는 와즈다의 자전거를 사기 위한 고군분투기이면서, 동시에 영화를 찍기 위한 하이파 알 만수르 감독의 고군분투기이기도 합니다.




3. 리뷰

개인적으로 리야드는 며칠 안 가봤지만, 사우디 내에 가장 보수적인 촌동네 지역에서부터 나름 가장 자유로운 대도시에 이르기까지 여러 지역에서 살아봤던 저로서는 익숙한 풍경 속에 펼쳐지는 낯선 여성들의 이야기였기에 더욱 흥미롭게 볼 수 있었습니다. 남녀가 유별한 나라이니만큼 혼자 생활하던 사우디 생활에서 사우디 여성을 접할 기회는 거의 없었으니까요.


이 영화는 자전거를 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와즈다의 노력담을 중심으로 98분의 상영시간 동안 스치듯 지나가는 소소한 에피소드들 속에 오늘날 사우디 사회의 모습을 과잉되지 않고 담담하게 보여줍니다. 재기발랄하고 진취적인 (나쁘게 말하면 되바라진) 딸, 전통적 가부장 제도 하의 아들 선호사상, 고부갈등 속에 중심 못잡는 남편, 자신이 못다 이룬 꿈을 자녀가 이루기를 기대하는 어머니 등은 우리에게도 전혀 낯설지 않은 모습이기에 사우디인들의 삶의 모습도 우리네와 비슷한 면이 많아 공감을 자아냅니다. 요즘 젊은 세대들보다는 어머니, 할머니 세대들에게 더 와닿을 부분이지만요. 그 외에도 종교경찰의 영향력, 씨족간 갈등, 여성들의 이동권 제한, 여러 제약 속에서도 여성이고 싶은 선생님과 학생들, 필요악으로 존재하는 불법체류 외국인의 모습 등은 여전히 사우디 사회 속에서 남아있는, 사우디인들만이 공감할 수 있는 요소들이 많이 담겨있습니다.


첫 극영화 연출작이면서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생각 외로 잘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같은 초기 걸프영화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 UAE 영화 로얄 러브나 오만 영화 아실에 비하면 백배 나은 완성도를 보여준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영리한 점은 한 소녀의 고군분투기라는 성장담에 잘 어울리도록 너무 진지하지 않으면서도 사회고발성 영화나 종교적인 영화로 보이지 않겠끔 사우디 가정에 대한 이야기와 종교적인 이야기를 자연스레 풀어냈다는 것입니다. 이 영화에 종교적인 요소가 충분히 담겨있음음 보여주는 것이 바로 와즈다의 쿠란 암송대회 참가입니다.


(책에 빨간색으로 쓰여진 것은 "알라"를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이 판본에는 알라와 그를 지칭하는 99개의 이름을 빨간색으로 강조한 것이 특징이다.)


5주 동안 와즈다가 암송해야 하는 쿠란 1~5장의 분량은 윗 사진 속 쿠란 판본으로는 106페이지에 해당하는 방대한 분량입니다. 책 106페이지를 그저 통째로 암기하는 것 자체도 부담스러운 분량인데, 이뿐만 아니라 몇 장 몇 절을 콕 찝어주면 거기서부터 암송이 가능해야만하고 정확한 발음으로 운율과 리듬감을 살려 암송할 수 있어야 하며, 이와 관련된 퀴즈에 답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춰야만 하니 5주라는 시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게다가 와즈다처럼 갑자기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말이죠. 이 영화는 지나치게 종교적인 주제로 빠지지 않도록 와즈다가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간간히 보여주기만 할 뿐 노력하는 모습을 자세히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그 노력의 결실이 어떻게 나타나는지만 보여줄 뿐이죠. 행동과 실천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이슬람이 제일 강조하는 요소이면서 동시에 그녀의 성취를 종교적으로도 충분히 납득시킬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주기에 쿠란 암송대회는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영화적 장치로써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특히 2010년대 이후 여성들에게 걸려있던 제약을 하나둘씩 풀어나가면서 사우디 여성들의 권리가 신장되고 사회진출의 길이 넓어지고 있지만, 외부에서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내부에서 더 큰 변화를 원하는 여성계의 바램보다는 늦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이는 사우디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일련의 개혁정책이 영화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사회 시스템을 크게 자극하지 않고 변화해가는 길을 모색해 나가기 때문입니다. 보수적인 이슬람적 가치관을 정부의 정통성으로 내세운 사우디 정부의 한계상 일련의 개혁정책 역시 해석과 유추를 통해 종교계를 납득시킬 수 있는 명분과 논리를 준비해야되니까요.



와즈다가 세계적인 관심을 모은 이후 사우디 정부는 제한적이지만 여성들의 자전거 및 사륜차 탑승을 제한하던 규정을 금지한지 23년만에 해제했고 ([사회] 여성운전허용의 신호탄? 공공장소에서 사우디 여성의 자전거, 사륜차 사용을 허용하기로! 참조) 단계적으로 여성들의 체육활동의 기회를 넓히기 시작한 끝에 2주 전에는 국, 공립 교육기관에서도 여학생들에게 체육 교육을 시켜도 된다는 결정이 내려지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완화 과정에서 프린세스 누라 여대의 여대생들에게 체육을 가르치기 위해 국내 체육교원들이 파견되어 근무하는 중이기도 합니다.


와즈다에게도 넓어진 세계만큼 새로운 도전이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첫 극영화 연출작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던 하이파 알 만수르 감독은 물론,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갈수록 넓어지고 있는 사우디 여성계 역시 새로운 도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회의 선입견을 이겨내면서 그 도전을 극복하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을 해나가겠죠.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 장면은 인상적이었습니다.



** 영화 스탭 중에는 한국인 스탭 한 분이 계시더군요. 

** 압둘아지즈를 아불라지즈로 단 자막은 정말 아쉬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