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 이야기/여러 생각들...

[칼럼] 우리나라 외교는 특히 제3세계에서 중증에 걸려 있다.

둘뱅 2005. 12. 15. 13:18

   최근 우리나라가 대중동외교에 무관심하다는 모 신문의 기획기사가 연재되고 있습니다. 평소 아랍쪽을 다룰 때 보여주던 숭미, 친이스라엘적 성향의 논조와 이로 인해 아랍인들에 대해 부정적이다 못해 무식하고 피에 굶주린 넘들 정도로만 여기고 있는 그들의 주요 독자층을 생각해보면 의아한 일이기도 합니다만, 그만큼 무관심해왔던 것은 사실이고 그때 잠깐 반짝할 뿐, 같은 이야기가 되풀이되고 있는 현실이 아까울 뿐입니다.  

 

   작년 김선일씨가 죽고 얼마 후 미디어 DAUM에서 보도한 '지역외교의 현실' 기획특집 첫 기사 '제3세계 공관 근무자들, "우리는 떠날 사람"을 읽고 게시판에 글을 올려놨더니, 게시판에 쏟아진 네티즌의 의견들 중 하나로 소개가 되었던 글로 즉석에서 올렸던 글인만큼, 내용을 일부 추가했습니다...

 

   씁쓸한 것은 작년에 썼던 이 글의 논조나 최근 모 일보의 기획기사의 논조가 거의 비슷하단 것입니다...


 
   어학연수를 위해 요르단이란 나라에서 10개월간 체류한 적(1998년 1월~11월)이 있었다. 그 10개월간의 생활에서 느낀 것은 우리 대사관은 대국민 서비스를 위한 기관이 아니라, 하는 일도 없이 자국민들에게 군림하려 드는 골목대장 정도라는 것이었다. 일본 대사관이 하던 일을 생각해 보면 더 한심해보일 뿐이었으니까... 이를테면...


1. 국가 이미지 마켓팅 
  
중동권 애들 중 일본에 대해서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직간접적인 역사상의 관계가 없기도 하겠거니와 제품만 팔아제끼는 우리에 비해서 일본의 경우 그런 태도에서 몇단계 업그레이드하여 회사는 제품을 통해 브랜드를 홍보하고, 정부는 국가 이미지 자체를 홍보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학연수 과정 중 요르단 관광청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부존자원이 없는 요르단에서 관광수입은 주요한 외화벌이 수준의 하나이다. 정부 담당자가 이 관광수입을 극대화하기 위한 7가지 정도인가의 프로젝트를 설명해 주었는데, 이 중 5개 정도가 일본에서 자금지원을 받는 그런 성격의 프로젝트였다. 일본이 우리보다 살림살이 낫지 않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그 당시 일본도 우리처럼은 아니었지만 버블경제가 붕괴된 후 장기불황의 늪에서 허우적 거리던 그런 때였다.

   이렇게 정부 프로젝트에 자금을 지원하니 국영방송 편집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8월 14일 영어방송인 국영 요르단 2TV에서 히로시마, 나가사끼 원폭으로 피해입은 일본주민들의 상처를 보여주는 그런 영화를 틀어주더라... 일본영화인 만큼 당연히 일본이 우리나 중국에게 가했던 악행은 보여주지 않는다. 모르는 사람들에게 있어 일본은 미국의 핵공격을 직접 당한 피해국임을 홍보하는 거다. 모종의 동질감이랄까... 반미감정이 있는 사람들에게 크게 어필할 수 있는 요소가 아닐까? 이렇게 알고 믿는 사람들에게 일본의 만행 얘기해줘봤자 씨알도 안 먹힐꺼다.

   미디어를 통한 홍보 외에도 일본 대사관은 일본어를 공부하는 요르단 사람들을 상대로 한 스피치 대회의 후원을 맡는다. 1등 상품??? 2주간인가의 일본여행이다. 여러가지로 요르단사람들에게 일본이란 나란 가기 힘든 나라 중의 하나다. 막대한 항공, 교통비와 상대적으로 엄청난 물가 등등. (무엇보다 이를 감당할 수입이 없다...) 그러나 이 대회에서만 잘 하면, 2주동안 일본을 거의 무료로 체험할 수 있다. 항공료, 숙박료 등 주요비용 전액 일본정부 지원!!! 거기서 쓸 용돈만 챙겨가면 된다. 이러니 돌아와서도 일본에 대해 칭찬할 것은 뻔한 일이고, 구전에 의한 정보교류가 활발한 그들의 생리상 일본에 대한 우호적인 이미지가 확산되는 건 일도 아니다.

   정부가 이렇게 힘을 쏟는 동안 소니니 아이와니 파나소닉이니.. 회사들도 Made in Japan을 앞세운 좋은 제품으로 시장의 호응을 얻는다. 이렇게 하니 제품 브랜드와 일본이란 국가 브랜드는 긍정적으로 통일된 이미지로 각인될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 엘쥐, 삼성, 현대 이 정도만 알더라...(뭐.. 월드컵 땜시 축구로 더 유명해졌지만...) 그러나 한국이란 나라에 대해선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대사관에서 하는 일이 없으니 당연한 거겠지만... 심지어 너희는 미국의 속국아니냐, 그래서 북한을 더 좋아한다는 소리도 들어본 적이 있었다. 사실 요르단의 경우 6:4인가 7:3 정도로 순수 요르단인들보다 팔레스타인 이주민들의 비중이 더 쎄다. 따라서 그들의 자산을 강탈하고 내쫓은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다.
 
 
2. 대국민 서비스 부족
  
늘상 지적되는 얘기지만,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대사관 사람들은 자국민을 자기 구두에 붙은 껌 만큼도 보지 않는다. 그나마 대기업 주재원들은 모르겠지만, 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회적 약자에 해당하는 학생이나 여행객 등에게는 말할 나위도 없다. 여학생들을 상대로 껄떡대는 넘들이 있질 않나, 하는 일에 비해 과분한 우대조치를 받으니 배때기가 부를 수 밖에 없겠지. 경제적인 것은 제하고라도 해외에서 근무하니 수고한다며 그 자식들에게 주어지는 대학입학의 특혜. 이 것 자체도 모순이라고 생각한다. 어지간한 수준의 나라라면 영어를 사용할 수 있는 인터내셔널 스쿨들이 있다... 교육비가 상대적으로 싼 필리핀계 학교부터 비싼 미국계 학교까지. 어려서부터 이런 환경에서 교육을 받을 경우 대학에 대한 눈높이는 국내대학 진학보다는 외국대학 진학에 더 관심을 두는 경우가 많다. 한국인 학교가 생기고 한국 대학에 진학하게 되는 건 보통의 경우 그 자식들 보다는 부모의 욕심으로 인한 경우가 많은데 한국 대학에 입학하기로 결정했다면, 상대적으로 공부에 소홀해 지는 경향이 있다. 쉽게 들어갈 수 있는데 왜 머리싸매고 공부해야 하는지 그 현실을 이해 못하는 거지... 아버지가 외교관이지 그 자식이 외교관이 아닐텐데 이런 혜택이 왜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차라리 그럴 바엔 외국대학에 진학하는 게 더 도움되는 일일 꺼라 생각한다. (사실 외국계 학교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을 보면, 감정표현 등에 있어서 우리 교육이 얼마나 획일적이고 기계적인가를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얘기가 잠시 샜는데, 내가 있던 98년 2월에 요르단의 양대 이웃국가인 이라크와 이스라엘의 관계가 험악한 적이 있었다. 지리적 상황을 쉽게 설명하자면, 두 나라가 전쟁을 벌일 경우 중간에 있는 요르단은 양국가를 오고다니는 미사일 구경하다 파편맞는, 한마디로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그런 곳이다... (그래서 선왕 후세인은 이를 피하고자 줄타기 외교의 진수를 보여준 바가 있다.) 진짜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일본 대사관은 학생들까지 개별적으로 다 불러 비상 연락망 짜고, 비상시 행동강령 이런거 주지시키더라... 울나라?? 걍 학생대표 부르고 생색내는 걸로 끝내더군... 나중에서야 뭐라더라? 그럴 일이 안 생길 줄 알고 안 불렀다고??? 이런 일에 비해서 주일(금요일)에 한인 교회에 안 나온다는 닥달은 진짜 열심히 하더라. 대사관이 대국민 서비스를 위한 곳인지, 선교를 위한 곳인지...


3. 시스템의 문제???
  
이러한 일들이 생기는 건, 무엇보다 로테이션으로 돌리는 외통부 시스템의 문제다. 공립학교 선생 뺑뺑이 돌리듯이 몇 년만 지내면 다른 지역으로 보내버리니 외교관 중 지역 전문가라 불릴만한 사람도 없고 재임기간 중 이력에 누가될 일이 생기지 않을까 몸사리는게 전부일 뿐, 그런 넘들에게 기대할 것이 뭐가 있을까...

   이 시스템의 근본적인 문제는 바로 학벌에 있지않나 싶다. 이는 바로 서울대 우월주의를 말한다. 10여년 전인가 외무고시 체계가 바뀌면서 제2외국어에서 독/불/중/서어를 제외한 나머지 언어들이 시험과목에서 일제히 빠져버린 일이 있었다. 나중에 일어가 추가되긴 했지만... 시험과목에 있는 언어들은 "서울대에서 가르치는 언어", 빠진 언어들의 공통점은 바로 "서울대에서 가르치지 않는 언어"라는 것이다... 웃기지 않나? 서울대에서 가르치지 않는 언어는 언어로 인정못하겠다는거... 그만큼 타학교 출신들의 진입을 막겠다는 얘기다. 특히 외시에서 빠진 언어, 소위 특수어를 다 가르치던 외대가 상대적으로 영향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을 거다.

   영어가 국제 공용어이긴 해도 영어만 해서는 비영어권 국가에서 지역전문가가 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나라만 해도 영어로 된 정보보다 한국어로 된 정보가 더 많은걸... 지역어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영어 능통자보다 더 많은 정보를 취득할 수 있다는 얘기는 상식이다. 그만큼 인맥쌓기에도 유리하고... 전문가가 있냐없냐는 요근래 몇 건의 이라크 납치사건을 봐도 잘 알 수 있지 않은가... 제대로 된 인맥을 갖춘 나라들은 자국민을 빼오고, 알지도 못하면서 허세만 부리던 울나라의 경우엔 바로 엿먹었고... 이런 일이 생기는 건 바로 영어만 할 줄 알고, 그 지역의 문화에대해선 무지한 사람들을 뽑아 돌리기 때문이다. 소위 3세계권 국가들의 경우 그 지역어를 전공으로 하는 사람이라도 관심갖기가 힘든 법인데, 하물며 그 마저도 모르는 사람들이 관심갖고 공부한다는 건 불가능하지 않을까??? 특히, 국민 대다수가 미국과 서유럽이 세계의 전부로 알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는 더욱 심각한 문제고..

   개인적으로 중동지역 정보사이트 둘라뱅크(
http://dullahbank.com.ne.kr)를 운영하고 있다... 뭐.. 대단한 수준의 자료는 아닐지만, 중동지역 외교관들 중 이 사이트 정도의 배경지식을 갖고 있는 외교관도 그다지 없으리라 생각한다... 중동지역에 몇년씩 있으면서도 말이다...

   말이 길어졌는데, 이런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 한 우리나라 외교의 미래는 없다고 단연코 말할 수 있다... 토착화된 외교도 없고, 지역 전문가도 나올 수 없으며, 대국민 서비스는 말할 것도 없으니... 고시를 통해서만 인력을 뽑아서 로테이션으로 돌리는 현행 제도의 개혁이 절실하다...
 

   그러나 달라진건 아무것도 없다... 비슷한 유형의 사건과 기사만 되풀이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