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 이야기/여러 생각들...

[칼럼] 아랍사람들에게 저녁초대 받을 때...

둘뱅 2005. 12. 18. 00:58

   대부분의 아랍국가들은 낮에는 꾀죄죄할 정도로 지저분해 보이지만 밤에는 야광 가면으로 그 꾀죄죄한 모습을 감춘 듯 휘황찬란하게 변한답니다... 거의 모든 중요한 활동들은 밤에 많이들 이루어지니까요... 저녁 5~6시를 전후해서 칼같이 문을 닫는 레바논의 상점가들과 달리 대부분의 국가들에 있는 상점들은 늦게까지 문을 열곤 한답니다... 그 중에서 가장 늦게 문을 닫는 가게들이 어떤 가게들일까요??? 바로 먹고 마시는 식당이나 카페들입니다... 어지간한 곳들은 특히 주말에 자정 너머 새벽 2시까지 영업들을 하곤 하거든요... 얼마전 주말 저녁에 관계를 맺고있는 장비업자의 저녁 초대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자정쯤 되니까 식당 앞의 노천 카페에 젊은이들로 가득차더군요...(다 우중충하게 생긴 놈들 뿐이긴 하지만... ^^) 그 전에는 텅텅비다 싶었는데 말이죠... 이번 이야기는 바로 밤 늦게 먹고 마시는 이야기, 즉 아랍인들의 저녁초대 관습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보통 아랍사람들이 저녁 초대를 할 때 7시쯤 오라는 얘기들을 많이 합니다. 이런 초대를 받으면 밥을 굶고 가는게 좋을까요? 아니면, 뭐라도 간단한 요기를 하고 가는게 좋을까요?? 어찌보면 어리석은 질문이긴 하지만, 생각해 봐야할 문제이기도 합니다. 왜냐구요??? 저녁 일찍 초대를 받는다고 해도 보통 식사를 하는 시간은 밤 10시에서 11시 사이거든요... 7시 초대를 받았다고 아무 것도 안 먹고 빈 속으로 갔다간 밥 나오기 전에 배고파서 혼쭐나기 십상이죠... 그럼 그 몇 시간동안 뭘 하느냐... 초대에 응한 사람들끼리 샤이(아랍식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꽃을 피운답니다... 그동안 못 나눴던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말이죠... 결혼식 초대를 받았다고 해도 마찬가지구요... 그리고, 저녁 초대에 응할 생각이라면 그날 저녁에 다른 일정을 잡지 않는게 좋답니다... 이러한 초대습관은 성질 급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답답하기 짝이 없는 일이긴 하지만, 이들이 전통적으로 사막에서 유목생활을 해왔던 사람들이란걸 생각해 본다면 전혀 이상할 일은 아니랍니다... 예부터의 관습이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거라 생각하면 좋겠죠...

   본론에 들어가기 앞서서 이들의 생활터전인 사막의 환경을 생각해 봅시다... 사막이란 환경은 얼핏 생각해보면 항상 뜨거울 것 같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랍니다. 물론 아무런 그늘도 없는 곳이라면야 더위가 장난이 아니겠지만 그늘 밑에선 선선한 편이고 저녁이나 밤이 되면 온도가 낮아져서 많이 서늘해지거든요... 뭐... 비라도 온다면 또 다르겠지만요... 이런 사막을 양떼를 몰며 다닌다던가, 대상 무리를 이끌면서 다닌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럼 여러분들은 어떨 때 다니겠습니까??? 뜨거운 낮? 아니면 서늘한 아침이나 저녁? 뭐.. 대답이야 뻔할 것 같은데... ^^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활동들은 주로 아침이나 저녁, 밤에 이루어지고 낮에는 대부분은 오침을 취하는 등 휴식시간을 보내곤 합니다... 그래서, 특히 사우디는 1시에서 4시 사이는 문을 닫는 가게들이 많은 편이죠... 그런 탓에 식사 초대라든가 사교활동이 주로 밤에 이루어지는 거구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낙타나 양떼들을 이끌고 사막을 다니는 대상이 되었다고 생각해 봅시다... 장거리 사막여행은 엄청난 체력과 인내력, 지구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짐을 될 수 있는 한 적게 가지고 가는 것이 상책입니다... 그럼 어떤 짐들이 필요할까요... 쉬거나 노숙할 때 필요한 천막이라던가 취사도구는 있어야 할꺼고.... 장기간 음식을 보관하기는 힘들테니 식기도 많이 들고다닐 필요도 없이 최소한의 먹거리만 준비하면 되겠죠... 그렇다보니 양을 이용한 요리가 중심이 되는건 당연한 일일 겁니다... 들고다닐 부식이 많지 않으니 상을 펼쳐서 갖은 반찬을 놓고 식사를 한다는 개념도 없을테고, 마실 물도 귀한 마당에 식기 씻느라 물을 낭비하긴 아까울테니 그냥 널따란 판에 밥 만들어서 손으로 같이 먹는 문화가 발달할 수 밖에 없겠죠... 그래서 아랍사람들은 양의 젖을 짜서 만든 우유와 대추나무 열매인 타무르를 완벽한 음식이라고 부른답니다. 갖고 다니기 쉽고 영양가도 만점이니 장거리 여행엔 제격이겠죠... 그리고 더운 곳에 오래있다보면 예상 외로 차가운 음료보다 따뜻한 차 한잔이 갈증을 없애는덴 적합하기 때문에 샤이라 불리는 차를 많이 마시게 된답니다... 

   어떤 분위기일지 대충 상상이 되나요? 그럼 사막을 여행하던 중에 아는 친구나 다른 일행들을 만났다고 생각해 봅시다... 여행을 하다가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인데 그냥 헤어지고 말까요??? 아니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새로운 소식을 접하고 정보를 나눌까요??? 뜨거운 태양 아래서 더워 죽겠는데 오랫동안 머물 수는 없을테니 시원한 밤에 여장을 풀고 휴식이나 취하면서 같이 저녁을 하게 될겁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인데 그냥 얘기만 나누다 헤어지기는 그럴테니 말이죠... 장기간 보관하며 갖고 다닐만한 음식이 없으니 짐이 정리되자 마자 요리를 준비해야겠죠... 가장 구하기 쉬운 재료인 양을 잡아서 요리를 준비하는데도 시간이 꽤나 걸린답니다... 알라께 기도를 드리고 양이 고통을 느끼지 않게 단칼에 목을 따서 피가 다 나올때까지 기다린 후, 가죽을 발라내는 과정을 거쳐야 하니까요.. 요리를 기다리는 동안 서로서로 둘러앉아 이런저런 얘기로 시간을 보내게 되겠죠... 특별히 같이 시간을 죽일 오락꺼리가 없으니까요... 뭐.. 여행하면서 겪었던 경험담이나, 자기가 들렀던 동네에서 들었던 각종 소문이나 뉴스꺼리, 자기 주변의 신변잡기적인 이야기들까지... 그래서 아랍사람들은 이야기만으로 시간 죽이기도 잘하고, 다양한 화제꺼리로 밤을 지새우며 이야기꽃을 피우곤 한답니다... 같은 얘기를 같은 표현으로 되풀이하기는 자기도 지겨울테니 수사법도 따라서 발전하게 돼구요... 다시 먹는 얘기로 돌아가서... 빈 입에 얘기만 나눌수는 없으니까 목도 축일겸 샤이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간을 보내게 될겁니다... 그렇게 몇시간 얘기하다 보면 저녁이 준비될테고, 저녁 먹고 나서는 못다했던 이야기로 밤을 지새우게 되겠죠... 그렇게 밤을 세우고 날씨가 뜨거울 때 쉬었다가 다시 길을 떠날테구요... 술을 마셔야만 얘기도 잘 나오고 밤새기도 쉬운 우리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차만 마시면서 맨정신으로 밤새 이야기를 나눈다는게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는데... 참고로 이슬람에서는 술을 비롯한 알콜류를 인간의 정신을 흐리게 한다해서 금기시하는게 이슬람이 태동할 당시 아라비아 반도의 자연환경을 고려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50도를 오르락내리락 하는 아주 뜨거운 날씨에 사막 한가운데서 술먹고 취해서 뻗는다던가, 알딸딸한 정신으로 사막 여행길을 떠난다면 사람이 어떻게 될까요?? 그러고도 멀쩡할 수 있을까요???

   이런 아랍사람들의 생활관습을 생각해본다면 저녁 초대한다고 사람을 일찍부터 불러내서는 정작 밥은 왜 늦게 주는지 어느정도 이해되지 않을까 싶네요... 여러 문화들 중 특히 음식문화는 그 사회의 생활여건을 반영하는 거울이라고도 합니다... 우리와 전혀 다른 음식문화를 별 거부감없이 이해하고 즐길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첫걸음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