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 이야기/여러 생각들...

[칼럼] 사우디제이션?

둘뱅 2005. 12. 19. 00:53

(Saudization을 성공리에 실현시킨 곳으로 알려진 국영 사우디 항공... 그러나 자국인 고용에만 신경쓴 나머지 그들의 미숙한 업무처리로 인해 발생하는 각종 부대비용이나 손실로 여행사나 관련 업계로부터 악명이 높다... 사우디항공사 홈페이지)
 


   사우디 있었을 때 스폰서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있는 비자 담당인 사우디 직원으로부터 축하할 만한 소식을 들었답니다... 득녀를 했거든요... 열 번째든가.. 열한번째 자식이라더군요... 당시(2002년) 그 직원의 나인 대략(사우디 사람들은 모든걸 히즈라력으로 계산하니까 정확하겐 모르겠지만...) 62입니다... 우리 같으면 손자손녀를 봐야 할 나이에 득녀라니...!!! 얼마전까지만 해도 한살짜리 막내아들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그 사이에 또 한건했더군요... 그래도 장성한 자식들이 직업을 갖고 있는 등 비교적 괜찮게 사는 편인 이 친구는 사우디인 아내 1명과 인도네시아인 아내를 하나 두고 있다더군요... 뭐... 젊은 세 번째 부인을 둘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만...(이 친구는 저한테도 10만 리얄(약 3천 5백 만원) 정도만 준비할 수 있으면, 피부 하얀 괜찮은 사우디 여자를 결혼 상대자로 소개해주겠다고 꼬드기는 사람이기도 하죠... 그리고 여기서 말뚝을 박으라는... 이곳에서 결혼할 때는 신랑이 신부 측에 지참금 명목으로 돈을 주는데, 듣기로는 피부색에 따라 가격차이가 있어서 백인은 10만 리얄, 흑인은 3~4만 리얄 정도 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얘길 시작하는 이유는 사우디가 안고 있는 하나의 고민인 인력난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섭니다...



   위에서 최근 득녀한 직원 얘기를 한 것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현재 사우디의 인구 증가율(사우디 국적을 갖고 있는...)은 전세계에서 최고로 높은 편에 속한다고 합니다... 연평균 4.5% 정도 된다고 하더군요... 석유가 부의 원천으로 등장하기 이전엔 사우디 사람들이 워낙 없어서 돈받고 시민권을 팔았던 때도 있었다는 얘기가 있는 거 보면 상당한 발전(?)을 이룬 셈이죠...(요즘은 외국인이 사우디 영주권을 취득하기 위해선 사우디 여자와 결혼해야만 한다고 하더군요...) 이러한 급속한 인구 증가율은 오일 쇼크 등을 겪으면서 사우디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한 80년대 이후에 집중되었다고 합니다... 그 결과로... 현재 사우디 전체 인구의 60%가 18세 이하, 80%가 40세 이하라고 하며 전체 인구의 60%나 되는 유소년층 중 52%가 여자라는 인구조사 센서스 결과가 나와있는 상태라고 합니다... 젊은 여자들이 더 많다는 건, 그만큼 더 많은 아기들이 태어날 수 있으리란 예상을 할 수 있는 거죠... 교육의 혜택을 받고 자란 젊은층들은 다소 생각이 다른 것 같습니다만, 아직도 상당수의 사람들에겐 다산이 하나의 미덕으로 여겨지고 있으니까요...(뭐...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때만 해도 여덟, 아홉 자식 보는 게 예사였다는 걸 생각해보면...^^) 그런데... 문제는... 사우디 내에 이러한 넘쳐나는 젊은 인력들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이 한계가 있다는데 있습니다... 학교든, 직장이든 말이죠...

   예전까지의 문제는 이들을 교육시키고 문맹률을 낮추는 것이었습니다... 얼마전 파하드 국왕의 즉위 20주년을 기념하는 홍보 책자(신문에 껴주더군요...)에 의하면 최근 10여년간 문맹퇴치에 애쓴 결과로 문맹률을 10% 이하로 낮추고, 특히 여성들의 문맹률을 많이 낮춰 UNESCO에서 “문맹 퇴치의 날”을 제정했을 때 그 공로를 인정받아 상을 받았다고 합니다...(역설적으로 그 전엔 교육이란 것 자체에 관심이 없었단 얘기가 되겠죠...) 현 국왕이 사우디 역사상 최초의 교육부 장관 출신이라 젊은층을 교육시키는데 지대한 관심과 함께 투자를 한다고 하더군요... 지금 있는 이 촌구석에서 사우디사람을 만나봐도 그런 점을 금방 느낄 수 있답니다... 자식을 갖고 있는 부모들(아저씨나 할아버지들...)만 봐도 아랍어를 쓰고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인데, 그 부모의 자식들은 쓰고 읽을 줄 알 뿐만 아니라 영어도 웬만큼 말할 수준은 되거든요... 그래서 서류를 처리할 때 자식들을 같이 데리고 다니는 부모들을 흔치않게 볼 수 있죠...

   그런데... 문맹률 퇴치 및 교육률을 높이는덴 괄목할만한 성과를 보였다고는 하지만, 이렇게들 시켜놓고 보니까 이들을 활용할 시설이 제한되어 있다는 문제와 만나게 됩니다... 인구가 2천만명이 넘는 나라에 대학이 7개 밖에 없으니, 고등교육을 받은 사우디 청소년들의 대학 진학률이 30% 이하고(예전에 합격 커트라인이 75%였다는데, 요즘은 95%를 맞고도 떨어지는 학생들이 생긴다고 하더군요...), 그런데다 전문직등 대부분의 일자리는 외국인들이 차지하고 있고, 그간 화이트 컬러직이나 매니저나 스폰서 역할을 맡는 것만 선호하다 보니... 실직률이 25~30%선에 달한다고 합니다...(공식 발표가 이 정도면 더 높다고 봐야겠죠...) 그런데다 유소년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여성들에겐 그나마 사회에 진출할 기회가 극히 제한되어 있어서 상당수의 여성들이 기껏 문맹을 벗어나 교육을 받아도 이를 활용하지 못하고 한 남성의 아내가 되어 자식을 낳고 집에서 소일하는 걸로 사회에서의 역할이 끝나는 상황이니까요...

   36년 동안 유지되어 온 사우디 노동법에는 한 회사의 직원 중 75% 이상을 사우디인으로 고용할 것을 규정하고 있지만... 그간 전문도 결여와 문맹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외국인들이 그 자리를 많이 차지하게 되었으니까요... 그래서 전체 취업인구의 사우디인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50%를 밑돌고 있는 게 현실이랍니다... 젊은 층들을 교육시키는 동안 사회를 돌리기 위해서라도 외국인들이 필요했을 테니까요... 그렇다보니... 지금에 와서는 기껏 교육시킨 젊은이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는 게 문제가 되는 거죠... 아무래도 외국인들이 차지해 온 전문직들을 사우디인으로 대체시키자니 숙련도와 일에 대한 이해도 및 경험이 떨어지고, 그렇다고 쉽고 단순한 일들을 시키자니 스폰서나 매니저, 정부 복지급여로 돈 벌어온 아버지를 보고자란 놈들이라 더럽고 힘들다고 더더욱 기피하는 게 현실이니까요... 

   이로 인해 요즘 사우디 정부가 던져 놓은 최대 화두가 바로 “SAUDIZATION"이랍니다... 이는 사우디의 장래 운명과도 연관되어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산업인구를 자국인화해서 외국인 근로자들의 송금으로 인한 연간 20억 달러의 손해를 줄이고, 그간 부의 원천이었던 석유화학자원이 오랫동안 이어지진 않을 것이니까, 이로부터 독립할 능력을 갖춰야만 한다는 현실적인 인식이 함께 어우러진 결과죠... 석유자원의 고갈과 함께 근 몇 년간 저유가 시대를 거치면서 기름만으로 먹고살긴 힘들겠다는 인식을 충분히 했을 테니까요... 이를 통해 젊은이들의 실직율을 낮추고 산업인구에서 자국인이 차지하는 비율을 50% 이상으로 높이자는 계획이랍니다... 이는 외국인 근로자들에 대한 각종 제한(이동자유 박탈 및 소유권 제한 등...)의 철폐와 각종 수입관세를 인하하는 조치와 함께 WTO에 가입하기 위해 노력하려는 일련의 조치로 보입니다... WTO 규정에도 산업인구 중 약 75% 정도를 자국인들이 차지해야 한다는 군요...

   따라서 우선적으로 비교적 단순한 분야인 야채시장과 귀금속 시장을 집중적으로 손대기 시작했답니다... 세계 제4위 시장이라는 귀금속 시장에 근무하는 직원들을 다 자국인으로 대체하고, 외국인들이 야채 시장도 자국인화하기 위해 시도하더군요... 자국인으로 대체하지 않은 시장에 대해선 물건 공급을 끊어 장사를 못하게 하는 초강경 조치와 함께 말이죠... 그리고 개인 회사들에게도 사우디인들을 고용하고 훈련시켜야 할 의무를 강화하고, 여러 전문학교나 교육시설을 두어 자국 청소년들을 훈련시키는 거죠... 그리고 그간 외국인들에게 폐쇄적이었던 관광사업에도 집중투자하고, 각종 투자조건을 완화하여 외국인 투자자들을 불러들이기 위해 노력하더군요...

   이러한 정부의 간절한 현실인식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정부의 복지혜택을 받고 있는 일반 국민들에겐 급박한 문제가 아닌 탓에 SAUDIZATION으로의 길은 그다지 쉽게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부모의 영향을 받아 어려움 없이 자란 청소년들은 여전히 즐기는 생활에 익숙해 있고, 어찌보면 공산주의와 비슷한 현 사우디 경제 시스템 상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겠다는 의식을 갖기가 힘든 것도 사실이구요... 외국인 노동자를 자국인으로 대체한다고 해도 단순한 일 외에 핵심적인 전문직을 대체하기까진 엄청난 시간이 소요될테니까요... 자국 청소년들이 어느 정도 그 일을 소화할 정도가 숙련이 되었을 정도면, 외국인들은 다른 최신 기술의 전문지식과 함께 사우디에 들어올 테니 말이죠... 그렇다고 지식 습득 정도가 빠르지 않은 사우디인들의 특성상(같은 아랍인들이라 해도 팔레스타인이나 요르단인들의 경우엔 교육열이 상당히 높거든요... 물론 그곳도 그 인력들을 소화해낼 자국내 인력시장이 없다는 문제를 갖고 있지만요...) 외국인들이 핵심기술 등을 다루는 다수의 전문직 시장을 차지하고 있는 현재 상황과 크게 달라지진 않을 거란 예측이 가능합니다... 또한, 그동안 엄청난 권한과 혜택을 부여받아 방만하게 운영되어 온 사우디인 회사들이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본격적으로 개방되어 본격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을 때 과연 얼마만큼의 경쟁력을 가지고 이겨낼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이슬람 정신의 훼손을 최소한도로 줄이면서 서구가 중심인 오늘날의 산업사회의 흐름과 융합하여 적응해 나갈 수 있을지도...

   이러한 불확실한 현실과 전망 속에서도 과연 이들이 원하는 바대로 “SAUDIZATION"을 이룰 수 있는지 여부가 이들의 생존여부를 가늠하는 기준 중 하나가 될 것이란 점은 분명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