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8년 전 생전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갔던 곳이 바로 요르단이었습니다... 아랍어과에 입학했을 당시만 해도 아랍어라는게 뭔지도 몰랐던 것에 비하면 엄청난 발전이었죠... 아주 우연한 기회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 영향이 졸업 후인 지금까지도 미치고 있으니까요... 공항에 착륙할 때부터 놀라움의 연속이었습니다...
가장 황당했던건 간단한 아랍어 한마디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던 거였습니다...(뭐... 우리나라서 영어 십년 하고도 꿀먹은 벙어리되는 거 생각하면 별다를 것도 아니지만...) 이런 증세가 한달 반인가 계속되었었죠... 그 덕에 언어 연수원서 수강을 하면서 별종 취급도 받았었고...(말 한 마디도 뻥끗 못하는 키작은 동양놈 하나가 셤봤다 하면 5분도 안되서 문제 다 풀고 나가고, 항상 클래스에서 2, 3등 정도는 했었으니까요....) 그러다 어느 순간 귀가 뚫리더니 그다음 부터는 아랍어로 의사소통하는데 좀더 수월해지더군요... 아무래도 구어체 아랍어는 금방 익숙해지진 못했지만 말이죠... 서설이 좀 길었는데... 이번 이야기는 아랍어에 관한 겁니다...
아랍어는 문어체 아랍어인 [풋스하]와 구어체 아랍어인 [암미야]로 크게 나눌 수 있답니다. 보통 학교에서 배우는 아랍어이면서 신문이나 책, 각종 문서나 계약서 등에 쓰여지는 언어가 [풋스하]고, 실제 현지 사람들이 말로 하는 아랍어를 [암미야]라고 하죠... 쉽게 우리 국어로 생각한다면, [풋스하]는 우리말 초기의 [훈민정음]이나 [용비어천가]에서 쓰던 고어체, [암미야]는 통신체 등 우리가 요즘 실제로 쓰고 있는 말인 셈입니다... 다만, 아랍어는 우리가 쓰지 않는 고어체를 지금까지 읽고쓰고 있다는 게 틀릴 뿐이구요... 그런데, 아랍어를 익히는데 있어서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이 [풋스하]와 [암미야]가 비슷하면서도 상당히 차이가 많다는 점입니다... 보통 외국어의 문어체, 구어체 이상의 차이가 있거든요...
[풋스하]는 위에서도 말했듯이 [쿠란]에서 시작된 언어이기 때문에, 불합리한 점이 있다고 해도 동일한 하나의 문법체계로 이루어져 있답니다.. 그러나 [암미야]는 동네마다 상당히 틀리거든요... 단일민족으로 이루어진 우리나라 그 좁은 땅덩어리에서도 몇가지 사투리가 사용되는데, 그 몇백배 되는 땅덩어리에,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어우러진 곳에서 얼마나 많은 표현들이 있겠습니까??? (아랍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나라만 21개인데요...) 그래서 요르단 일대서 사용하는 말이 틀리고, 이집트(가장 유별난)에서 사용하는 말이 틀리고, 이곳 사우디에서 사용하는 말이 틀리거든요... 저 아프리카 쪽에서 쓰는 말이 또 틀리구요...
이렇게 [풋스하]가 [암미야]가 공존하는 아랍지역에서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이 쓰는 말은 바로 [암미야]랍니다... 엄청나게 어렵고 문법이 까다로운 [풋스하]에 비해서 훨씬 익히기 쉽거든요... 실제 아랍사람들 중에서 [풋스하]를 유창하게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은 한정되어 있답니다... 학교서 [풋스하]만 공부하다가 막상 현지에 와서는 사람들이 이 [암미야]로 물어보니까 처음에 더욱 당황스러웠던 거죠... 간단한 예를 들어 [니 이름이 뭐니?] 이 질문 하나만 예를 들어도 학교에선 “마아 스무카?”라고 배웠는데, 이걸 요르단 사람들은 이걸 “슈우 이스막?”, 사우디 사람들은 “에쉬 이스막?”, 이집트 사람들은 “이스막 에?”(참고로 이집트 암미야에선 모든 의문사가 문장 뒤에 붙습니다...)라고 물어보거든요... 이런 사소한 것 하나가 안 들리기 시작하니까 당황하게 되더군요... 우리가 영어처럼 말보다 문자를 먼저 익히기 시작해서 생긴 탓인데, 보통 아랍어를 모른 상태에서 이곳 생활을 하면 말을 빨리 습득하게 되더군요... 현지 경험이 있으신 분들 중에도 웬만한 의사표현은 아랍어로 하실 수 있는 분들이 있거든요... 그리고 저도 말로 할 때는 학교서 배웠던 표현을 거의 쓸 때가 없기도 하구요... 그래도 말만 할줄 아는 사람이 글 배우는 것보다, 글 아는 사람이 말 배우는게 속도는 더 빠르답니다...
이에 비해 위에서도 얘기했듯이 [풋스하]는 엄청나게 어렵습니당... 아랍애들도 못 쓰는 애들이 많거든요... 도심지도 아니고 이런 시골동네에선 더더욱 그렇구요... 심지어는 간단한 영수증도 쓰지 못할 정도... 사우디 오지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보면 열명 중 다섯 명 정도는 말하기만 할 줄 알고, 그 중 세 명 정도는 말하고 읽기만, 나머지 둘 정도가 말하고 읽고 쓸 정도였답니다... 교육열도 낮고 인프라도 갖춰지지 않았던 것이 큰 원인입니다만... 예전에 우리 회사서 근무했던 예멘인 포크레인 운전수는 자신이 아랍어를 읽고 쓰고 말할 수 있다는데 상당히 자부심을 갖고 있을 정도였거든요... (뭐... 워낙에 아랍어 서체 종류가 많아서 잘 알아보기 힘든 글도 많이 있는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요... 30개도 넘었던 서체가 많이 줄어서 열 몇가진가 남았다고 합니다...) 실례로 각종 임대 계약서에 따라 주인에게 돈을 지불해야 할 때, 주인이 돈 받으러 혼자오는 경우가 없었답니다... 아랍어로 영수증을 만들어줘도 읽지 못해 영수증을 번역할 사람을 대동하고 오는 경우가 많았죠... 아들이던, 친구던, 친척이던...
그나마 요르단에 있을 때는 [풋스하]로 말하면 신경써서 [풋스하]로 답해주는 사람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이곳에선... 거의 그렇지 않더군요... 뭐.. 요르단에 있을 때는 아랍어를 공부하는 사람들을 주로 상대했고, 여기서는 다양한 인간들을 만나는 탓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아랍어를 공부하지 않은 어지간한 외국 사람들은 [암미야]로 아랍사람들과 간단한 의사소통을 하곤 한답니다... 우리 회사에서 근무하던 필립핀 엔지니어들도 사우디 사람들 오면 적당히 대꾸해주고, 파키, 인도애들은 웬만큼 잘하는 편이구요... 밖에 나가서도 보면 많은 외국인들이 큰 불편없이 아랍어로 사우디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하곤 하죠... 그걸 생각해 보면 저같은 아랍어 하는 사람들이 필요없을 것 같기도 하지만... 당연히 필요할 때가 있죠...(그러니까 나와 있는 거겠지만요... ^^)
보통의 외국인들이 갖고 있는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 말만 되기 때문에 아랍어로 된 서류작업을 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비록 사우디조차도 큰 도시에서는 영어가 널리 쓰이고 있지만, 실제 중요한 서류들은 다 아랍어로 처리하거든요... 관공서 출입서류라던가, 진료 요청서 등 각종 편지, 하다 못해 수용가 리스트 같은 공식 자료를 만들 때도 영어와 아랍어를 병기할 것을 요구하니까요... 이런 것들은 생활하면서 꼭 만나게 되는 일이지만,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더군요... 그래서 사우디 사람들 조차도 아랍어를 글로 쓸줄 아는 외국인을 높게 평가해 주는 편이랍니다... 가끔 병원이나 교통 경찰청 등으로 가는 공문을 아랍어로 작성해서 보내곤 하는데, 보는 사람들마다 이걸 과연 누가 썼는지 궁금해하니까요... 그런 탓에 사우디 회사에서 외국인을 채용할 때는 아랍어를 쓸 줄 아는 사람한테 좀더 어드밴티지를 준다고 할 정도라는군요... 저도 그 덕에 아랍사람들을 업무적으로 상대할 때 조금 편하게 대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비록 잘 하는 아랍어는 아니지만 아랍사람들도 일단은 한수 접어주고 상대해 주니까요...
이래서 저는 얼떨결에 관심을 갖고 시작한 아랍어 공부였지만, 지금은 한번정도 공부해 볼만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답니다... 지금껏 전공을 놓지 않는 이유기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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