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사우디에서 외국인이 산다는 것...

 

(사우디에서 장기체류근무시에 필요한 체류허가증, 이까마. 필자의 이까마로 요즘은 입국비자가 바뀐 것처럼 전산처리화 되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수수료도 대폭 오르지 않았을까... 싶은데...)

  

"Foreigner is only foreigner in the Kingdom."

   이 말은 얼마전에 다른 프로젝트로 전출된 우리 스폰서 회사의 경리로 있던 이집션 친구가 남긴 말입니다. 이 짧은 한마디로 사우디에 살고있는 외국인들의 지위를 대변할 수 있답니다. 사우디 사회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면서도 스폰서 없이 개인 단독으로는 집이나 차도 구할 수 없는, 한낱 소모품 취급 밖에 받지 못하는 그런 처지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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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의 사우디는 우리 역사상의 국가로 보자면 발해와 같은 국가체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발해가 소수의 고구려인이 중국 변방의 오랑캐들을 다스렸던 것과 마찬가지죠. 소수의 사우디인이 다수의 외국인들을 지배하는 그런 체제랍니다. 어떤 조직을 보더라도 사우디 사람들이 실무에서 움직이는 일이 거의 없죠... 회사나 가게의 일부 관리직이나 각종 경찰들, 소수의 전문직들을 제외한 나머지 일들은 전부 외국인들의 몫입니다. 그래도 사우디 사람들이 살 수 있는 건 사우디 사람들의 경우에 한해서만은 실제로 일은 않해도 국가에서 어느 정도의 급여가 매달 지급되고, 최고 수준의 국영 병원까지도 무료로 진료받을 수 있는 등의 복지가 잘 갖추어져 있거든요... 어떤 종류의 집이던 휴대폰이던, 차량이던 마음대로 소유할 수 있고 스폰서가 될 자격을 갖춘 경우에는 외국인들을 들여오는 것만으로도 돈을 쉽게 벌 수가 있을 정도니까요... 그야말로 사우디는 “사우디 사람들의, 사우디 사람들에 의한, 사우디 사람만을 위한 국가”라고도 할 수 있죠. 

   그러나 외국사람들의 경우에는 모든 것에 제한을 받는 답니다. 사우디에 들어오고 나가는 것서부터 시작해서 말이죠... 방문 비자가 아닌 근로비자를 받을 경우엔 본국에서의 신체검사 등 준비해야할 서류와 절차가 꽤 복잡한 편인데, 그런 과정을 거쳐서 들어온 다음에는 “이까마”라고 하는 외국인 체류 거주증을 받기 위해 여권을 스폰서에 반납하고 신체검사를 처음부터 다시 받아야만 한다던지, 출국할 경우에도 스폰서의 동의를 얻어 여권을 돌려받아야만 하는 등의 절차를 밟아야만 하죠. Re-entry visa로 나가는 경우에야 상관이 없지만, Exit visa로 나갈 경우에는 경유지인 국내의 여러 국제공항에서 다른 곳(스폰서)으로 도망갈 것을 사전에 방지한다며 반드시 사우디 스폰서와 함께 출국수속을 밟고-본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전에 해당 외국인은 손에 여권과 비행기 티켓을 쥘 수도 없답니다. 여권과 직원들이 출국서류와 함께 여권과 티켓을 전달하죠...-이까마 말소 등의 후속 작업을 할 정도니까요... 살아가는 데 있어서도 여러 가지 제한과 부딪혀야 한답니다.

   일상 용품을 구하는데야 문제가 없지만, 스폰서의 동의 없이 재산증식 수단(집, 차량, 가게, 부동산, 휴대폰 따위 등)을 구하지 못하게 되어 있답니다. 구비 서류에 반드시 상공 회의소의 공증을 받은 스폰서 레터가 있어야 하거든요...(하다못해 운전면허를 취득하려고 해도...) 그렇지 않은 경우엔 사우디 사람 명의로 구입을 해야 할 정도... 2001년에 없어지긴 했지만, 스폰서 명의로 발행되는 여행 허가증이라는 게 있어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 시, 가령 경기도에서 다른 충청도나 경상도를 갈 때, 에는 이까마와 함께 반드시 갖고 있어야 했습니다. 검문에서도 체크할 뿐더러 호텔에서도 체크할 정도였으니까요...

   제한된 생활을 하는 외국인들이지만, 외국인들도 그들의 급이 있습니다...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는다던가, 가게에서 물건을 팔고 청소를 하는 밑바닥 일들은 주로 방글라데쉬 사람들이 많이 합니다. 기계를 고치고, 장비를 운용하며 병원의 의사나 간호사 등 어느 정도의 기술과 전문지식을 요하는 일은 주로 인도, 파키스탄, 필리핀 사람들이 하는 편입니다. 그리고 비슷한 부류의 다른 일들은 이집션들이 많이 하는 편이구요... 이런 식으로 급이 있는 만큼, 사우디 사람들의 인식이나 대우도 약간씩은 다르답니다...

    사우디 경찰들도 공개적으로 방글라데쉬, 인도, 필리핀, 한국 사람들은 꾸와이스(좋다는 뜻)한데, 파키, 이집션, 특히 파키들은 마피 꾸와이스(좋지 않다)라고 말할 정도니까요... 파키스탄 사람들은 워낙에 수도 많지만 사고도 많이 치는 편이라서 사우디 사람들 사이에서도 악명이 높은 편이랍니다... 이집션들은 쓰잘데기 없이 말만 많은 것으로 악명이 높구요... 한국 사람들 같은 경우에는 들어오는 사람들의 급이 비교적 높은 편이라서 그런지 대우가 그나마 괜찮은 편입니다... 제가 있는 이곳 같은 경우는 집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동네 경찰들까지도 찾아와서 전기 넣어달라고 요청한다던가, 그렇지 않으면 사고가 났을 경우에도 사고를 어느정도 무마시켜 주면서 그 대가로 전기를 빨리 공급해달라고 할 정도니까요...(사우디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들이 경찰들이거든요... 일반 경찰, 국경 경비대, 종교 경찰, 교통 경찰 등... 사우디 사람들도 경찰이 처벌할 때는 꼼짝 못하거든요... 평소에야 동네 이웃으로 친하게 지내더라도 말이죠...) 그러나, 파키 같은 경우엔 여차해서 경찰들 비위를 거슬리면 바로 유치장에 집어넣고 일을 해결하려고 들 정도...

   예전에 사고차량 보상여부 때문에 타이어 한 개 값을 놓고 파키스탄 정비사와 실랑이를 벌인 적이 있었답니다... 과속으로 달려오던 사우디 군인이 몰던 차량이 우리 임대 크레인을 보지 못하고 피하는 과정에서 타이어가 하나 작살난 적이 있었거든요... 처음에야 사우디 군인이 하도 기세게 달려들길래 그냥 타이어 값만 주고 끝낼 생각으로 정비소에서 타이어를 갈아주었죠... 그런데 중간에서 정황을 파악하던 경찰이 사우디 군인 과실이니 우리 측에서 보상해 줄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내리면서 문제가 시작됐었던 거죠... 나는 그러기에 정비사에게 영수증을 돌려주면서 돈을 달라고 요청했고, 정비사는 돈 뜯기기는 싫고 사우디 군인이 돈을 준다는 약속을 믿을 수가 없으니 돈을 못주겠다고 하면서부터 실갱이를 벌였던 거죠... 사우디 군인은 경찰의 판정에 기가 팍 죽어서 지금 당장은 돈이 없으니 경찰 밑에서 정비사에게 돈을 반드시 갚겠다는 증서를 주겠다고 하구요... 30분간 정비사와 실랑이를 벌였는데도 끝이 날 기미가 보이지 않더군요... 결과는??? 상황을 주시하던 경찰이 정비사를 경찰서로 불러놓고 돈을 돌려주라고 명령했는데도 정비사가 굴복하지 않자, 그자리에서 바로 유치장에 가둬놓더군요... 돈을 돌려주고 군인에게 서약서를 받기 전까지는 절대로 유치장에서 빼주지 않겠다는 한 마디와 함께... 그 기세좋던 정비사도 5분이 채 않되서 경찰의 명령을 따르고야 말았답니다... 

   이런 식의 체제가 오랫동안 이어져 온 탓인지 사우디 사람들 내부에서도 장래에 대한 걱정이 요즘들어 새삼스럽게 들기 시작한 모양입니다... 젊은 사람들 조차도 놀 줄만 알았지, 일 하는 거엔 관심이 없으니까요... 가장 큰 자산인 석유가 고갈되기만 해도 외국인이 없는 사우디엔 자생력이 없다는 현실적인 문제와 곧 만나게 될 것이란 걸 요즘에서야 실감하는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영어로 Saudization이라 불리우는, 사우디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주기 위한 정책을 강력하게 시행하기 시작했답니다... 그 첫단계로 방글라데쉬 및 동남아계 외국인들이 실질적으로 운영해 왔던 잡화상들을 폐쇄하기 시작했고, 귀금속점-사우디가 귀금속 거래에 있어서 세계 4위의 시장이라고 하더군요-에서의 외국인 근무 금지 조치가 7월 22일자로 시작되었으니까요... 상공 회의소 등을 통해 젊은층들을 교육시켜서 앞으로 국내의 노동시장에서 사우디 사람들의 비중을 크게 높이려는게 정부의 강력한 의지라고 합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지는 모르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가뜩이나 제한속에서 살고 있는 저소득 외국인들의 줄어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사우디를 떠난 이후 자국에 투자가 가능한 외국인들에겐 예전의 장벽을 많이 철폐해왔었습니다... 스폰서 없이도 워크비자의 발급을 용이하게 해준다던가, 그 외 여러가지 제한들을 없애왔죠... 그건 그들이 좋아서라기 보다는 WTO에 가입하기 위한 나름의 몸부림이기도 했습니다... 지난 10년간 여러 폐쇄적인 악소조항들로 인해 WTO 가입을 제한받았던 사우디는 몇년간의 집중적인 개선노력을 인정받아 얼마전인 12월 11일 149번째 국가로 가입을 승인받기에 이르렀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