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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담] 5대 0???- 98년 월드컵 때 이야기...

둘뱅 2005. 12. 21. 00:16

يا ســــــــــــــــلام(야!!! 쌀라~~~~~~~~~ㅁ!!!!!)

 

    이 표현은 안타까운 상황이 발생했을 때 그 아쉬움을 나타내기 위해 아랍인들이 순간적으로 내뱉는 말입니다. 이 표현을 아주 절실하고 실감나게 사용하는 상황을 자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니 그게 바로 축구 중계방송입니다. 특히 우리처럼 골 결정력이 부족한 팀들간의 경기를 보게 된다면 안타까운 기분을 어쩌지 못해서 이 말을 남발하는 캐스터의 목소리를 수 차례 들을 수 있을 정도 거든요… 헛발질을 했을 때, 드리블 잘 해나가다 공을 빼앗겼을 때, 멋진 플레이가 의도한 만큼의 효과를 보지 못했을 때 등등… 안타까운 순간은 수시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축구 아니겠습니까…? 왜 시작부터 이런 얘기를 꺼내냐구요?? 얼마 남지 않은 독일 월드컵 최종 예선을 앞두고 축구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섭니다.

    지구상에 많은 스포츠 종목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단기간에 전세계인의 시선을 끌 수 있는 유일한 종목이 바로 축구란 사실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을 것입니다. 특별한 도구 없이도 공과 뛰어 놀 마당만 있더라도 즐길 수 있고, 단일 종목 중 가장 많은 플레이어를 필요로 하며, 화려한 개인기와 더불어 조직력이 결합하여 많은 사람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빠뜨리게 하니까요… 이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들- 훌리건의 난동 같은 –은 자처하고라도, 일부 국가에선 빈곤층 아이들에게 엄청난 부를 가져다 줄 수 있는 희망의 깃발이 되기도 한다는 건 잘 아실 겁니다. 이런 등등의 이유로 월드컵은 단일 경기 종목으론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전세계적인 이벤트로 모든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이 축구란 종목은 아랍권에서도 단연 인기가 있는 종목입니다. 영자 신문 외에는 야구나 농구 소식을 접하기 힘든 아랍 신문에서도 축구 관련 소식은 항상 실리는 중요 기사거든요. 자국에 있는 클럽 선수들의 동향이나, UEFA컵 등 중요한 대회 경기 소식, 세계적인 플레이어의 트레이드 기사들은 항상 스포츠란에 실릴 정도니까요. 뭐.. 이런 걸 떠나서라도 특히 주말에 다니다 보면 넓은 빈 공간에 차들이 옹기종기 모여있고, 그 속에서 축구하며 노는 아이들을 이 지역에서도 종종 볼 수 있답니다. 우리 현장에서도 공사가 시작되기 전에는 1000리얄 내기 축구 경기를 하자고 동네 꼬마들이 종종 오곤 했었거든요…(뭐.. 어설픈 성인들보다 실력이 낫다곤 합니다만…) 이런 분위기 속에서 월드컵이 이곳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 건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중동권 최강으로 자부하며 90년대 이후 계속 본선에 진출하는 사우디(94년엔 16강까지 올라갔었다죠??)가 있지만, 진출국인 사우디 외에도 인근 국가들마저 월드컵 기간엔 들썩하더군요…지난 98년 프랑스 월드컵 때의 경험을 통해 이들의 월드컵에 대한 관심을 얘기해 보려고 합니다.

    지난 98년 월드컵은 저에게 있어서 처음으로 새벽에 졸린 눈을 비벼가며 보지 않아도 되었던 그런 대회였습니다. 그땐 제가 요르단에 있을 때였거든요.. 프랑스하고의 시차는 겨우 1시간 밖에 안 되었으니까… 하지만 공교롭게도 대회 기간 중에는 시리아와 레바논을 여행하고 있었답니다.

   요르단은 월드컵 출전과는 거리가 먼 나라 임에도 불구하고 개막 일주일 전부턴가 주요 신문에서 16면짜리 월드컵 관련 특집 증면호를 연일 내보냈었습니다… 그리고 개막하고 나서는 국영 채널 두 개를 모두 사용해 모든 경기를 중계해주더군요.. 본선에 몇 번씩 올라가는 우리나라에서도 전 경기를 다 틀어주었단 기억이 없는데 말이죠… 그건 다른 나라를 여행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답니다…

 

여하튼… 시리아의 팔미라에 있었을 때는 브라질과 모로코의 경기가 있었습니다. 묵고 있던 여관 1층의 식당에서 보고 있었는데 잘 싸우고도 미국 심판의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페널티킥을 허용해 모로코가 졌을 때, 현지 사람들과 언론들은 흥분했었답니다. 아랍 국가들이 월드컵 16강전에 진출하는 걸 막기 위한 미국측의 음모라고 주장하며 미국과 브라질은 사탄이라고까지 얘기하는 반응들이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또 며칠을 여행한 후 다시 다마스커스로 돌아왔을 때, 그 전날인가 사우디가 4대 0으로 졌다고 하더군요… 그 얘기를 듣고 밤거리를 나섰는데 도로에서 사우디 여행객들을 향해 큰 소리로 야유하는 시리아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미국에 대해 적대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그들에게 있어서 사우디 사람들이 곱게 보일 리가 없거든요… 갑자기 큰 돈을 벌어들인 졸부들 주제에 성지의 수호자임을 자청하면서 성지에 미군들이 주재할 수 있도록 방관하고 미국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그들의 정책에 반감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런 반감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 아랍권의 대표라며 자부하면서 나갔던 대회에 4대 0이란 엄청난 점수차(우리가 5대 0으로 지기 전까진…)로 깨졌으니 고놈들 쌤통이란 생각들을 하는 건 당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던 차에 보이는 사우디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야유와 조롱을 보냈던 것일 테구요…   

 

10일 가량의 시리아-레바논 여행을 마치고 온 다음 날인가에 그 치욕적인 경기가 있었답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친구를 환송한다고 맥주를 마시면서 경기를 보다가 열받아서 엄청 마셨었죠…(대략 맥주 40여병 먹었던 걸로 기억을…^^) 그러나… 문제는 술에서 깬 그 다음 날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시리아 사람들이 사우디 사람들에게 그런 야유를 보냈던 것처럼, 우리가 한국인이란 걸 아는 모든 사람들의 인사말이 “앗쌀라무 알라이쿰/마르하반” 이런 정상적인 인삿말들이 아니라 한결같이 “캄싸 씨프르(5대 0)”였거든요…ㅠㅠ 한 일주일 가량 이런 인사가 계속되더군요…그리고… 프랑스가 브라질을 이기고 우승컵을 차지했을 때, 아랍 사람들과 언론들은 마치 자기네들이 우승한 것처럼 좋아하더군요… 브라질이 미국심판의 편파적인 판정으로 형제국(이슬람을 믿는 모든 사람들은 한 형제라고 생각한답니다..)인 모로코를 꺾고 16강에 올랐던 팀이라는 탓이기도 했지만, 그날의 주인공이었던 지네딘 지단의 활약에 더욱 열광했던 것이었죠… 지단의 부모는 알제리 출신 이민자여서 알제리인의 피가 흐르거든요…(알제리도 아랍국가에 속한답니다..) 그래서 형제국가를 부당하게 이기고 결승까지 올라간 팀을 같은 피를 나눈 형제 지단의 활약으로 무찔렀다는…(무슨 소설도 아니고…) 그래서 경기 결과에 대해 심지어는 알라가 지단의 발을 통해 사탄을 심판한 것이다라는 반응들도 볼 수 있었답니다…(좀 웃기죠?? ^^)

   이러한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국제 축구계에서 아랍국가들의 입지는 우리 같은 동북 아시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좁은 편입니다. 어려서부터 축구를 즐겨하고 티비를 통해 수준 높은 경기를 보고 자라는 그네들이긴 하지만, 그런 뜨거운 관심을 실력으로 바꾸기에는 여건이 따라주질 못하거든요… 국가들마다 사정은 조금 다르겠지만, 축구를 주업으로 삼아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지 못하고 있답니다… 축구만 해서는 생계유지가 안 되니까요…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선 축구선수와 다른 직업을 병행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일정 레벨 이상으로 실력을 올리기에는 아무래도 무리가 있겠죠…(뭐.. 어려서부터 축구에만 전념하는 우리나라 선수들도 제대로 수준 높은 실력을 쌓지는 못하는데여…ㅠㅠ) 뭐… 이런저런 이유들로 인해 유럽이나 남미 강국과의 실력차를 좁히기는 쉽진 않을 겁니다…

   제가 알고 지내는 사우디 사람들이 모두 월드컵에 대해 얘기하고 연속으로 본선에 출전하는 자국 대표팀을 자랑스러워하고 있는 지금이지만, 사우디의 축구팬들에게 있어서 이번 월드컵은 어떤 대회보다도 우울한 대회가 될 것 같다고 합니다… 특히 그간 월드컵 관전을 위한 패키지 상품을 내놓아 반짝 특수를 누려왔던 여행업계는 말할 것도 없구요… 몇몇 여행사에서 관련 패키지 상품을 내놓았는데 호응이 예전만하지 못해서 울상을 짓는다더군요… 사우디 축구협회에서 서포터들을 위한 전용기 배치 계획이 없는 상황에서 일본까지의 비싼 경비를 감당하면서 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극소수라고 하니까요…(우리나라에서 했으면 좀 나았으려나…) 체감 경기가 좋았던 예전에야 가까운 유럽에서 했을 때는 그나마 응원하러 가는 팬들이 많았었는데, 상황이 악화된 지금에는 그런 경제적인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갈 엄두를 못 낸다는 거죠… 일단 신청은 해놓았는데, 몇 천불이나 되는 비용을 부담할 자신이 없어서 소식을 끊어버리는 사람들도 많다고 하니까요… 몇 백명을 모집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상품을 내놓았는데 고작 150명 정도 신청하더라는 업체도 있구요… 게다가 티비로 이를 즐기는 사람들에게도 우울하긴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생중계 시간이 한국-일본과의 시차 때문에 정오에서 오후 2시 사이쯤 되거든요… 보통 이 시간이면 학교나 회사의 근무시간이기 때문에 놀고 먹는 사람들 아니고서는 맘놓고 볼 수 없다는 군요… 더욱이 학생들의 경우엔 경기 시간이 시험을 보는 시간과 바로 맞물려있구요…(우리야 처음으로 그런 걱정없이 볼 수 있지만요… 기말셤 보는 대학생들만 제외하면…) 

 

2002년 월드컵 때 이야기는 다음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