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 이야기/아랍의 이모저모

[문화] 아랍인들의 음식 문화

둘뱅 2005. 12. 21. 00:47

   여러 번 이 블로그를 통해서 다른 문화를 이해하자는 취지의 글들을 종종 올리곤 했습니다. 음식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첫걸음이라는 말과 함께요... 예전 글들 중에 아랍인들에게 저녁 초대를 받을 때란 주제로 올렸던 글과도 많이 중복되겠지만, 이번 주제는 다시 음식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어떤 대형 아랍식 음식점의 내부 인테리어)
 

   음식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자연환경과 생활형태입니다. 초원지대냐, 산악지대냐, 사막지대냐 등의 환경적인 요인과 정주생활을 하느냐, 유목생활을 하느냐, 이민족과의 교류는 많았는가 등이 어떤 음식을 어떻게 먹느냐를 결정할 테니까요... 아무래도 정주생활을 하는 곳에선 상을 차려도 푸짐하게 차릴 것이고, 다양한 자연환경을 가진 곳에선 육류, 야채류, 어류, 조류 등을 포함한 풍부한 부산물을 이용하여 여러가지의 요리를 만들 수 있을테니까요... 프랑스 요리나 중국 요리가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요리에 속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생각해본다면, 이러한 이유들이 얼마나 중요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지 연상이 될 것입니다...

 

   여기서는 아랍의 음식문화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우선 아랍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어떤 것들이 있나요?? 사막, 양이나 낙타 등을 이끄는 유목민들... 이러한 이미지들은 바로 아랍의 음식문화를 다양하게 발전시키지 못하는 환경적, 생활형태적 요인들이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농작물이 거의 자라지 않는 사막에서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만들 것이며, 한 곳에 있지 못하고 떠도는 생활 속에서 다양한 찬거리들을 만들 수 있을까요??? (제가 있었던 사우디 지잔 지역은 바다를 끼고 있어서 리야드 같은 다른 내륙 지역보다 그나마 다양한 요리를 먹을 수 있긴 합니다만...)

 

   그런 탓인지 딱히 사우디하면 사우디, 요르단하면 요르단을 대표하는 요리는 그다지 많지 않은 편입니다. 그나마 있다고 볼 수 있는 요리들도 주로 그들의 생계수단이었던 양을 이용하는 것들이죠... 사우디 남부에서 유명한 만디나 염소고기 숯불구이(이름은 잘 모르겠는데...)라던가, 요르단의 만사프 등이 대표적인 요리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탓에 막상 여행 가이드 북을 보더라도 이들 지역의 전통 레스토랑이라며 소개하는 곳이 많지는 않습니다. 심지어 걸프 지역의 가이드북엔 먹거리에 대해서 파키스탄이나 인도식당, 또는 필리핀 식당을 같이 얘기할 정도니까요... 그나마 전통 아랍식당에 대해 얘기가 나온다면 주로 레바논식 식당을 얘기하곤 합니다. 

 

 

(레바논 음식을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다양한 전채요리, Mezze)


   레바논 식당은 먹거리의 종류가 다양하지 않은 아랍지역에서 풍부한 요리들을 맛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기도 합니다. 특히, Mezze라 불리우는 최대 30여 가지가 넘는 전채가 유명하죠...(그래서 제대로 먹을려면 좀 비쌉니다...) 저도 요르단에 있을 때 딱 한 번 먹어본 적이 있었는데, 상에 푸짐하게 먹을 것들이 올라오더군요...(뭐... 그것들이 다 한국사람 입맛에 맞지는 않습니다만...) 이는 레바논이 중동지역 국가들 중에서 특이한 자연환경과 역사적인 배경을 가진 곳이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자연환경을 놓고 보자면 비록 땅덩어리 자체로는 우리나라-남한-땅의 1/8 밖에 안되지만, 국토를 가로지르는 3000m 대의 레바논 산맥(4월까지 스키를 탈 수 있다고 그러죠...)을 기준으로 서쪽과 동쪽이 판이하거든요... 서쪽은 바로 맞닿아 있는 지중해와 어우러진 녹색의 지대가, 동쪽은 다른 아랍국가들처럼 사막지대가 펼쳐지기 때문에 상이한 자연환경과 어우러져 정착생활과 유목생활이 공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양한 먹거리들이 나올 수 있었고, 지정학적인 위치로 인해 고대부터 근대까지 제국을 만들었던 정복자들이 빠지지 않고 점령하는 곳이 바로 레바논이었기 때문에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갖춘 세력들에 의해 다양한 요리가 발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현대에 이르러 기독교도와 무슬림들이 정치적 헤게모니를 잡기 위해 15년간이나 지리하게 계속되었던 레바논 내전(1975~90) 이전에는 중동의 파리라고 불릴 정도의 화려함을 지녔던 나라이기도 하니까요... 레바논 내전을 통해 기독교도와 무슬림이 정치적 분배에 따라 공존하고 있는 특이한 정치적 배경으로 인해 레바논은 아랍국가로 분류되면서도 다른 국가에 비해서는 상당히 이질적인 문화를 갖고 있습니다니다...(베이루트 시내 중심부는 거의 유럽풍일 정도니까요..) 이러한 다채로움이 레바논 요리를 아랍 요리를 대표하는 요리로 부르기에 손색이 없도록 만드는 요인이 될 것입니다.)

 

 

(다같이 둘러 앉아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는 사우디의 한 베두윈 가족)

 

   이러한 레바논과 달리 사막의 유목민이라는 열악한 자연&생활환경 속에서 나온 아랍의 음식문화는 빈약한 요리재료로 인해 음식도 음식이지만, 다같이 어우러져 먹는 것을 즐기는 사회적인 기능이 강한 편입니다... 물도 귀한 곳에서 유목생활을 하다보니 반찬을 많이 만들어 그릇수가 많아지거나 젓가락이나 숟가락 같은 도구를 이용하지 않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방식을 택할 수 밖에 없었을텐데, 특별한 오락거리가 없고 할 것이 없는 삭막한 사막 지역을 유랑하다가 오래간만에 다른 사람들을 만났을 때 할 수 있는 일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적당히 쉬면서 여행기간 중에 있었던 온갖 얘깃거리를 서로 나누면서 밤새 떠들며 피로를 푸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특별하게 상을 차리지 않고 넓적하게 앉을 수 있는 곳이면 어디서든지 앉아 먹는 습관을 가지고 있답니다...(한참 이 곳에서 업무적으로 병원 출입이 잦았을 때, 친했던 병원 연구실 사람들은 항상 근무시간 중에 한가한 사무실 바닥에 윗 사진처럼 상을 차리고는 퍼질러 앉아 아침을 먹더군요...) 음식 기다리면서 수다 떨고, 밥 먹으면서 얘기하고, 소화시키기 위해 시시콜콜한 얘기를 나누다 입가심으로 샤이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등의 일들 말이죠...(그래서 밤새 수다를 떤다는 의미의 단어도 있습니다만... 또한 같은 단어나 표현을 되풀이하는 단조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른 어떤 언어보다도 수사법이 발달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평균적으로 아랍어 단어 하나가 7개 정도(?)의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할 정도니... 공부하다라는 의미로 널리 쓰이는 동사(darasa)가 원래는 흔적을 제거하다, 타작하다 등의 의미로 쓰인 단어였다면 어느 정도로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을지 연상이 되시죠???) 
 

(전통적인 아랍인들의 차림상. 외국인 손님을 초대한 탓인지 포크 등이 올라와 있지만, 그네들끼리 먹을때는 그냥 손으로 먹는다. 밑에 깔린 하얀 것은 비닐종이. 카페트에 음식이 떨어지는 것을 막고, 바로 상을 치우기 위한 용도다.)


  

먹는다는 것 자체가 어떤 다른 문화보다도 사회적인 기능이 강했기 때문에 아랍 사람들의 식사시간은 한국인으로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긴 편입니다... 정식 초대는 한 대여섯시간 정도??? 보통 7시쯤 보자...고 약속하면 실제로 밥먹는 시간은 10시 이후가 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따라서 급히 먹고 치우는 우리들 입장에서는 한번 초대를 받으면 우리 딴에는 강인한 체력과 인내력을 필요로 한답니다... 물론, 그 시간 동안 먹고만 있을 수는 없으니 다양한 이야기 거리를 준비해두어야 할 테구요... 그런 탓인지 사우디의 예를 들자면 이곳에서 제법 그럴듯한 식당을 가보면 특별히 상이랄 것도 없고 덩그러니 카펫트를 깔아놓고 그 위에 기댈 수 있는 것들을 몇 개 놓은 것이 전부입니다... 편하게 기대어 앉아서 신나게 수다나 떨라는 의미겠죠... 그런 곳에서 음식을 시키면 우선 카펫이 더러워지지 않게 비닐을 밑에다 깔고 그 위에다 요리들을 올려놓습니다... 상이라고 해봤자 본 요리, 샐러드, 쿱즈(빵) 정도만 올려놓지만요...(참 간단하죠??? 여러가지 반찬을 올려놓고 먹어야 배불리 먹었다고 생각하는 우리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반찬은 비록 부실할지 몰라도 본 요리의 양이 많기 때문에, 먹다가 배부르면 떠들고, 그러다 먹는 과정을 몇번이고 되풀이하며 먹게 됩니다...

 
   아랍인들에게 초대받아 갔을 때, 설령 자신들은 부실하게 먹고 살아도 손님 초대 시에는 할 수 있는 한 최선의 성의를 보이는 그들의 정서상 대접받는 요리의 양이 지나치게 많아 낭비다 생각하긴 쉽습니다... 하지만, 남자 손님이 집안 식구들과 친하지 않는 이상 여자 가족들과 겸상을 하지 않고 한번 푸짐하게 만들어 놓으면 동네 주민들과 이를 나눠먹었던, 혹은 가난한 사람들이나 여행자에게 베푸는 것(자카트)을 미덕으로 알았던 이들의 풍습을 생각해 본다면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이 얘길 하다보니 저도 이집트의 룩소르에서 후루가다까지 가는 완행버스를 타고 가다 들렀던 휴게소에서 밥먹고 있던 버스기사가 자기 밥이 좀 많으니 같이 먹자며 저를 불러 같이 먹었던 기억이 새삼스레 나네요...(그때 행색이 좀 초라하긴 했었죠... 꾀죄죄했었으니까... 아마 그 운전기사는 저와 함께 밥을 나눠 먹으면서 아주 뿌듯한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아랍인들의 식문화는 서구적인 시각에서 본다면 아주 비합리적인 시대에 뒤떨어진 것일지도 모릅니다... 급속하게 변하는 산업 사회에서 밥 먹는데 여섯 시간이나 낭비하다니!!!라고 생각한다면 말이죠... 하지만, 지금은 많이 바뀌어 가고 있지만 이러한 문화가 여전히 혈연, 지연, 학연 등 인간적인 관계를 중시하는 감성적인 우리의 것과 어떤 면에선 유사한 점을 보여주는 하나의 요소라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우리 것이 소중하다라고 외치면서 정작 우리의 본모습은 서구적인 것 속에서 사라져 가고 있는 우리의 현실과는 비교되는 대조적인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지금은 이들도 우리가 조선왕조 말기에 개방과 쇄국 속에서 겪었던 정체성의 혼동기를 지금에서야 겪고 있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