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8월 1일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을 23년간 통치했던 제5대 국왕 파하드 이븐 압둘 아지즈 국왕의 서거를 보도하는 언론의 기사에서 많이 나왔던 말이 바로 "와하비즘"이었습니다... 세계의 손꼽히는 갑부 중 하나로 자신의 휴가비용에 600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였던 큰 손이었음에도 정작 죽으면서는 와하비즘에 따라 (당연히 있어야 할 것 같은) 커다란 무덤이나 봉분은 고사하고 관도 없이 묘지에 묻히고 말았으니까요.
(고 파하드 사우디 전국왕 생전의 모습(좌), 관도 없는 그의 시신을 묘지로 보내고 있는 사우디 왕자들(우))
이번 이야기, 주제는 와하비즘...이 아닌 이슬람의 법학파입니다. 왜 법학파가 주제냐고 물으신다면... 와하비파를 설명하기에 앞서 이를 포괄하는 광의의 개념으로 먼저 설명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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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순니와 시아
이슬람을 크게 두 부류로 나누면 순니와 시아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슬람 공동체 움마는 후계자를 정해놓지 않고 갑자기 사망한 무함마드의 사후 정치적 합의 하에 그 뒤를 이었던 4대 칼리프의 정통성 여부를 놓고 갈라지게 되었는데 순니파는 이들을 인정하는 세력이고, 시아파는 이를 부인하고 무함마드의 정통 후계자는 바로 그와 버금가는 특별한 영적 기능을 갖고 있던 그의 사위 알리였음을 주장하는 세력입니다. 결국 소수파였던 시아파는 알리의 아들 후세인이 중심이 되어 무아위야조에 반기를 들고 세력을 확장할 기회가 있었으나 단합이 되지 못했던 탓에 오히려 그들의 정신적 지도자이기도 했던 후세인이 무아위야조군에 참살당하는 비극(카르발라의 비극, 이슬람력 61년(서기 681년) 1월 10일)을 겪기까지 했습니다. 시아파는 이 카르발라의 비극을 통해 후세인을 예수와 같은 희생양으로 간주하여 순니 이슬람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구세주화 하여 최후의 최후에 다시 현세로 나타날 것임을 굳게 믿게 됩니다. 이러한 정치적인 갈등을 통해 순니파는 이슬람의 90% 정도를 차지하는 다수파가 되었고, 시아파는 10% 정도의 소수파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순니와 시아의 관계가 현대사에서 다시 조명을 받게된 것은 1979년 이란에서 친미성향의 팔레비 왕조를 타도하고 호메이니의 지도 하에 이란 이슬람공화국을 탄생시킨 이슬람 혁명부터 입니다. 이 사건은 결국 오늘날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슬람권 국가들 중에서 소수파인 시아파가 주로 모여있는 지역은 이란과 이라크로, 이란은 거의 전부, 이라크는 70% 정도를 차지합니다. 이라크에서는 이들에 비해 소수파였던 순니파 후세인 전대통령이 다수의 시아파(와 기타 등등...)를 통치하기 위해 철권통치를 해오고 있던 터라 이란 이슬람 정부가 자국내 시아파를 선동하여 반정부 쿠데타를 일으킬 것이라는 우려를 갖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우려와 내재해있던 영토문제를 핑계삼아 이란을 선제공격함으로써 8년간에 걸친 지리한 이란-이라크전이 벌어지게 되었으며, 이스라엘을 위해서라도 채찍과 당근으로 아랍권을 철저히 분열시켜 놓은 미국으로는 그 동안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도 있는 반미 이슬람 정부의 세력 및 영향력 확대를 막고자 경제적&군사적으로 이라크를 적극 지원하게 됩니다. (이이제이 전법이죠...)
그 다음은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미국의 지원에 기고만장했던 후세인이1990년대 들어 쿠웨이트 내 고토를 회복하는 것에는 미국도 눈감아주리라 오판하고 전쟁을 일으켰다가 오히려 날뛰는 후세인을 탄압하고자 미국이 적극 개입한 걸프전으로 확산되기에 이르렀으며, 10여년이 지나 테러와의 전쟁을 빙자하여 눈엣가시 같은 그를 제거하기 위한 미군의 이라크 침공은 종전을 선언했음에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후세인의 철권통치에 질려했던 다수의 시아파들은 미국의 침공을 환영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아무리 독재자로부터 민중을 구했다고 미국은 자화자찬하고 있지만, 역사적인 배경상 그 이유 때만은 아니죠..,) 지금의 이라크는 미국의 소원대로 다민족-다종교 국가인 이라크는 구심점을 잃고 분열과 혼란이 난무하는 상황으로 바뀌고야 말았습니다.
2. 순니 법학파
일반적으로 이슬람의 법학파라 하면 순니의 4대 법학파를 얘기합니다. 순니파에는 4개의 법학파가 있는데 하나피파, 한발리파, 말리키파, 샤피이파로 나뉩니다. 순니들 사이에서 4개의 법학파는 서로를 정통으로 인정하고 있으나 개개인은 하나의 학파만을 고수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1) 하나피파 (창시자: 아부 하니파/중앙 아시아, 인도, 파키스탄, 터키, 오스만 터키제국의 영토였던 대부분의 국가들)
쿠파와 바스라의 고대 이라크 학파들의 법률에 관한 견해를 결한합 것으로 아부 하니파의 가르침을 그의 제자 아부 유스프와 무함마드 앗 샤이바니가 발전시켰습니다. 과거 압바시아 왕조, 셀주크 왕조, 오스칸 터키 왕조의 이슬람 법해석의 공식체계가 되었습니다. 하나피파에서는 쿠란과 하디스를 일차적인 법원으로 인정하면서도 이에 명기된 선례가 없는 경우 개인적 의견을 용납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2) 한발리파 (창시자: 아흐메드 이븐 한발리/사우디 아라비아와 카타르)
순니파의 4대 법학파 가운데 가장 철저한 원리주의파입니다. 창시자 이븐 한발은 그의 스승인 샤피이의 법학이론을 전수받았지만 그와는 달리 법이론 정립에 있어 신적인 것에 완전히 의존할 것을 주장했으며, 하나피파와 달리 개인적 의견이나 유추는 주관적 사고에 의한 사악한 혁신이 개입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여 배타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결국, 모든 법리결정은 쿠란과 하디스의 어구에 따른 해석에만 의존한 것입니다. 이븐 한발이 창시할 당시 코란의 창조성이 통용되던 압바시야조에 반기를 들었다가 2년간의 옥고를 치뤘으나 14세기까지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널리 보급되었으며, 하나피 학파를 공식적으로 받아들인 오스만 터키제국 치하에서 극심한 배척을 받았으나, 18세기 보수적인 와하비즘의 등장과 함께 부활하여 20세기 들어 사우디 아라비아를 장악한 사우드 가문이 철저한 추종자가 되면서 사우디와 카타르의 공인 법학파가 되었습니다.
** 와하비파는 스스로를 "비 모방자", 혹은 "전통에 얽매이지 않는 자"라고 생각하여 기존 법학파와는 전혀 다르지만, 이븐 한발이 추구했던 대로 초기 이슬람의 관행에 충실하다는 공통점이 있어 한발리파의 일부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3) 말리키파 (창시자: 말리크 이븐 아나스/서부 아랍권과 이베리아 반도, 아프리카 국가들)
예언자의 순나를 중시한 학파로 샤피이파가 특정지역과 연고가 없는 법학파로 확립된 뒤, 메디나의 초기 법학파가 메카의 샤피이파를 흡수해가면서 말리크파로 발전하였다. 기본적으로는 개인적 의견에 대해서 배타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어 다른 법학파와의 마찰이 많은 편이지만, 한발리파에 비해서는 온건한 편에 속한다.
4) 샤피이 (창시자:무함마드 이븐 이드리스 앗샤피이/이집트, 이라크, 레바논, 팔레스타인, 예멘,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그리고 이집트와 중앙아시아 및 코카사스 일부 지역)
말리키파의 창시자 말리크 이븐 아나스의 제자 샤피이가 창설한 법학파로 독자적인 법률과 전통 관습의 조화로운 절충을 통한 합리적인 법학 이론의 토대를 닦았습니다. 하나피파와는 달리 유추의 적용에 명백한 규정과 한계를 두어 보수적인 메디나 학파인 말리키파와 비교적 개방적인 이라크 학파인 하나피파 사이의 중간자적인 입장에 있어 보다 개방적이고 융통성이 있습니다. 이러한 융통성에도 하디스의 선택에는 업격하고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여 샤피이파는 공인된 정통 하디스의 권위를 최상으로 격상시키는 데 크게 공헌하였습니다. 하지만, 너무나도 엄격한 적용탓에 이슬람의 역동성과 변화에 대한 적극적인 대처를 막았다는 비난을 받았으며,그는 또한 이를 통해 가장 보수적인 원리주의파 한발리파를 창시한 이븐 한발이 그의 제자이기도 합니다.
다음 호에는 와하비즘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참고문헌: [이슬람 사전] (김정위 편), 서울: 학문사, 2002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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