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 이야기/아랍의 이모저모

[문화] 이슬람의 종파 (02) 와하비즘, 사우디의 종교적 모태

둘뱅 2006. 1. 10. 11:04
  지난 호에 이어 예고했던 대로 와하비즘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아랍권을 중심으로 중동, 북아프리카, 동남 아시아 등 전세계로 널리 퍼진 이슬람은 다양한 지역과 그 역사 만큼이나 지난 호에서 얘기했던 종파적 차이 등으로 인해 보수적인 곳에서 개방적인 곳까지 다양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 중에서 가장 엄격하기로 유명한 곳이 바로 이슬람의 양대 성지 메카와 메디나가 있는 나라, 바로 사우디 아라비아입니다. 가장 청교도적인 태도를 보이며, 쌀라 시간 만큼은 예배를 하던 놀던 모든 가게의 문을 닫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죠... (심지어는 이를 감시하는 종교경찰 "무뚜와"가 있을 정도니까요...) 바로 이 사우디의 종교적 분파가 바로 와하비파입니다.

 

   와하비파는 사우디 아라비아와 카타르에서 지배적인 분파로 이 이름은 창시자인 무함마드 이븐 압둘 와하브 (1703~1787)의 이름에서 유래했습니다. 와하비즘은 한발리파를 창시한 이븐 한발과 신학자 이븐 타이미야의 전통에 따라 이슬람을 확고한 원리주의자적 입장에서 해석하기 때문에 한발리파에 속한다고 주장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일종의 변종에 속합니다. 이 와하비즘은 잘못한 사람들에게 태형을 가하고, 하루 다섯번의 쌀라 등 이슬람의 종교적 의무를 철저히 지키도록 강요하며, 비관용적인 자세로 샤리아에 입각한 엄격한 공중 도덕률을 강제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와하비즘은 꾸란과 순나로 회귀하고, 하나님의 단일성을 단언하는 타우히드 교리가 중심으로 예언자와 그의 교우 세대, 그리고 바로 그 뒤를 잇는 세대가 표현한 것 이외의 어떤 교리적 고찰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돌발적인 상황의 발생에서도 이즈마 (합의)를 배제하는, 융통성이라고는 없는 법적 접근방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언자의 교우들을 계승한 여러 세대에 걸친 관행에 거부감을 표시하였으며, 모든 비교주의나 수피로 대변되는 신비주의를 맹렬하게 부정하며 성인 숭배도 거부합니다. 따라서 예언자를 제외한 성인들의 묘나 다른 어떤 묘지도 찾아가지 않으며, 도움이나 보호를 받으려고 성인을 찾거나 은총을 바라는 것에도 강한 분노심을 표출합니다..또한 알라의 절대적 신성함과 유일함을 침해하지 않기 위해 어떤 사물이나 장소의 신성함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의견을 표출합니다.

 

 

1. 창시 배경

   창시자 무함마드 이븐 압둘 와하브가 처음 자신의 엄격한 교리를 설법했을 때 이미 많이 세속화된 사람들에게 강한 반발심을 자극하여 교리확장에 어려움을 겪어 방랑하게 됩니다. 그러다 나즈드 사막의 디리야라는 마을에서 지방 호족 중 하나이던 사우드가의 아미르 무함마드 이븐 사우드와 만나 그의 딸과 혼인하게 되면서 정치/군사와 종교의 강력한 연합체제를 구축하여 막강한 세력으로 성장하게 되어 결국에는 사우드가의 왕국 사우디 아라비아를 건국하게 됩니다.. 자신의 교리를 전파하고 싶었던 와하브와 일개 지방 호족으로 아라비아 반도를 장악하기 위해 강한 종교적 결속력을 필요로 했던 사우드가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이죠...

 

   세력확장 과정에서 무함마드 이븐 압둘 와하브는 그와 의견이 다른 모든 무슬림들을 이교와 변절자로 낙인찍는 고압적이고도 배타적인 자세를 통해 반대하는 이웃 부족들에게 그의 교리를 강요하기 위한 무력과 정치력 활용을 정당화 합니다. 이를 통해 샤리아적으로 불가능했던 다른 무슬림들에 맞서는 "성전(지하드)"의 선포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논리는 현재에까지 이어져 오늘날 원리주의 무장단체의 지도자인 빈 라덴이나 알 자르카위 등에게도 이어집니다.

 

 

2. 사우디 아라비아 왕국의 중심교리

   여러차례 흥망을 통해 사우디 아라비아 왕국을 세운 사우드가에는 자신들이 이슬람의 종주국임을 주장하기 위한 가장 결정적인 것이 없었습니다. 바로 정통성의 부재였습니다. 힘과 와하비즘을 앞세워 아라비아 반도를 장악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걸로 다른 지역의 부족, 혹은 나라들을 납득시키기는 어려운 일이었죠... 예언자 무함마드의 가문 하쉬미야가의 직계후손들은 오늘날의 요르단 땅에서 자리를 잡아 요르단 하쉬미야 왕국 (하쉬미야를 국명에도 내세우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힘은 없지만) 정통 후계자라고나 할까요...)을 이미 세웠으니까요...

   따라서 강력한 인적 유대관계에서 출발한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가장 보수적이고 청교도적인 와하비즘을 앞세워 정신적 기둥으로 삼고, "양대 성지, 메카와 메디나, 의 수호자"라는 애매모호한 칭호를 앞세워 이슬람권의 종주국임을 과시하게 된 것이죠... 물론, 무따와 등을 앞세워 다양한 부족의 사람들을 컨트럴하기도 한결 쉬운 이점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잘난척도 제1차 걸프전을 진행하면서 바로 그 성지에 미군의 진입을 용인하면서 스스로의 자부심에 먹칠도 하고, 결과적으로는 빈 라덴이라는 테러리스트를 등장시키는 계기를 제공하게 되었구요...

   

 

3. 무따와- 와하비즘의 전형

   앞서도 말씀드렸던 사우디의 종교 경찰입니다. 와하비즘에서는 신자의 개인적인 위반사항들도 처벌의 영역에 포함하여 라마단의 단식시간 중 대중들 앞에서 음식을 먹는다던가 쌀라 시간에 쌀라를 하지 않거가 가게문을 닫지 않는 사람들을 처벌하기 위해 순찰을 합니다. 이러한 공중도덕과 질서뿐 아니라 사적인 양심의 문제와 관련된 일들도 감시해서 예전 리야드에서는 무따와들이 담배 냄새를 맡았다면 흡연자를 찾기 위해 주저 없이 가택수색을 행사할 정도였다고 하죠.. 실제로 사우디에서 이들을 접해본 적이 있습니다만, 경찰복이 아닌 일반 사복 (전통복장)을 입고 다니기 때문에 이들을 모르는 상황에서는 당하기 쉽겠죠.

 

 

4. 그리고 현재...- 정체성이 흔들리다...

   이러한 사우디 왕권의 가장 확실한 정신적 지주이자 신앙이었던 와하비즘이 오늘날은 큰 위기를 맞고 있는 중입니다... 청교도적인 입장에서 배제해왔던 모든 쾌락들이 요근래들어 급속하게 통제범위를 벗어났으니까요... 뭐.. 하지 말라면 더하고 싶은게 인간의 욕망이니까 피할 수는 없겠지만요... 

   급속도로 난처한 상황에 빠뜨리게 만든 건 위성방송, 인터넷 등 현대과학의 발전에 기인합니다. 이들이 활성화되면서 사람들은 거의 무제한적으로 그동안 접근이 제한될 수밖에 없었던 서구문물을 무작위로 받아들였습니다... 특히, 그동안 공식적으로는 금기시되어 있었으나 즐길 사람들은 이미 즐기고 있었던 터부들, 성적인 정보에 무차별적으로 노출되어 버렸으니까요... 한때 이로 인한 혼란을 줄여보고자 위성방송 수신기의 수입을 금지햇을 정도였습니다만, 이미 지금은 통제가 쉽지 않은 상황이 되었죠...

   이러한 여파로 예전에는 상상하기도 힘들었던 강간이나 집단 윤간 같은 성범죄가 빈번하게 발생하여 해당 지역사회에 정신적 충격을 안겨주고 있으며, 발렌타인 데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이슬람에서는 절대 신성시하지 않는 이런 날들에 선물이나 카드를 주고받는 젊은이들이 나날이 늘고 있어 보수적인 종교원로들의 깊은 우려를 사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의 심각성은 시간으로도 해결되기는 커녕, 그들 관점에서 봤을 때는 더욱 악화될 수 없는 상황이라는데 있겠지요...

 

 

참고문헌: [이슬람 사전] (김정위 편), 서울: 학문사, 2002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