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 이야기/아랍의 이모저모

[문화] 무슬림의 죽음, 새롭고 영원한 삶에 이르는 교량

둘뱅 2006. 1. 10. 10:49

   2004년 11월과 2005년 4월에는 유명한 지도자의 죽음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습니다. 2004년 11월에는 팔레스타인 투쟁사를 대표하는 고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수반과 UAE의 번영을 이끈 셰이크 자예드 빈 술탄 알 나하얀 대통령이, 2005년 4월에는 전세계 카톨릭 신자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선종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장례식까지 이르는 과정은 양 종교의 차이를 보여주는 하나의 예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주제는 죽음입니다...


 

(고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의 운구 행렬)


   지난 2004년 11월은 현지 풍습을 모르고 소식에 둔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최악의 달이었습니다... 안 그래도 라마단 기간에었는데다 자고 일어났더니 갑자기 임시 공휴일이 제정되고 그러다 또 이드를 맞이하고 그랬으니까요.... 우리 눈으로 봤을 때 왜 이런 황당한 일이 생길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이유를 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황당하기만 했을 것입니다...(관련 기사로...)
 
  이러한 황당해 보이는 사건의 근본적인 이유는 첫째가 무슬림들의 장례식 풍습 때문이고, 둘째가 작고한 2명의 지도자가 차지하는 상징성 때문입니다... 둘째 이유를 먼저 말하자면, 아랍 형제국의 어른이 돌아가셨으니 같이 애도하자는 것이지요... (평소에 그렇게 끈끈한 유대감을 과시하지는 않습니다만....) 특히, 아랍권 정치 지도자들은 서구식 정치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선거로 뽑히는 사람들이 아니라서 더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이슬람에서의 죽음은 종말이나 생명의 손상이 아닌 영혼과 육체의 일체감이 소멸함을 의미합니다. 살아 생전에는 영혼과 육체가 한 몸뚱아리지만, 죽음을 맞이하면 영혼은 육체를 떠나 이승과 비교할 수 없는 고차원적인 삶이 보장되는 내세로 향하는 새로운 시작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무슬림들은 화장을 하지 않고 매장을 합니다. 영혼이 육체와 분리되어도 한동안은 이어져 있기 때문에 육체가 소멸되면 이러한 관계도 끊어질 뿐더러 영혼의 안식처가 소멸된다는 불안감 때문이겠지요...
 
   이러한 이유로 이슬람 사회의 장례 특징은 24시간 이내의 빠른 매장간단하고 엄숙한 장례, 내세에 대한 믿음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24시간 이내의 빠른 매장은 보통 3일장을 치르는 우리나, 6일장을 치뤘던 바티칸에 비해서는 속성인 셈이죠...
 
   운명하면 사자의 얼굴이나 머리를 메카로 향하게 하고 염을 하고 하얀 무명천이나 자루를 이용해 한번에 한 겹 혹은 여러겹으로 둘러싸거나 흰색 또는 녹색의 수의를 입히며, 주위 사람들은 통곡하거나 하지 않고 묵념을 하거나, 조용하게 흐느낍니다... 우리네 경우는 큰소리로 울고 통곡을 하며 슬픔을 표현하지만, 이런 감정의 표현은 이슬람 이전 무지의 시대때 관습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금기시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바로 그 다음 날 아침 시신은 모든 친지와 이웃의 손에 관에 실려 모스크를 거쳐 무덤까지 운반됩니다. 모든 무슬림은 형제라는 강력한 사회연대의식으로 인해 별도의 상여꾼을 고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가까운 모스크에 도착한 후에 정규 낮 예배에 이어 장례 예배를 마치고 장지로 운구됩니다. 마을 사람들과 친지들은 교대로 관을 번갈아 매면서 행렬을 이뤄 장지까지 동행하고, 여자 가족들은 조의를 표하는 애도의 푸른 띠를 베일, 혹은 손이나 어깨에 걸치고 그 행렬에 참가합니다.
 
   이렇게 장지에 도착하면 묘지 옆에서 잠시 대기하고 매장을 시작합니다. 한밤중이나 일출, 일몰, 그리고 태양이 정 중앙에 있을 때를 피해서 시신을 세 차례 들었다 내린 후 "몰라"의 기도와 꾸란을 낭송하며 매장합니다.
 
   이슬람에서의 매장은 관을 통째로 묻는 것이 아니라 별도의 묘실을 만들어 시신만 묻습니다. 묘실은 사람 키 높이로 비교적 깊고, 3~4명이 매장될 수 있도록 넓게 파는데, 이는 한 세대가 지나 한 묘실에 또 다른 가족을 매장하는 복장 관습 때문입니다. 이 묘실에 관에서 꺼낸 하얀 천으로 둘러쌌거나 수의를 입은 시신의 얼굴을 메카 방향으로 향하게 안치하고 그 위를 큰 돌이나 석판으로 덮은 후 홁을 다져 봉분 없이 지표면보다 약간 높게 평분을 만들고 표식을 합니다.    그리고 장례식에 참가했던 사람들이 묘지 위의 흙을 어루만지며 고인과 마지막 작별인사를 나눕니다.. 그리고 시신을 운구했던 관은 다시 가져올 수 없기 때문에 묘지 옆에 그냥 놔둡니다.
 
   상을 당한 집안에서 조문객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우리와 달리 장례식 당일에는 고인의 집에서 일체의 음식을 만들거나 대접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 분담 차원에서 동네 사람들이 분담하여 만들어 옵니다. 장례를 마친 후 첫 3일 내내 꾸란을 낭송하는 관습이 일반적이며, 지역에 따라서는 3일, 40일, 혹은 1년간 가족들이 고인의 추모집회나 기도의식을, 또는 매장 3일 후 무덤에 가서 꾸란을 낭송하는 추모의식을 통해 고인의 명복을 기원합니다.
 
   장례 다음날에는 고인의 집안에서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어 무덤을 방문하고 그 음식을 가난한 주위 이웃에게 나눠주는 추모의식을 반복합니다. 이러한 행위는 민간신앙에 의한 것으로 장례 후 하루가 지나면 영혼은 육체를 떠나 최후의 심판을 기다리는 대기 장소로 떠나지만, 한동안은 과거의 육신을 잊지 못해 금요일 오후예배 이후에 육체와 접목했다가 토요일 일출과 함께 떠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고인의 1주기가 돌아올 때까지 유족들은 세속적인 즐거움을 유보한 채 경건하고 검소한 일상을 보내며 고인을 기립니다. 마지막으로 모든 마을 사람들을 초대하여 1주기 추모식을 치루는 것으로 고인을 위한 의례를 마무리하게 됩니다. 이 추모식은 유족들만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주위의 친지나 이웃주민들이 돈과 양은 물론, 버터, 식용유, 치즈 등을 보내면서 함께 치르는 것이 그들의 미덕입니다...
 
   이렇게 무슬림들의 장례 의식에 대해 정리해 보았습니다. 영혼을 육신에서 빨리 떠나게 하고, 동네의 모든 사람들이 참가하는 장례&추모 의식 속에서 무슬림들의 내세관과 강한 공동체 의식을 엿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요즘은 정치적, 혹은 종교적인 이유로 아랍 국가 간의 연대의식은 이미 유명무실해지고 말았습니다만, 민간 의례를 통해 그 의식을 이어오는 것이겠지요...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옛 명언도 있듯이 현지의 풍습이나 문화를 모르고 우리네 생활 패턴과 다르다 하여 무작정 욕하는 것이야 말로 무지의 소치라 생각합니다... "로마에 가도 미국법을 따르라..."라며 무지막지하게 실력행사하는 미국이 국제사회의 신뢰를 잃어가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입니다... 생활 환경이 우리와 전혀 다른 나라에 가서도 무조건 우리식으로만 현상을 파악하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야말로 다원화 되어가는 사회에서 필요한 의식이 아닐까요??

 

 

참고문헌: [이슬람] (이희수, 이원삼 외 지음), 서울: 청아출판사,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