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 이야기/여러 생각들...

[칼럼] 무함마드 만평 관련 덴마크 사태를 보면서... 우리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

둘뱅 2006. 2. 6. 16:45

 

< 덴마크 신문의 문제 만평 중 한 컷, 덴마크산 제품 불매운동, 무력 시위 중 (시계방향 순...) >

 

드디어 올 것이 왔다. 만인에 대한 사랑과 평등을 얘기하면서 아니러니하게도 자가 당착적인 우월주의의 오류에 빠져버린 기독교-물론, 그렇지 않은 부분들도 많이 있다고는 해도…-의 오만함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지만, 그 오만함과 편협한 무지의 극치가 언론의 자유라는 미명 하에 작년 9월말 한 덴마크 신문에 실린 일련의 만평 시리즈를 통해 넘어선 안될 선을 넘어 버렸다. 그리고 그에 대한 분노는 전세계의 다양한 계층을 망라한 무슬림들의 정치, 경제, 외교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한 격렬한 저항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슬람권은 정치적으로 이미 분열되었는데

   여기서 주목하고자 하는 사실은 지난 80년 대 이후 완전히 단절된 것으로 여겨졌던 이슬람 국가들의 국가와 계층을 망라한 실질적인 단결이 행동으로 구체화되고 있다는 데 있다1~4차 중동전을 통해 패배를 절감한 아랍 국가들은 이스라엘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미국이 내놓은 채찍과 당근에 길들여져 같은 사안에 대해서도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해관계에 입각한 국가간 의견분열이 극명하게 드러난 것이 바로 제1차 걸프전쟁 때였으며, 많은 아랍의 지식인들은 이로 인해 이슬람 공동체는 영원히 끝나버렸다고 한탄할 정도였다. 이 후 아랍에 공통적으로 산적해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매년 개최되는 아랍연맹 수뇌회담에서조차도 각국의 헤게모니 다툼으로 인해 단결된 목소리를 내는데 실패하고 이들의 무능력함은 늘 조롱의 대상이 되어왔다.

 

   이러한 정치적 분열의 중심에 서 있던 아랍 국가들은 그 체제가 공화국이던, 왕정체제던 상관없이 공통적으로 독재정권이지만, 그들을 비호하고 있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전파하기 위해서라면 전쟁도 불사한다는 세계의 초강대국 미국이었다. (물론, 그들에게 석유가 없고, 이스라엘을 위협할 존재가 아니였더라도 그랬을지는 의문이지만...중산층이 결여된 극소수의 극부층과 절대 다수의 극빈층만이 존재하는 기형적인 구조 하에 많은 아랍의 대중들은 그 삶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개혁을 요구하고 한편으로는 이슬람에 더욱 집착하게 되었으며, 자신들의 이익만 챙기는 정부와 그들을 옹호하는 미국에 대한 반감은 더욱 커져만 나갔다. 초기에는 영국-미국에 의해 자신들이 일구어 온 모든 재산을 수탈당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그 중심에 있었으나, 걸프전 당시 양대 성지의 수호자임을 자처하던 사우디 정부조차도 이방인의 발길을 거부해왔던 메카와 메디나에 미군주둔을 허락하면서 그 반감의 불길은 전 이슬람권으로 확산되어 빈 라덴 같은 무장단체 지도자들까지 나타났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두 번 다시 국가 간, 혹은 계층 간에 단결된 목소리를 더 이상 내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던 이슬람 사회를 하나로 뭉치게 한 것이 바로 그 문제의 만평이다.

 

 

종교 모독에 대항하여 모처럼 한 목소리를 내다...

   이슬람 예술에서 사람, 특히 알라와 무함마드를 위시한 그가 보낸 사자들의 모습을 형상화된 작품은 다양한 장르로 형상화되고 패러디까지 나오고 있는 기독교와는 다르게 없다. 명시적인 규정은 아니지만 쿠란의 42 11절 “(알라는) 하늘과 땅의 창조주… 그 분과 닮은 것은 아무 것도 없나니”라는 성구를 근거로 하여, 알라는 물론이거니와 아담, 아브라함, 모세, 예수, 무함마드 등 그의 사자들도 그림으로 형상화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고, 그런 생각 자체를 모독으로 여긴다. 따라서 무슬림들에게는 무함마드를 형상화하여 그린 것도 이해 못할 짓인데, 게다가 전체 무슬림들을 폭력적인 사람들로 매도하는 의미에서 무함마드의 터번에 폭탄까지 그려 넣었다는 것 자체를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 사태를 비꼬는 만평을 게재하여 문제확대에 기여한 프랑스 신문 중 하나인 수아르지. 기독교, 유태교, 불교, 이슬람의 신을 그릴 수 있다는 내용으로 1면에 실었다가 엄청난 항의와 반발로 인해 사주가 편집장을 해고하고, 사주의 일방적인 해고에 기자들이 반발하는 등 내홍을 겪고 있다고 한다...) 

 

 

그동안 오랜 역사 속에서 애증관계를 꾸준하게 이어 온 이들간의 갈등은 9/11과 이라크 전쟁을 절정으로 하여 더욱 증폭되어오고 있었다. 이란의 핵 보유 시도에는 적극 반대하고, 대량살상무기가 있다는 핑계로 이라크까지 때려 부쉈지만 정작 오래전부터 핵을 보유하고 있던 이스라엘에 대해선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는 미국의 손에 무기력하게 무너져간 후세인 정권과 그들의 개가 되기에 급급한 자국의 정권을 보면서 느꼈던 굴욕감과 이러한 현실이 싫어 유럽으로 도망치듯 갔지만 그 곳에서도 이방인, 하층민일 수 밖에 없는 비참함이 많은 이들을 폭력적인 원리주의로 몰아넣었고, 이러한 불만이 증폭되어 작년 파리에서는 대규모 폭동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을 초래하기도 했다. 폭력의 악순환으로 인해 안그래도 이슬람하면 폭력성을 떠올리는 유럽의 기독교인들에게 중동 지역에서만 일어날 줄만 알았던 폭동, 열차 테러 등의 극단적인 무력행위들이 자신들의 눈 앞에서 생생하게 재연되고, 어느새 유럽 전체에서 1,500만이라는 무시 못할 수준으로 증가한 이슬람의 세력 확대를 지켜 보면서 가뜩이나 좋지 않았던 유럽인들의 반이슬람 감정은 극도로 악화되기에 이르렀고, 만평의 형식을 빌어 그 감정을 표출해 버리고야 만 것이다. 많은 유럽의 기독교도들은 이슬람의 비중확대를 두려워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기독교도들에 비해 무슬림들의 출산율이 높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그 우려는 현실이 될 확률도 다분히 높다.

 

이러한 정치, 역사적 배경에서 불거져 나온 만평이 전체 이슬람권을 자극하게 되면서 이 문제는 예상치 못한 전혀 새로운 방법으로 확대되고야 말았다. 각자의 이해관계에 얽혀 두 번 다시 한 목소리를 내기 힘들 것이라 생각했던 이슬람권 국가의 모든 세력들이 이슬람을 모독한 자를 용서할 수 없다는 명목 하에 그들이 쓸 수 있는 외교, 경제, 사회적인 수단들을 총동원하여 반발하기에 이른 것이다

 

외교적으로는 주재 대사관 철수 및 대사 소환 등의 방법을 통해, 경제적으로는 덴마크산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 및 이들 국가와 관련된 통상계약의 파기 등의 방법으로, 마땅한 대응방법이 없는 일반 대중들은 일부의 반성 속에서도 그들이 대응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수단인 대사관 공격, 만화가 살해위협 등 무력시위를 통해 분노를 표출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이슬람 국가에 있는 덴마크 회사들의 현지 공장들은 일시 폐쇄하고, 정부는 자국민들의 피해를 우려하여 이슬람 국가에서의 소개명령을 내리게 되었다. 낙농업이 주수입원인 덴마크에게 아랍권은 아주 매력적인 시장이었지만, 최악의 경우 이 시장을 통째로 잃어버릴 수도 있는 상황에 직면하기에 이르렀으며, 2009년 IOC 총회의 유력한 개최지였던 코펜하겐이 이번 일로 인한 범아랍-이슬람 국가들의 반발로 다른 도시에 그 자리를 빼앗길 상황에도 놓였다고 합니다.

 

사실 문제의 만평이 게재된 건 9월 말이었고, 파문이 확산된 것은 12월로 무려 2개월 이상의 시차가 있었는데... 사소하게 넘어갈 수도 있었던 이번 일을 언론의 자유를 앞세운 몇몇 유럽 국가들이 덴마크쪽에 가세하고 확대 보도하면서 이번 사태는 이슬람권 대 덴마크가 아닌, 이슬람권 대 유럽, 혹은 그 이상의 문명의 충돌을 우려할 정도로 겉잡을 수 없이 확대되고 있다. (무엇보다 중동쪽에 무관심한 우리 언론의 국제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주제가 되었으니...)

 

 

(이 파문이 커지면서 게재되어 문제를 걷잡을 수 없는 상태로 악화시켜버린 유럽 언론의 만평들)

 

 

특히, 주목할 것은 자발적인 불매운동을 통해 덴마크사의 아랍 현지 공장을 일시 폐쇄시키는 상황에 이르게 한 것인데, 그간 정치적 목적에서 시작되었던 몇 번의 이스라엘/미국산 제품의 보이콧 운동이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유야무야해졌던 전례에 비춰보면, 이번의 자국 현지공장의 폐쇄는 그 분노가 어느 정도로 표현되고 있는지 알 수 있고, 또한 정치적 목적에서는 이해타산에 따라 더 이상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더라도, 종교 보호라는 종교적인 공통 명제 하에서는 적극적으로 이뤄진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게 된 계기도 되었다. 이러한 문명의 충돌이나 일방적인 도발은 이질적인 타 문화권을 공존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이에 대한 이해도 없이 자신들만이 우월하다는 잣대로만 평가하는 무지와 오만함에서 비롯된 일이다.

 

 

그리고 우리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우리에게 있어서는 경제적 중요성만큼이나 철저하게 무시되고 있는 것이 이슬람권 국가들이다. 과거 어려웠던 시기에 중동건설 붐의 영향하에 우리에게 돈을 벌게 해 준 것도, 유가를 통해 울고 웃게 만드는 것도, 많은 제품들의 수출시장으로 영향을 주는 것도 아랍 시장이지만, 그들을 보는 우리의 시각은 여전히 부정적이고 그 중심에는 한국 개신교가 있다.

 

대한민국이 마치 기독교 국가인 양 행동하는 일부 몰지각한 개신교도들의 이슬람에 대한 견해는 무지하다 못해 천박하기까지 하다. 유럽처럼 역사 속에서 직간접적으로 이슬람과 애증으로 얽힌 것도 아닌 한국의 일부 개신교도들이 갖고 있는 적개심은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상상 외로 크다. 같은 하느님, 같은 뿌리에서 파생된 이슬람을 사탄의 무리, 종교 이하로 보는 건 물론이거니와 미개하니까 하느님의 이름으로 개종해야 한다는 오만한 사명감에 사로잡혀 중동 선교에 목숨을 거는 사람도 꾸준히 늘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무모하기까지 한 한국 개신교의 위험한 정열에 대해서는 이미 몇 년전 뉴욕 타임즈지에서도 지적한 바가 있고, 실례로 이라크전 당시 납치되었다 체포되었던 선교사 무리들과 기독교 선교에 앞장서던 미군 납품업체의 직원이었던 김선일씨의 참수로 이미 증명되었다. (그가 근무했던 가나무역이 중동선교에 앞장 서 왔던 미군 납품 업체가 아니었다면, 생환할 확률이 높았을 거라 생각한다.)

 

이슬람이 다른 종교와 달리 개종이 더 어려운 것은 이슬람이 기독교나 여타 종교처럼 생활과 분리된 것이 아니라 생활 그 자체라는 데 있다. , 기독교를 위시한 타종교로 개종한다는 것은 단순히 종교를 바꾸는 것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무슬림들에게 지금까지 살아 온 삶과 가치관 자체를 부정하라는 것과 마찬가지 의미이다. 그래서 다른 지역보다 더 어렵다고 하는 것이고... 이슬람의 전도(?) 방식은 창시 처음부터 적극적인 개신교에 비하면 상당히 수동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자신들이 우월하다는 착각 속에 이슬람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이나 이해가 없는 한국의 열혈 전도사들은 현지에서 한국식으로 공격적인 전도를 하기 때문에 스스로는 물론이거니와 현지의 아랍 기독교인, 혹은 비기독교인 한국인까지 궁지에 몰아넣는 상황을 자처하는 것이다. 이러한 탄압이나 제재에 대해 자신들의 무지함은 생각하지 못하고, “역시나 하느님의 사랑을 받지 못한 야만적인 동네더라... 더욱 적극적으로 선도에 앞장서자..."는 식으로 선동하며 의욕을 불태우는 사람들도 있으니 머... 

 

 

마치며...

  2004년 현재 세계의 종교분포는 기독교도 33.03% (구신교 등 다 포함), 무슬림 20.12%, 힌두교 13.34%, 불교 5.89%, 무교 등 기타 27.62%라고 한다. (출처: CIA World Factbook일부 개신교도들이 우리나라가 마치 기독교 국가라도 되는 양 공직을 걸고 하느님께 서울을 봉헌한다..."느니, “서울의 주인이 예수님이시다...는 등의 주장을 펴는 우리의 현실 속에서, 특히 이슬람에 관해서라면 패러디라는 명목 하에 위에서 본 만평 보다도 못한 수준 이하의 만평, 혹은 패러디를 충분히 만들고도 남을 것이 현실이긴 하다. 누가 보면 우리나라가 기독교 국가로 보이겠지만, 정작 한국에서 기독교가 차지하는 비율은 26% 정도에 불과하다. (무신론자가 46%라고 한다.) 그렇지만 정작 한국 내에서는 이슬람이 1% 미만의 희귀 종교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같은 상황이 생길 경우 덴마크 만평과 같은 파문이 확산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미 누군가는 오래전부터 해왔을 지도 모르고, 누군가가 유럽 매체에 펌~! 해가면 또 모르겠다... 그럼... 대략 낭패다...) 하지만 오히려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은 현재 현지에서 활동 중인 중동 선교단체들이다. 특히, 요근래 이슬람권 국가들이 유럽 기독교도들의 종교 모독에 대항하여 범국가, 계층적으로 한 목소리를 내는 보기 드문 정황 속에서 불타는 사명감에 사로잡힌 선교사들의 어설픈 과욕이 그들을 불필요하게 자극하게 될 경우 우리도 유럽과 같은 곤욕을 치루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고, 더 심각한 후유증을 가져올 수 있으니 말이다.

 

   종교의 자유도, 언론의 자유도 좋지만 그 자유도 지켜줄 건 지켜줘야 존중을 받는 것이란 사실을 잊지말아야 한다... 도가 지나치면 자유가 아니라 방종일 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