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 이야기/여러 생각들...

[칼럼] 지네딘 지단, 무슬림들의 영웅

둘뱅 2006. 7. 12. 01:24

   아랍인들의 축구에 대한 열정은 대단하다. 그러한 열정이 월드컵에서의 성적으로 빛나지는 못하고 있지만, 그 누구보다도 유럽축구와 월드컵을 열정적으로 본다. 비록 자기네 나라가 본선에 진출하지는 못하더라도 지난 98년 월드컵까지는 전경기를 공중파 채널을 통해서 중계해주고 (2002년 이후로는 공중파 방송국들이 폭등한 중계권료를 감당하지 못하여 중계를 포기, 유료 위성채널로만 시청이 가능하다...), 월드컵 기간 내내 특별증면을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월드컵 중 무슬림들 다수가 응원하는 나라들은 아시아-아프리카에 있는 이슬람 형제국과 아시아에 있는 아랍 국가들의 경우 AFC 소속이라는 연줄로 아시아권 국가를 응원한다. 지난 2002년 월드컵때 우리의 선전을 "아시아 축구의 자존심"이라며 누구보다도 응원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 외에 전이슬람권이 응원하는 예외적인 유럽 국대팀이 있는데, 그 나라는 바로 프랑스팀이다. 우리가 박지성이 소속된 맨유와 이영표가 소속된 토트넘을 응원하는 것처럼, 비아랍권 국가들 중 유일하게 '마에스트로' 지네딘 지단과 그의 후계자가 될 것으로 기대되는 촉망받는 신예 프랭크 리베리 2명의 무슬림 선수들이 주전으로 뛰고 있는 팀이기 때문이다.

 

   알제리의 베르베르족 출신 이민자 2세인 지네딘 지단(زين الدين زيدان)은 무슬림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모태신앙의 무슬림이고, 프랭크 리베리는 프랑스 출신이지만 모로코 여성과 결혼하게 되면서 이슬람으로 개종한 무슬림이다. (이슬람 율법상 무슬림 남자가 타종교의 여성과 결혼하는 것은 허락되지만, 무슬림 여자가 타종교의 남성과 결혼하는 것은 엄격하게 금지한다. 몇년 전 바레인 국왕의 질녀가 미군과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여 외교문제로 비화될 뻔했던 사실이 실례가 되겠다...) 특히 지단에 대해서는 유럽의 무슬림들은 "거의 알라와 가까운 존재"로 인식과 함께 뜨거운 애정을 보여주고 있는데, 알제리계 이민자 출신이면서 주류에서 성공했다던가, 그러한 입장에서도 정치적 문제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의사를 밝히는 그런 모습들이 주요 원인이긴 하지만, 그를 영웅으로 여기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90년대의 마지막 월드컵이었던 98년 프랑스 월드컵 때문이었다.

 

(쓸쓸하게 퇴장하는 지단의 마지막 뒷모습)

 

   특히 일반 아랍 무슬림들에게 있어서 1990년대는 시작부터 잔인했었다. 걸프전으로 인해 비무슬림들에게는 출입을 허용하지 않는 성지 메카, 메디나가 미군에 의해 짓밟혔고, 미국의 전략적인 정책으로 인해 분열되어 정치적으로 이슬람 형제국이라는 이름 하에 하나로 뭉치기 어렵게 되었다는 사실을 재확인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실감은 기득권을 갖지 않은 지식인들과 비기득권 서민들에게 큰 상실감을 안겨 주었다. 이러한 상실감을 극복하거나 잊는 하나의 대체수단으로서의 월드컵도 일정 역할을 했는데, 94년 미국 월드컵에서는 사우디팀이 16강에 진출하며 나름 선전하며 위안을 삼을 수 있었다.

 

   그리고 98년 프랑스 월드컵, 브라질팀은 예선전 이후로 무슬림들에게 공공의 적이 되어 버렸다. 그 계기가 된 것은 모로코팀과의 예선전이었다. 전 대회 16강 진출국인 사우디팀은 첫 경기부터 3:0으로 지며 탈락의 기운이 엿보였고, 아시아권의 우리도 별볼일 없는 성적을 거두고 있던 상황에서 그들이 응원하겠다는 공감대를 가질만한 팀 중에서 그나마 16강 진출에 가장 근접해있던 팀은 브라질과 같은 조의 모로코였다. 따라서 최소한 비겨도 16강 진출을 바라볼 수 있었던 브라질과의 조별 예선전 마지막 경기에서 무슬림들이 형제국 모로코를 응원하는 건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스코틀랜드에 0대3으로 승리를 거두며 내심 16강을 기대했던 모로코는 브라질이 심판의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노르웨이에게 페널티킥을 허용하며 패배하는 바람에 노르웨이에 밀려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이슬람 형제국의 2개 대회 연속 16강 진출을 기원했던 많은 무슬림들은 이에 분노하며, 이슬람권 국가들의 16강 진출을 막으려는 음모였다고 흥분해대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석연치 않은 판정을 내린 심판이 미국인이어서 그들은 더욱 흥분했다. 16강 진출에 대한 좌절과 미국에 대한 반감 등이 뒤얽히며 브라질팀은 실력차에도 불구하고 승리할 의사가 없는 무성의한 플레이를 펼쳤다며 공공의 적이 되었고, 심지어 사탄의 팀이라고 부르는 사람들까지도 있었다...

 

   비겁한 승리에 대해 응징받기를 원했던 그들의 바램과 달리 승승장구하던 브라질팀은 결승까지 올라갔으나, 그들의 승운은 결승에서 무슬림인 지단이 정정당당하게 2골을 넣으며 맹활약한 프랑스팀에 무너져 버렸다. 오심과 편파판정으로 이슬람 형제국을 이기고 결승까지 진출한 팀을 물리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일등공신이 아이러니하게도 무슬림 지단이었다는 사실은 그들에겐 커다란 기쁨이었다. 그 기쁨이 어느 정도였느냐면 신문기사에 "알라가 지단의 몸을 빌어 사탄의 팀을 물리치는 정의의 심판을 내렸다..."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모 캐스터가 이번에 그런 중계를 했었다죠? 정의의 심판...) 그리고 그는 다같이 공유할 수 있는 우상이 없던 그들에겐 영웅이었고, 축구를 통해 분열된 아랍인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하나로 만들 수 있도 있는 힘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8년 후 다시 유럽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위태위태하던 지단은 16강전 이후로 화려하게 부활하며 팀을 결승으로 이끌었고, 8년 전의 영광을 기억하는 많은 무슬림들은 그의 부활과 활약을 기대하며 프랑스팀을 열렬히 응원했다. 결과는 모두가 알다시피 지단의 퇴장과 이탈리아팀의 우승으로 이번 월드컵은 막을 내렸다. 그들은 프랑스 국민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보다도 자신들의 영웅이었던 지단의 쓸쓸한 퇴장을 안타까워 했을 것이다. 그리고 아직 진실이 밝혀지진 않았지만, 퇴장을 도발했던 마테라치에 대해 "영웅을 넘어뜨린 사탄의 자식"이라 애기하는 언론도 분명 있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지난 8년간 그들 마음 속에 영웅으로 남았던 '마에스트로' 지단은 현역을 떠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무슬림들은 프랑스팀을 주목하고 있을 것이다. 또 하나의 젊은 무슬림 선수인 프랭크 리베리가 있기 때문이다. 지단의 후계자로 주목받고 있는 그가 단순히 축구선수로의 후계자가 될 수 있을지, 아니면 그의 선배 지단처럼 무슬림들의 마음 속에 남을 또 하나의 우상이자 영웅이 될 수 있을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