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 이야기/아랍의 이모저모

[문화] 무슬림들의 시간 관념??? 그때 그때 달라요~~~

둘뱅 2006. 6. 22. 17:04

   아랍사람들과 거래해 본 사람들이라면 약속 어기기를 밥먹듯이 하는 그들의 행태에 분노하거나 절망감을 느끼게 될 때가 종종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중동지역에서의 IBM은 이러한 아랍인들의 특징을 집약적으로 함축한 말인데요. I (인샤알라)는 원래 '신의 뜻대로'라는 의미의 말이지만, 약속준수 여부를 확실하게 표명하지 않을 때, B (부크라)는 원래 '내일'이라는 의미지만, 인샤알라와 비슷할 경우에, C (말리쉬)는 원래 '천만에요'라는 뜻이지만, 이에 대한 책임회피를 할 때 즐겨쓰곤 합니다. 이러한 무슬림들의 시간관념은 어디에서 나온 걸까요??? 

 

   오랜만에 올리는 아랍 이야기, 다소 개념없이 보일 수도 있는 무슬림들의 시간관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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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루 다섯번 드리는 예배시간은 일년 내내 고정시간일까요?

     2) 라마단 기간 중 금식시간은 매년 일정할까요?

     3) 라마단과 핫지 (성지순례) 기간은 매년 똑같을까요?

 

   무슬림들의 의무에 관한 위의 질문은 공통적인 답을 가지고 있답니다. 뭐냐구요? 그때 그때 달라요! 입니다. 황당할지 모르겠지만, 십수억의 무슬림들이 지켜야 하는 의무에서 조차도 정확한 시간관념을 찾아볼 수가 없답니다. 왜 그럴까요?

 

   이슬람이 창시될 당시의 생활환경에서 그 단서를 찾아볼 수가 있답니다.

 

(요르단에 있는 베드윈 스타일의 휴게소)

 

 

   이슬람을 만든 중심세력은 아라비아 반도에서 활약했던 유목민인 베두윈들입니다. 이들의 자부심은 대단해서 오늘날까지도 소수지만 그 명맥을 이어져 오고 있지요. 황량한 사막벌판을 누비던 그들의 시간개념은 어디서 나왔을까요? 바로 천체의 움직임입니다.

 

   이슬람에서 달을 중요시하는 이유 중 하나가 사막에서 그들의 주된 활동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에어컨도 없던 그 옛날 연일 50도를 넘나드는 뜨거운 대낮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그들은 낮에는 그늘이나 천막에서 휴식을 취하고 밤에 주로 활동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시계도 없고, 교통, 통신 수단도 원활치 못했던 그 시절 그들에게 시간을 인식할 수 있는 공통적인 요건이 뭐가 있을까요? 바로 해와 달의 움직임입니다. 해와 달이 뜨고 지는 것으로 시간을 파악하고, 달의 형체 변화에 따라 요일을 나누었습니다.

 

   무슬림들이 쓰고 있는 이슬람력은 바로 이 음력에서 출발한 것으로 1년을 354일 정도로 나누었습니다. (이슬람력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본 블로그 "이슬람력과 그들의 종교적 공휴일" 편을 참조 바랍니다...^^) 

 

   서양력에 비해서 11일 정도 짧은 이슬람력 때문에 매년 11일 정도 모든 것이 앞당겨집니다. 예를 들어 제가 요르단을 처음 방문했던 1998년에는 라마단이 12월말에 시작했습니다만 올해는 9월 23일경으로 예정되어 있고, 앞으로 몇년 후에는 한 여름에 라마단이 시작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지순례가 한 겨울에 있을 수도 있고, 한 여름에 있을 수도 있답니다...

 

   그들은 예배시간을 아침 몇시, 오후 몇시가 아니라 해가 뜰때, 질때, 중천에 걸릴 때 등 해의 움직임에 맞춰 나가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해가 뜨고 지는 시간은 매일 조금씩 다를 뿐더러 지역에 따라 다르기까지 합니다... 가령 한국 무슬림과 사우디 무슬림의 예배시간은 분단위로 다릅니다. 물론 같은 사우디, 한국에서도 지역에 따라 다르구요.. 특히 변화가 심한 일출 예배와 일몰 예배시간은 계절에 따라 몇 시간이나 차이나기도 하죠. (지역별 자세한 예배시간이 궁금하시면 여기 를 클릭해서 확인해 보세요..^^)

 

   편차가 큰 일출 예배와 일몰 예배 시간이 중요한 것은 바로 라마단 기간 중 금식시간이 바로 해가 떠서 질 때까지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한 여름에도, 한 겨울에도 올 수 있으니까요... 한 여름에 라마단이 오면 그만큼 금식시간이 길어지는 거고, 한 겨울에 오면 그만큼 짧아지기 마련입니다... 금식기간이 짧은 겨울에도 라이프 사이클이 뒤틀려 몇 일만 지나도 힘들어하는 마당에, 앞으로 몇 년 뒤에 찾아올 여름 라마단은 얼마나 힘들어 하겠습니까...?

 

   이처럼 해와 달의 움직임으로 시간개념을 잡다보니 웃지못할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날씨가 흐려서 달이 안 보이는 날이 분명 있으니까요... 그렇다보니 라마단을 끝내고 맞이하는 이드연휴의 경우 그 시작은 당일이 되어야 압니다. 예정된 날 새로운 달을 시작되는 초승달이 뜨지 않는 경우 하루 정도 지연될 수 있거든요.. 아니면 어떤 지역에선 오늘부터, 다른 지역에선 내일부터 시작할 수도 있구요...

 

   이와 같이 자연환경에 따른 시간개념을 갖고 있다보니 인샤알라라는 말이 생길 수 밖에 없고 시간개념이 흐릿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서구화가 시작되기 전까지 1300여년간에 걸쳐 유지해 온 생활의 가치관이고, 해와 달의 움직임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니까요... 가령 다음 그믐날 밤 어디서 만나기로 했다고 생각해 보죠. 그 그믐날 밤 달이 뜰 수도 있지만, 기상악화로 안 뜰 수도 있습니다. 요즘과 달리 공간의 제약을 받던 시절에 사막을 건너 어디서 만난다는 것도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악속한 기간과 장소에 제 때 잘 올 수도 있지만, 중간에 도둑을 맞을 수도 있고, 낙타가 집단으로 죽거나 다른 문제로 인해 이동이 지연될 수도 있고... 역시 인간이 알 수 없는 일이죠...

 

 

   이번에는 시간을 주제로 얘기했지만,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그들의 풍습에는 자연적, 환경적 요인들이 많이 반영되어 있답니다. 만약 우리나라나 또 다른 지역에서 이슬람과 같은 종교가 생긴다면, 지금의 이슬람과는 좀더 다른 모습일 겁니다. 여러가지로 환경이 아랍지역과 다르니까요... 현재 아랍지역은 이슬람적인 가치관과 탈이슬람적인 현실 사이에서 과도기를 겪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의 생활관습 중 일부는 불과 몇십년, 혹은 1세기 전에 우리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것들도 있습니다. 우리가 변했듯이 그들도 변해가겠지만, 그들을 지배하고 있는 종교적 가치관 때문에 그 속도는 우리보다는 한결 더 늦어질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이러한 그들의 모습을 무작정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이들을 이해하고 효율적인 관계를 맺는 건 우리의 몫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