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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울라] 사우디 최초의 세계 유산 마다인 살레는 어떤 곳일까?

둘뱅 2010. 9. 13. 22:28

둘라의 마다인 살레 유적지 탐방기

01. 멀고도 헤맸던 알 울라로 가는 길, 그리고 얼떨결에 발견한...

02. 마다인 살레 호텔에서의 하룻밤, 그리고 방문허가 받기

03. 사우디 최초의 세계 유산 마다인 살레는 어떤 곳일까?

04. 마다인 살레 (1) 무덤 유적들...

05. 마다인 살레 (2) 메카에서 이스라엘을 이었던 히자즈역의 흔적..

06. 마다인 살레 (3) 나바테안인들은 어떻게 물을 저장했었을까?

07. 마다인 살레 (4) 까스르 빈트와 그 주변의 풍경

08. 마다인 살레 (5) 홀로 외딴 곳에 독야청청 서 있는...

09. 마다인 살레 (6) 내부가 넓었던 어떤 무덤

10. 마다인 살레 (번외) 가이드 추천 포토 존~!

11. 황폐화된 과거의 흔적 알 울라 옛마을

12. 알 울라 옛마을을 지키던 알 울라성, 그리고 위에서 보는 풍경..

13. 돌아가는 길, 그리고 1박 2일의 여정을 마치며....

 

 

 

가이드 차량을 앞세우고 호텔을 떠나 마다인 살레로 향합니다.

 

알 울라 시내에서 마다인 살레까지는 북쪽으로 약 22Km를 더 가야만 합니다.

 

 

(마다인 살레의 위치를 알려주는 이정표)

 

 

마침내 마다인 살레 게이트에 도착했습니다. 밑에 지도에 표기되어 있는 것처럼 남문과 북문 두 개의 문이 있는데, 우리가 도착한 곳은 남문입니다.

 

 

(알 히즈르 고고학 유적지- 마다인 살레- 세계유산지역)

 

 

도착한 관광객을 맞이하는 건 경찰차들입니다. 제공한 정보를 확인하여 입장을 최종 확정 짓는 곳이기도 합니다. 사무실 옆에는 여러가지 규제사항들에 대해 적혀져 있습니다.

 

규제사항들이란건...

일몰 전에 반드시 나올 것, 아무데나 함부로 앉지 말것, 암벽에다 낙서질 하지 말 것, 아무거나 들고나오지 말 것, 지침에 잘 따를 것 등등입니다...

 

 

 

 

 

동행한 경찰과 함께 사무실에서 최종 입장 허가판정을 받고 돌아온 가이드는 저를 향해 엄지 손가락을 치켜올립니다. 너도 들어가는데 문제없다!!!라는 의미인 것 같네요... 그래서 당일치기로 허가를 받은데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가이드 차를 쫓아 유적지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럼 오늘의 목적지인 마다인 살레는 어떤 곳일까요? 이전 글들에서 위치와 가는 법, 왜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는지를 간략히 소개해 드린 바가 있지만, 이 유적에 대해 설명해드리고자 합니다... (이래야만 내 블로그니까~^^) 

  

 

(마다인 살레 유적지도. 지도만 봐서는 양 입구를 제외한다면 어디가 어딘지, 어디로 어떻게 가야할지 알 수 없다. 호텔에서도 지도를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혼자 다니기엔 낭패다.)

 

 

마다인 살레 (아랍어로는 "살레의 도시들" 이란 뜻) 또는 알 히즈르(아랍어로는 "바위 투성이 지역"이란 뜻)로 불리는 이 곳은 사우디아라비아 매디나 주 북쪽에 위치한 알 울라 인근의 이슬람 이전 고고학 유적지입니다. 인근의 알 울라에서 북족으로 22km, 메디나에서 북서쪽으로 400km, 얀부에서 북동쪽으로 약 470km, 요르단의 페트라에서는 남동쪽으로 500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 유적지는 나바테안 왕국의 유적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마다인 살레는 요르단 남부에 위치한 나바테안 왕국의 수도인 페트라의 뒤를 이어 왕국 최남단에 위치한 가장 큰 정착지였다고 합니다. 꾸란을 통해 기원전 3천년 경 타무드의 한 종족이 이 지역에 초기 정착했었다는 이야기와 함께 나바테안 왕국을 전후로 이 지역을 통치한 고대 아랍 왕국인 리흐얀 왕국과 로마제국의 흔적들이 그대로 발굴되고 있다고 하네요. (하지만 로마제국들의 흔적은 페트라처럼 크게 나타나있진 않은 것 같습니다.)

 

쿠란에 따르면 알라가 지속적인 우상 숭배 실천과 그가 보낸 예언자 살레 살해를 공모한 타무드인들에게 천벌을 내려 불신자들을 지진과 번개폭풍으로 응징했다고 합니다. 알라가 타무드인들에 대한 심판과 응징에 대해 경고하고자 다수 예언자들을 보냈으나 이들이 다 무시함으로써 천벌을 내렸다는 얘기는 쿠란 제7장 수라툴 아으라프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기원전 3천년 초반 이 지역에 정착한 타무드인들이 우상숭배에 빠지면서 폭압과 억압적인 행위가 만연해지자 알라는 예언자 살레를 그들에게 보냈고, 그는 타무드인들에게 회개할 것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타무드인들은 그의 경고를 무시하고 오히려 살레에게 산 뒤에서 새끼를 밴 낙타 암컷을 소환할 것을 명령했다고 합니다.

 

이들의 요구에 대해 알라는 살레가 자신이 내린 신성한 미션을 수행 중이라는 사실에 대한 증표로 새끼를 밴 낙타 암컷을 그들에게 보냈다고 합니다. 실제로 이런 일이 눈앞에 펼쳐지자 오직 소수의 사람들만이 살레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으나, 정작 소환을 요청한 그들은 자신들에게 보내어진 낙타를 보호하기는 커녕 오히려 죽여버렸다고 합니다. 낙타 배속에 있던 새끼 낙타는 그들로부터 도망쳐 소리를 지르며 그가 보내졌었었던 산 뒤로 도망쳐 버리기에 이르렀고, 알라는 그들에게 천벌을 내리기전 3일간의 유예기간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타무드인들은 예언자 살레와 그를 따르기 시작한 추종자들이 도시를 떠나버린 이 유예기간 동안 알라의 경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무시하자, 알라는 결국 약속대로 불신자들에게 지진과 번개폭풍으로 처절한 응징을 가했으며, 이 와중에 그들의 영혼은 생명을 잃은 육신에서 이탈하어 구천을 헤맸다고 합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때문에 이 지역은 미신을 믿다 응징받은 지역이라는 종교적인 평판이 하락하면서 종교적으로 무슬림들에게 근대에 이르기까지 저주받은 장소로 찍혔다고 하네요.

 

알라의 천벌 이후 저주받은 장소로 이 땅에 자리를 잡은건 기원전 4~6세기 경 고대 아랍 왕국인 리흐얀 왕국이었습니다. 리흐얀 왕국의 초기사를 장식했던 데단인들은 근처를 그들의 수도로 삼고 데단이란 이름을 붙였는데, 그 지역이 오늘날의 알 울라라고 합니다. 리흐얀 왕국의 흔적은 기원전 2~3세기까지도 남아있으며, 그들이 없어진 후 이 지역을 장악한 것은 바로 페트라를 수도로 삼고있던 나바테안인들이었다고 합니다.

 

기원전 1세기 동안 벌어진 대량 이주가 진행되면서 나바테안 왕국을 이끌던 알 하리스 5세 (기원전 9년~기원후 40년)의 통치 하에 이주하여 마다인 살레를 북쪽의 페트라에 이어 왕국의 두번째 수도로 삼았다고 합니다. 인근에 오아시스가 펼쳐져 있어 농경문화를 즐기기 좋았기에 이 지역에 안착하면서 그들의 건축양식 등을 이곳에 가지고 와 오늘날의 유적으로 남은 많은 건축물들을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이들은 또한 오아시스 농업을 더욱 발달시켜 암석 속에 우물과 빗물을 저장할 물저장탱크를 파내어 수원을 확보하는 방법도 터득했다고 합니다.

 

이런 유사한 건축양식을 마다인 살레 뿐만 아니라 요르단의 페트라, 시리아 남부, 이스라엘의 네게브 남부 등에서도 볼 수 있는제 이중 제일은 바로 수도 페트라입니다. (역시 페트라가 킹~왕~ 짱~!!!)

 

나바테안 왕국이 로마제국에 멸망당한 이후 역사의 많은 흔적들이 사라져 버렸지만, 교통의 요지에 있는 오아시스라는 잇점을 살려 대상들의 주요 통행로로 그 명목을 유지했고, 성지 순례객들이 쉬어가는 곳을 그 명목을 유지해 왔다고 합니다. 14세기에 유명했던 여행가 이븐 바투타는 그의 여행기를 통해 히그라의 붉은 바위로 깍아 만든 무덤에 대해 언급하여 알 히즈르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었지만, 사람들의 생활흔적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후 이 지역에는 오스만 터키 제국에 의해 1744년부터 1757년에 이르기까지 13년 간에 걸쳐 메카로의 성지순례객을 보호하기 위한 요새를 건립했으며, 20세기 초반 (1901~1908년)에는 오스만제국의 술탄 압둘 아미드 2세에 의해 다마스커스와 예루살렘에서부터 이 지역을 거쳐 매디나와 메카로 이어지는 철도역이 완성되어 운영되기도 하였습니다만, 1차 세계대전 도중 파괴되어 그 역할을 잃었으며 오늘날엔 철도역의 흔적만이 남아있습니다.

 

이러한 부정적인 역사적인 배경과 인식에도 불구하고 마다인 살레를 개발하여 이 지역에 대한 악명을 떨칠 수 있을 것이라는 사우디 정부의 의지는 결국 1972년 이 지역을 고고학 유적지로 공식적으로 지정하면서 보존 의지를 드러내게 됩니다. 사우디 정부는 여러 역사적인 배경을 살펴봤을 때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고 앞으로 관광지로서의 이 지억이 갖게 될지도 모르는 잠재성을 높이 산 탓이죠.

 

하지만 그러한 의지를 실천에 옮기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우상숭배로 천벌을 받은 지역이었다는 점이 이을 보존하고 개발하는 것이 어쩌면 우상숭배를 조장할 수 있다하여 우상숭배 금지라는 이슬람의 율법에 어긋난다는 보수적인 종교관이 지지를 얻고 있었기에 보존구역 지정된 이후 한동안은 최소한의 유적 연구만 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지지부진한 연구를 이끌었던 그들의 보수적인 정책은 2000년부터 적극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사우디 정부의 문화 유산 보호 및 관광업 촉진 정책의 일환으로 사우디 정부 스스로가 이 지역에 대한 고고학적인 연구를 행할 외국의 고고학자들을 초빙해오기 시작하면서 말이죠.  

 

28년간 지지부진하게 진행되어 오다 2000년부터 급피치를 올리기 시작한 사두디 정부의 노력은 결국 결실을 맺게 되어 마다인 살레를 2008년에 사우디 최초의 세계유산으로 등재시키는데 성공합니다. 마다인 살레는 나바테안 왕국의 유산인 정교하게 장식된 외관을 가진 131개의 돌을 깍아 만든 기념비적인 무덤을 잘 보존하고 관련 유적들을 제자리에 잘 보존시키는데 성공했던 것이죠. 원형 그대로의 보존을 강조한 탓에 인공적으로 만들어놓은 계단도 제거하여 일부 무덤유적인 일반인들의 출입이 어려울 정도가 되긴 했지만요.

 

현재까지는 육로로 이동할 수 밖에 없는 접근성의 한계를 탈피하고 좀더 많은 여행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사우디 정부는 현재 알 울라에 공항을 만들고 조만간 개항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 주요 대도시로부터는 대략 편도 1,000키로 남짓의 긴 여정이기에 방문하기가 여간 불편한게 아니거든요.  

 

이상으로 마다인 살레에 대한 간단한 (정말.....?) 소개를 마치고 다음 편부터 마다인 살레의 풍경들을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