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 이야기/아랍의 이모저모

[종교] 무슬림을 선교하는게 왜 어렵고 위험할까?

둘뱅 2007. 7. 24. 13:44

요즘 화제는 단연 탈레반 무장세력들에게 납치된 샘물교회 선교단 이야기입니다... 말로는 봉사활동이네 어쩌네...하지만, 선교를 염두에 두지 않고 순수한 봉사활동을 떠났다고 믿는 이는 일부 개신교도들 밖에 없겠죠... 그들에게 중동-아랍을 포함한 이슬람 지역은 해외선교의 성과를 과시할 수 있는 여전히 매력적인 땅이니까요... (개신교를 믿지않는 나머지 4/5의 자국민들도 선교하지 못하면서 왜 그렇게 사명감에 불타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렇다보니 이런 문제가 벌써 세번째나 되풀이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신교측에선 근본적인 문제를 수정할 어떠한 움직임도 보여주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되풀이되면서 자성조차 하지 않는 개신교의 오만함으로 인해 그동안 표면화되지 않았던 개신교에 대한 불신과 비판이 비개신교인들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계속되는거겠죠...

 

오늘의 이야기는 왜 무슬림들을 개종하는 것이 어려운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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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은 무슬림들에게 있어선 하나의 종교가 아닌 종교에 기반을 둔 종합적인 생활 규범입니다... 끝에 "~교"가 붙는 일반적인 종교와 달리 이슬람이라고만 부르죠... (따라서 흔히 범하기 쉬운 오류인 이슬람교나 이슬람교 교인, 알라신은 이슬람, 무슬림, 알라로 쓰는 것이 옳은 표현입니다...) 우리가 불편하게 보는 하루 5번 예배, 한달 간 주중 단식, 성지 순례 등도 밥먹고 볼일보고 세면하는 것과 같은 일상 생활이며, 태어나면서부터 몸으로 익혀왔기 때문에 아무리 불편하게 보여도 자연스런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여지고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생활패턴이 달라지면서 변화하고 있는 중입니다만...)

 

왜 종교를 단순한 종교가 아닌 생활 규범으로 강조하냐고 묻는다면... 이슬람의 시작이 모두가 평등한 이상적인 종교적 공동체를 꿈꾸는데서 시작했었고, 그 공동체 안에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다 같이 지켜야 할 생활 원리이자 규범이 바로 이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무함마드가 꿈꾸었던 공동체 "움마"의 이상은 종교로도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의 권력욕으로 인해 사후 반세기도 못되서 와해되고, 오히려 수니파와 시아파의 양대 종파로 나뉘는 비극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만...) 어떤 사람은 하고, 다른 어떤 사람은 안한다면... 그걸 다같이 공유하는 생활 규범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이슬람에서는 무슬림들에게 5주라는 신앙의무를 부여하여 이를 지키는 단계적이고 체계적인 과정을 통해 이슬람에 귀의한 무슬림으로서의 생활을 받아들이게 하고, 궁극적으로는 무슬림 공동체 속의 일원이라는 연대의식을 갖게 합니다..

 

이슬람의 5주는 샤하다 (신앙고백), 살라 (예배), 자카트 (희사), 사움 (단식), 핫지 (성지순례)입니다... 이 5주는 누구나 다가가기 쉬운 난이도가 쉬운 것에서부터 어려운 것까지 체계적인 순서로 놓여져 있습니다..

 

(한남동 이슬람 성원에 들어서면 입구에서 부터 보이는 저 문구가 바로 샤하다의 문구입니다...)  

 

 

첫째, 샤햐다... 정말 쉽습니다... 이슬람에 입문하기 위해서는 "라 일라하 일랄라 무함마둔 라스룰라 (알라 이외의 신은 없으며, 무함마드는 그 분의 사도이시다.)" 이 한마디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예배를 할 때나 수시로 이 말을 반복함으로 해서 이슬람에 가입한 초심을 잊지 않게 하죠...

 

(기독교에 주일 오후 예배가 있듯이, 이슬람에는 금요일 오후에 대예배가 있습니다. 한국에 있는 많은 외국인 무슬림들에게는 서로의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만남의 장이기도 합니다...)

 

 

두번째, 살라... 하루에 다섯번 메카를 향해 기도를 합니다... 전세계의 무슬림들이 동시에 할 것 같지만, 기도하는 방향만 같을 뿐 기도 시간은 해와 달의 움직임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나라마다, 국가마다 분단위로 다릅니다... 이 살라는 일반적인 기도의 의미도 있지만, 청결한 생활과 절약을 강조하는 부차적인 목적도 있습니다... 살라를 하기 위해선 시작 전에 몸을 정비하기 위해 얼굴, 손, 발 등 옷 밖으로 노출된 부분을 씻는 우두를 해야하기 때문이죠... 그럼 이렇게 물으실 분들도 계실 겁니다.. "하려면 아예 샤워를 하지 왜 일부분만 씻어?"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슬람이 생겨난 곳이 물이 귀하고 척박한 아라비아 반도니까요... 한 여름에 가볍게 50도를 넘나드는 지역에서 살기엔 그들에게 주어진 물은 너무나도 부족합니다.. 하지만 물이 마시기에도 부족하다고 해서 위생까지 소홀히하지 말라는 거죠... 모래폭풍이 부는 시기엔 단 몇 초만 밖에 나갔다 와도 몸 속에 미세한 모래먼지들이 들어갈 정도의 환경이니까요... 따라서 제한된 물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절약정신과 가능한 수시로 몸을 씻으라는 위생에 대한 관념을 갖게 합니다...

 

세번째, 자카트... 앞의 두 과정을 통해 생활습관이 어느 정도 몸에 익혀 근검절약해서 돈을 모으게 되면, 그 수입을 종교세라는 명목으로 사회에 환원하라는 것입니다... 품목에 따라 과세율이 틀리기는 하지만 돈의 경우 2.5% 정도입니다... (이슬람이 활발한 확장기를 맞이하고 있을 때는 타종교를 박해하지 않고 인정해주는 대신 세금을 무슬림들보다 좀더 많이 거뒀다고 합니다...) 교회에서 걷는 십일조에 비하면 부담없는 액수죠... 이렇게 모아진 돈은 사회적 약자를 위해 쓰여지곤 합니다... 혼자만 다 먹지 말고 베풀라는, 경제적으로는 공산주의의 성격을 띄고 있는 이슬람식 경제관을 잘 설명해주는 예죠... (단, 돈을 구걸하는 가난한 사람들이 당당하게 돈을 요구하거나, 이를 당연시해서 노동을 기피하는 부작용을 만들기도 했죠...)

 

여기까지는 그래도 비교적 쉽게 지킬 수 있는 의무들입니다... 무슬림들의 유대감을 만드는 상급자 과정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네번째, 사움... 라마단이라고 일컬어지는, 이슬람력 9월인 라마단 달에 이어지는 한달간의 주중 단식입니다... 이슬람력이 354일 정도되기에 단식하는 시간은 매년 달라집니다... 겨울엔 짧고, 여름에는 해뜨는 시간이 길어지는 만큼 당연히 잔인할 정도로 길어지죠... (올해는 9월 13일부터 시작될 예정이고, 앞으로 몇년 뒤에는 무슬림들도 싫어하는 한여름의 라마단이 찾아옵니다...) "식욕과 성욕을 극복하고 사회적 약자의 고통을 이해하며 일용할 양식을 베풀 알라에게 감사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루이틀이야 어떻게 한다고 해도 라이프 사이클이 한달간 완전히 바뀌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종교적인 의무임에도 불구하고 예외사항을 두는 유동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죠... 병에 걸려 아프거나 여행으로 인해 단식이 어려울 경우 추후에 같은 기간만큼 대체 단식을 하거나, 자신들보다 더 어려운 사회적 약자에게 음식을 베푸는 것으로 대신할 수 있게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모두가 함께 한달 간의 고행을 거치면 최대의 명절인 이드 알 피트르가 기다리고 있어 그간의 고행을 무사히 마쳤음을 축하하고, 그 기쁨을 함께 나누게 합니다... (아이러니한 사실 중 하나는 라마단 기간 중 야간 폭식으로 인해 평소보다 내과 손님이 엄청나게 늘어난다는 점입니다... 금욕 후 식탐으로 인한 병원행이라니...) 

  

(하늘에서 내려다 본 성지순례하고 있는 장면. 사람들은 사원 중앙에 있는 검은 돌을 향해...)

 

그리고 마지막 최종 단계인, 핫지... 이슬람력 12월 7~10일 경에 메카의 카바 신전을 순례해야만 합니다... 무슬림들이라면 평생동안 단 한번이라도 해야만 하는 의무죠... 세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머리를 밀고, 천으로 몸을 가린 채 뜨거운 뙤약볕 밑에서 수백만명의 사람이 한 점에 입맞춤을 하기위해 모여들고 돌을 던지는... 다른 종교에선 상상하기 힘든 고행과정입니다... 빈번한 사고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순례객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죠... 무엇보다 성지순례가 가장 큰 고행이 되는 이유는 지금과 달리 메카를 향해 간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이야 젯다 공항까지 비행기 타고 가면 메카까지 모셔다주는 버스들이 기다리고 있지만, (일년에 딱 한번 성지순례때 사용하기 위해 수만대의 버스가 젯다 지역 인근 여러 곳에 주차하고 있다죠... 젯다 공항에도 성지순례객들을 위한 별도의 터미날이 있구요..) 도보와 낙타 이동이 전부였던 그 옛날엔 메카로 가는 것 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까요... 그야말로 산넘고 바다건너 사막을 가로질러야 했으니 먼 곳에 있는 무슬림들일수록 평생에 한 번 다녀오는 것 조차 쉽지 않았을 겁니다... 핫지 기간에 성지순례를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언제나 가능한 약식 순례인 우므라가 있지만, 그 가치는 핫지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힘들게 성지순례를 마쳤기에 이를 자랑하는 의미에서 자신의 이름 앞에 핫지를 붙이기도 합니다... 핫지 압둘라..이런 식으로 말이죠... 성지순례가 끝나면 이드 알 아드하라는 희생제가 이어져 양을 잡아 알라에게 바치고 고행성취를 축하하죠...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제대로 밟은 무슬림들은 어떤 생각을 갖게 될까요? 바로...

무슬림 공동체 속에서 "우리가 남이가?"라는 연대의식입니다...

같은 방법으로 생활하다 단식의 고통도 공유하고, 강렬한 태양 아래서 서로의 살을 부대끼며 성지순례를 함께 하는 육체적 고행을 함께 했다는 동질감...이 강한 정신적인 유대감을 만들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육체적 고행을 통한 연대의식의 고취는 군생활을 해본 사람들이라면 실감할 수 있으실 겁니다.. 연대의식을 고취시킨다고 몇 사람의 잘못 때문에 단체기합 주는게 예사잖아요...

 

입으로 내뱉는 한마디에서 시작하여 육체적 고행을 함께 공유하는 일련의 과정으로 인해 집단간의 동질감은 상당히 강한 편입니다... 물론 요즘 들어서는 헤게모니를 다투는 정치적 목적 때문에 국가별로, 종파별로 나뉘어지기는 했습니다만.. 무슬림 형제라는 공동체 의식은 미약하게나마 여전히 남아있거든요...

 

이러한 무슬림들에게 개종하라는 것은 단순히 종교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바로 같은 가치관을 공유해오던 자신의 공동체에서 이탈하라는 강요와 다를 바 없으며, 총칼만 안들었을 뿐 자신의 사명감 때문에 자신들과는 다른 종교적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의 권리를 짓밟는 것과 같습니다... (개신교가 선교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이슬람은 전혀 이질적인 종교가 아닌 자신들과 같은 하느님을 다른 방법으로 모시는 종교라는 사실은 아이러니하죠...)

각설하고, 공개적으로 개종했다는 무슬림을 보게되면 다른 무슬림들이 공통적으로 갖게되는 생각은 딱 하나입니다...

"배신이야~! 배신!!!!" (어디서 많이 보던 대사죠? ^^)

 

비록 내부에서야 어떤 문제가 있다한들 외부에서 자신들의 공동체를 분열시키려 들면 반발하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하물며 그 세력이 종교적 유대감으로 뭉친 집단이고, 자신들을 깨는 외부세력이 두고두고 해를 끼치고 있는 기독교계라면 그 반발의 정도가 더 심하겠죠... 그네들의 정부가 친미정권이라고 해서 나라 전체가 기독교에 대해 우호적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독재정치를 해오고 있는 이들이 자신들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친미정책을 취하는 것일 뿐, 반미감정과 결합하여 대중들 사이에 기독교에 대한 반감은 그 어느 때보다도 크니까요..

 

자신들의 목숨 앞에서는 당당하지 못한 어설픈 사명감에 빠져있는 개신교의 선교활동은 단순히 MT성 선교여행으로 치부할 수 있는 단순한 행위가 아닌, 바로 이런 엄청난 파급 효과를 가진 행위입니다... 일개 개인이 아니라 하나의 공동체를 깨는 행위, 그리고 이로 인한 보복을 유발시키고도 남는 충분한 행위를 말이죠... 그렇기에 단기 선교로는 소기의 목적달성 조차 힘든 하나의 쇼에 불과할 뿐이며, 이슬람 지역에서의 노골적인 개신교 선교활동은 지역민들에게 "나 죽여줍쇼~!"라고 떠드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첨 한 두번이야 그런갑다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되풀이되면 남아있는 교민들이나 쇼하지 않는 진정한 선교사들에게 한국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들과 함께 오히려 해가 될 확률이 높습니다... 자신들이야 잠깐 스쳐가면 그만일 뿐이지만, 남아있는 사람들에게는 악영향을 끼칠 수 밖에 없는 민폐일 뿐이죠... 이번처럼 납치라도 당하면 국제적인 문제가 될수도 있구요...

 

지금도 진행 중이고 이런 일이 또 일어난다고 해서 그릇된 사명감에 빠진 개신교의 강압적인 해외 선교활동이 없어지진 않을 것 같습니다만... 개신교 특유의 독선과 오만함을 떨쳐버리지 않는 한 이러한 비극은 앞으로도 계속 우리 앞에 나타날 것입니다...

 

자신들과 다른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는 공동체를 깨고 그 가치관을 부정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으며, 설령 그릇된 사명감에 사로잡혀 이에 도전한다면 자신들을 향한 강력한 저항과 직면할 각오를 하고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자신의 가치관이 중요한 만큼, 다른 이에게는 자신들의 가치관과 공동체를 외부로부터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