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 이야기/아랍의 이모저모

[문화] 아랍인들의 주택구조

둘뱅 2008. 2. 4. 16:29

이래저래 아랍 세계에 관심을 갖고 현지 체류를 하게 되면서 나름 친근감을 느끼게 되었던 건 지금의 우리들 모습과는 많이 다르지만, 우리의 예전 모습과 그들의 모습 속에서 비슷한 면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부장적인 대가족 문화와 음식 문화, 남녀가 유별하다는 것들 등등...

이러한 모습들이 지금처럼 서구화된 것도 따지고 보면 오래된 일이 아니기도 합니다. 그 짧은 기간에 우리의 사회, 문화는 급변했고, 그들은 종교때문에라도 그 변화가 느려질 수 밖에 없는 것이죠...

 

그러한 공통점 중 하나가 바로 주택구조입니다... 주택의 형태는 변화가 있지만 그 변화 속에서도 일관된 공통점이 있거든요... 그래서 오늘의 아랍 이야기는 아랍인들의 주택구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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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의 크기나 면적에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이렇게 작은 몇 개의 건물이 한 울타리에 있는 집도 있고...

 

알 아르다 지역, 사우디 (2001)

 

또는 큰 한 채의 집, 혹은 그 큰 집에 몇 개의 별채가 있는 집도 있습니다...

 

 

제다, 사우디 (2006)

 

물론 오늘날의 아파트와 같은 집들도 있죠....

어떤 형태의 집이던지 아랍의 주택들은 모두 한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거실 / 사랑방과 같은 외부손님 접대용 공간은 문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부녀자들이 머무는 곳은 문에서 가장 멀고 깊숙한 곳에 둔다는 것이죠...

(아파트나 단독주택과 같은 경우라면 거실이 가장 넓은 공간이 되구요.)

 

 

라비그 지역의 양계장, 사우디 (2007)

 

 

이렇게 넓어 보이는 곳에도 사랑채는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저 흰색 건물 안에 있습니다.

 

라비그 지역의 양계장, 사우디 (2007)

 

 

거실, 혹은 사랑채를 문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두는 이유는 외부 손님과 집안의 부녀자들을 접촉을 피하게 만들기 위해서 입니다.

 

식구가 아닌 외간 남자와의 접촉을 되도록 억제하기 위해 노출을 최대한 자제하는 복장을 입고 다니는 풍습이 있고, 명예 살인이라는 악습까지 남아있는 그들의 문화를 생각해 본다면, 손님을 초대하되 집안의 부녀자들과의 합석을 피하게 하기 위해선 이 방법 밖에 없었겠지요... 과거에 우리에게도 사랑방 / 별채가 있었던 것처럼요...

 

앞서 말한 이유와 연관되는 것이긴 하지만 또 하나의 목적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목숨을 걸고 자신의 식구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집안의 가장 외진 곳에 부녀자들의 거처를 마련하는 것, 그건 다른 사람, 혹은 부족들과 전쟁을 할 때 그 방에 도달하기 전까지 목숨을 걸고 지켜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것이죠.

 

이러한 의지의 표현이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곳이 사우디와 예멘의 산간지역 등에서 볼 수 있는 집들입니다... 특히 아파트 형태의 집은 예멘이 원조인 것으로 알고 있지만 가본 적은 없기에 예멘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사우디 국경지역을 예로 들어봅니다...

 

앗 다이르 마을 (예멘과의 국경 부근), 사우디 (2001)

 

 

지극히 평범한 마을에서도 길이 험한 산 도처도처에 집들이 보입니다... 그나마 이 정도는 무난한 편입니다만, 정말 이런 곳에까지 집짓고 살까 싶을 정도의 산에 집을 짓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안 나키프 산악 지역 (예멘과의 국경 부근), 사우디 (2001)

 

안 나키프 산악 지역 (예멘과의 국경 부근), 사우디 (2001)

 

안 나키프 산악 지역 (예멘과의 국경 부근), 사우디 (2001)

 

안 나키프 산악 지역 (예멘과의 국경 부근), 사우디 (2001)

 

 

정말 저런 데서 왜 살까 싶으시죠? ^^

위에 사진에서 보듯이 경치와 전망이 가장 좋은 곳, 그러나 진입로는 불편하고 창 밖으로 뛰쳐 내리면 바로 절벽 밖에 없는...

바로 그곳이 집의 입구에서 가장 먼 부녀자들의 방입니다...

 

좋은 풍경을 제공해주는 것도 좋습니다만, 길도 험한 곳에 저렇게 집을 짓는 것은 아무나 쉽게 범접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또한 그러한 집에 가장 풍경 좋은 방이 부녀자들의 방이라는 것 자체가 그 집안의 남자들에겐 자신의 식구들을 목숨걸고 보호하겠다는 일종의 배수진과 같은 것이죠... 외부의 침입으로 인한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도망치는 길이라곤 떨어져 죽는 것 밖에 없기에 식구들을 그렇게 만들거나 다른 남자들에게 욕보이는 모습을 보느니 그 전에 자신들의 목숨을 걸고 식구들을 지켜내겠다, 그래도 안된다면...이라는 결연한 의지를 표명하는 것이죠.

 

어찌보면 전형적인 가부장제의 의식이 다분히 보이는 것도 사실이지만, 뜨거운 날씨와 험난한 주변환경, 유목이 생활의 기본인 그들의 상황을 고려해보자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일지도 모릅니다...

 

얼마 전까지 우리에게도 외간남자와의 접촉을 차단하기 위한 남자들만의 사랑방 / 별채가 있듯, 아랍인들의 집도 마찬가지의 생각이 반영된 집들이 있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우리 사회 속에선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은 훌륭한 문학 작품이 되지만, 그들 문화에선 잔혹한 신문 기사가 된다는 것일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