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 이야기/여러 생각들...

[칼럼] 어떤 파키스탄 노동자를 떠올리다...

둘뱅 2007. 7. 25. 17:33

2000년부터 2002년까지 사우디의 아르다 지역에 있는 작은 회사의 건설현장 사무소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습니다... "젯다, 리야드는 얼핏 들어본 것 같은데... 아르다는 어디???" 이런 질문을 받으면 참 난감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보는 세계 지도엔 표시도 안되는 동네거든요... 그래서 구글 어스를 빌려왔습니다...

 

 

바로 화면 중앙 하단부에 Site Office로 표기된 부분이 제가 있던 곳이었습니다... 확대해서 보여드리고 싶지만, 산 밖에 없는 동네인데도 불구하고 국경지역인 탓인지 상세한 이미지가 나오지 않더군요...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저 위에 보이는 수도 리야드에서 제가 있던 곳까지 오는데 버스와 택시로 대략 19시간 정도 걸렸습니다... 리야드에서 지잔주의 주도 지잔까지 18시간, 그리고 지잔에서 캠프까지 1시간... 교통대란으로 차가 막힐 곳은 몇군데 안되기 때문에 이동거리가 상당하단 걸 아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동네 분위기 파악을 위해 캠프 앞 풍경을 소개해드리자면...

 

 

이랬습니다.. 바로 눈 앞에 험준한 산악지대가 펼쳐져 있죠... 50도를 넘나드는 무더위와 우기가 함께 찾아오는 사우디에서 보기드문 동네임에도 낙후되어 전기공급이 안되는 통에 도착한지 2주일 정도 지나니까 인근 지역에 모기를 매개체로 하는 전염병이 돌아 수백명의 사람들이 죽어나가더군요...ㅠㅠ (1930년대 아프리카 남부 지방에서 유행했던 전염병이 2000년의 사우디 남부지방에서 돌았던 것입니다!!!) 그러자 돈 있는 사우디 사람들은 전염병 피한다고 다른 곳으로 대피하는 와중에 전기 넣어주겠다고 한국 사람을 포함한 외국 근로자들은 현장으로 찾아오는 웃기는 상황이 벌어지기까지 했습니다... 필리핀,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네팔 등 다양한 국적의 근로자들이 근무했었는데 불현듯 떠오르는 한 파키스탄 노동자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그는 많은 교육을 받지 않아 다소 우둔했지만, 파키스탄 근로자에게선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근성이 두드러지지 않은 심성이 착한 순박한 직원이었습니다... 어느날 사무실에 있는데 그 직원이 몸살을 호소하며 사무실에 찾아오더군요... 저와 파키스탄 근로자 사이에서 통역을 해주던 파키스탄인 사이프란 직원과 함께 병원 인근에 있는 아르다 마을의 병원을 찾아갔습니다... 낙후된 동네다 보니 시설은 보잘 것 없었지만, 진료와 약처방은 공짜로 받을 수 있어서 종종 가던 곳이었습니다... (심지어는 맹장수술까지 공짜로 받기도 했었죠... 예전 글에서도 소개한 바 있지만... 부작용이 커서 낭패였다는...ㅠㅠ)

 

다행히 병원의 당직 의사가 파키스탄인 의사여서 제가 할 일이 없기에 맘 편하게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굳이 중간에서 통역한다고 나설 필요가 없었으니까요... 진료를 하고, 약과 주사 처방을 받기 전까진 평소 때와 마찬가지로 순탄하게 진행되고 있었습니다.....만 갑자기 아파 죽겠다던 직원이 의사가 처방해 준 주사를 안 맞겠다고 우기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안 맞겠다는 이유는 단 한가지였습니다...

 

"지금은 라마단이잖아... 독실한 무슬림은 금식 중엔 어떤 것도 받아들이면 안돼... 그러니까 난 주사를 맞을 수 없어!!!"

 

그렇습니다... 마침 라마단 기간 중이었습니다...

라마단 기간 중의 주중 금식에는 먹는 것 뿐 아니라, 물 같은 마시는 것은 물론이요.. 몸 속에 들어가는 모든 것들을 못하게 합니다... 제대로 따지면 배고프고 목마르다고 입안에서 침을 고여 삼키는 것도 허락이 안되거든요... 그렇기에 주사를 맞을 수 없다고 우겼던 것입니다... 그럼 심하게 아파 죽겠는 상황에도 주사를 맞으면 정말 안되는 걸까요??

 

아닙니다... 이 직원은 기본적인 의무사항은 알았지만 이에 대한 예외를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라마단 기간 주중의 먹고 마시는 행위는 금물....이지만, 단 여행객과 환자에게는 예외거든요... 타지로 여행을 하거나, 아파 죽겠는데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게 하면 어찌 살겠습니까?? 종교도 사람이 살아남아야 의미가 있는 것인데요... 물론 예외를 두어도 결국은 의무이기 때문에 라마단이 끝난 후 지키지 못한 날 만큼 자진 금식을 하던가, 더 힘든 사람들에게 음식을 베푸는 것으로 대체할 수 있는 융통성을 두고 있습니다..

 

아무튼... 이 예외적인 상황에 대해선 생각지도 않은채 아파 죽겠다면서 주사는 못 맞겠다고 계속 버티더군요... 덕분에 같이 갔던 사이프와 전 한 시간 동안이나 이 직원을 설득해야만 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펼쳐졌습니다... 아프다고 데려왔더니 주사는 맞기 싫다는 걸 설득해야만 했던, 비무슬림인 제가 이슬람을 들먹이며 무슬림을 설득해야만 했던 퐝당한 시츄에이숀~이었던 거죠... 결국 한 시간 동안의 설득과 협박이 주효하여 결국엔 주사를 맞게 하는데 성공했고 결국엔 나았던 기억이 납니다....

 

종교를 어떻게 해석하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 수도, 민폐를 끼칠 수도 있습니다... 제대로만 하면 문제도 아닌데 자기 편한대로 해석해서 행동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손해를 끼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모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종교 자체에 대한 반감을 갖게 할 수도 있거든요...

 

피랍 사건 때문에 요근래들어 개신교에 대한 여러가지 얘기들이 흘러나옵니다... 정말 존경할 수 있을만한 분들의 얘기도 있지만, 그런 이야기들도 많은 사람들의 비난 속에 묻혀지는 것 같습니다... 똑같은 일을 세번씩이나 경험했으면서도 자성하기는 커녕 더 노골적으로 선교활동을 보내겠다는 단체나 왜 사람들이 비판하는 가에 대한 원인에 대해서는 생각하려 들지도 않은 채 사건의 본질과는 상관없는 엉뚱한 얘기를 하거나 같은 얘기가 무한반복되니 듣기 지겹다며 눈 가리고 아웅하려는 일부 평신도들의 모습을 보면서 앞으로 제4의, 제5의 피랍사건이 계속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더군요... 참 씁쓸한 일이죠... 

 

자신이 잘못 알고 행동해왔지만 뒤늦게나마 잘못을 깨닫고 나았던 파키스탄 직원처럼, 조금만이라도 사람들의 비판에 귀를 기울여 신도수가 줄어든다고 긴장만 하지말고 비난받는 방식을 수정할 줄 아는 지혜로운 개신교인의 자세를 기대하고 싶습니다만... 잘 될까요???